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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면관의 살인 ㅣ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박수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아야츠지 유키토의 『기면관의 살인』을 읽었다. 지금은 절판되었지만, 마침 재정가 도서로 판매되기에 구입해두고 잊었던 책. ‘관 시리즈’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첫 번째 책인 『십각관의 살인』을 재미나게 읽었던 터라 『수차관의 살인』과 함께 구입해둔 책이다.
알고 보니 이 책 『기면관의 살인』은 작가의 ‘관 시리즈’ 9번째 작품이다. 첫 번째 이야기와 두 번째 이야기(『수차관의 살인』)를 읽은 후, 건너 뛰어 현재까지는 마지막인 작품을 읽은 셈이다. 그랬기에 이 책에 대한 평가가 본격추리소설로의 복귀라는 말에는 다소 공감하지 못하고 책을 읽었다. 건너 뛰어 읽은 나에겐 여전한 본격추리소설의 맛을 물씬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기에.
‘관 시리즈’는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가 건축한 기이한 건물들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다. 독특한 외양이나 형태, 뿐 아니라 비밀 통로로 비밀의 방 등을 만들어 놓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기인 건축가가 만든 다양한 ‘관’들, 이번엔 ‘기면관’이다. ‘관 시리즈’가 처음 발표된 이후(『십각관의 살인』, 1987년 발표), 9번째 작품인 『기면관의 살인』(2012)은 25년 만에 발표되었다고 한다. 열 개의 ‘관 시리즈’를 생각한다는 작가, 과연 열 번째 ‘관’ 이야기는 언제 만날 수 있을지 기대된다.
추리소설 작가인 시시야 가도미는 동료 작가이자 후배인 휴가 교스케에게서 이상한 제안을 받게 된다. 후배 작가 휴가가 초대받은 모임에 시시야가 대신 참석해 줄 것을 요청받은 것이다. 그것도 휴가 인 척 하면서 말이다. 마침 둘의 외모가 도플갱어라 말할 정도로 비슷하여 사람들이 혼동할 지경임을 이용한 것인데, 이런 이상한 요청에 시시야는 승낙한다. 모임이 열리는 장소가 다름 아닌 기면관이기에, 시시야가 관심을 갖고 있는 나카무라 세이지가 설계한 장소이기에 말이다.
그곳 기면관에서 열리는 모임은 주인 가게야마 이쓰시가 ‘또 하나의 자신’을 찾으려는 모임이다. 또 하나의 자신이 나타나면 행운을 가져올 것이라는 가문의 체험과 전통에 따라 ‘또 하나의 자신’을 찾는 것. 이때 규칙이 있다. 참가자들은 모두 가면을 써야 하는 것.
모임 첫 날 밤을 보낸 후, 모임의 주관자인 기면관의 주인이 죽었다. 목이 잘려 사라지고, 열 손가락이 잘려나간 채. 또 하나 이상한 점은 참석한 여섯 명 모두 밤사이 자신들의 가면이 씌워졌고, 가면을 벗는 열쇠가 사라졌다. 때늦은 폭설로 고립된 외딴 곳의 기면관. 전화마저 망가뜨려져 외부로 연락할 수도 없는 상태의 고립된 공간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주관자는 시체로 발견되고 참석한 자들은 가면을 벗을 수 없는 괴이한 상황, 주인공 시시야 가도미는 이 이상한 사건의 범인을 찾는 추리를 펼쳐 나간다. 범인은 누구일까? 의문의 살인사건에서 왜 머리가 잘렸는지, 그리고 왜 손가락이 잘려나갔는지, 아울러 참석한 6명의 얼굴에는 왜 가면이 씌워져 잠겨버렸는지. 사실 미지의 범인이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 가면을 통해 감추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등은 그리 어렵지 않게 밝혀질 수 있다. 소설 속에서도 역시 이 부분은 그리 어렵지 않게 밝혀진다. 하지만, 가면으로 얼굴이 가려진 상황에서 범인이 누구인지를 밝혀내는 것은 쉽지만은 않다. 과연 시시야 가도미는 어떻게 범인을 밝혀낼 수 있을까? 이 과정이야말로 소설의 진가를 담고 있지 않을까 싶다.
‘관 시리즈’는 순서 없이 읽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왕이면 1권부터 읽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특히, 이번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시시야 가도미의 경우, 앞에서 벌어진 모든 사건들에 참여한 것으로 여러 차례 언급되는데(특히, 수차관의 살인사건), 『수차관의 살인사건』을 읽고, 연달아 이 책을 읽었는데, 『수차관의 살인사건』에는 시시야 가도미가 등장하지 않는데, 그래서 더 궁금했다. 그래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3권인 『미로관의 살인』을 읽어보니, 시시야 가도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이왕이면 차례대로 읽으면 더 좋겠다.
『기면관의 살인』은 본격추리소설이다. 이 책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암흑관의 살인』 같은 고딕 취미나 기괴 환상 취미는 되도록 줄이고 시리즈 초기의, 예를 들어 『미로관의 살인』처럼 어떤 의미로는 ‘놀이’에 가까운 ‘경쾌한 퍼즐 맞추기’를 이쯤에서 하나 내고 싶기도 했습니다.(작가 후기에서)
작가가 작심하고, 퍼즐 맞추기와 같은 ‘본격추리소설’로 쓴 작품인 만큼, 본격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선물과 같은 작품이 아닐까 싶다.
아야츠지 유키토란 작가의 작품을 뒤늦게 읽고 있지만, 참 매력적인 작가다. 특히, 본격추리소설로서 너무 매력적이란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