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트기 힘든 긴 밤 ㅣ 추리의 왕
쯔진천 지음, 최정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11월
평점 :
중국작가의 추리소설은 처음이다. 중국소설하면 언뜻 떠오르는 것은 얼마 전 타계하신 김용 선생의 무협소설이지, 추리소설은 떠올려보질 못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중국 추리소설이 제법 많다. 아직 우리에게 많이 번역되지 않았을 뿐이지.
아무튼 개인적으로 중국추리소설 첫 번째 작품으로 읽게 된 게 중국 추리소설계에서 3대 인기 작가에 든다는 쯔진천의 작품이다. 『동트기 힘든 긴 밤』이란 제목으로 번역된 작품인데, 이 작품은 2017년 중국 리뷰 사이트 더우반에서 고평점 도서 Top 10에 선정되기도 한 작품이라고 한다. 소설을 읽으며, 마땅히 고평점 도서에 뽑힐만하다 싶다.
소설은 한 사람이 지하철을 타고 시체를 유기하러 가려다 현장에서 체포되면서 시작된다. 술에 취한 한 사내, 꾀죄죄한 모습의 사내는 어리석게도 시체를 커다란 가방에 넣고 지하철 역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체포된다. 수많은 목격자들 뿐 아니라 수많은 핸드폰 영상으로 촬영된 사건. 놀랍게도 현행범은 장차오라는 변호사였다. 그것도 상당히 잘나가는 변호사. 순순히 자신의 죄를 시인한 장차오는 첫 법정에서 돌연 자신이 죽이지 않았노라고 번복한다. 게다가 실제 범행이 일어난 시간 장차오에겐 확실한 알리바이가 확인된다. 이에 이 사건은 다시 한 번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모으게 되는데. 과연 진범은 누구일까?
이에 자오톄민이란 수사관과 전직 수사관이자 현 대학교수인 옌량이 이 사건을 파고들게 된다. 살해된 피해자 장양(전직 검찰관)의 방에서 찾은 단서를 찾아 허우구이핑이라는 사람의 흔적을 뒤쫓게 되면서 엄청난 사건을 하나하나 캐내게 되는데...
소설은 거대한 권력이 저지른 추악한 범죄를 고발하고 있다. 법관 지망생인 한 대학생이 시골 마을에서 목격한 미성년자 성폭행사건, 그리고 그 뒤에 도사린 엄청난 권력의 사악한 힘. 이에 맞서다 도리어 파렴치한 성폭행범으로 몰려 자살했다는 청년 허우구이핑. 하지만, 그의 애인은 절대 자살이 아니라 확신한다. 이에 허우구이핑의 동창이자 검찰관이 된 장양은 마침 그 지역에서 검찰관직을 수행하게 되면서, 허우구이핑 사건에 대해 조사를 하게 되고, 결국 진실을 알게 된다. 거대한 세력에 의해 오히려 살해되었음을. 그 입을 막기 위해. 이에 자신의 젊음을 바쳐 이 사건을 고발하기 위해 애쓰던 검찰관 장양 역시 방탕한 도박꾼으로 몰리며, 검찰관직에서 쫓겨나고 만다.
이렇게 정의를 세우기 위해 거대권력과 맞서다 결국 파면을 당한 검찰관. 그리고 그와 함께 거대 권력의 죄를 들추었던 정의로운 경찰. 이 둘을 주변에서 돕는 법의관. 그리고 이들과 뜻을 같이 하기로 한 변호사. 소설이 진행될수록 드러나게 되는 이들이 벌이는 한판 승부가 흥분을 쉬 가라앉히기 힘들 정도로 커다란 격랑으로 밀려든다.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젊음을 다 바친 이들, 그들의 정의로운 투쟁사가 소설 속에 가득하다. 그렇다. 이 소설은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이다. 소설 속에 드러나는 범죄, 거대 권력의 추악함은 어쩌면 중국 작가이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우리나라나 일본 작가 역시 이런 추악한 권력형 범죄를 고발하는 미스터리 추리소설이 가능하겠지만, 그런 권력형 범죄가 펼쳐지는 배경이나 양상만은 중국만의 고유함이 느껴진다. 중국작가이기에 가능한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 『동트기 힘든 긴 밤』은 별점 만점을 주는 것이 아깝지 않다. 소설을 읽으며, 이런 스토리가 출간 가능했다는 점 역시 중국을 다시 보게 된다.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이면서도, 아울러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고발, 그 충격은 엄청나면서도, 전혀 따분하지 않다는 점이야말로 이 소설의 가장 큰 강점이다. 개인적으로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들을 좋아하지만, 작가들이 그 사회적 고발 내용에 집중하다보니 때론 수업을 듣는 건지, 장황한 훈시를 듣고 있는 건지 분간이 가지 않는 따분함이 도사리고 있는 미스터리소설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결코 그렇지 않다. 엄청난 사회 고발적 내용을 품고 있음에도 전혀 따분하지 않다. 굳이 논리나 장황한 사상이나 문장으로 사회적 고발을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건을 통해, 그 사건을 쫓아가는 가운데 엄청난 사회적 불의, 부조리의 실체를 깨닫게 되고, 그러한 권력의 부정 불의 죄악 앞에 독자로 하여금 분노하게 만드는 힘이야말로 이 소설의 매력이다.
『동트기 힘든 긴 밤』은 중국 추리소설에 대한 내 선입견을 완전히 바꿔놓은 책이다. 앞으로 중국 추리소설의 팬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