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마거릿 애트우드 외 지음, 남명성 옮김 / 비채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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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관심을 두었던 소설은 아니었다.'스콧 터로' 의 소설을 마침 재미나게 읽고 난 후라, 반가운 마음에 골랐다. 당연히 소설집인 줄 알았다. 방대한 분량이라, 스콧 터로의 이야기부터 골라 읽어봐야지 생각했는데..맙소사!! 여러 명의 작가들이 마치 하나의 목소리를 내듯 써내려간 이야기였다. 편집자의 능력도 있었을게다.그러나,한명의 작가가 썼다고 해도 나는 의심하지 않았을 것 같다. 도저히 서로 다른 작가들이 써내려간 소설이란 느낌을 받을수 없었다. 간혹 흥미가 덜한 에피소드가 그려지기도 했지만,테피스트리가 떠올랐다.서로 다른 색깔이 모여,하나의 멋진 작품이 완성된 모습.


코로나 시절이 언제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 만큼 벌써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지금, 소설은 다시 그 시간으로 독자를 불러왔다. 소설의 제목이 '14일' 인 이유가 바로 생각났다.거리두기 라는 사회적 제약이 단지 서로를 위한 최선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고 해야 할까.. 낡은 아파트에 사는 이들은 답답한 감금에서 숨을 쉬고자 옥상으로 올라온다. 그리고 각자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순간 단테의 <신곡>이 생각났다. 그 시절 나도 읽어보려 시도했고, 읽다가 포기했던 기억이 나서.. 그런데 아파트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는 가짜 같은 가짜..가짜 같은 진짜..이야기가 그려진다. 자연스럽게 인종차별, 빈부격차, 젠더 갈등,이민자문제 등등..타인의 입을 통해 나의 슬픔을 보고 나의 이야기를 통해 타인의 고통을 이해받는다. 


옥상이라는 열린 공간에서 목소리를 나누며 살아있음을 느꼈을 것이다.바이러스가 우리를 단절 시켰던 그 순간에도 우리는 알게 모르게 연결되어 있었던 셈이다. 스콧 터로 소설 매력에 빠져 한 편 더 읽어 보려고 골랐다가,수많은 이웃의 목소리를 들었다.무엇보다 서로 다른 색깔의 작가들이 하나의 멋진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경이를 표하고 싶어졌다. 코로나 시절을 겪지 않았다면, 조금은 작위적인 구성이라는 느낌을 받았을 테지만,그 시절을 함께 겪어온 입장에서 지금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계속 생각했다. 다른 어느 때보다 경청과 공감이 필요한 시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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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U. R. - 로줌 유니버설 로봇 이음스코프
카렐 차페크 지음, 유선비 옮김 / 이음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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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를 애정하지만,딱 한가지, 책 읽으면서 여유롭게 커피 마실 공간이 보이지 않는다 점이었다. 그런데 마침내 찾았다. 도서관.숲가까이 자리한 도서관이라 좋았다.크지 않은 도서관이라, 한 눈에 책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도 좋았지만,서가를 둘러보다, 읽어야겠다고 생각만 했던 < R.U.R >이 보여서 반가웠다.



소설인줄 알았는데, 희곡(연극대본)이다. 읽는 내내 100년 전 체코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미래를 이렇게까지 정교하게 예견할 수 있었을까 경외감이 들었다.(미래형 소설도 아니었을텐데..)

엄밀히 말하면 작픔 속 로봇은 지금 우리가 쓰느 기계공학적 '로봇' 개념과는 결이 다르다. 체코어로 강제노동을 뜻하는 '로보타'에서 유래했듯,작가는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기계처럼 소모되는 자본주의 부속품으로 인간을 상상했던 건 아니였을까 그러나 놀랍게도 오늘날 로봇과 AI가 인간의 자리를 점점 대신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작품 속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었다. 우리는 지금 로봇 기술이 가져올 장및빛 그림만 상상한다.그로 인해 발생할 부작용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는다.


