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짜..를 완독하지 못했으면서, 사촌..을 구입했다. 그리고 골동품..까지 

<고리오영감>을 재미나게 읽었으나 정작 다른 책들은 잘 읽혀지지 않는다. 골짜기..가 힘들수 있다고 헨리 제임스의 위로를 받았지만"전성기의 전반기 작품이 전체적으로 후반기 작품보다 우월하긴 하지만 두세 작품은 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덧붙여야 한다. 1835년 출간된 <골짜기의 백합>은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이다"/35쪽 '아주 가느다란 명주실로 짜낸' 나는 헨리제임스가 아니다. 어찌어찌 <샤베르 대령>과 녹색광선 출판사에서 나온 단편집을 읽었지만 아주 흡족하게 읽어내지는 못한 것 같다. 읽을 책도 많은데, 굳이 읽혀지지 않는 발자크를 붙잡고 있을 필요는 없겠는데, <고리오 영감>만 읽는 건 못내 아쉽지 않은가 싶다.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도 읽어 보고 싶은데..그럴려면 발자크 소설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제목을 보는 순간 반가웠고, 책을 받자마자 쓰나미같은 후회가 밀려왔다. '인문학 그래픽 노블' 에 대한 개념을 내가 잘못 이해한(?) 탓이 크다. 발자크 작품에 관한 분석, 혹은 작가에 대한 철학적 분석이 담겨 있을 줄 알았다.바람은 읽고 나서 발자크의 다른 책들이 마구마구 읽어 보고 싶어질 수 있기를 바랐던 거다.그런데 투렌 지방을 부대로 우스꽝스럽고 외설적이며 노골적인 이야기였다. 설명을 자세히 읽었다면, 고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노골적으로 외설 스러운 장면들이라,글 몰입도가 더 방해되는 기분이었다.물론 아포리즘 같은 문장들이 보이는 순간이 있긴 하다. 그러나 왜 '인문학 그래픽 노블'이란 부제가 달렸는지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발자크와 일부러 친해지려고 하지 말아야겠다. 그냥 자연스럽게 읽혀지는 날이 오면 그때 읽어볼 생각이다. 이것이 내가 인문학적으로 배운 교훈이다. 모두 극찬하는 발자크라고 해도,잘 읽혀지지 않는 책을 억지로 부여잡고 있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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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크리스티 이야기 매력에 빠진 시간은 길지 않다. 그래서 마음이 더 급한 건지도 모르겠다. 비슷비슷한 내용과,특별한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을 때가 많은데도 빨려 들어가는 기분..해서 잘 챙겨 읽지 않던 미스테리아32호 애거서 특집편을 구입했더랬다. 스포일러가 될지도 모르는 '애거서 크리스트 읽기'는 지금도 여전히 찾아 읽는 책이 되었다. 이미 알고 읽게 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은 기우였다. 호기심 자극하는 주제부터 찾아 읽는 재미가 훨씬 크다. 요즘 추리소설 읽기가 잠시 뜸했는데, 다시 읽어야 할 타이밍이 온 듯 하다.









<애거사 크리스티 코드>는 '다섯 가지' 코드로 읽어낸 이야기라는 설명을 읽었다. 앞서 읽게(여전히 진행중이라^^) 된 책은 '16가지 단서' 로 풀어낸 책이었다. 작가도 다르고, 나라도 다르다. 다른 시선, 닮은 시선이 있지 않을까..비교하며 읽어 보는 것도 흥미롭지 않을까 싶다. 도서관 희망도서가 2권으로 줄어든 바람에,당장 읽을..수는 없지만,4월 시작이 오면,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읽어볼 생각이다.읽어야 할 책이 밀려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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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갈 때 종종 들리는 서점이 있다. 그런데,3월은,방학으로 휴점한다는 사실을 몰랐다.신기한 건,뭔가 마음이 통한 것인지...책방지기님의 맛집리스트와 함께, 탄핵시국에 읽어보면 좋을(?)책을 리스트에 올려 놓은 글을 보게 되었다. 이 시국에 머리 더 아프게 만드는 책 보다..먼 과거 속 이야기를 통해 위로 받고 싶어, 애써 멀리 하고 싶은 책들이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며 외면 하고 싶기도 했고,저축처럼 모아 놓기만 한 <소년이 온다> 정지아님의 책은 읽다 포기 했었는데,다시 읽어 볼까 싶다. 이 미친 광란의 시기에,책으로라도 위로 받을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해야 겠고, 어느 때 보다 머리를 차갑게 만들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나쁜 권력은 어떻게 무너지는가>와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도 읽어볼 생각이다.


