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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ㅣ 반올림 43
이명인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18년 7월
평점 :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이란 책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만큼 유명한 책이다. 이명인 작가의 청소년소설 『굿바이』는 바로 이 『갈매기의 꿈』 이후의 이야기를 작가의 관점에서 써나간 소설이다.
물론, 작가 역시 “작가의 말”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실상 『갈매기의 꿈』은 알려진 내용, 이후의 내용이 있다. 리처드 바크가 『갈매기의 꿈』을 발표할 때(1970년), 원래 써놓았던 내용 가운데 마지막 장인 4장을 빼고 출간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작가 역시 잊어버렸던 당시의 원고를 뒤늦게 발견함으로 2013년에 4장을 추가한 『갈매기의 꿈』을 발표했다.
이런 사연으로 인해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갈매기의 꿈』은 소설 속 조나단 리빙스턴 이후의 갈매기 사회를 보여주는 4장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국내에서도 4장이 포함되어 출간된 책이 있다. 2015년 현문미디어에서 처음 출간되었다가 절판되고, 같은 번역본이 나무옆의자에서 개정판으로 2018년 출간됨.). 이명인 작가는 이러한 사실을 미처 모르고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에겐 리처드 이후의 갈매기 사회를 보여주는 소설이 두 개가 된 셈이다(독자 입장에서는 더욱 좋은 결과다.).
리처드 바크의 4장 내용과 소설 『굿바이』는 비슷한 느낌도 있지만, 전혀 다른 소설이다. 비슷한 느낌이라면, 조나단가 신격화 되어 경배의 대상이 되어버린 모습이다. 소설 『굿바이』에서 주인공 피피가 떠난 ‘성자의 마을’에서의 모습이 이와 유사하다. 또 한편으로는 피피가 살던 공동체의 모습 역시 비슷한 느낌이 없진 않다. 결은 전혀 다르지만 말이다.
갈매기 사회에 한 획을 그었던 선구자이자 선각자 조나단 리빙스턴은 성자가 된다. 아니 그 자체가 종교가 된다. 이렇게 종교가 되어버린 조나단. 하지만, 그 조나단을 따르는 방식은 서로 다르다. 한 쪽에서는 조나단이 보여줬던 ‘비행’, 그 자체에 주목하며, 더 멋진 비행을 꿈꾸며, 그것을 삶의 이상으로 삼는 측이 있다. 또 한 쪽엔 조나단을 신격화하고 경배함으로 그를 따르는 자들이 생긴다.
둘 다 문제가 있다. 신격화하고 경배하는 자들은 조나단 리빙스턴이 보여줬던 삶의 자세나 정신은 뒷전이고, 조나단의 눈동자 색깔이 무엇이었는지 등에 매달린다. 심지어 이들에겐 ‘비행’은 관심 밖이다. ‘비행’을 통해 자유를 얻었던 조나단을 숭배하는 이들에게 ‘비행’은 관심 밖인 이런 모습이 참 부조리하다.
반면, ‘비행’에 집착하는 무리들 역시 마찬가지로 부조리하다. 이들은 조나단이 왜 그렇게 다른 모습으로 날아올랐는지를 생각하기보다는 ‘비행’이 하나의 곡예가 되고, 이런 곡예비행이 삶의 목표가 되어버린다. 또한 이 곡예를 가르침으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삼는 자들이 생긴다. 사실 기득권에게 ‘비행’은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자신들의 기득권, 자신들이 만든 시스템을 유지하는 하나의 수단 말이다.
둘 다 조나단이 보여줬던 정신이나 삶의 자세보다는 종교의 제도화, 정치의 제도화를 통해 굳어진 느낌이다.
이런 사회 속에서 피피는 어느 쪽에서도 사회 부적응자다. 학교에선 유급자였고, 인생 실패자처럼 보이는 피피. 하지만, 피피는 자신만의 비행을 완성하게 된다. 자신의 속도로 성장함으로 도리어 삶의 ‘완성’에 도달하게 되는 멋진 모습을 소설을 보여준다. 강요되어진 획일화된 ‘비행’이 아닌, 자신의 마음이 이끄는 ‘비행’을 하게 되는 피피. 그럼으로 자신만의 비행을 완성하는 피피.
소설을 읽으며 문득 우리 자녀들이 자신의 속도로 자랐으면 하는 바람을 품어본다. 그럼으로 자신만의 완성을 이룰 수 있다면 좋겠다. 우리 아들 녀석은 키가 작은 편이다. 두 살이나 어린 사촌 동생이 아들 녀석과 얼마 차이나지 않는 걸 보며, 부모님이나 가족들은 아들 녀석에게 더 잘 먹고 빨리 커야 동생보다 작지 않게 된다고 말하곤 한다.
그런 가족들 앞에서 아들에게 말해줬다. 괜찮다고. 사촌동생은 신경 쓰지 말고, 너만의 속도로 예쁘게 자라면 된다고. 조카 녀석에겐 조카 녀석의 속도가 있고, 울 아들 녀석에겐 아들의 속도가 있다. 그 속도로 묵묵히 자라면 된다. 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자신의 속도가 있을 게다. 그 속도로 멋지게 자라다보면, 오히려 자신의 ‘비행’ 그 완성을 이루게 되지 않을까?
소설 속 피피가 자신만의 비행을 완성하게 된 것은 결국 이것이 아닐까? 자신의 속도로 성장하였기에 결국엔 완성에 이르게 되었던 것 말이다. 만약 피피가 조바심을 내거나, 남들 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했다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인생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자녀들이, 특히 이 책을 읽을 청소년들이 각자 자신의 속도로 멋지게 성장함으로 모두들 자신의 비행을 완성할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