전생의 기억
다카하시 가쓰히코 지음, 박현주 옮김 / 네오픽션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106회 나오키상 수상작인 붉은 기억의 작가 다카하시 가쓰히코의 전생의 기억을 읽었다. 그렇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작품 역시 붉은 기억과 상당히 비슷한 느낌을 주는 작품으로, 1996년 작품이다. 도합 8편의 각양각색의 기억에 얽힌 단편소설들.

 

책을 읽고 나면 혹 나에게도 이런 봉인된 기억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대체로 봉인된 기억을 가지고 있다. 대체로 그런 기억이 있는지 조자 모른다. 또는 왜곡된 기억을 진실된 기억인양 알고 살아가기도 한다. 그런 그들이 우연한 기회에 기억을 되찾게 된다. 대체로 끔찍한 진실을 담고 있는 기억들을.

 

어떤 이는 두통 치료를 위한 최면 치료를 하는 가운데, 전생의 기억을 되찾게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특별한 노래를 들으며 꽁꽁 감춰졌던 기억의 자락을 엿보기도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오랜만에 방문한 고향, 그곳에서 맡게 된 냄새를 통해, 또는 오랜만에 방문한 어린 시절 자랐던 고장의 풍경이나 장소를 통해, 봉인된 기억이 해제되기도 한다.

 

이 장소, 어린 시절의 봉인된 기억의 장소들은 8편 소설 모두 모리오카라는 곳이다. 몇몇 소설은 모리오카라는 지명이 분명히 명시되기도 하고, 또 몇몇 소설은 모리오카라는 지명이 명시되지는 않지만, 연상되어지는 풍경이 모리오카처럼 느껴진다. 오랫동안 발전되지 않고 정체된 공간, 그 공간을 방문하면서 봉인된 기억들이 해제되며, 주인공들은 뜻하지 않은 진실 앞에 서게 된다.

 

좋은 감정을 가진 지인이 알고 보니 자신 가문을 파괴시킨 장본인이 되기도 하고. 가족을 버리고 도망친 아빠가 알고 보니 불륜을 행한 모친과 애인에 의해 살해되기도 하고. 이처럼 많은 경우, 기억이 봉인되었거나, 일정 기간의 기억이 삭제되어 있던 이유는 가족의 끔찍한 죄악을 무의식 가운데 숨기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런 봉인된 기억들을 풀어보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까?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잃었던 기억을 되찾는 작업은 독자에겐 즐거운 여정임에 분명하다. 무엇보다 반전의 기억이 참 재미나다. 때론 오소소 소름을 돋게 만들기도 하고.

 

이처럼 소설은 때론 피하고 싶은 기억을 만나기도 하고. 때론 누군가의 아픈 기억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때론 애틋했던 가슴 시린 기억을 되새기기도 하고. 때론 왜곡되고 뒤틀린 기억을 바로 잡기도 한다.

 

모든 추억은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지만, 대개는 열쇠로 굳게 잠겨 있기 때문에 잊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 그 열쇠를 열어보기도 하지만 싫은 추억을 만나게 되면 사람들은 당황하며 뚜껑을 얼른 덮고 만다. 그래서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랑스러운 추억만을 추출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좋든 싫든 열쇠를 열어야 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271)

 

소설을 덮으며 묻게 된다. 나에게도 혹 열어야 할 기억이 감춰져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말이다. 어린 시절 특별한 굴곡 없이 무난하게 성장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데, 혹 그 안에 봉인된 기억, 어쩌면 원치 않은 기억들을 왜곡시켜 간직하고 있진 않을까 하는 의심, 그리고 막연한 기대와 흥분을 말이다. 왠지 그런 기억이 있으면 재미날 것 같은 기대를 말이다. 물론, 그럴 리 없음을 잘 알면서 말이다.

 

아무튼 소설집 전생의 기억은 재미나다. 때론 기괴하기도 하지만, 기괴함 속에 미스터리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들을 흥분시킬 재미가 감춰져 있다. 작가의 또 다른 작품들은 뭐가 있을까 찾아보게 된다. 찾아보니 이 작가 작품은 몇 권 없다. 아니 엄청 많은데, 우리말로 번역된 작품이 세 권 밖에 없어, 내가 읽을 수 있는 책이 한 권 남았다. 작가의 데뷔작이자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인 샤라쿠 살인사건밖에는. 아쉬움을 안고, 이 책을 얼른 찾아 봄으로 아쉬움을 달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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