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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망한 줄 알았지? - 작게 시작하는 사이드 프로젝트
안가연 지음 / 봄름 / 2021년 6월
평점 :
절판
예전부터 코미디 빅리그를 드문 드문 보았는데, 자주 나오던 개그맨이 책을 냈다.
아는 개그맨이라서 책을 읽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이 책의 컨셉을 보고 읽고 싶었는데 알고보니 코빅에 나오는 개그맨이었던 거다.
그래서 연예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의 책을 보는게 처음이다. 읽을 책을 고를 때 주제나 작가로서의 전문성만 따지기 때문에 그동안 좋아하는 연예인이라고 해도 그들의 책은 볼 생각이 없었다. (이건 그냥 책을 선택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에 불과하다)
이 책을 읽었다는 것은 연예인이라서가 아니라 유행지난 시쳇말로 '투잡' 이라는 주제에 어울리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안가연은 유튜버, 에세이 작가, 웹툰작가로서 다양한, 요즘 시쳇말로 부캐(게임 등에서 주로 사용하는 캐릭터 외의 캐릭터를 의미함)활동을 하고 있다.
보통 하나의 직업으로 일하다가 돈을 더 벌고 싶어서 투잡을 뛰는 형태로서 부캐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 되기 때문에 하는, 돈이나 커리어 때문에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삶이 재미가 없다. 경쟁을 목표로 하던 학창시절은 끝나서 새로운 경쟁이 시작되었지만, 학창시절에 비해 가시적이지 못하다.
사람은 어떤 생물보다 목표지향적이기 때문에 그저 생계를 위해서만 일하다 보면 삶이 뭔가 허전하다. 적당히 의욕이 솟는 목표를 정해야 한다.
허전함이 심하면 우울증까지 찾아온다. 정신없이 공부하고 졸업하고 남자들은 군대도 다녀 오고 취업하고 돈벌고 살집을 마련하고 결혼하고 하다가 정신차려 보면 나이만 들어있고 그제서야 허무함이 밀려온다. 그래서 서른살의, 마흔살의 사춘기가 열병처럼 찾아오는 것이다.
그제서야 어릴때는 정작 자의든 타이든 별로 생각하지 않았던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을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을 것이고 나역시 그렇다. 하지만 지금 다니는 직장이 싫더라도 쉽게 그만 두거나 할 수가 없는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부캐'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도 좋은 선택일 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계발이라든지 투잡이라든지 거창한 말이 다소 부담스럽게 다가온다면, 부캐라는 부담없는 말로 마치 취미를 즐기듯이 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런 생각이 이 책을 읽고 싶게 했고, 단숨에 읽어내려갔던 것 같다.

사실 코빅에서 저자는 큰 역할은 맞지 않았지만, 선해보이는 눈매에 작은 역할이라도 최선을 다하는 듯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릴적 너무 겁이 많아 새로운 음식이나 각종 새로운 것들에 도전하는 것을 꺼려했다고 한다.
모든 대학에 떨어졌지만 실망하지 않았고, 극단에 합격했지만 5년 동안 개그맨 데뷔를 하지 못했고, 전두 탈모에 걸리고 힘들었지만 웹툰 작가를 데뷔하고 첫 에세이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고 한다. 그래서 두 번째 책인 이 에세이를 출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많은 실패를 겪고 나니 실패라는게 생각보다 무서운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고 한다. 그런 역경들이 현재의 부캐들에 도전하는데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웹툰 같은 경우에도 티비에 나오는 개그맨이라서 연재가 된 것이 아니고, 어릴적 꿈이었던 만화가에 대한 도전으로, 도전 만화에 꾸준히 연재를 해서 당당히 실력으로 연재 제의를 받게된 것이다.
N잡러라는 신조어가 유행이되고, 코로나 시대에 N잡러의 성공이야기가 눈에 들어오니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돈을 더 벌것이 없나 생각할 것이다. 사실 나도 하던 일이 수입이 괜찮았지만 너무 하기 싫어서 다른 일을 찾아보던 중 이 책에 관심을 가진것도 사실이다. 저자도 사람들의 그런 수요를 모를리가 없을테지만, 자신은 그렇게 접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일이라고 생각하면 스트레스요, 재미라고 생각하면 그저 취미가 될 수 있다는 조언이 와닿는다.
