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의 것들은 우리의 관심과 사랑을 담고 있다. 모든 걸 갖는 건 힘든 일이며 결코 끝나지 않는다 .당신은 어떤 것을 가졌다가 기진맥진하고 낙담할 수 있다.그리고 감정이 차오를 때면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누구든 어떤 날에든 그럴 수 있다.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니까.하지만 그러고 나면 다음 순간이 있다.그리고 다음 날,그리고.... "



"꽃은 우미인초다.낙관은 호이쓰라고 되어 있다"/427쪽










<우미인초>결말을 장식(?)한 후지오의 마지막은 처음 읽을 때도, 다시 읽는 지금도 여전히 강렬하다. 어떻게 그럴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보다,모든 걸 다 갖는다는 걸 알았다면,그 다음 순간 자신의 인생이 또 달라질 수 있었을텐데... 서로 다른 책에서,통하는 무언가를 만나는 건 언제나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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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기 어려운 시대군요"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한 번 ‘이해 불가의 시대‘를 거론하고는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평생을 자유와 평화와 정의를 위해 싸워온 사람이 범죄자로 고발당하고 노골적으로 증오를 부추기고 살인마을 찬양하고 민주주의 파괴를 획책한 자가 법에 의해 피히자로 군림하다니 말입니다/189쪽

누구나 자신의 현실을 미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처음에는 자기 삶에 사적인 환상을 덧씌우다가 어느 날 재미 삼아 아예 일화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문제는 세월이 지나고 일화가 반복되다 보면 그 일화자체를 부인하기가 어려워진다는 데 있다.요컨대 결국 그 모든 것을 사실로 믿어 버리게 되고 산호초가 만들어지는 과정만큼이나 완만한 신화 창조의 과정 속에서 비로소 역사로서의 형체를 갖추기 시작하게 된다/1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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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작가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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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콘클라베>를 읽으면서,로버트 해리스 작가가 궁금해졌다.나만 몰랐던, 이미 유명한 작가였다는 사실은 이제 놀랍지 않다. 차근차근 찾아 읽어가면 되니까. 제목에서 이미 상상할 수 있는 느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궁금했다. 절묘한 타이밍에 정치인들의 자서전 회고록..이 알라딘에서 검색되는 것도 재미난 우연이다 싶었고. 앞서 '콘클라베'를 읽으면서 느낀 점이라면 이미 알고 있을 법한 내용을 뭔가 특별하게 만드는 재주가 작가에게 있는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단지 유령작가라는 위치가 출판계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내 이름을 전면에 드러낼 수 없는 작가의 고통..작가라고 말할수 있는걸까 하는 정체성의 문제를 뛰어 넘는(?) 소설이었다.그런데 탄핵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상황이라 더 몰입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부인을 만난 건 그분께도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을 겁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죠?"

"부인이야말로 진정한 정치 열정의 소유자이기 때문이죠.게다가 지식도 있고 당의 배분도 있고요.각하께서 전진할 목표를 제공해주신 게 부인일 겁니다(...)"/240쪽


"(...) 그는 애덤이 아내의 조언 없이는 어느 것도 결정하지 않으려 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애덤은 총명한 정치 세일즈맨에 불과했고 전략가는 늘 루스였다(...)"/402쪽



퇴직한 정치인의 회고록을 쓰고 있던 유령작가가 사망했다. 자살로 처리되었지만, 의구심이 드는 건 뻔하다. 맥아라의 죽음에 의심을 품게 된 현재의 유령작가는 질문하게 된다. 물론 질문을 해서도,애덤에 대한 어떤 내용도 비밀로 함구해야 한다는 건 불문율이다. 그런데 ..유령작가는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많은 걸 알게 된다(당연하지 않을까..) 그런데 누가 맥아라를 죽였는가? 보다 더 흥미를 끈 건 정치매커니즘이었다.물론, 탄핵의 시간을 거치고 있지 않다면 총명한 정치인이라 생각했을 거다.탄핵의 시간을 경험하고 있지 않았다면 루스가 전략가라는 말에 소설적 상상력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을 소설로 누군가 쓰게 된다면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 상상했는데...<유령작가>에서 그런 모습을 만난 것 같다.


"인터넷이 편집증 환자의 꿈을 실현해주는 쓰레기 공장에 게걸 들린 잡식성 귀신이라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인터넷에선 이들 정보가 푸른 리본의 하이퍼링크로 묶여 하나의 거대한 음모를 뜻하기도 한다. 하지만 '편집증환자란 온갖 사실로 넘쳐나는 사람'이라는 옛말도 있다"/295쪽


유령작가의 고통은 단순히,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지 못하는 정체성의 한계에만 있지 않았다. 너무 많은 것들을 알게 되고,심지어 죽을 수도 있다. 맥아라의 죽음은 그래서 너무 예상되는 바였는데, 마지막의 반전이 그럴수도 있었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도 섬뜩했다. 바로 이런 것이 음모론의 씨앗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그런데 정말 루스..는 그런 야망이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확증이 음모론으로 가는 지름길이란 걸 잘 알면서...이 와중에 출판사는 베스트샐러를 꿈꾼다.