그리고 제목 자체로 정신 번쩍 들게 하는 책까지 








인문서인 줄 알았는데, sf소설이라 살짝 망설여지지만..제목을 곱씹어 보는 것 만으로도 공부가 되는 기분이다... 나는 정말....추하게 늙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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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소굴출판사가 기획한 페이지터너스 시리즈가 마음에 들어 한 권씩 읽어 나가고 있었는데,어느 순간 멈춘듯 하여 아쉬웠다.그리고 등장한 세계문학전집 시리즈... 에밀졸라의 단편집 <방앗간 공격>을 읽으려고 하고 있는 찰나, 카프카의 성이 출간되었다. 당장 읽고 싶지만  한 번 이상 읽은 책은,나름 또 다른 이벤트를 만들어 읽는 것도 즐거움이라 생각하게 되어,2025년 5월에 읽을 생각이다.


카프카의 '성'을 마침내 끝냈다.도서관 대출과 반납을 꽤 여러 번 해야 할 만큼 '성'은 쉬이 속도가 나지 않았다.정말 성(城)을 오르고 있다는 기분이 들만큼 긴 호흡이 필요해였던 걸까? 요제프 k의 시선을 따라가기가 매번 버겁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은데,그 고비(?)를 넘기고 나니 재미도 있었을 뿐만 아니나 잘 읽혀서 놀랐다.그렇지만 지금까지 읽었던 고전 가운데 가장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다.잘 읽힌다고 해서 속도도 그처럼 빠르게 흘러가지는 않았으니까.

 

카프카의 '성'을 읽어 보지 않은 사람도 요제프의 직업과 그가 성으로 오게 된 이유는 대부분 알고 있을지 모른다.나 역시 그랬으니까.그리고 k 라는 인물을 통해 무언가 많은 일들이 벌어질(?)거라 예상했다.물론 어느 정도 맞는 부분이기도 하다.그런데 내 눈에는 k 라는 인물 보다 아말리아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크게 남았다.(물론 보이지 않는 권력의 상징들 클람이든가 소르티니 도 궁금하고 k를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 보았던 소년 한스도 궁금했지만.) 어쩌면 그의 가족 이야기를 통해 k 라는 인물이 마주한 상황과 비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측량기사라라로 와 달라는 성의 요청을 받고 찾아왔으나 어쩐 일인지 성에서는 그에게 일을 주지 않는다 심지어 서류에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며 그가 다시 돌아가길 바란다고 말한다.이렇게 황당할 수 있을까? 그야말로 권력의 횡포이고 공공기간의 무책임한 처사인데...실은 성에서의 이런 일은 아마도 비일비재한 듯 하다.성의 무책임한 행위에 항변하는 k를 사람들은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으니까,그런데 k 와 같은 상황에 처한 인물이 한명 아니 한 가족을 만나게 된다 k의 심부름꾼 바르나바스(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사도의 이름으로 '위로의 아들' 이란 뜻) 가족사다.소방수축제일에 성에서 내려온 관리의 부름을 아말리아가 거부했다는 이유로 그의 아버지는 협회에서 추방당하고 일거리를 빼앗기고 심지어는 자신들이 살던 곳에서 추방당하게 된다.사람들은 모두 그 가족에게 등을 돌린다.그녀가 노리개감이 될 수 있었다는 것에 당당히 싸운 것이지만 사람들은 어찌된 영문인지 그의 가족을 무참히 외면한다. 그러니까 k 보다 더 치열하게 성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은 아말리아 가족이었다.k는 뭔가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무언가로 부터 도망가고 싶어 하는 마음도 느껴지지만 아말리아는 현실을 분명하게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저 견고한 성을 무너뜨린다는것도 쉽지 않을 뿐더러 사람들의 소문과 관계들도 얼마나 무서운지를.세상에는 이겨야 하는 싸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나의 소신대로 살아가는것 역시 치열한 싸움의 하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그래서 하게 된 것 같다.읽는 내내 머리가 아프면서도 성을 포기할 수 없었던 건  수많은 상징들에 격한 공감을 할 수 있어서였던 것 같다.'성'이 갖는 상징들.카프카가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성'이 갖는 메타포가였다.(마치 그렇게 찾아내야 할 것 만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고) 지금 시점에서 누군가 카프카의 성에 대해 묻는다면 '부조리'와 '권력'에 대한 이야기 라고 말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성 읽기를 마치면서 역자의 후기를 집중해서 읽게 된 것도 내가 얼마만큼 공감하며 읽었을까 에 대한 궁금함이 있어서 였는데 생각 보다 많아서 놀라웠다.그리고 동시에 읽을 때마다 조금은 또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그러나 '부조리'에 대한 느낌은 늘 따라오지 않을까? 우선 소설에 등장하는 이름들의 상징을 보면 '측량기사'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메시아'라는 뜻이 있다고 하던데 나는 k가 전혀 메시아처럼 느껴지지 않았다.미완성으로 끝났기 때문일까.다시 읽게 된다면....









