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남은 삶이 한 시간뿐이라면 - 프랑스 노철학자가 전하는 삶의 가치와 본질에 대한 철학적 질문들
로제 폴 드루아 지음, 최린 옮김 / 센시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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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면서도 불공평하다.

 

시간을 때운다, 킬링 타임 등의 용어가 있다. 시간 때우는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 할만큼 누구에게 시간은 참 많고 한가한 것이고 지루한 것이기도 하다.

 

또 누구에게는 얼마 남지 않고 무엇보다 소중하고 안타까운 시간일 수도 있다.

 

시간은 공평하면서도 공평하지 않다.

밥 한끼를 먹기 위해 누구는 밥 먹을 시간만 쓰면 되고 누구는 밥값을 벌기 위해 밥먹을 시간의 몇배를 노동으로 채워야 한다.

 

우리는 영화나 책 등을 통해 삶이 얼마 안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고 시간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내 일상으로 돌아오면 여전히 하던대로 습관대로 시간을 보낸다.

 

나는 여유를 즐기는 편이라 느리게 행동을 하는 편이다. 즐겨도 너무 즐기기 때문에 탈이다. 금방 할 일을 느려 터지게 하거나 미루면 나 스스로도 답답할 지경이다. 어떤 사람은 즉시 그것을 해결 해버리고 또 다른 일을 하겠지. 어떤 사람은 남들 쉴 때 조금이라도 더 일을 해서 돈을 벌거나 일 자체를 하려고 들 것이다.

 

그렇다면 바쁘게 사는 사람이라고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는 것일까? 바쁘게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하루에 10시간 넘게 주말도 없이 일을 하지만 어떤 사람은 빈둥거리면서도 돈을 더 많이 벌어가기도 한다.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은 것인가?

여기에 답은 없다. 어떤 사람이 오래 살지 못한다면 바쁘게 일할 필요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라도 남은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을까? 아마도 지난 날에 대한 후회와 남은 가족들에 대한 걱정,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얼마안되는 남은 시간을 꽉 채울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답은 없다.

 

우리가 학교에서 익숙해진 대로 세상을 보면 그것이 바로 오답이 된다.

우리는 시험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왔지만 차라리 4가지 중에서 고르는 것이 속이 편하다는 것을 알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꾸 이분법으로 세상을 생각하려 하고, 답을 찾으려 하고, 단정지으려고 할지도 모른다.

 

저자는 '진리는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 라는 말을 인용하며 절대 진리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답은 없기 때문에 니 마음대로 막 살아라라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이것조차 모아니면 도 식의 이분법 사고 방식일 뿐이다. 답은 없기 때문에 내 나름대로 기준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너무 세상의 기준이나, 내가 믿었던 것에 천착하지 말라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믿은 신념이 남에게는 틀릴수도 있다. 내 신념을 버리지 않되 남이 다른 신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특히 종교가 그러하다. 종교인들은 자신들의 믿음이 절대 진리라고 믿고 강요를 하려 한다.

그러나 그들의 역사만 봐도 시대와 국가와 통치 방식에 따라 변모 되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현재 자신들의 방식이 자꾸 진리라고 우긴다. 그 접근 방식 자체에 거부감이 들기 때문에 나같은 사람은 그게 진리든 아니든 아예 알고 싶지도 않게 되버린다. 물론 나는 그것이 거짓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이며 그것이 내겐 진리가 되지만 - 결코 그들이나 다른 사람에게 내 진리를 강요하지 않는다.

 

이 책의 이야기는 강요가 없지만, 어떤 방향을 강요없이 비춰주기는 한다.

그것은 삶에 대한 깊은 생각을 유발하면서 독자를 혼란스럽게 하기도, 깨닫게 하기도, 시름에 잠기게 하기도 할 것이다. 각자의 경험 현실에 따라서 다르게 반응할 수 있도록 유도된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과정인 거다. 삶이, 인생이 어째야 한다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독자 자신이 깊은 사고를 통해서 내 현실의 장소를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물론 이것조차 내 자의적 독자적으로 든 생각일 뿐이고 답은 절대 아니다. 답이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내 나름대로의 정의를 해나가는 것이다.

그게 어떤 의도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더 깊이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내가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 바쁘게 사느냐 아니면 그저 삶을 즐기면서 여유롭게 사는 비중을 올릴 것이냐 결과적으로는 누구나 죽기 때문에 옛사람들은 사후의 삶을 생각하거나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지 아닌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사후가 없다고 생각하는 나는 이름이 남든 안남든 나하고는 별로 상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소룡이 요절하면서 자기 이름이 길이 길이 다루어짐에 기뻐하며 죽거나 아직도 기뻐하고 있지는 않다. 그는 그저 죽었고 남은 것은 그가 아닌 남은 사람들의 몫이다. 어떤 면에서 이소룡은 이소룡이 아니게 된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야?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우리는 영화를 봐도 결말이 어떤지에 대한 궁금증이 있고 그것을 참 중요하게 생각한다. 허나 식스센스의 반전을 알고 봐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반전의 충격에 가려져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결말이 물론 중요하지만 그 과정이 어땠는지가 중요할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결말은 어쨌든 죽음이 아닌가. 뻔히 아는 결말보다 그 죽음에 이르기 까지 어쨋는가가 중요할 지도 모르고 그저 지금이 어떤가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인간의 인생에 시간이라는 개념은 굉장히 큰 존재이다.

삶은 유한하고 사람은 점점 그 막바지로의 여행을 하고 있다. 그것이 위치에 따라 상황에 따라 짧게 혹은 길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대게 나이가 들수록 그게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동시에 아직은 시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어리석다고만 할 수 있을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다.

 

명상록을 읽는 것처럼 길지 않은 분량이고 어렵지 않은 글인데 머리가 좀 아파오기도 한다. 뭐 어떤 사람에게는 편하게 읽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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