"불법적인 행동이 자행되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감추는 건 도덕적중립이 될 수 없어요.범죄행위죠"/2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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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기억된 메데이아 이미지와 너무 달라서 놀랐다. 그리고 예전 읽었던 리뷰(공연 리뷰는 남겨 놓지 않아 아쉽다..) 를 읽으면서,다시 생각했다. 그녀의 잔인함 속에 안타까운 마음을..배우는 읽어냈을 지도 모르겠다고..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면서 믿고 보는 배우가 출연한다는 이유만으로 (2017년)3월에 보게 될 연극을 예매했다.그리고 찾아보게 된 <메데이아> 지만지에서 출간된 책들은 읽은 책들마다 만족도가 높긴 하나 어려운 책이면 어떡하나 싶어 도서관에서먼저 빌려보기로 했는데,읽다가 너무 재미나서 바로 구입을 하게 되었다.


에우리피데스는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와 더불어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했다.그런데 내게 중요한 건 그가 그리스 3대 비극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사실보다(사실 그리스 비극은 많이 접해보지 못한 터라 아는 바가 거의 없다) 지난해 보려다 놓친 오페라<엘렉트라>의 작가라는 사실의 반가움이었다.어렵고 난해할 것 만 같아 그냥 패스한 오페라였는데,<메데이아>를 읽고 나니 책으로라도 읽어봐야 겠다는 마음이 든다.우선 에우리피레스 라는 작가가 당시로서는 진보적인 작가중 한 사람이었다는 것도 매력적이지만 신이나 영웅이 아닌 인간에게 초점을 둔 작품을 쓴 작가였다는 사실이 호기심을 불러오기 때문이다.당장 <메데이아>만 놓고 보아도,이 작품이 BC431 년에 씌어진 작품이고는 도저히 믿겨지지 않기 때문이다.그냥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에서 충분히 보게 되는 상황이였다.굳이 차이라고 우겨보자면 신화가 등장한다는 것 정도? <메데이아>에서 정말 말하고 싶었던 건 인간 이 가지고 있는 폭력성에 대한 고발이었다고 본다.


<메데이아>는 황금 양모피를 구하기 위해 아르고호를 타고 원정길에 올랐던 이아손의 모험 이후 이야기다. 동화와 같은 결말을 상상한다면 당연히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라로 끝나야겠지만 코러스가 마지막에 읊조린 말을 읽어보면 운명이란 우리가 바라는 대로 흘러가지 않음을 보여 주는 듯 하다."(...)신들은 예상치 못한 많은 일들로/우리 인간들을 놀라시게 하시는구나!/우리가 기대하는 일 이루어지지 않고/우리 인간이 생각하지도 못한 일/신의 뜻으로 이루어지는구나/이 일 또한 이렇게 끝나는구나!/ 124쪽 역자의 설명을 읽어보면 메데이아가 가진 잔혹만을 보여주려 하지 않은 뜻도 담겨 있다고 했으나 처음 읽는 독자에게 메데이아는 거대한 폭력 그 자체였다.그것이 때로는 분노로,고집으로 자기기만으로 다르게 표현되었을 뿐 그녀의 사랑에도 심지어 폭력성이 있었다고 본다.결과론적인 말일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사랑을 위해서 다른이의 목숨을 스스럼없이 사라지게 할 수 있다면 정말 사랑이라고 말할수 있을까? 이아손은 메데이아의 이런 폭력성이 무서웠던 건 아닐까? 그러나 이아손의 폭력성 (죽음에서 구해준 여인을 배신한 것도 모자라 새로운 사랑을 찾아 결혼을 하려 하고 자신을 사랑했던 여인을 내쫓으려 했으니..) 도 메데이아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잘 읽히지 않으면 어떡하나 싶은 마음에 필사를 하며 읽었더니 조금더 눈에 크게 들어오는 것들이 있었던 걸까? 메데이아와 이아손 모두 서로에 대한 원망과 불만만 있을 뿐 이러한 상황이 자신들 스스로 자초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반성의 여지를 전혀 두려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폭력성을 내포한 인간들에게 겸손과 자기반성이란 것은 애초에 있을 수 없음을 작정하고 보여주려고 한 것처럼 말이다.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부분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메데이아>의 결말은 비극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 같다.







2017년에 읽은 메데이아를 이렇게 다시 꺼내 보게 되어 기쁘다. 무엇보다 그림 속 배우의 처연함은,단지 그녀를 향한 연민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지닌 폭력성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그것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에 대한 처연함이 느껴졌다.(물론 언제나 그렇듯 나만의 오독일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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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세게 버티는 나탈리아 긴츠부르그












제목이 마음에 들어 읽겠다고 리스트(만) 해 두었던 '작은 미덕들'의 작가를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었다. <미들마치>를 읽으면서 알게 된건, 이렇게 계속 만나게 되는 작가들의 책은, 결국..언젠가는 읽게 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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