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유리 동물원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8
테네시 윌리암스 지음, 김소임 옮김 / 민음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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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동물원'이 무대에 올려진다는 소식 듣자마자 예매를 했다. 예전에도 분명 연극으로 만났다고 생각하면서도, 다시 보고 싶어졌던 거다. 그런데, 그때 본 연극은.. '뜨거운 양철 지붕 위위 고양이'였다.


공교롭게도,뜨거운 양철..을 본 시간도, 올해 '유리 동물원'을 보는 날이 같다. 뜨거운 지붕.. 덕분에 '유리 동물원'도 함께 읽었지만, 세세한 독후기를 남겨 놓지 않았더랬다. 언젠가 '유리 동물원'을 보게 된다면...? 하고 생각했던 걸까... 시간이 흘러 결국,연극으로도 만나게 되었고, 다시 작품을 읽어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등장 인물은 엄마,딸,아들,그리고 '신사 방문객' 총 네 명이 전부다. 직장 동료로 등장하는 오코너를 굳이 '신사 방문객'으로 설명한 이유가 궁금했다.아마, 이 작품에서 어떤 상징성을 갖는 역활(?)이라 그렇다는 걸 다시 읽으면서 알았다. 로라가 청혼 받기를 희망한 어맨다 윙필드(엄마)의 마음을 대변해 주기 위한 은유.19세기말에서 20세기초 미국 남부 사회에서 청혼 가능성 있는 남성이 찾아오는 문화를 일컫는 말이란다. 2017년 읽을 때는 궁금하지 않았거나, 기록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번에는 확실(?)히 각인되려나. 내용 역시 그렇지 않을까 싶다. 처음 읽을 때는 분명 자신이 갖고 있는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로라..가 안타까웠는데, 다시 읽으면서,로라를 그렇게 불행(?)하게 만든 건 엄마의 책임도 한몫한 건 아니였을까 생각했다.


"말도 안 돼 로라. 그런 말은 절대로 절대로 쓰면 안된다고 말했지. 이런 너는 절름발이가 아니야. 단지 작은 결점을 갖고 있을 뿐이지.... 거의 나타나지도 않아! 그런 사소한 단점을 갖고 있을 경우에 사람들은 그걸 보상하기 위해 다른 것들을 개발하지(...)"/220쪽



그녀에게 자녀들은 독립된 인격체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채워줄 대리인게 불과했다.딸의 장애 조차 억지로 당당함을 연기하게 만드는 엄마의 태도는,당당함이 아니라 마주하기 두려운 현실을 외면하려는 모습으로 느껴졌다. 엄마라는 이름과,사랑하는 마음이란 감옥이,그녀의 아이들의 영혼을 가둬버린 기분이 들었다.엄마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동물원은 그래서 깨지기가 쉽지 않다. 우선 엄마부터 자신이 만들어 놓은 그곳을 깨뜨려야 할텐데..쉽지가 않아 보인다. 그래서 비극이다. 그녀가 바라는 구원은 쉽게 마주할 수 없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타인을 통한 행복을 찾으려는 마음부터 깨뜨려야 가능할테니까...


"누구나 문제를 갖고 있어요. 로라 양뿐만 아니라 실제로 모든 사람들이 문제를 가지고 있지요. 당신은 유독 자기만 문제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죠. 실망한 사람은 자기뿐이라고 여기면서 말이죠. 하지만 주위를 돌아보면 로라 양만큼 실망한 사람을 많이 보게 될 거예요(..)"/2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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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락 ㅣ 창비세계문학 11
알베르 카뮈 지음, 유영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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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락>을 다시 읽게 된 건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연극을 예매했기 때문이다.어떻게 연극으로 만들었을까를 상상하며 책장을 넘기다,생각났다. 내가 예전에 '전락'을 읽으면서 일인극 연극으로 무대에 올려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는 사실이'콘트라베이스' 같은 느낌 -1인칭 고백 체라서- 기억났다.


