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멸
알베르토 모라비아 지음, 정란기 옮김 / 본북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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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결말을 알아버렸다.

그러나 영화로도 만나볼 생각이다. 영화 개봉 소식 덕분에 원작 소설까지 읽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무엇보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가 중요한 장치로 언급된 부분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소설 속 남자 리카르도는 극작가를 꿈꾸지난 아내와의 안정된 결혼생활을 위해 시나리오작가로 타협하며 살아간다. 비극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분명 아내를 위해서라고 했는데, 자신이 속물이란 생각을 하게 될수록 아내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끝임없이 사랑을 갈구한다.그럴수록 쌓여 가는 오해들..아내 에밀리아가 원한건 물질적 풍요가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리카르도가 그렇게 믿은 것일 뿐..그러는 사이 오디세이를 영화로 만들어 보자는 제안을 받게 된다. 경멸 속 이야기와 별개(?)로 내가 흥미롭게 읽은 지점이기도 하다. 내 마음이 향하는 대로 시선이 가는 이야기. 감독은, 오디세이를 심리학적으로 접근해 보고 싶어한다. 해서 조목조목 율리시스가 가진 문제점(?) 아니 일반적으로 바라보는 시선과 다른 시선으로 보길 권하고, 아내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리카르도 입장에서는  감독의 말을 받아들일수가 없다.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의 사랑이 순수하고 신화적인 고전적 사랑이었다고 생각한다.그러나 그렇게 믿고 싶은 거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야 에밀리아에게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수 있을 테니까... 


"자신을 얽어맨 열등감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나는 에밀리아에 대해 그렇게 판단했다"/287쪽



리카르도의 사랑은,그녀를 정말 사랑해서가 아니었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밑도 끝도 없이 그녀를 위해 자신이 희생하고 있다는 착각이 그렇고, 그런 마음을 몰라주는 그녀가 섭섭하다며 사랑을 갈구하는 모습은 애처로워보이기까지 했다. 끝임없이 그녀가 자신을 경멸하는 건 아닐까..하는 의심은,그녀가 떠나고 나서야,자신 안에 있었던 열등감이 더 큰 문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보통은 여기서 영화가 마무리 되는 경우가 많다. 소설은 그렇지 않았다.(영화가 궁금해지는 지점이다.결말을 어떻게 끝냈을지...) 아이러니하게도,아내가 죽고 나서야 마음의 평화를 찾는 것처럼 보였다.더이상 아내로부터 열등감을 갖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과 함께 환상 속에서 아내를 마음껏 사랑할수 있게 되었으므로..남자의 열등감이 무섭도록 섬뜩하게 느껴진 결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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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네치카·스페이드의 여왕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34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음, 박종소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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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드밀라 울리츠카야의 소설 목록을 살피다가,푸슈킨 소설과 같은 제목의 소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오마주한것인지, 핵심적인 설정만 가져온 것인지 궁금해서 예전에 읽었던 푸슈킨의 '스페이드 여왕'을 다시 읽었다. 언제나 그렇듯 처음 읽는 것 같은 기분.이번이 벌써 세 번째 읽기였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처음에는 오페라를 보기 위해 읽었고, 두 번째 읽기에 가서 노부인이 보였다는 독후기가 반가웠다. 왜냐하면 이번에는 게르만이란 남자를 통해 '욕망'이 보였기 때문이다. 게르만 덕분에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가 '욕망'이란 사실도 분명해졌다. 젊음과 타인을 지배하려는 노부인의 욕망 역시 무섭기는 마찬가지였으니까.죽어서까지 게르만을 지배하려는 모습으로 상상이 되서, 블랙코미디 같다는 생각을 했다.


