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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인형 ㅣ 인형 시리즈
양국일.양국명 지음 / 북오션 / 2018년 7월
평점 :
요즘처럼 무더운 날씨에는 조금이라도 시원해질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환영이다. 책읽기 역시 조금이라도 시원해지는 것이 있을까?
청나라 강희제 때 뛰어난 문장가로 장조라는 이가 있다. 그가 쓴 잠언집 『유몽영』을 보면, 독서에도 맞는 ‘때’가 있다고 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여름에 적합한 것은 역사서다. 그 이유가 다소 우습다. 여름엔 날이 길기 때문에 역사서가 제격이라는 것. 역사서만큼 긴 시간의 책, 긴 분량을 읽기에 날이 긴 여름이 제격이라는 것.
그런데, 역사서보다 더 좋은 여름밤의 파트너가 있다. 그건 바로 공포문학. 여기 양국일, 양국명 형제 작가가 쓴 『지옥 인형』이란 소설집이 있다. 이 책엔 4편의 단편소설이 담겨 있다. 3편의 공포소설과 한편의 좀비소설. 3편의 공포소설은 모두 ‘인형’이 등장한다. 뭔가 특별한 힘을 가진 괴기스러운 인형 내지 원을 품고 있는 인형들이 말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네 편 모두 오싹함이 있다. 소설을 읽는 가운데 어느 순간 더위를 잊고 등 뒤가 시원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뭔가를 생각게 하는 힘도 있고, 스릴, 공포, 반전 등이 주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책은 오싹한 공포가 주는 즐거움만 있는 건 아니다. 오싹한 공포 이면에 감춰진 ‘감동’ 역시 있다. 「엄마의 방」은 아내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아내와 같은 인형을 마련하여 반혼술로 인형에 영혼을 불어넣는 엽기적이고 괴기스러운 행태 이면에는 사랑하는 이를 다시 살려내려는 애절한 마음이 자라잡고 있다. 마지막 반전이 또 하나의 쇼킹한 즐거움을 선물하기도 한다.
‘지옥 인형’을 통해 열려진 판도라의 ‘기억’을 이야기하는 「지옥 인형」이 제일 재미나고, 제일 오싹한 즐거움이 있었는데, 마치 다카하시 기쓰히코의 『붉은 기억』을 읽고 느꼈던 감흥과 다소 유사한 감흥을 느꼈다. 이 이야기는 왜곡되고 짓눌려 있는 ‘기억’ 저 편에 도사리고 있는 진실 이면에는 사랑하는 이를 지켜내려는 처절한 사랑이 도사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앙갚음」은 우리 민족의 시대적 상처와 아픔에서 시작된다. 애국이란 명목으로 벌어진 학살, 그 당사자들이 여전히 떵떵거리며 살아왔던 한국사회. 이러한 불운한 현대사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될뿐더러, 통쾌한 복수극에 막힌 곳이 뻥 뚫리는 시원함도 있다.
형제가 같은 길을 걷고, 함께 작업을 했다는 점 역시 인상적이었다. 작가의 또 다른 인형 소설과 좀비 소설 역시 만나고 싶다. 빠른 시일 내에 준비된 작품들을 풀어 독자들을 즐겁게 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