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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 - 지친 마음에 힘이 되어주는 그림 이야기 ㅣ 자기탐구 인문학 5
태지원 지음 / 가나출판사 / 2021년 7월
평점 :
명화를 봐도 그게 왜 유명한지 잘 모르는 사람도 어떤 감동을 받을 수 있는, 본능적 자극 요소가 있다. 내용을 읽어야 이해가 되는 글과는 달리 직관적인 이미지로 전체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고전 명화는 작가의 역사나 시대 배경을 알면 더 재미도 있고 이해도 되나 그림을 보는데 꼭 그런게 필요하진 않다. 그저 보는 것 만으로도 위로가 되기도 한다.
나는 그림을 잘 모르지만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위로도 받고 그림도 볼 수 있는 이 책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솔직히 이야기 하면 위로라는 주제보다 그림에 얽힌 작자의 이야기가 더 재미있었다.

이 책이 주는 위로는 그림에 대한 이야기와 그림을 통해 저자가 느낀 점을 저자의 주관적인 해석에 의거해서 에피소드를 풀어내고, 독자는 반대로 그 에피소드에 공감을 먼저 하고 그림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일 게다.
그러면서 나만 그런게 아니라는 공감적 위로를 저자와 독자 모두가 교류하는 것이다.
이건 사실 친구간에 할 수 있는 문제인데 그런 친구가 없거나 아무리 친구라도 그런 이야기의 교류까지 하지 못할 때 이런 글을 읽고 위로 받을 수도 있겠다.

이 책은 프롤로그 부터 '당신만 그런게 아니라는 위로' 를 받는 것을 표방하고 있다.
여기에 대한, - 나만 그럴 수도 있는 - 지극히 개인적 감상을 이야 하자면 -
'나만 그런게 아니었구나' 라는 위로는 어떻게 보면 나는 특이한 사람이 아니구나, 나는 튀는 사람이 아니구나 라는 식의 소속감에 있지 않을까 싶다.
남에게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도 한 몫 할 것이다.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공감을 받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외로움에는 그게 특효약이다.
그런데 이게 좀 과하면 누군가의 인정을 받는데 공감을 받는데 너무 집착하게 된다. 누가 인정을 해주면 그게 옳다고 생각해 버릴 수 있다.
개인적인 취향을 고르는 데도 남의 의견을 꼭 들어보고 싶어 하거나 다수에게 결정을 대신 맡기기도 한다. 그러다 반발에 부딪치면 과민 반응을 하게 되고 침울하게 된다. 너무 남에게 좌지우지 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 공감에 집착하는 사람은 공감을 받지 못하게 되면 자기 성향에 맞는 곳을 찾아 나서서 위로를 받는다.
'나만 그런' 사람에 가까운 사람도 '나만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 에서는 '나만 그런게 아닌 사람'이 된다.
특정 성향이 있는 양 극단에서 같은 이야기를 하면 반응도 정 반대이다. 그저 '답정너' 식 위로를 받으려면 맞는 성향의 커뮤니티에 가면 된다.
그런데 그런 답정너를 옳다고 착각하는데서 문제가 더 발생하기도 한다.
'나만 그런게 아니었구나' 는 소속감에 너무 집착을 하게 되면 다른 면을 수용하기 힘들다. 다른 타인에게 '우리는 그런데 너만 그렇지 않구나' 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가 없었는지 잘 생각해 보라. 솔직히 나도 많이 있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그 다름에 우리는 너무 민감하다. 별 이야기도 아닌데 다른 의견을 내면 과민 반응을 하거나 비웃거나 무시하기도 한다. 그게 무슨 다른 사람에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선택을 해야 하는 문제에도 비웃는 시선을 보이곤 한다. 따돌림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그 소속이나 주류의 흐름, 유행에 뒤쳐지지 않는 사람이 되려고 과하게 몰입한다. 그런 따돌림을 당하지 않고 싶어하는 생각이 나만 그런게 아니라는 위로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나지는 않을까 생각해 봐야 한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보면 정말 개인적인 취향이나 생각을 과하게 공감받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성향을 보이는 사람이 이상할 정도로 많다. '나만 그런게 아니다' 라는 인정을 받고 싶으면서도 역설적이게도 '너만 그렇게 불안해 한다' 라는 인상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나만 그런게 아니'라는 것보단 '나만 그런' 게 좋다. 내가 결정해도 되는 문제는 남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난 결정을 맡기는 질문을 전혀 하지 않는다. 다만 어떻게 판단해야 될지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는데 집중할 뿐이다.
나만 그런 것은 나만의 개성을 나타내줄 수도 있다. 조금 특이함을, 다름을 인정할줄 아는 것도 공감이다. 집단에 속하지 못하는 공포감에서 벗어나는게 필요하다
나만 그런게 아닌면은 지금까지 집단사회문화에서 많이 겪었고 싫든 좋든 따르게 되어있다. 개성을 중시하는 나조차도 그렇다. 나도 보통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나 자신만의 개성이 드러나는 면이 분명 존재한다. 그것을 감추려고 하기 보다는 나만 그렇다 그게 뭐 어때서 라고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즉 분별력이 필요하다.
나만그런게 아니거나 나만 그렇거나 그 자체에 옳고 그름은 없다. 다수의 법칙은 민주주의의 의결권인 것이지 옳고 그름이 아니다. 옳고 그름이 필요 없는 요소도 있다.
물론 저자가 말하는 위로는 그게 아닌 것도 안다. 하지만 사람은 의외로 다른 상황에서 같은 논리를 들이밀게 된다. 이것이 굉장히 심한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이다. 모아니면 도를 선호하는 것이다. 정치 이야기를 할 때도 물론 그렇고 중도란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나만 그래도 괜찮을 때' 와 그저 '나만 그런게 아님을 통해 위로를 받을 때' 를 정확하게 구분하는 분별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것부터 인식하고 위로를 받든지 말든지 해야하지 않을까?
소설 은교에서 나오듯 별이 아름다운 것은 사람이 아름답게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별은 아름답다는 것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다른 사람에게는 별이 공포가 될 수도 있고 그저 담담하게 보일 수도 있고 보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슬픈일이 있으면 슬픈 노래가 슬프게 들리기도 하고 때로는 지겹고 유치하게 들릴 수도 있다. 왜 너는 슬픈 노래를 듣고 슬프지 않니? 수준이 낮구나 라며 대중가요에 수준을 논하는 사람도 많이 봤다. 그건 바로 그 사람 자신의 인식력과 공감력 수준을 말해주는 것이다.

아름다운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알게되고 그림이 주는 위로를 발견하는 과정은 좋았다. 물론 예술의 가치는 답이 없다는 데에 있다. 그렇기에 해석이나 의미를 다르게 두는 것은 당연하다. 아니 그래야 옳다 라고 까지 할 수 있다.
그림에서 내 나름의 위로를 발견하는 것도 좋다. 저자는 자신이 받은 그것을 공유함으로서 예시를 주고자 하는 것 같다. 우리가 이 책에 나오지 않은 그림을 볼 때도 위로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예시.
거기에 반드시 존재하는지도 모를 의미를 해석하는 능력이 필요하지는 않다. 그저 느낀대로 주관적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작가는 아픔을 그렸지만 나는 행복을 발견한다면 그게 예술의 가치다. 모르면 모르는데로 모른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좋다. 무슨 의민지 알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는 것일 수도 있다.
[네이버 문화충전200% 카페를 통해 책을 제공받은 뒤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