푸슈킨 소설에서 노부인이 타인을 지배하려고 한 욕망은, 울리츠카야 소설에서 더 심각하게(?) 그려진다. 딸과,손녀,증손녀까지 지배하려는 모습은 기괴하게까지 느껴진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폭군일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여기서 질문을 던지고 싶다.왜 딸은 엄마를 떠나지 않았을까..? 푸슈킨 소설은 욕망에 집착한 게르만 스스로 미처버리는 벌을 받는다. 그러나 울리츠카야의 '스페이드 여왕'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비로소 왜 푸슈킨의 소설을 같은 제목으로 가져왔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무르여인처럼 일그러진 욕망으로 가득한 사람은 게르만처럼 쉽게 파멸하지 않는 다는 사실이다.  (카드 잘 모르는 1인이라, 스페이스 여왕' 카드 의미를 찾아밨다. 그닥 좋은 의미로 해석되지는 않는 듯 하다..) 푸슈킨이 들려준 욕망이야기가 가벼운 경고였다면, 울리츠카야가 들려준 욕망은,누군가를 파멸로 만들어 버릴수도 있는 악에 가까운 이야기였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의 소설이 그래서 훨씬 더 읽기..버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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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추정 2 밀리언셀러 클럽 61
스콧 터로 지음, 한정아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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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동료였으나, 내연녀가 된 캐럴린의 살해범으로 지목된 러스티의 재판이 시작되면서  끝난 1권 보다 2권은 훨씬 더 긴장감을 느끼며 읽은 기분이다.


'무죄추정' 이라는 제목이 던지는 무게감을 생각했을 때 러스티가 무죄판결을 받게 되지 않을까 예상했다..그러면서도 이상하게 계속 긴장감이 느껴졌다.치열한 법정을 그대로 옯겨 놓은 듯한 분위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없는 증거도 만들어낼 수 있는 곳. 인간들의 추악한 암투가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그려진 느낌.복잡하게 얽히고설키는 서사를 따라가다가 '거미줄' 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피해자이기도 하지만,캐럴린이 야망을 위해 쳐 놓은 거미줄은 너무도 무서웠다. 정의의 심판관이어여 할 판사도,검사도, 검찰총장도 모두 캐럴린이 친 거미줄에 걸려 들어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더 무서웠던 건, 남이 쳐 놓은 거미줄에 거리는 것 보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스스로 거미줄을 쳐놓게 된다는 사실이다. 리틀판사의 법정 기각 판결은 그래서 찜찜했다. 자신이 살해하지 않았지만, 명확한 이유없이 무죄를 선고받은 러스티..는 마음이 편하지 않다.명확한 증거 없이 사법시스템이 작동될 수 있다.그러니까 죄없는 사람에게 유죄가 내려질수도 있다는 의미가 된다. 저마다 자신들이 쳐놓은 거미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 러스티의 고백은 그래서 공허하게 들렸다.


"진실을 말하는 것과 신뢰를 받는 것 중에서는 뭐가 더 어려울까?"/326쪽


법은 거미줄에 걸린 실체를 밝혀내지 못했다.(어쩌면 안한것일수도 있다) 스스로 친 욕망과 유혹의 줄이 너무도 견고해서, 진실을 감옥에서 꺼낼..수가 없는 모양이다. 러스티에게 무죄 판결이 내려지는 순간, 캐롤린의 사건은 영구미제사건으로 가라앉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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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추정 1 밀리언셀러 클럽 60
스콧 터로 지음, 한정아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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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언제나 정의의 편에만 서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가끔이겠지만 역울한 사람이 벼랑끝으로 내몰리는 뉴스를 종종 지켜봤으니까. <<무죄추정>>이라는 제목에서도 이미 무언가 모를 억울함과 서늘함이 느껴졌다.


어느 날 검사 캐롤린이 자신의 아파트에서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런데 사건을 맡은 러스티는 그녀와 은밀한 관계였다.그런데 러스티의 상관 레이먼드 역시 그녀와 은밀한 관계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러스티..는 혼란스럽다. 그녀를 살해한 사람은 누구일까? 의심되는 사람들을 찾아 갈수록 아이러니하게 사법부의 민낯이 속속들이 그려진다. 상관 레이먼드 호건은 러스티에게 등을 돌리고,레이먼드와 경쟁자였던 니코와 토미몰토는 질투와 사적인 복수심에 러스티를 몰아 붙인다.