16년에 했던 나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할까..궁금하다. 사회는 여전히 권력과 부조리로 소란스럽지만,분명 다른 느낌으로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표지도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다.알라딘 포인트 차곡차곡 모아 5월에는 '성'을 구입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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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두 번 읽은 것에 대한 뿌듯함이 있다.(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서 더더욱 그렇다^^) 수없이 많은 문장을 메모할 방법이 있었으면 했다. 마음산책에서 <프루스트의 문장들>이 나왔다. 개인적 바람(?)은 '프루스트의 문장들' 이 아니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속 문장들이 주제별로, 나와도 좋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있다. 오랜만에 프루스트와 다시 만났고, 이런 저런 검색을 하다가 <프루스트의 마들렌> 제목의 책이 나와 있다는 걸 알았다.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읽었다. 그러나 별점을 주기에는 뭔가 또 아쉬워서 리뷰로 남길수가 없었다는~~



"이토록 강렬한 기쁨은 어디서 온 것일까? 나는 그 기쁨이 차와 과자의 맛과 관련있다고 느꼈지만 그 맛을 훨씬 뛰어넘었으니 맛과는 다른 성질의 것이리라 생각했다.그 기쁨은 어디서 온 것인가?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디서 포착해야 하는가? 나는 두 번째 모금을 마셨으나 첫 모금에서 느꼈던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세 번째 모금은 두 번째보다 조금 더 못했다.그만 마실 때가 된 것이다.차의 효력이 줄어든 것 같았다.내가 찾는 진실은 차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게 분명했다.(...)진실을 찾아야 하는 것은 내 정신이다"/46~47쪽 마들렌과 프티트 마들렌의 차이도 궁금했지만, 잃어버린...을 읽으면서 나는 정작 마들렌에 그닥 호들갑스럽지 않았더랬다. 다른 이야기가 더 나를 매혹시켰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잃어버린...13편 즈음 가서 나는 마들렌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시간의 범주에서 벗어난 순간이 그 순간을 느끼게 하기 위해 우리 안에 시간의 범주로부터 벗어난 인간을 재창조한다.그리하여 그 인간은 비록 마들렌의 단순한 맛이 논리적으로 그 기쁨의 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그 기쁨을 믿으며(....)"/ 38쪽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3) 그래픽을 보면서 첫 모금, 두 번째 모금..으로 이어지는 상상이 찾아왔다. 무엇보다, 마들렌을 통해 프루스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가벼운 낭만의 그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을 대단하게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프루스트의 마들렌>에는 마들렌과, 엄마, 그리고 질베르트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질베르트는 이미지가 몰입감을 방해하는 감이 없지 않아 있어서 살짝 아쉬웠다. 다만 그녀를 자그맣게 표현한 지점에서..소설 속 화자가 그녀를 해바라기 했던 걸까..생각했다, 질베르트 보다 알베르틴을 통해, 질투의 화두로 잃어버린..을 읽었기 때문일수도 있겠다. <프루스트의 문장들>에서도 알베르틴이 내 눈에 더 많이 들어온 이유이기도 하고. 잃어버린..을 읽기 전에는 스완의 사랑과 마들렌의 소설을 이끌어 가는 줄 알았으나, 정작 읽기 시작하고 나서는 알베르틴을 통해 사랑과 질투에 대해 생각했다. 어머니와 주변 가족들을 통해 사랑과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어 좋았지만, 세세한 줄거리를 기억하지 못해도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다시 한 번 '마들렌'으로만 이 소설을 기억하는 것은 얼마나 안타까운가..생각했다.










"(....) 예술을 통해서만 우리는 스스로에게서 벗어나 타인이 보는 다른 세계를 볼 수 있고 달의 정경만큼 알려지지 않은 풍경을 볼 수 있다.예술 덕분에 단 하나의 세계, 즉 우리의 세계만을 보는 대신 세계가 증대되는 것을 볼 수 있고 독창적인 예술가의 수만큼 서로 다른 다양한 세계는 무한히 지속되며 렘브란트나 페르메이르 같은 광원은 소멸한 지 수세기가 지나도 여전히 특별한 빛을 발산하고 있다"/30쪽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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