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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패배자들 - 인생의 성패를 떠나 최선을 다해 경주한 삶에 대하여
유필화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8월
평점 :
역사속의 인물들을 현대의 관점에서 보는 것은 현생을 사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것일 게다. 눈에 띄는 성과를 이룬 영웅들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그들의 정의감, 성공원인, 인물됨 등을 배우고자 할 것이다.
그런데 역사의 패배자들은 어떨까? 패배자들은 우리에게 그저 반면교사의 본보기일 뿐인것일까.
역사는 승자의 위주로 기록이 되기 때문에 그저 과거 사람들은 과거일 뿐이다. 죽은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이 남았는지 아닌지에 신경 쓸수가 없다. 수상자가 존재하지 않는 트로피는 수여자에게 의미가 있을 것이다. 역사도 그렇고 종교도 그렇고 살아남은 것들만 기억되는 것이다. 어쨌든 현대가 평가하는 기준에서의 승자와 패자를 보게 되겠지만.
승자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운의 혜택을 받은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항우와 유방의 항쟁시대에 한 경쟁자만 제거되면 통일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다. 진시황이 이미 통일을 해놨기 때문에 혜택을 본 것이라 할 수 있다. 승리자 유방은 한고조로 칭해지며 대대로 후세의 존경을 받았지만 사실 일은 한신과 장량이 거의 다 하고 한신은 죽임까지 당했다. 유방의 실력으로만 승자가 되었다고 할 수 없다.
삼국지의 조조가 뛰어난 인물이지만 생전에 통일을 이루지 못한 이유는 강한 경쟁자가 둘이 있었기 때문이고, 손자병법을 남긴 손무의 나라가 크게 세력이 없었던 이유는 경쟁자가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그저 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패배자들은 나름 성공적인 성과를 거둔 인물들이나 결과가 좋지 않은 인물들이기도 하다.
악비 같은 경우에는 큰 공을 세우고 외적을 막았지만 상사와 적을 잘못 만난 운이 나빴다. 물론 저자의 해석대로 처세술이 좀 더 유연했다면 살아남았을지 모를것이다. 후대 사람들에게는 억울한 죽음으로 더 영웅이 되었겠지만 본인에게는 그저 생명의 단축이다. 악비가 악비 답지 않았다면 그런 성과를 남기고 이름을 남길 수가 없었을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의 기준으로 보면 저자가 옳다. 역사는 현대의 기준으로 해석될 때 의미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니까.
현대에는 악비같은 인물이 더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 아닐까.
이 책에선 테미스토클레스, 고르바초프, 주원장등의 인물과 우리나라의 이순신 장군등의 역사인물들의 전략을 분석하며 승패의 요인을 현대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중점적으로 다루는 인물들은 물론 테미스토클레스, 악비, 트로츠키, 롬멜장군, 고르바초프, 리지웨이, 주원장, 한무제의 8인이다.
그 중에 맥아더장군의 명성에 가려져 우리가 잘 몰랐던 미육군 참모차장 '매슈유 리지웨이'는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는 인물이다. 중공군의 가세로 위기에 처한 남한을 위기에서 구했다고도 할만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당시 중공군에게 크게 밀리고 있는 상황에 미국인들의 절반이상이 원자탄을 쏘기를 바라며 개입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내 생각엔 소련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지리적 위치로 한반도 만큼 좋은 곳이 없기 때문에, 미국은 쉽게 남한을 포기하지 않았을 것같다. 국가간에는 감정만으로 개입이 되지는 않는다. 명분이라는 내세움 뒤에는 이권이 반드시라 할 정도로 개입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의 여론이 그랬다는 것이다. 물론 남한이라는 교두보가 없어도 미국의 국력이 크게 쇄퇴하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거점이라는 것이 전쟁에서 상당히 중요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냉전시대 전 한반도의 공산화는 후에 베트남의 공산화와 마찬가지로 견재할 필요성이 있었던 것이다. 베트남은 물론 전쟁을 포기 했기 때문에 미국의 패배라고 표면적으로는 말하지만 종전 후 경제 봉쇄정책으로 베트남은 사실상 미국에 백기를 들었다고 봐야 한다.
아무튼 당시의 전력은 중공군에 서울을 빼앗기고 크게 밀리고 있었지만, 리지웨이는 침착하고 정확한 분석을 바탕으로 승산이 있다고 판단을 했다. 적의 허실을 알아차리고 반격에 성공한다. 약 100일 동안에 이루어낸 성과는 공산군의 공세를 저지하고 서울을 재탈환하였으며 침략군을 격멸하고 적군을 38선 이북으로 이동시켰다.
