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뇌를 끌어안고
치넨 미키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10월
평점 :
품절


치넨 미키토의 작품을 처음 만났던 건 가면병동을 통해서였다. 당시 재미나게 읽었던 기억인데, 그동안 출간된 작가의 몇몇 작품들을 미처 읽지 못하다 이번에 출간된 작품 무너지는 뇌를 끌어안고를 반가운 심정으로 만나게 되었다.

 

현직 내과의사라는 이력을 가진 작가답게(?) 이번 소설 역시 병원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등장인물 역시 의사와 환자다. 경치 좋은 바닷가 작은 마을의 병원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인 우스이 소마는 수련의 과정을 밟고 있는 의사다. 그런 우스이는 하야마곶 병원이라는 한적한 시골 바닷가 마을의 병원으로 한 달 간 파견 근무를 하게 된다. 그곳 병원에서 담당하게 된 환자들 가운데 인상 깊은 환자가 있다.

 

엄청난 유산의 상속녀인 유가리 타마키(‘는 유카리라 부른다.)씨인데, 그녀는 머리에 시한폭탄을 안고 있다. 수술도 할 수 없는 커다란 뇌종양 덩어리가 뇌 속에 자리 잡고 있어,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여인. 그 유카리 씨와 함께 하는 동안 의 가슴 속엔 유카리 씨가 깊숙이 자리하게 된다. 어느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하던 의 마음은 유카리 씨에게 스르륵 열려버린다.

 

그런 유카리 씨가 죽었다. 그런데, 외부출입을 두려워하던 유카리 씨가 먼 도시에서 홀로 죽었다는 사실에 의심을 품고 다시 병원을 찾게 되는데, 이게 웬일인가? ‘는 유가리 타마키 씨를 진료한 적이 없다는 것. 게다가 유카리 씨와 함께 하던 그 병실 역시 오랫동안 비어 있었다는 것. 병원장은 극심한 스트레스 가운데 피폐해진 의 마음이 만들어낸 망상이라고까지 하는데. 과연 는 유카리 씨를 정말 만난 적이 없는 걸까? 이에 는 유카리 씨의 흔적을 좇아가게 되는데.

 

사실, 소설 무너지는 뇌를 끌어안고는 미스터리 소설답지 않게 진행된다. 미스터리 소설, 추리소설인 줄 알고 소설을 시작했는데, 언젠가부터 추리소설이란 생각도 잊고 소설에 몰입하게 된다. 그러다가 추리소설이란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할 때쯤 되어서야, 불가해한 일(또는 사건)이 펼쳐진다. 소설은 이미 3/4정도가 진행된 뒤인데 말이다. 그때서야, ‘맞아, 이 소설 추리소설이었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이게 뭐지? 싶다. 추리소설인데, 본격적으로 미스터리가 시작되는 건, 소설이 기껏 해야 1/4정도밖에 남지 않은 지점이라니. 그럼에도 추리소설로서도 아쉬움이 남지 않는다. 심지어, 소설을 다 읽고 난 후엔, 소설 전체가 미스터리 장르에 속하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본격미스터리이면서도, 전혀 추리소설답지 않는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는 소설의 전반부(실제로는 3/4정도다.)는 아무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하는 젊은 총각 의사와 시한부 인생으로 머릿속에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여인, 소설의 제목처럼 무너지는 뇌를 끌어안고살아가는 가녀린 여인 간의 사랑 이야기다. 그 사랑이 가슴을 적신다. 감동에 마음이 차오르기도 하고. 그러니 소설은 감동소설이자, ‘연애소설이 더 맞을 수 있다.

 

하지만, 소설을 다 읽은 후엔, 확실한 추리소설이라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런 묘한 분위기의 소설, 참 오랜만에 좋은 소설을 만났다는 생각에 책을 덮은 후 한참을 행복했다. 소설이 주는 그 잔향을 오랫동안 음미하기도 했다.

 

소설은 다양한 주제들이 맛난 비빔밥처럼 골고루 비벼져 있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 그들로 인해 생각하게 되는 죽음이란 괴물, 그리고 삶의 축복. 가족을 버린 아빠의 행동 이면에 담겨진 진실, 그로 인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가족애. 재물에 대한 집착, 그 탐욕이 낳는 죄악. 다이아몬드 새장에 갇힌 병든 작은 새와 건강하게 넓은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작은 새, 어느 쪽이 더 행복한지. 등등. 소설을 읽으며, 다양한 주제들을 생각해보게 된다.

 

각설하고, 소설은 재미있다. 감동이 있고. 추리소설의 불가해성, 서스펜스, 그리고 반전까지 갖추고 있다. 여기에 연인간의 사랑, 그 애틋하고 뭉클한 감정까지. 암튼, 무너지는 뇌를 끌어안고, 강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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