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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가의 살인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4년 8월
평점 :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창기 작품 가운데 하나인 『학생가의 살인』(1987년 작)을 읽었다. 대학 정문의 위치가 바뀜으로 구 학생가가 되어버린 공간. 이젠 죽어가는 거리처럼 느껴지는 학생가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대학을 나왔지만, 아직 자신의 진로에 대해 확신이 없는 주인공 고헤이는 구 학생가에 있는 ‘푸른 나무’라는 곳에서 아르바이트 직원으로 시간을 소일하고 있다(아니 자신의 꿈을 찾고 있다.). 고향의 부모님들에겐 대학원에 다닌다고 거짓말을 한 고헤이. 그런 고헤이는 자신 주변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에 휘말리고 만다.
처음엔 함께 ‘푸른 나무’에서 근무하던 마쓰카가 살해당하고, 얼마 후 자신의 애인인 연상의 여인 히로미 역시 살해당하게 된다. 이 두 사건 모두 첫 번째 발견자는 고헤이다. 애인의 죽음, 그리고 두 사건의 첫 번째 발견자라는 사실 등으로 인해 고헤이는 두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려 한다. 그런 가운데 또 한 사람이 희생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역시 이 사건 역시 고헤이가 최초 발견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소설 속에서 탐정의 역할은 주인공 고헤이다(나중엔 히로미의 동생 에쓰코 역시 고헤이를 돕는다. 둘의 캐미가 상당히 좋다.). 여기에 또 한 축에서 사건의 진실에 접근해 나가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고즈키 형사다. 고즈키는 고헤이의 애인이자 두 번째 희생자인 히로미의 옛 연인(실제 연인은 아니지만, 둘 다 서로에게 좋은 마음을 품고 있었지만, 한 가지 사건으로 인해 둘의 관계는 시작하기도 전에 끝나버린다. 이 한 가지 사건이야말로 소설의 범행 이면에 있는 커다란 동기 가운데 하나다.). 물론 둘 가운데 고헤이의 입장에서 사건에 접근해 가는 것이 가장 큰 축이다.
아무래도 추리소설은 범인이 누구일까 하는 게 가장 큰 관심사일 것이다. 이 소설 속 범인은 과연 누구일까? 이런 궁금증을 품고 있는 독자들을 낚는 몇몇 인물들이 소설 속에 등장한다(특히, 사건이 벌어지는 날, 또는 현장에서 고헤이가 마주치게 되는 가죽 재킷을 입은 의문의 사내가 그렇다.). 이런 낚시에 기꺼이 속아주며 앞으로 나아가는 재미도 있다. 그런데, 독자를 의도적으로 낚으려 등장하는 이들 인물들 역시 알고 보면 이런저런 모습으로 사건에 실제 연관되어 있다.
연쇄살인의 희생자들 간의 연관성을 찾는 작업 역시 흥미롭다. 밀실 사건이 등장하여 밀실 사건을 풀어나가는 작업 역시 재미나고(함께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게 된다.). 소설 곳곳에 감춰진 묘사 하나 허투루 넘길 수 없을 만큼 뒤편에 가면 이런 작은 장면들까지 하나로 잘 짜 맞춰짐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점이 상당히 돋보인다. 여기에 한물 간 거리에 모인 이들 간의 묘한 공동체성도 소설에 특별한 온기를 불어넣지 않나 싶다(물론 그 안에 범인이 있지만 말이다.).
이런 추리적 요소 말고도 소설의 또 다른 매력은 주인공을 통해 보여주는 청춘의 고민이 아닐까 싶다.
막연히 남들 하는 것처럼 취직하고 사회인이 되려하기보다는 여전히 자신의 꿈을 찾는 청춘 고헤이란 캐릭터가 매력적이다. 물론, 소설 속 등장인물이자 첫 번째 희생자인 마쓰카의 말처럼 스스로 움직이지 않고, 꿈만 품고 있어서는 아무 소용없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꿈을 찾아 기꺼이 흔들리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이 어쩐지 진짜 청춘의 모습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고헤이와 아버지의 대화에 귀를 기울여 본다.
“길을 잘못 들면 어떻게 하죠?”
“잘못 들었는지 아닌지도 사실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지. 잘못 들었다 여겨지면 되돌아가면 되고. 사람의 인생이란 결국 작은 실수를 거듭하다 끝나는 게 아니겠냐.”(478-9쪽)
때론 흔들리고, 때론 실수하되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청춘들이 오늘의 학생가를 이루길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