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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부서진 밤
정명섭 지음 / 시공사 / 2018년 10월
평점 :
정명섭 작가의 소설 『달이 부서진 밤』은 고구려가 망해가던 시기를 다룬 시대극이면서 또한 좀비가 등장하는 좀비소설이다. 마치 사극에 좀비영화가 결합된 듯한 느낌을 풍기는 소설이다.
언뜻 좀비와 우리 역사소설의 결합이 어색하진 않을까 생각하게 마련인데, 전혀 그렇지 않다. 수나라 병사로 고구려의 포로가 되었던 아버지를 둔 반쪽짜리 고구려인 세활과 동료들, 일명 ‘수노당’은 연개소문의 사병이 되어 오랜 시간 전장을 돌며 고구려를 위해 싸운다. 그러던 세활과 부하들은 이제 꺼져버린 고구려를 다시 세우기 위해 한 사람을 찾아 나선다. 전설적 존재가 되어버린 고구려 장수 양만춘 장군을 말이다.
이렇게 양만춘 장군을 찾아 모처의 계곡으로 들어선 그들이 만나는 것은 어둠과 안개, 그리고 그 안에 도사리고 있는 괴 존재들이다. 마치 삶과 죽음의 경계에 머물며 죽음만을 갈구하는 듯한 존재들. 몸은 있으되 마음은 없고, 움직이되 생명은 꺼져버린 것만 같은 존재들. 괴력을 발휘하며 군사들을 몰살시킬 능력을 가진 존재들. 과연 이 존재들은 무엇일까?
세활과 부하들은 양만춘 장군을 찾아 들어선 계곡 안에서 이런 괴생명체, 아니 괴물들을 만나게 된다. 과연 이들 괴물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또한 세활은 고구려의 마지막 희망이라 여긴 양만춘 장군을 만남으로 흩어진 고구려 병사들을 하나로 모아 고구려 재건을 이뤄낼 수 있을까?
다양한 분야의 책을 쓰는 작가인 정명섭 작가는 알 사람들은 다 알만큼 좀비에 대해 큰 애정을 갖고 연구하며 창작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 작가의 이번 작품 『달이 부서진 밤』은 고구려 멸망의 시기, 고구려를 재건하려는 몸부림과 좀비라는 이국적 존재의 결합이 다소 생소하면서도 멋진 접근으로 펼쳐지고 있는 작품이다. 물론, 소설 속에서 ‘좀비’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검은 괴물’, ‘그것들’로 불릴 뿐이다(그러고 보니, 올 여름 출간되었던 좀비 앤솔로지 단편소설집의 제목 역시 『그것들』이다. 이 작품집에서는 다양한 작가들이 좀비에 대해 다양하게 접근하는 시도들을 만날 수 있다.).
아울러 이 ‘그것들’은 좀비에 대한 통상적 내용과는 다소 다른 특징들을 갖고 있기도 하다. 예를 들면, 날개가 있어 날아다니는 녀석이 등장하기도 하고. 괴물과 인간의 형상을 오가는 존재가 등장하기도 한다.
또한 이런 좀비(물론, 그냥 ‘그것들’이지만.)의 기원을 환웅족, 곰족, 호랑이족 과 연관시켜, 우리의 신화 그 출발에 두는 점도 획기적이라 말할 수 있겠다. 이런 실험적 접근이 흥미롭게 읽혔다.
아울러 좀비이지만, 인간이었을 때의 마음이 남아 있는 존재, 그래서 자신들이 지킬 자들이 있어 그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물론, 이미 생명이 끝난 존재이겠지만)을 희생하면서까지 싸우는 좀비들의 모습은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