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줄의 글도 없는 찐(?)그림책, 유난히 시선을 끌었던 건 산위에 미술관이 있다는 설정이었다. 뮤지엄 산이란 곳도 있으니.. 그닥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을지도.. 그러나 정말 산위에 덩그러니 미술관뮤지엄(만) 있다면...여러상상을 하게 되더라는 그때 공교롭게 재미난 시집의 제목 발견










절묘한 타이밍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도서관 희망도서로 신청하지 못하고.. 있었는데,나는 이 집을 곧 읽게 될 예정이다.^^


그리고 졸라의 <작품>에서 불쑥 '산....'이 언급되는 순간 산위미술관에 나는 하나의 상상이 더해졌다.









"내겐 자극이 필요해...아! 아직 산 밑에 서 있는 자네들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인지,아마 아직 잘 모를 테지! 힘센 다리도 있겠다.용기도 있겠다.이제 산 위로 올라갈 일만 남았잖아! 그런데 막상 그 위로 올라가고 나면 얼어 죽을! 고통이 다시 시작된다네.그거야말로 진짜 고문이지. 주먹들이 막 날아오고 너무 빨리 추락한다면 안 된다는 두려움에 끊임없이 새로운 노력을 해야 된단 말일세!...난 장담할 수 있네! 아래에 있을 때가 좋다고.그때는 도처에 해야 할 일뿐이잖나(...)"/142쪽












그림을 통해 상상하는 재미에(만) 있었던 탓에, 왜 산위에 미술관이 있을까..에 대한 질문은 하지 못했다. 졸라의 <작품>을 읽으면서, 남자가 꾸역꾸역 산위에 오른 미술관에서 수만가지 하게 된 상상은... 추락할지도 모를 두려움 때문은 아니었을까... 문동시집은 대체적으로 어려워 늘 제목만 보고 패스할 때가 많았는데 ' 산 위의 미술관'을 어떻게 그려냈을지..시집이 궁금해졌고. 절묘한 타이밍으로 읽게 될 예정이다.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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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찾는 질문~~

그는 엄연한 사실이 자주 사실같이 보이지 않는 것에 놀랐다.그가 분명하다고 생각하는 것,또 논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인생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비교해 볼 때 틀릴 때가 많았던 것이다/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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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덕분(?)에 일년 전 <오직, 그림>을 읽겠다 약속했던 사실을 알았다. 냉큼 도서관에서 빌려와 휘리릭 페이지를 넘겨 눈에 들어온 그림...을 보는 순간, 나는 컵이 마치 화가 난, 혹은 어떤 감정을 표현하는 것으로 읽혀져서 피식 웃음이 났다. 이 그림을 설명한 제목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사물을 사유하게 만드는 그림'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의 이름을 검색해 보고 한 번 더 놀랐다. 아니, 비로서 '희생양' 이란 그림을 그린 이유도 알겠다. 화가의 신분이 수도였던 거다. 









주제 사라마구의 <카인>을 읽으면서 표지 작품이 궁금해서 당시에도 아마 화가 이름을 검색해 보게 되었고..그러다 르네 지라르의 <희생양>도 읽어 보겠노라.. 했던 것 같은데. 아직까지 르네선생의 <희생양>은 읽지 못하고 있다.  '컵 속의 물과 장미' 그림과 '하나님의 어린양'은 같은 화가의 그림이란 생각을 하기 쉽지가 않다.그런데 굳이 컵 속..의 정물화를 그린 화가의 신분이 수도사라는 설명 때문이 아니라, 그림에서 어떤 분위기가 느껴지는 건 분명하다. 저자의 설명대로라면 고요함,시선의 깊이일텐데..나는 사물들의 개별성을 드러내는 느낌에 한표를 주고 싶다. 아무리 봐도 컵의 표정에서 사람의 감정이 읽혀져서... 이제 화가와 이 그림에 대한 해석을 들어 볼 차례다.


