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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의 경험 - 유발 하라리의 전쟁 문화사
유발 하라리 지음, 김희주 옮김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7년 7월
평점 :
"전쟁에 참여하면 자신과 세상에 대해 무언가 심오한 것을 깨닫는가? "
이 책은 오늘날의 위와 같은 일반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이 목표다.
우리가 보지 못한 것을 미리 본 사람, 우리가 겪지 못한 것을 앞서 겪은 사람의 의견과 판단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진리와 교훈이 담겨 있다. 따라서 경험자의 발언에 권위가 실린다.
그리고 그 경험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위험하면 위험할수록 경험자의 발언에 실리는 권위는 그만큼 커진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장 어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경험은 무엇일까? 죽음이다. 그리고 죽음의 위협을 가장 치열하게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전쟁이다.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는 다른 진리와 교훈을 체득하는가? 과연 그런가?
1813년에 다음날 첫 전투를 앞둔 젊은 장교가 동료에게 이런 말을 했다. "지금부터 24시간 이내에 나는 책만 쓴 그 어떤 현자나 학자보다 더 현명해져 있을 거야"
베트남에서 처음으로 사람을 죽인 어느 미국인 병사는 적의 얼굴을 살피더니 "바로 그때 나는 삶의 비밀을 깨달은 것 같다"고 말했다.
포클랜드 전투에 참전한 한 영국 공수부대원은 "저 자신에 대해 지금까지 평생 알고 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조금전 10분 동안에 배웠습니다"
도대체 전쟁의 무엇이 이같은 진리를 계시한다는 것일까? 대부분의 참전용사들은 전쟁의 극한 육체적 상황을 꼽는다. (참고로 이 책에서 말하는 '계시'란 종교와 연결된 것이 아니라 지식을 얻는 특정한 방법을 말한다.) 배고픔과 추위, 탈진,부상,눈앞의 죽음, 살인의 전율과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전투의 흥분 등을 꼽는다.
'전쟁과 같은 극한 상황들이 어떻게 진리를 계시하는가'에 대해서는 2가지 상용구를 반복해서 사용한다.
'설명할 수 없다'와 '그곳에 가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다.
과학적 사고방식으로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이지만 그들과 같은 극한의 경험을 겪어보지 않고서는 이해할 방법조차 없는 상황이다. 유발하라리는 수백년간의 수많은 전쟁회고록의 연구를 통해 시대별로 전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식이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를 보여준다.
근대까지의 전쟁회고록을 보면 전쟁과 같은 극한의 경험이 계시의 근원으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살인,죽을고비,부상 등의 경험에서 아무런 감응을 표시하지 않았다. 전쟁이 계시의 근원이 된 것은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동안 군대에 계몽주의와 감성문화, 낭만주의가 전파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전쟁에 참여하면 자신과 세상에 대해 무언가 심오한 것을 깨닫는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는 권위를 획득하는가?'
유발 하라리의 사유를 제대로 쫓아왔는지 모르지만 나의 결론은 'No'다. 그저 그 시대정신이 반영된 전쟁을 바라보는 해석 중에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지금시대는 전쟁은 환멸경험의 제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책 속의 방대한 전쟁회고록을 보노라면 전쟁의 참혹함을 절로 알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