이 책을 통해 ASMR 이라는, 몰랐던 장르를 알게 되었는데, 유튜브 등에서 요즘 유행한다고 한다. 유튜브를 거의 시청하지 않는 나로서는 요즘에 많이 뒤쳐지는 것 같다. 때론 뒤쳐지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본다.
학생 때도 그렇게 유행을 쫓아다닌 적이 별로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하면 나도 관심을 가져보긴 하지만 몇 번 보고 맞지 않는다 싶으면 관심을 끈다.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다. 저자도 마찬가지로 관심사가 많다. 그래서 이것저것 도전을 어설프게 해본다고 한다.
'어설프면 어때?' 이 말이 와닿은 것이 나도 여기 저기 관심을 가지지만 돈이 안되거나 잘해낼거 같지 않으면 금방 포기하는 성향이 있다. 너무 이것저것 따지다가 해보지도 못한 것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시간을 낭비하고 쓸데 없는 일을 했다는 두려움이 나를 막아온 것 같다.

지금까지 에세이는 거의 읽은 적이 없었다.
사실 이 책도 에세이라서 읽은게 아니라 여러가지 일을 하는 저자의 모습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책을 읽을 때 무언가 배우거나 습득해야 한다는 관념이 조금 있는 편인데, 재미로 책을 즐기지는 못했던 것 같다. 소설을 가끔 읽긴 했지만 재미로 읽은 것이거나 문학을 읽음으로서 무엇인가 배울게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읽은 것이다. 그리고 재미라면 만화가 더 재미있었고.
아직도 책을 재미로 읽지는 못하는 것 같다. 아직 책보다는 넷플릭스가 재미있다. 정말 재미로 읽었던 책은 어릴 적 읽었던 어린이 세계문학전집의 톰소여의 모험, 서유기 등이었고, 좀 커서는 10권짜리 김구용 삼국지 정도 뿐이었다.
에세이는 별로 얻을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읽으려고 생각도 안했는데, 이 책을 읽으니 에세이도 꽤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통 문학처럼 장벽이 높거나 심오한 주제나 상징, 메타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자기 계발서처럼 다짐을 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장르 소설이나 인터넷 소설처럼 그저 자극적인 재미를 추구하지도 않는다. 전문 서적처럼 머리를 싸멜필요도 없고 그저 새로 사귄 친구와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하는 듯한 느낌으로 읽을 수 있다.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고 부담도 없다. 다른 에세이는 짧은 글 외에 읽어보지 못했지만 이런게 친근한 에세이가 아닐까 싶다.
저자는 돈을 벌려는 목적으로 N잡을 하지는 않다고 말한다.
그게 포인트다. 돈을 벌려고 시작을 하면 투자한 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 실망하고 포기하게 된다.
그러나 취미라면?
당장 성과가 없더라도 재미있어서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라면 꾸준히 할 수 있다. 큰 기대를 접고 과정을 즐길 수 있는 것이라면 실패를 한다 해도 즐거웠던 과정이 남는 것이고, 기대를 안했는데 일이 잘된다면 기대이상의 성과가 나와서 좋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마음가짐인 것이다.
저자는 비교적 평범한 사람이다. 특출나게 뛰어나지는 않은 사람이라고 스스로도 말한다. 그러면 어떤가? 사실 우리는 대부분이 다 그렇다. 모든 사람은 다른 생명체보다 뛰어난 편이고, 모든 사람은 뛰어난 업적을 이룬 사람에 비해 평범한 편이다.
저자는 느리지만 꾸준하고 겁이 많지만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그래서 더 공감이 가고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비교우위적 강박을 버리고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해보면 어떨까? 현실적으로 본캐로 그럴 수는 없기 때문에 틈틈히 부캐로 부담없이 해보는 것이다. 본캐가 아니기에 느려터지고 더딜것이다.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목적 자체가 주는 충만함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한다면 그것만으로 이득이다.
사람은 목표지향적인 동물이다. 여행은 계획할때가 가장 좋다고들 하지만 난 여행중일때가 제일 좋다. 여행이 끝나면 목적도 끝나고 허무함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러면 또 다음 여행을 기다린다. 이런 과정 자체가 즐거운 것이다. 부캐도 그런식으로 하지 말란 법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를 통해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 받아 제 마음대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