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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의 의인 ㅣ 에드거 월리스 미스터리 걸작선 2
에드거 월리스 지음, 전행선 옮김 / 양파(도서출판) / 2018년 9월
평점 :
품절
영화 <킹콩>의 원작자가 에드거 월리스 란 작가임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그가 추리소설 작가라는 사실도. 그의 작품 『네 명의 의인』이란 작품을 읽게 되었다. 이 작품이 발표된 것이 1905년이라고 하니 이미 백년이 훌쩍 넘어버린 추리소설의 고전인 셈이다.
그런 그의 작품은 지금 읽어도 재미나다. 오히려 요즘 몇몇 추리소설의 너무나도 잔혹한 장면이 그대로 표현되는 작품들에 비해 덜 자극적이면서도 묘한 깊은 맛을 느끼게 한다. 이게 흔히 음식을 표현할 때 쓰는 ‘담백한 맛’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부분의 고전들이 이런 ‘담백한 맛’과 함께 깊은 맛을 전해준다. 이 소설 역시 그렇다.
소설에는 제목 그대로 ‘네 명의 의인’이 등장한다. 사실은 세 명이고, 여기에 결원을 충원하여 네 명이 채워지지만, 여전히 세 명의 의인이라 부르는 게 더 맞을 수도 있겠다. 이들 자칭 타칭 의인들은 스스로 정의를 구현하는 자들이다. 물론, 이들은 살인을 저지르는 중범죄자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살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한 살인이 아닌 나름 정의를 위한 살인이다. 예를 든다면, 동료를 억압하는 부당한 사람, 선한 신과 인간을 모독하는 악행,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사악한 자들이 처벌을 면할 때, 이들을 향해 직접 죽음을 선사한다.
소설 속에서 이들이 죽일 대상은 영국의 외무부장관이다. 이 장관은 ‘외국인 본국 송환 법안’을 발의하여 통과시키려 한다. 이 법에 대해선 찬반 논쟁이 있다. 하지만, 장관은 어떤 외압에도 이 법을 발의하여 통과시키는 것이 정의를 세우는 것이라 생각하고, ‘네 명의 의인’은 이 법을 막는 것이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라 여긴다.
아무튼 이렇게 ‘네 명의 의인’은 외무부장관을 죽이겠다 공공연하게 예고를 하고, 이런 예고 역시 공공연하게 3차례에 걸쳐 행한다. 3차례에 걸친 살인예고 역시 이들은 직접 외무부장관에게 전달한다. 삼엄한 경계를 뚫고 말이다. 이런 부분에서 추리적 트릭이 등장한다. 또한 과연 이들의 예고 살인이 성공할까 하는 점 역시 추리적 트릭이 담겨 있어 재미나다.
추리소설이지만, 독자는 소설의 처음 시작부터 범인이 누구인지, 범행의 대상자, 즉 피해자가 될 사람은 누구인지를 알고 소설을 읽게 된다. 즉, 독자는 범인이 누구인지 추리할 필요가 없다. 피해자가 누구인지도. 독자가 궁금하게 되는 부분은 과연 이 범행이 성공할까 하는 점이다. 수많은 경찰들로 천라지망이 펼쳐진 곳을 과연 이들 ‘네 명의 의인’은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까? 하는 점에 궁금함을 품게 된다. 혹, 예고살인에 굴복하여 외무부장관이 자신의 뜻을 꺾을 것인가? 이런 점이 궁금해진다. 소설은 잔잔하지만, 묘한 흡입력이 있어 빠르게 읽어나가게 된다.
아울러, 소설을 통해 제일 많이 던지게 되는 질문은 과연 ‘네 명의 의인’들이 추구하는 것이 정의인가, 아님, 외무부장관이 추구하는 것이 정의인가 하는 점이다.
무엇이 정의인지 정답은 없다. 물론, 소설은 ‘외국인 본국 송환 법안’이 부당하다는 입장에 기울어져 있지만 말이다. 이에 대한 답은 독자 각자의 몫이다.
나의 경우, 백여 년 전 쓰인 소설 속 내용이 어째 낯설지만은 않은 것은 오늘 우리 사회 역시 이런 문제로 갈등하고,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놀라웠던 점은 소설 속 외무부장관이 ‘외국인 본국 송환 법안’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며 내세웠던 이유가 첫째는 안전이고 둘째는 중요성(누가 더 중요한가? 인도주의적 차원의 개방인가, 자국민보호를 위한 폐쇄인가?)이었다는 점이다. 이는 지금 오늘 우리 사회에서의 견해와도 같다. 난민을 반대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대표적인 것에 이 두 가지는 꼭 들어가니 말이다.
‘네 명의 의인’이 행하는 정의는 수단이 정당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이들의 범죄를 응원하게 되는 이유는 이들의 범행이 이타적이기 때문이다. 약자 편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들 ‘네 명의 의인’이 펼쳐나가는 정의구현 방법이 여전히 오늘의 독자에게도 재미난 추리소설의 주제가 되고 있다. 이미 백년이 훌쩍 넘은 추리소설이지만,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은 오늘날의 사회파 미스터리의 원조 격이 아닐까 싶다. 그러면서 본격 추리소설의 트릭 역시 함께 품고 있는 추리소설. 게다가 담백하지만 묘한 끌림을 갖고 있는 추리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