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울프의 세련된 글솜씨에 비로소 공감할 수 있었다"/86쪽
<올랜도>를 읽으면서 내가 느꼈던 기분이었다.영화는 힘들었던 기억, 책으로는 아주 재미나게 읽혀져서 놀랐다. 세세한 줄거리까지 기억할 수 없지만, <올랜도>를 재미나게 읽었다는 기억만큼은 선명하다. 덕분에 울프의 다른 책들을 읽을수 있게 되었으니까.
너무 잘 읽혀서 놀랐다.어쩌면 소설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방향과 다른 지점에서 보물찾기 하는 기분을 종종 느낀탓일 수도 있겠다.서른이 되는 순간,남성이었던 올랜도가 여성으로 바뀐다는 설정만 놓고 보면 이해될 수 없는 이야기일텐데..묘하게 빨려들어간다. 환타지 속에서 정말 하고 싶었던 여성에 관한 문제를 풀어 놓고자 함이 보인 탓일게다.작가의 의도인지 아닌지 알수 없으나,독자에겐 올랜도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뀐 순간,당시 여성이 받아야 했던 부당함들이 보였다.심지어 여성을 위해(?)서 하는 듯한 것들에서 조차 실은 불편한 것 투성이...였다.결국 이런 물음은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심오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사랑에 관한 질문은,이제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온다.뭔가 존재론적인 질문이라고 해야 할까? 쉬운 듯 어려운 질문인 진정한 자아에 대한 물음.그리고 인생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물음들.. 그러나 3백년을 가까이 살아(?)온 올랜도는 여전히 행복을 찾고 있었고,진정한 자아를 찾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지를 토로한다.
소설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 읽었다. 올랜도의 결말이 궁금했지만,꾹(?)참아가며 페이지를 넘겼다. 다 읽고 나서야,친구 비타 색크빌 웨스트의 삶에 기반을 둔 소설이였음을 알았다. 그러나 그녀에 대해 알지 못해도,소설을 전지적 독자만의 시점으로 읽어내는 재미가 있었다.후반부는,울프에 대해 아주 깊은 이해도가 있어야 몰입할 수 있겠지만,소설의 2/3 정도는 남성과 여성에 관한 문제,사랑에 관한 문제,창작의 고통,문학에 대한 풍자를 찾아 읽는 재미가 있었다. 2020년 읽었음에도 <올랜도>는 퍽 강렬했던 것이 분명하다. 다른 이야기보다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열린책들에서 나온 <올랜도>를 읽을 때도 솔출판사의 표지가 유혹했더랬다. 다시 읽게 된다면 그때는 솔출판사 버전으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2025년에도 <올랜도>는 여전히 진행중인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