자기애가 넘치던 남자(변호사)가 어느 날 센강에서 한 여인의 자살을 방관한 일을 계기로 자신의 삶이 위선적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암스테르담에서 '속죄판사'라는 신분으로 변신해 낯선이들에게 자신의 치부를 고백한다.평생 잘난척만 하며 살아가던 남자가 이렇게 쉽게(?)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는 것을 나는 의심했다.그것 또한 또다른 위선은 아닐까..왜냐하면 그가 자신의 문제를 고백하는 순간,뭔가 물귀신작전..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데, 당신들은 괜찮아? 잘못 한게 없어..왜 스스로 한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지 않는 거지...너희들 모두 스스로 정당하다는 착각...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 하지 않니...? 이 물음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있을까? 고백과 자기비하를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까지 하다가.나는 끝내 남자가 진정 속죄판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애초에 그가 속죄판사라는 역활을 자처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물귀신작전을 벌인 행동은 얄미웠고,그가 쏟아내는 수다에 가끔은 귀를 닫고 싶었는데, 요즘 모두가 극단으로 치닫는 것 같은 모습을 보면서, 상대를 향한 화살을, 나는 어떤 사람인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면, 지금보다 세상은 덜 시끄럽지 않을까.. 이 물귀신작전 같은 전락 프로젝트가 사람들에게 작동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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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전화영어 - “새벽에는 외로우니까요” ㅣ 아무튼 시리즈 83
문보영 지음 / 위고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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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로 영어를 배운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를 상상하며 <아무튼 전화영어>를 읽기 시작했다.그런데 책장을 넘기면서 '학습'보다 '대화'에 대한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와 하나로 연결되는 기분이라니... 익명성이 오히려 자신을 더 자유롭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사실..물론 공감이 때론 위선적일수도,거짓일수도 있겠지만,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 서로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서튼 언어로 감정을 공유한다는 건, 멋진일 아닌가 싶다.


전화영어를 시작한 진짜 이유가 모닝콜이 필요해서였단다.불면증을 경험해 보지 않은 이들은 쉽게 공감할 수 없는 불면의 밤. 수단으로만 알고 있었던 '전화'가 이렇게 많은 역활(?)을 하고 있을 줄이야. 누군가를 잠에서 깨워주기도 하고 언어를 공부하게 해 줄 수도 있다. 무엇보다 타인과 감정을 공유하는 역활도 하고 있었다.잊고 있었는데,생명전화에 전화를 거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정말 전화를 할까, 위로는 될까? 라는 삐딱한 시선은 거두기로 했다. 이야기 속 에피소드를 읽으면서,나는 자연스럽게 공감했다. 서로가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진심에 가 닿는 말이 있고,그래서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좀 짜릿하다는 기분마저 든다. AI에게 질문하고 답을 얻고, 공감을 얻는 세상이다. 감정이 없는 도구로부터도 공감을 받는 세상인걸 보면..전화는 더더욱 사라지면 안될 무엇이란 생각을 했다.


"고백하건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제 영어 실력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매일 서툴게 말 할 수 있다는 게 좋습니다.단순한 진심을 단순한 어휘를 사용해 말하는 게 좋습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게 좋고 누군가 나의 불면을 걱정해주는 게 좋고 누군가 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좋습니다"/19쪽



가끔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기가 벅차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런데 상대방은,이야기를 들어주는 자체가 고마울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 벅차다는 느낌이 들때는,호응해주는연기도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른 질문을 해보는 것도 방법이겠구나 싶다. 입장을 바꿔,내가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데, 아무도 들어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면... 세상은 점점 멀리해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준을 세우는 것 같은데,진심을 다해 들어주는 자세가 어느때보다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 태어나서 한 번도 하늘을 본 적 없는 사람과 내가 공유하는 게 뭘까.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난 슬픔에 대해 말할 것 같다고 했어(...)"/1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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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살해자 ㅣ 마르틴 베크 시리즈 9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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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경찰 살해자'를 처음 읽었을 때 '부조리'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시간이 흘렀고, 최근 믿고 싶지 않은 사건들이 뉴스에서 연일 보도 되고 보니,'경찰 살해자'를 다른 시선으로 읽게 되었다. 부조리한 사회 모습이 아니라, 베크경감의 수사방식에 대해서. 어쩌면 수사의 가장 기본 원칙이 아니였을까. 질문하기...


"어떤가 살인범을 체포할 건가,말 건가?"

