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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은 시간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7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인상 깊게 읽었다. 그래서 작가의 다른 책을 찾아 읽고 싶었기 때문에 <너무 늦은 시간>을 읽게 되었다.단편집이란 사실은 읽기 시작하고 나서야 알았다. 책에 실린 '남극'은1999년 발표된 작품이었다.
세 편 가운데 가장 재미나게 읽은 건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 이었다. 여성혐오에 대한 확장된 시선을 어렵지 않게 들려준 '너무 늦은 시간'도 좋았다. 결말을 알고 나면 고개가 끄덕여질 수 도 있는데, 전혀 생각지 못한 반전이라 당혹스러웠던 '남극' 더할나위 없는 제목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왜 그녀만 남극이란 현실과 마주해야 하는 항변이 하고 싶었졌다.세세한 설명은 없었지만,남자의 아내가 자신을 배신(?)했다는 이유로 똑같이 복수하고 싶었던 건 아니였을지... 여전히 절대적으로 여성들이 약자로 살아가는 세상이지만, 간혹, 고통속에 살아가는 남자사람들도 있을 테니까. 그럼에도 '남극' 속 남자의 행동은 정당하다고 이해하는 건 곤란하지 않을까...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 처럼 이야기로 복수하는 방법이 훨씬 매력적이라 생각했다. 제목에서는 뭔가 정말 고통스러운 죽음을 앞둔 사람의 이야기일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못난 남자를 그려내는 방식으로 차용했다는 사실.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결말이었지만 매력적이었다.
"어머니가 세 사람의 접시를 식탁으로 가져다주자 셋이서 먹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자기 접시를 들고 와서 자리에 앉으려고 했지만 동생이 손을 뻗어서 의자를 홱 빼버리는 바람에 바닥에 자빠졌다. 늦게 결혼한 어머니는 그때 예순 살에 가까운 나이였지만 아버지는 껄껄 웃었다. 세사람 모두 실컷 웃었고 어머니가 바닥에 떨어진 팬케이크와 접시 조각을 줍는 동안에도 계속 웃었다.
카헐은 마음 한구석으로 아버지가 다른 남자였다면 그때 그 모습을 보고 웃지 않았다면 자기가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오래 생각하지는 않았다"/44쪽 '너무 늦은 시간' 부분
늦게 라도 카헐이 알게 되길 바랐다. 아니 어떤 진실을 알게 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리는 구나..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어떤 진실을 끝내 알게 되지 못하는 시간에 대해,생각했다. 누군가에게 혐오적인 행동 혹은 언행을 잘못인지 모르고 살아가는 세상. 그것이 잘못이라는 걸 깨닫기까지의 시간은...가늠할 수 가 없다. 타인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이해하려고 조금씩 노력한다면 좋을텐데, 짧지만 강렬했던 이야기, 그러나 뒷맛은 너무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