사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을 패배자로 정의 하기엔 무리가 있다. 이들이 패배자면 그 당시의 99.99999 프로의 사람은 모두 패배자란 이야기니까 말이 안된다. 0.000001 프로만 승자가 되는 게임이란 것이 된다. 결과적으로 실패한 제갈량을 패배자라고 할 수는 없다. 과장된 측면이 있긴 하지만 현대인들에게도 의미 있는 인물이고 열악한? 환경에서 좋은 성과를 유지한 인물이니까. 그런 논리라면 위나라를 세운 조조도 통일을 하지 못했으니 패배자가 된다. 죽고 나서 남좋은 일만 한 인물이 되버리니까. 특히 리지웨이 장군같은 경우에는 패자가 아닌 승자다. 다만 기억되지 못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승리는 승리 자체가 아니라 기억에 남는 것이라는 말인가? 기억에 남지 못하면 패배자일까? 그게 이 세상에 없는 당사자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저자도 그것을 모를리 없지만 그저 상징적 의미나 재미의 측면에서 혹은 자극적 의미에서 '패배자들'이라는 말을 썼을 것이다. 그저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이 책에 패배자란 없다. 그저 한 두가지의 단점이 있었던 인물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한고조 유방도 마찬가지다. 천하통일의 공신들을 토사구팽한것만 봐도 양심이 없고 잔인한 인물이라고 평가해도 무리가 없지 않을까. 그저 지금의 측면에서 그들의 단점과 실패 원인을 분석하고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맞춤형 해석일 뿐이다. 다시 말하면 역사는 저자가 나타내고자 하는 '주제'를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이고 그것은 '유연성' 에 있다고 보여진다.
그렇듯 중요한 것은 역사를 통해 현대의 가치를 찾아내는 것이다. 과거 주가폭락 사태에서 현재의 흐름을 예측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듯이.
정확하게 따지고 들면 한고조 유방이라는 인물은 그저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사람을 다스리는 매력과 능력이 출중했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경쟁세력이 단 하나이고 그마저 부하말을 듣지 않는 힘만 센 인물이었다는 것이 제일 중요한 핵심일 것이다.
승리자든 패배자든 승패로 따지는 것은 이렇듯 결과론적 이야기일 뿐이다. 오늘 폭등한 주식을 생각도 못했으면서, 아니 생각을 했다 해도 안샀으면서 어제 살걸 이라고 하는 아무 의미 없는 후회처럼.
로또당첨번호를 알고 나서 알지도 못했으면서 그 번호를 기재할껄 이라는 후회의 속성과 별 다를게 없는 것이다.
여기서 함정은 주식은 로또처럼 예측의 범위가 복잡하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오르거나 내리거나 변동없거나 셋중의 하나니까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저 50% 확률인것 마냥 생각해버리는 거다. 그런 식이면 인생이 성공이냐 실패냐도 가만히 있어도 운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생각하고 아무것도 안하는게 낫지 않을까. 운좋게 하늘에서 돈벼락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식의 행운을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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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은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말처럼 과거의 성공적인 결과를 빚은 인물들은 현대의 사람들에게 거론되고 있다. 사람들은 그들을 승리자라고 하는데, 위의 격언처럼 이름을 남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름없이 죽어간 사람이나, 명성을 날리며 죽은 사람이나 자신의 이름이 기억되는지 아닌지는 본인에겐 아무 의미가 없다. 본인은 그저 죽을 뿐이니까. 그들이 남긴 이름은 그들의 것이 아니라 후대사람들의 것이나 다름없다. 죽으면 내가 거론되는지 아닌지도 모를테니까. 안다면 그것은 죽음이 아닐것이다. 죽으면 썩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사후세계란건 그저 감정적으로 바라는 원시적인 마음이 구체적인 상상을 통해 사후세계를 만들어낸 것이고 그것이 전해 내려온 것뿐 아무 근거가 없다. 있다고 쳐도 그 근원은 어디서 온단말인가? 죽어간 사람들을 모두 합치면 현생의 인구보다 훨씬 많을 터인데 어디에서 왔고 어느 공간에 수용한단 말인가. 여기에 대한건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다. 밝혀지지 않는 것을 그대로 믿는다는 것은 내뇌망상을 그대로 믿는것과 별 다를바 없다. 둘다 어차피 밝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도 없고 있을리도 없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고 해도 과거의 삶을 잊고 살지 않을까. 환생을 했다해도 마찬가지일것 같다. 새로 태어나면 새로운 사람인것이고 내가 모르는 나, 전생의 삶을 현생에 감당하게 하는 것은 연좌제나 마찬가지다.
하다보니 1등이 된 것과 1등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 것 중에 어떤 삶이 좋을까?
남들을 이기기 위해서 산 삶과 나를 위해서 산 삶은? 이름을 남긴 사람과 잊혀진 사람 중 누가 (남들에게 말고) 본인에게 의미있는 삶이라 할 수 있을까?
정답은 답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규범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도내에서 자유롭게 살면 되는 것이다. 답이 없는 문제를 답이라며 거기에 따르는 것도 물론 좋다. 다만 나 아닌 타인을 그런 규범의 범주안에 넣고 보지 말것이며,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으면 된다는걸 잊지 말아야 한다. 그저 사는 동안 살아있는 사람들끼리 조화롭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역사인물들의 에피소드를 통해서 현대의 처세를 생각해볼 수 있게 구성된 책이었다. 교양지식은 물론 역사 공부까지 되며 재미가지 얻을 수 있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면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