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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1년 12월
평점 :
히가시노 게이고의 공식적 데뷔작은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한 『방과 후』(1985년작)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작가의 처음 소설은 다른 작품이란다. 바로 이 책 『마구』이다. 1988년에 발표되었으며, 국내에서는 2011년 도서출판 재인을 통해 번역 출간된 작품이다. 하지만, 이 책은 『방과 후』가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하기 전년도에 에도가와 란포상 최종후보에까지 오른 작품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작가의 첫 번째 소설을 만난다는 설렘을 안고 책장을 펼쳤다.
소설은 두 개의 사건이 개별적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도자이 전기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다. 회사에서 폭탄이 발견된다. 그리고 다음엔 사장이 납치되는 일이 벌어진다. 이 사건은 소설 속에서 단지 양념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사건은 또 하나의 사건과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
또 하나의 사건은 살인사건이다. 이 사건이 소설의 주를 이루는 사건이다. 별 볼 일 없던 야구부에서 고시엔 본선 진출까지 하는 기적을 일으킨 야구부. 이 야구부를 이끄는 사람은 단 둘이다. 고교 최강 투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스다 다케시, 그리고 그와 배터리를 이룬 팀 주장이자 포수 기타오카. 그런데, 어느 날 포수 기타오카가 살해된 채 발견된다. 목이 잘린 애완견 시체와 함께. 이런 잔혹한 살인사건에 학교는 발칵 뒤집어지고. 범인이 누구인지 형사들은 추격하기 시작하며, 기타오카의 방에서 “나는 마구를 봤다.”라는 메모를 발견하게 된다.
범인이 누구인지 미궁에 쌓인 채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두 번째 살인이 벌어진다. 이번엔 투수 스다 다케시가 살해된 것, 게다가 그의 오른손이 잘려 나간 채 말이다. 이런 끔찍한 살인 사건을 벌인 범인은 누구일까? 그리고 왜 이런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걸까? 스다가 살해된 현장에는 ‘마구’라는 단어가 적혀 있다. 바로 다잉 메시지.
이렇게 두 연쇄 살인 사건에 남겨진 유일한 교집합은 ‘마구’라는 단어이다. 과연 희생된 두 야구 선수들을 둘러싼 ‘마구’는 무엇이며, 어떤 진실을 품고 있는 걸까?
야구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야구를 말하는 건 아니다. 야구를 통해 삶을 일으키려 했던 한 소년의 꿈과 좌절, 그 이면에 감춰진 출생의 비밀 등을 소설은 이야기한다.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기쁨은 크게 두 가지다. 한 가지는 전혀 상관이 없을 것만 같던 두 가지 사건의 줄기가 점차 하나로 엮어져가며 느끼게 되는 기쁨이다. 이 순간, 추리소설을 사랑하는 이라면 누구나 느낄 쾌감을 누리게 된다.
또 다른 기쁨은 끔찍한 살인사건 이면에 감춰진 삶을 향한 사랑, 삶에 대한 소망이다. 살인사건은 끔찍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끔찍함 이면에는 처절한 안타까움이 감춰져 있어, 연민의 마음을 품게 하고 가슴 저미게 만든다. 잔혹하고 끔찍한 사건 이면에 놀랍도록 커다란 사랑과 소망이 도사리고 있다. 이러한 인간미가 보이기에 끔찍한 사건은 더욱 먹먹하고 애절하다.
사건의 트릭과 추리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고 여겼던 작가의 첫 번째 소설에 이러한 감성적 기류가 그 밑바닥에 도도하게 흐르고 있어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