"(...)가난이 없어지는 겁니다.그래요 사람들은 일자리가 없어지겠죠.하지만 앞으로는 일이라는 것 자체가 없을 겁니다.모든 일을 살아 있는 기계들이 할 테니까요.사람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것들만 하게 될 겁니다. 그래서 사람은 더 완벽해지기 위해서 살게 되겠죠?"/57쪽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서 가난이 사라질까? 작품 속 로봇은 인간에게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반란을 일으키지만, 지금 현실에서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야금야금 대신하고 있는 현상 자체가 인간의 입장에서는 이미 소리 없느 '로봇 혁명'으로 인지해야 하지 않을까? 편리함이라는 달콤한 덫에 걸려 이미 전쟁은 시작되었는데, 여전히 로봇을 인간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는 오만에 빠져 있는 건 아닐까...


로봇이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세상이 도래한다면, 인간이 자리는 더이상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로봇이 점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게 된다면...책 속에서 언급된 것처럼 저주받은 낙원에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를일이다. 그러니까.인간은 로봇의 편리함을 지혜롭게 다스려야 한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로봇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빼앗는 대상이 아니라, 사람이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파트너같은 존재로..나아가게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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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센트 밀리언셀러 클럽 121
스콧 터로 지음, 신예경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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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무죄추정>에서 숨막히는 법정 공방끝에 러스티사비치는 '무죄'판결을 받았다.제목에서 암시 된 것처럼 러스티검사는 피의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진실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채 이야기는 끝났다. 그리고 2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 러스티는 예순의 판사가 되어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도 제목이 심상치 않다<이노센트>


"드문드문 그런 경우도 있다고 토미가 대답했다.재판이란 유죄냐 무죄냐 하는 몇 가지 안 되는 엄격한 범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세상사를 묶어 두려 한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있기보다는 작은 정의라도 수행하려는 겁니다>> /535쪽


나는 그동안 누군가 잘못을 하면 그에게 죄를 묻는 것에만 더 관심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유죄로 판결했다고 해서 그것이 꼭 정의로운가에 대해 묻는다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러니까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명백한 살인으로 의심되지만 무죄 판결이 내려질 수 있는 걸 감안하면, 정의가 실현된 건 아니니까 말이다.반대로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정황상 증거가 만들어지면 유죄가 될 수 있다. <무죄추정>를 끝내면서 개운하지 않았던 건 러스티의 침묵이었다. 시간이 흘러 <이노센트>에서 만난 바바라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다. 만약 그때 러스티가 정의로웠다면, 적어도 법을 집행하는 입장에서..그랬다면 바바라의 삶은 자살로 끝나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토미가 생각하는 정의란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명하게 가려내는 것에 있었다. 바바라가 생각한 정의는, 내 삶을 파괴한 이를 스스로 응징하는 것에 있다고 본 건 아니였을까.. 피의자에게 유죄를 내린 것이 정의라 믿는 짐의 사고방식은 그래서 무서웠다.(우리가 가장 많이 저지르는 오류인것 같아서..) 러스티는 법으로 정의까지 심판할 수 없다는 회의론적인 마음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바라라 사건 이후 그렇게 된 것인지, 애초에 그런 마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바바라 사건에 침묵할 수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무죄추정>에서 러스티의 침묵이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노센트>를 읽으면서 '유죄'에 대한 침묵보다 그가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침묵이 비겁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뉴스에서 유무죄를 가리는 기사를 볼때마다 화가 난 건, 단순히 무죄를 내리거나, 형량이 낮다는 것이 아니라, 법이 정의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던 것 같다. 그런데 법은 정의를 내릴수 있는 곳이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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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은 흐른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00
이미륵 지음, 안삼환 옮김 / 민음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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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 핫한 카페가 있다고 해서 찾았다가, 평범한 맛을 사악한 가격에 판매하는 구나 느낌에 살짝 화가 났다. 그럴때는 근처 독립책방을 찾아봐야 한다. 수원에 있는 책방 '그런의미에서' 를 찾았다. 마음 속으로 사고 싶은 책 목록을 언제나 담아 두고 있어서,열심히 구경하다가, 오래전 부터 읽어 보고 싶었던 '압록강은 흐른다'를 구입했다. 



