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 다운

브레이크 다운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6월

종종 ‘의인’들에 대한 미담기사가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곤 한다. 위급한 상황에 처한 이를 외면하지 않고, 때론 위험을 무릅쓰며 도와준 이들을 우린 종종 ‘의인’이란 이름으로 박수를 보내곤 한다. 참 훈훈한 모습이다. 그럼에도 다르게 생각하면, 이런 선행이 결코 평범한 일이 되지 못하고, 특별한 일이 되고 있다는 건, 많은 이들이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익명의 사람들을 왕왕 외면하기 때문일 게다.

여기 이런 한 순간의 외면으로 자신을 낭떠러지에 떨어뜨린 여인의 이야기가 있다. 미스터리 소설 『브레이크 다운』은 한 여인이 폭풍우 몰아치던 밤, 자신의 집을 향해 운전하다가 사건이 벌어진다. 집으로 가는 지름길인 외딴 도로에 차 한 대가 서 있다. 폭풍우가 몰아치던 날씨에 주인공 ‘나’(캐시)는 한 순간 망설이지만, 길가에 서 있던 차를 외면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정말 도움이 필요하다면 분명 도움의 신호를 보냈을 것이란 생각을 하며. 또한 혹시라도 그렇게 서 있는 게 도움을 주는 이를 향한 범행의 수단일지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과 함께 말이다.

그런데, 캐시는 다음날 아침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된다. 외딴 도로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 바로 캐시가 외면하고 돌아온 그 차 속 주인공이 누군가에게 살해되었던 것. 분명 어젯밤 그곳을 지나칠 때엔 운전자가 살아 있었는데 말이다. 며칠 후 더 충격적 사실을 알게 된다. 살해당한 여인(제인)이 자신이 새로 알고 사귀게 된 친구였던 것.

이에 캐시는 자신이 만약 차에서 내려 도움을 줬더라면, 제인이 살았을까 생각하며 고뇌한다. 그런 가운데, 캐시는 제인을 죽인 범인이 자신을 주목하고 있다는 강한 느낌에 빠져든다. 어쩌면 당시 현장의 유일한 증인일 수도 있는 자신을 범인이 봤을지 모른다. 그래서 자신의 입을 막으려 주변에서 맴돌며 자신을 감시하는 시선을 느낀다. 게다가 매일같이 걸려오는 의문의 전화. 이런 일로 캐시의 심신은 쇠약해져만 간다(남편은 이 일을 캐시의 강박이라 생각한다.).

더군다나 캐시를 더욱 힘겹게 하는 건, 건망증이다. 자꾸 자신이 약속한 일을 까맣게 잊곤 한다. 캐시의 어머니는 사십대 나이에 치매에 걸려 고생했었는데, 자신도 그렇게 되는 건 아닐지 고민하는 캐시. 이런 두 가지 일로 인해 점차 행복했던 신혼 생활도 끔찍해져만 가는데.

정말로 캐시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걸까? 아니면 단지 캐시의 정신분열 내지 강박증 탓일까? 게다가 자꾸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정말 캐시에게 치매가 시작된다는 징후일까? 그리고 그날 밤 제인은 죽인 범인은 누구일까?

‘이기적 두려움’ 때문에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하지 못했다는 ‘자책’과 자꾸만 잊히고 왜곡되어가는 ‘기억’, 이 두 가지가 만나 소설을 읽는 독자들을 더욱 깊은 심연으로 빠뜨린다. 이 두 가지로 인해 독자의 마음 역시 캐시처럼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고 온통 뒤엉키게 된다. 내가 저 여인의 입장이라면? 이런 질문을 끊임없이 하게 되며 주인공의 입장에 동일시하게 된다. 그래서 더욱 소설을 읽는 내내 힘들다. 아프다.

그리고 드디어 반전이 일어나는 순간, 통쾌함에 몸을 떤다. 물론 못내 씁쓸함이 남아 어쩔 수 없이 입맛을 다시게 되지만 말이다.

‘이기적 두려움’으로 움츠리고 외면하는 행동을 우린 쉽게 손가락질 할 수 있다. 어쩌면 그런 모습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그 상황이라면 우린 누구나 ‘이기적 두려움’에 잘못 행동할지 모른다. 그렇기에 이 소설 『브레이크 다운』은 어쩔 수 없이 ‘이기적 두려움’을 품게 되는 우리의 마음을 서늘하게 만드는 묘한 힘을 가진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