사법부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너무 구체적으로 그려져서 이렇게까지 디테일하게 묘사하는 이유가 뭘까 하는 순간, 반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 소설이 왜 치밀하게 씌어진 이야기라고 말했는지 알았다. 물론 아직 1편 밖에 읽지 않았지만, 캐롤린의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은 그녀를 수사하던 러스티에게로 향한다. 누가봐도 말 안되는 상황이면서, 혹시나..하는 의심의 꼬리표까지... 범인이 아닌 사람이, 스스로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힌다는 것이 가능하긴 할까? 범죄자를 처벌하던 검사 러스티는 며칠 사이로 피의자가 되어버렸다.그리고 냉혹한 사법 시스템 앞에 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를 실감한다. 마녀사냥까지...


법이 지켜주지 않기에 스스로 싸워야만 무죄를 증명할 수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법은 억울함을 알아서 풀어주지 않는다.평생 법을 집행하던 검사조차 피의자가 되는 순간 자신을 파멸시키려는 거대한 권력에 맞서 외로운 싸움을 시작해야 하니까 말이다.

이제 또 다른 싸움이 시작되었다.  러스티는 캐롤린의 죽음을 자신에게  덮어 씌어 출세하려는 검찰측에게,결백을 입증할 증거를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1부를 시작할 때는 제목에서 주는 답답함이 있었는데,2부에선 그 제목대로 그가 스스로 자신의 무죄를 당당히 입증해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누가 캐롤린을 죽였는지..도 밝혀질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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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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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시끄러운 고독'이 연극 무대에 오른다는 소식을 들었다. 예매를 한 후,다시 책을 꺼내 들었다. 

책장을 펼치는 순간 영수증이 책갈피처럼 꽂혀 있었다. 덕분에 내가 이 책을 읽은 지 십 년이란 시간이 흘렀다는 걸 알았다. 그때 독후기를 찾아보고,지금과 다른 느낌으로 읽었지만, 내가 강렬하게 기억한 문장은 그때와 지금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나 자신의 밖과 안에서 이루어지는 삶 역시 마찬가지다(...)"/68쪽


삽십오 년 동안 폐지를 압축하며 살아온 노인 '한탸'의 이야기다. 이제 곧 있으면 일을 그만두어야 하지만, 한탸에게 닥친 슬픔은, 자신이 일을 더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엄청난 압축기 한 대가 들어오게 되었다는 사실이다.괴물 같은 기계에 놀란 노인의 고백에서,그가 자신의 일을 얼마나 즐겁고 소중하게 즐겼는지를 느낄수 있었으니까..


"(...)종이의 감촉을 더 잘 느끼고 두 손 가득 음미하기 위해 나는 절대로 장갑을 끼지 않았으니까.그러나 이곳에서는 그런 기쁨에 폐지가 지닌 비길 데 없이 감각적인 매력에 아무도 마음을 두는 것 같지 않았다(...)저 끔찍한 용기가 가득차면 벨트가 멈추었고 거대한 수직 나사가 천장에서 내려와서는(..)종이를 짓누른 뒤(...) 책더미들이 여기서 몽땅 파괴되었다"/90쪽



십년 전 읽을 때는 휴머노이드를 상상하지 못했다. 휴머노이드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할 수 없는 일들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마냥 부정적으로만 보고 싶지는 않지만, 한탸노인이 할 수 있는 몇 배의 거대 압축기가 들어오게 된 이상, 노인은 더이상 일을 할 수 없지 않은가.. 평생의 자부심이었던 세계가 무너졌을 때 그가 느꼈을 쓸쓸함도, 기계의 거대한 소음 속으로 걸어 들어간 그의 선택에 대해서도 감히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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