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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동품 진열실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33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동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5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까?"/ 220쪽
책표지를 보면서 마음대로 상상한 결과는, 제목을 마음대로 오독한 결과를 불러왔다.막연하게 예술을 다룬 이야기 일거라 생각했던 거다. '골동품' 이란 말과 '진열실' 이란 단어에 조롱이 담긴 표현일거라 생각하지 못했다.누구보다 작가 자신이 귀족의 부류가 되고 싶어 이름에 '드' 를 넣었단는 일화를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장황한 프랑스의 역사는 머리가 아프다. 그 가운데 여전히 가문의 뿌리를 부여잡으려는 데그리뇽 가문 ,그 가문으로 어떻게든 들어가고자 했으나 뜻이 거절되는 순간 복수를 꿈꾸는 남자. 그 사이에서 충성(?)을 바치는 공증인 쉐넬. 처음에는 어떻게 저렇게까지 충성을 바칠수..있을까 생각했고, 이야기 끝에 가서는 그의 소망이 데그리뇽가문 끝트머리에라도 자리하고 싶어서는 아니였을까..하는 마음이 들었다. 순간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인이 오버랩되는 기분이 들었다. <골동품 진열실>을 삐딱한 시선으로 읽은 탓일수도 있겠다. 어느 순간 온통 법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온다. 일부분일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페이지가 끝날때까지 다양한 색깔로 등장하는데, 어느 것 하나 흡족하다기 보다, 발자크선생이 살았던 시대나, 21세기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던 것 같다. 그러니, 발자크의 저 말은,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질문인 셈이다. 가문을 몰락시키는 곳에도, 자신의 복수를 위해서도, 출세를 위해서도 법은 너무 훌륭(?)하게 사용된다. 일일이 열거 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래도...
"뒤 롱스레 법원장의 부추김을 받은 뒤 크루아지에는 면소 판결에 대해 왕실 법정에 상소했으나 패소하고 말았다.현 전체에서 자유주의자들은 아들 데그리뇽이 위조의 죄를 범했다고 주장했다. 왕당파들 편에서는 '야비한 뒤 크루아지에'가 복수심때문에 꾸민 끔찍한 음모하고 얘기했다.(...) 두 당파 사이의 싸움은 더욱더 악화되었다.(...)왕실 법정에서의 판결 확정 한 달 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나 모두 타격을 입을 그 격심한 싸움으로 기진맥진한 쉐넬은 새끼 멧돼지의 어금니에 배를 물린 늙은 충견처럼 승리 가운데에서 죽음을 맞았다"/232쪽
법이 (언제나) 정의롭기만 한 건 아니란 건 알았지만...<골동품 진열실>에서 너무 적나라하게 그려진 바람에, 음..고유한 문화재와 골동품의 차이는 확실히 알겠더라는. 골동품은 정리가 되어야 하는게 옳다. 그러나 견고한 골동품들은 그럴 생각이 없다. 쉐넬의 죽음만 봐도 그렇다. 처음에는 법을 권력 삼아 놀려고 하는 뒤 크루아지에가 보였는데, 어느 순간 쉐넬이 보였다. 그가 정말 충성스러운 인물이었을까?에 대한 의문이 계속 따라온 탓인데, 그의 죽음을 묘사한 장면에서 충성심만 있었던 건 아니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뒤 크루아지에와 그는 크게 다르지 않았던 건 아닐까...독자가 쉐넬의 충성을 곡해한 것일수도 있겠지만...몰락하는 가문을 위해 쉐넬처럼 충성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적어도 충성을 바칠 만큼 위대한 가문처럼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노후작이 자기 누이동생의 간청을 받아 그에게 자신의 우정 전체를 돌려주었던 것이다. 그 거대한 인물이 뒤 베르카유가의 작은 집으로 가서 자기 옛 종복의 침대 머리맡에 앉았다.그 종복의 모든 희생을 그로서는 알지도 못했지만(...)후작은 성의 예배당 안 데그리뇽의 거의 마지막 손인 자기 자신이 쉬게 될 묘혈의 아래쪽에 시신을 가로로 눕혀 쉐넬이 매장되는 것을 허락했다"/2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