"세비야를 활동무대로 삼은 수도사이기도 했던 화가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은 특히 종교화와 정물화로 명성을 얻었다.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은 그는 깊이 있는 사실주의와 단순한 구도 및 색채와 결합된 조각적 형태를 명확하게 구현하고 있다. 그의 정물은 정지된 사물 이상의 것으로서 마치 명상에 의해 존재의 신비를 꿰뚫는 것처럼 보인다(...)"/80쪽


"컵에 담긴 깨끗한 물은 정화를, 레몬은 부활절을 장미는 성모마리아를 상징한다.이 그림은 마리아를 기원하며 자신의 죄를 사하여달라는 뜻이다. 매우 고요하고 정적이지만 우리의 모든 감각이 일깨워진다"/82쪽










설명대로라면 나는 완전한 오독을 했다. 변명하자면, 그림 속 정물들의 상징을 알 수 없고(종교인이라면 알았을까..) 내 눈에 그림 속 레몬도 보이지 않았다.(보였다고 달라지지도 않았을 게다..) 내 시선을 사로 잡은 건 결연한 느낌으로 전달 된 '컵의 표정' 일 뿐. 그런데 예술에서 '사물' 이란 것이 기꺼이 오독으로 읽혀져도.,.읽혀질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받은 기분이다. 화가 수르바란의 의도는 알 수 없겠지만 말이다.


"이 그림은 사물에 대한 작가의 애정 어린 시선과 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사물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일상과 감각에 대한 단호한 몰입을 말한다. 이 그림은 더없이 감각적이도 촉각적이다. 한 개인의 눈과 몸, 감각에 신경이 집중된 이미지다. 그래서 보는 이의 망막에 와닿는다. 그러는 순간 우리 몸은 거대한 더듬이가 되어 저 사물의 관능적인 피부 위에서 조심스럽게 떨린다"/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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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시간도 이렇게나 다르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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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손턴 와일더 지음, 정해영 옮김, 신형철 해제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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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만한 새책으로 만났을 때부터,궁금한 책이었다.(그러나) 표지와 제목이 선뜻 나를 이끌지 못했다. <경애의 마음>을 읽고 나서 불현듯 이 책이 다시 보이게 된 것이 신기했다.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을 위로하는 불멸의 고전' 이란 멘트가 내 시선을 끈 탓이다. 여전히 사람들 마음을 버겁게 하는 시월의 이태원. 그리고 사람들 뇌리 속에서 많이 기억하지 못하게 된 시월의 인천화재사고.. 페이지를 넘기다, 주니퍼수사의 질문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우주에 어떤 계획이 있다면 인간의 삶에 어떤 패턴이 있다면 갑자기 중단된 저들의 삶 속에 숨겨진 불가사의한 무언가를 밝혀낼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우리는 우연히 살고 우연히 죽는 것일까, 아니면 계획에 의해 살고 계획에 의해 죽는 것일까(....)"/15쪽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 아니 설명을 받아야 하는 일들이 있다.그날 왜 그렇게 밖에 하지 못했느냐고, 답을 들을수 없다는 건,계속 질문을 할 수 밖에 없다는 뜻도 된다.다리가 무너졌고, 다섯 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주니퍼수사는 그들의 죽음을 추적(?)하게 된다. 주니퍼 수사가 진짜 알고 싶었던 건 무엇이였을까? 정말 증명이 가능할거라 믿었던 걸까? 그런데 다섯 명에 대한 기록을 읽으면서,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을 받았다.특히 살아 남은 자들의 고통에 대해서...함께 떠나길 거부했던 에스테반에게 기꺼이 함께 가길 권했던 알바라도 선장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함께 가자고 하지 않았다면, 에스테반은 죽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자책. 갑작스러운 죽음에는 수많은 사연들이 있을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가 선장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을까.고통의 순간을 겪고 있을 때 힘들었던 말은 '시간이 모든 걸 해결 해 줄 거야' 라는 말이었다.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그런 말은 공허하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이 되는 것 또한 맞다. 아니 어쩌면 시간이 아니라. 알 수 없는 무언가로부터 위로를 받고 있었던 건 아니였을까.


"우리는 모두 실패했어요. 그리고 그로 인해 한 사람은 벌을 받으려 하고 한 사람은 온갖 속죄를 하려 하는 군요,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사랑 안에서는 평소에는 감히 이런 말을 입에 잘 담지 않습니다만 사랑 안에서는 우리의 실수조차 오래가지 않는 것 같더군요"/203쪽



우리 모두 언제가는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억울한 죽음 앞에서는 무언가를 도둑 맞은 기분이 들게 된다.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함께... 콕 찍어 '사랑'이라 표현하지 않았지만, 상실을 겪은 이유로 인해 다시 누군가와 연대하고, 위로 할 수 있는 과정을 생각하자고 했다.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경애의 마음>에서 상수가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언니라는 닉네임으로 누군가의 아픔을 상담해주는 채널을 만들었던 건, 인천화재 사고로 친구를 잃어버린 고통을 어떻게라도 이겨내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본다.경애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서... 라고 했던가.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에서는 '사랑' 이라고 했다. 오직 '사랑' 만이 산자와 죽은 자의 다리를 잇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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