2026년국제도서전에서 판매된 상품이라고 했다. 속지가 한지로 되어 있다고 했다. 당연히 온라인 서점에서 판매되는 가격보다 비싸다.그런데 속지가 한지라는 말에 솔깃해서 구입했다. 책갈피도 한지다. 책갈피에 적힌 문장을 찾아보는 즐거움도 있었다. 왜냐하면 페이지까지 알려주진 않았기 때문이다.페이지를 넘기는 기분이 좋았다. 뭔가 더 집중하고, 소중하게 페이지를 넘겨야 할 것 같은 기분...


"멀리 밝은  가을 하늘 아래에 한 무리의 연산( 連山)들이 다른 연산들로 연이어지고 있었다. 산들은 석양을 받아 빛났고 어스름 속에서 다시 한번 활짝 빛을 발했다가는 푸른 연무 속으로 서서히잠겨 들었다(..)"/177쪽


'연산'(죽 잇대어 있는 산)이란 단어를 마주한 순간 책의 표지 그림이 이해되었다.

제목만 보고 긴 장편일줄 알았는데, 단편보다는 길고 중편보다는 짧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소설 속에 담긴 역사의 시간은 묵직하게 전해졌다. 표지에 그려진 산의 모습을 보며,소설의 제목은 압록강...이지만, 안생의 고비고비를 넘는 기분을 산에 비유한 것은 기분이 들었다.

평화로웠던 유년시절은, 일제강점기를 피부로 느낄수 없었다.3.1운동이 거대한 폭풍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리고 이런 주제의 이야기를 읽을 경우, 주인공은 보통 결연한 마음..으로 독립운동을 하러 떠나는 모습이었지만, 압록강은...한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것에 집중한 느낌을 받았다. 거대한 역사 앞에서 흔들리고 두려워하는 나약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독립운동을 나서지 않은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고향을 등지고 압록강을 건너야 했던 선택이 얼마나 외롭고 무서운 결단이었을지,누가 상상할 수 있을까?  소설의 마지막이 쓸쓸하게 다가 온 건  표지 마지막 페이지 그림에서,남자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기분이들었기 때문이다. "너는 용기가 없는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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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뚱해서 행복한, 보테로
이동섭 지음 / 미진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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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덕수궁에서 전시를 보던 때를 기억하며, 예전에 구입해 놓은 <뚱뚱해서 행복한 보테로>를 다시 꺼내 읽었다. 그때보다 더 진한 감동을 느끼며 읽게 된 것이 신기하다. 워낙 '뚱뚱함'을 유쾌하게 그린 화가로 기억하고 있어서, 전시장까지 다시 찾아가야 할지..새로운 그림은 없지 않을까 생각하다가,이미,2023년에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았다. 분명 기사로 접했을 텐데,기억 나지 않는다.



뚱뚱한 사람들과,서커스그림들이 워낙 유명해서 그때는 미처 정물화에까지 내가 관심을 두지 않았던 걸까 다시 읽으면서 유독 시선을 끈 건 보테로가 그린 정물화였다. 이렇게 생동감 넘치는 정물화..라니. 시선을 끄는 정물화마다 포스팅을 하면서 알았다.내가 사물에서 유독 생동감 느끼는 이야기를 상상하게 된 건,보테로의 영향도 작용했을수 있다는 사실을..


'뚱뚱함'은 종종 혐오의 대상이 되거나 웃음거리로 전락하기 일쑤다. 하지만 보테로의 그림 속 뚱뚱함은 조롱이 아닌 기분 좋은 웃음을 짓게 한다. 그리고  대상을 비틀기 위해 부풀린 것이 아니라 사물이 지닌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극대화하려 했다는 설명이, 인물화 보다, 정물화에서 더 미소짓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솔직히 2011년에는 아무생각없이 유쾌하게 그림을 감상했던 것 같다..) '형태와 색채'에 집중하는 행위는 사물을 눈으로 보는 것 그 이상의 본질을 바라보게 해 줄 수 있다는 걸 조금은 알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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