"저는 그 대신 실종된 여성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아내려고 합니다. 정말 살인범이 있다면 우리가 그를 범행과 연결 지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207~208쪽


무엇도 확인되지 않았다. 여성이 사라졌을 뿐인데, 경찰은 범인으로 추정될 수 있는 인물을 지목해 그를 살인범으로 결론내리려고 한다. 사라진 여성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어쩌면 여인은 정말 그냥 사라진 채로 있는 것일수도 있을텐데...무튼 보여지는 모습으로 판단하고 처리하는 경찰들도 있지만, 사라진 여성이 사라지게 된 이유를 추적하면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모습들이 보인다. 그녀의 전남편도, 그녀를 살해했을거라 지목당한 이웃도 당연히 범인이 아니었다.그녀를 찾아왔던 인물에 대한 묘사를..경찰들은 주의 깊게 듣지 않았다. 전과 있던 이웃남자가..거짓말을 하는 거라 믿는다. 선입견도 무섭지만, 수사방식의 안일함도 그못지 않게 무섭다. 답이 보이지 않을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기본이 될 수 있는 '질문'이 수사에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생각을 했다.


제목 때문에 살인범이 혹 경찰일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스포일러가 될수도 있는 제목을 정할 이유가 없을 텐데... 그럼에도 경찰에 대한 독자의 불신이...범인을 그렇게 단정해버렸다. 그런데 스웨덴에서도 반어법을 사용한다면 살해자도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직접적으로 죽이는것만이 살인은 아닐테니까 말이다. 

처음 읽을때는 부조리한 모습에 치를 떠느라,수사에 매진하는 모습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은데, 수사의 기본원칙만 잘 지켜진다면, 미결로 남을 수사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스스로 질문하는 것을 게을리 할때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았다.처음 읽을때도 메모해 놓았던 문장인데,그때는 이렇게 우둔한 사람들이라니 정도로만 생각했는데,지금은 그들이 왜 우둔한 사람일수 밖에 없는지..알아버렸다. <경찰 살해자>에서 제일 무서웠던 건, 질문이 사라진 세상을 상상하는 순간이었던 것 같다.


"어떻게 그런 멍청한 소리를 믿을 수 있어? 우리 사회 내의 전투 세력, 아니 전복 세력에 대한 강의도 못 들었어? 공산주의자 같은 해충들 말이야. 그자들이 경찰을 해치고 약화시키기 위해서 그런 거짓말을 퍼뜨린다고.그럼으로써 사회의 근간을 기초를 파괴하려고 하지만 그런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는 사람이 우리 안에도 있을 줄은 몰랐어.가끔은 널 보면 무서워 칼레"/4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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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아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두행숙 옮김 / 상상공방(동양문고)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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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힘들게 읽었던 기억 때문에, 파스칼 메르시어의 또 다른 소설 <<레아>>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 <<언어의 무게>>덕분에 '레아'를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솔직히 파스칼 메르시어의 작품이라는 걸 몰랐다면 책 표지 때문에라도 전혀 읽고 싶지 않았을 게다.그리고 읽고 나서 든 생각은,소설이 가진 묵직한 울림에 비해 표지가 너무 성의없어 보인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거다. 레아의 시선으로 읽어내길 바라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거라면 할 말은 없겠지만....


낯선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난 두 남자. 소설은 각자의 딸에 대해 고백하는 여정으로 시작된다.반 블리에트가 쏟아내는 딸 레아의 천재성과 파멸의 기록을 경청하는 아드리안 헤르초크.이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레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헤르초크는 공감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만으로도 위로해주는 거라 생각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어느 순간 마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이 더이상 외과의사를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자신의 딸과 친밀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소설을 다 읽고 나서 곱씹어 보고 나서야 하게 된 생각이다.그 순간에는 그럴수..있지 라고 생각했더랬다. 책을 덮으면서,타인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착각인지 깨달았다. 마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헤르초크는 자신의 내면에서 요동치는 고통을 생각했으니까. 


"나는 그걸 막아야 했다. 정말 그래야 했을까? 내가 그렇게 해도 됐을까? 의사로서 나는 불치병에 대한 분명하고 흔들리지 않는 견해를 갖고 있었다. 그건 존엄성의 문제였다. 하지만 이런 견해를 반 블리에트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인가?"/320쪽


결국 상실을 극복하기 위해 반 블리에트와 레어가 내렸던 선택은 독이 되어 돌아왔을 뿐이다. 이제와서 후회 한들 소용없다.그러니까 우리는 늘 후회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라 그런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답을 정할 수 없는 존엄사의 문제만큼이나 우리가 하게 되는 후회들은 숙명일 지도 모르겠다.표지는 살짝 가벼웠지만, 소설에서 던지는 화두는 무거웠다. 그런데 마음이 한없이 우울하지 않았던 건, 소설의 결말을 꼭 비극적으로만 바로보고 싶지 않아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반 블리에트의 선택에 대해 옳고 그름을 말할수 없었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 훨씬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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