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중록 1

잠중록 1
처처칭한 지음, 서미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4월

금번 아르테에서 출간된 재미난 미스터리 소설을 만났다. 『잠중록』이란 제목의 미스터리 소설인데, 미스터리에 중국 사극과 로맨스가 더해진 소설이다. 그러니 미스터리 사극 로맨스라 부를 수 있을 게다. 로맨스이긴 한데, 로맨스는 극히 절제된 느낌이다. 그래서 더 애틋하기도 하고 달달하기도 한데, 주류는 미스터리다.

주인공 황재하는 소문난 천재소녀로 오리무중의 사건들을 척척 풀어냄으로 유명해진 소녀인데, 어느 날 자신의 가족들을 죽인 살인범으로 누명을 쓰게 되고 도망자의 신세가 된다. 외진 곳으로 도망칠 것이라는 생각에 허를 찔러 도리어 장안으로 잠입해 들어온 황재하. 그녀는 장안에 들어오며 기왕 이서백을 만나게 되고, 이서백 수하의 환관이 되면서 양숭고라는 새로운 신분으로 활약을 하게 된다.

기왕 이서백에게 얽힌 미스터리 사건을 해결해주면, 다시 촉으로 건너가 황재하 가족의 사건을 재조명하는 일에 기왕이 도움을 주기로 한 것. 이렇게 살인자의 신분으로서 기왕의 환관이 되어 장안에 등장한 황재하(양숭고), 그녀의 활약을 기대하시라.

비운의 천재추리소녀 황재하가 환관 양숭고가 되어 모시게 된 기왕은 사람 같지도 않은 완벽한 인간이다. 무엇이든 한번 보면 잊어버리지 않는 완벽한 기억력, 여기에 엄청난 업무능력까지 갖춘 기왕. 황제의 동생이라는 엄청난 신분에 그 스스로에게 갖춰진 엄청난 능력들. 하지만, 한 가지 인간미가 없다. 찔러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만 같은 냉혈한처럼 느껴지는 기왕. 하지만, 그런 기왕이 어쩐지 환관 양숭고에게만은 다르다. 양숭고의 진짜 신분인 황재하란 신분을 알고 있는 기왕이 어쩐지 자꾸 양숭고에게 마음을 주는 느낌. 그렇다고 로맨스가 급격히 진행되진 않는다. 진행되는 듯 진행되지 않는 듯. 로맨스 아닌 듯 로맨스 인 듯. 어쩐지 독자들을 더욱 달아오르게 만들려는 작가의 줄다리기에 말려드는 느낌.

하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 소설의 주류는 로맨스가 아니라 미스터리다. 양숭고는 장안에서 두 가지 사건을 해결하게 된다. 첫 번째 사건은 ‘사방안 사건’으로 장안에서 벌어진 세 건의 살인사건인데,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하던 사건이었지만, 양숭고는 단박에 이 사건을 해결해 냄으로 장안의 화제의 주인공이 된다.

이제 양숭고(황재하) 앞에 진짜 해결해야 할 사건이 놓이게 된다. 그 사건은 이리저리 많이도 얽히고설킨 사건이다. 연관이 없는 것만 같은 여러 사람들의 살인사건. 그리고 기왕의 예비왕후 왕약의 살해사건 등. 여러 사건들이 얽히고설키게 되는데, 이 모든 사건을 양숭고(황재하)와 기왕이 해결해 낸다. 바로 비녀 하나로.

소설의 제목인 ‘잠중록’은 ‘비녀의 기록’이란 의미를 갖고 있는데, 황재하의 버릇이 풀기 어려운 미스터리를 풀어나갈 때, 머리에 꽂았던 비녀를 빼내어 끄적거리며 사건을 풀어나가는데, 바로 이점을 의미하는 제목이다.

환관 양숭고가 된 황재하, 그가 풀어나가는 미스터리 사건이 참 흥미진진 재미나다. 기왕과의 묘한 신경전도 가슴 두근거리게 만들고.

여기에 또 한 사람 빠질 수 없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주자진이란 도련님이다. 주 시랑의 막내아들로 포졸이 되길 갈망하는 넉살 좋은 한량인데, 시체 부검에 목숨을 거는 독특한 사내다. 그가 시체 부검에 목숨을 거는 이유가 있다. 바로 그에게 우상이 있었으니, 바로 추리계의 혜성과 같은 존재 황재하, 비록 가족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하지라도 주자진에게 황재하는 여전히 우상과 같은 존재다. 그 우상을 언젠가 만나면 인정받기 위해 주자진은 시체 부검에 열을 올리며 과학적 수사, 법의학 수사의 기술을 습득하며 추리계의 또 하나의 커다란 산으로 성장해간다. 그것도 양숭고와 함께 사건 현장을 활보하며 말이다. 자신과 함께 하는 환관 양숭고가 바로 자신의 우상인 황재하라는 사실도 모른 채 말이다.

이렇게 세 사람 황재하, 기왕, 그리고 주자진이 풀어나가는 미스터리 사건의 진실, 그 진실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중국 사극이란 독특한 분위기가 더해진 미스터리인데, 미스터리 애독자들이라면 금세 그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소설이다.

전4권으로 우선 1,2권이 함께 출간되었는데, 사건 자체는 1권 안에서 완전히 해결되기에, 1권 한 권 읽어도 무리는 없다. 물론, 2권 역시 별도의 사건이 진행되기에 2권만 읽어도 괜찮겠지만, 2권의 경우는 그래도 1권을 읽고 접하는 것이 선이해를 갖고 접할 수 있어 좋겠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