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괴담
온다 리쿠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월 군산에 있는 마리서사책방에서 '커피괴담'을 구입했다. 

제목의 유혹이 강렬했음에도,12월에는 구입할 것인가를 망설였다.오픈라인 책방에서는 보자마자, <커피괴담>으로 손이 갔다. 책 서문에 씌여진 작가님의 말이..나를 유혹한 건 아니였을까... 무서워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라 생각하면서도 호기심이 일었다. 그리고 책을 읽어 가다가 어느 순간, 괴담으로 이해되는 이야기보다 더 많은 무서운 이야기들이 내 주변에 존재하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맛있는 커피는 언제나 카페인이란 함정을 잊게 만든다. 찐한 에스프레소 베이스의 음료를 마시게된 날의 하루를 떠올리게 되면... 그러니까 이야기 속에 커피와 관련된(?) 괴담은 없었지만.. '커피' 자체가 내 삶에 종종 무서운 음료로 등장하는 셈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나도 무서운 이야깃거리 없냐고 묻는 버릇이 생겨서 간호사나 동료들이 기분 나빠해. 사실 무섭기로 말하면 내가 현실에서 하는 일이 훨씬 더 무섭지만"/181쪽



 표지 그림은 참으로 오싹하다. 이야기를 읽고 나면 커피를 마시고 싶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이 들정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고 싶어진 이유는... <커피괴담> 덕분에 사람들이 괴담을 찾아 읽는지, 괴담이 존재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정작 괴담보다 더 무서운 일들이 일상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오히려 괴담이 현실에서 일어나는 무서운 일보다 덜 무섭게 느껴질 정도다. 뭔가 치유가 되는 것도 같고...찜통더위가 괴담보다 더 무서울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 보지 못했다. 기억 잘 못하는 사람은, 기억을 너무 잘하는 사람이 무서울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지 못했다. 괴담 이야기도 종종 흥미로웠지만(예지몽을 종종 꾸는 1인이라서...^^) 괴담을 능가하는 '무서움'에 대한 화두를 따라 가는 여정이 흥미로웠다. 이런 시선으로 읽은 탓인지..내가 가장 무섭게 생각하는 이야기는 바로..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말도 안되는 음모론이 무섭고, 어의없는 판사들의 판결이 어떤 괴담보다도 무섭게 느껴졌다. 마냥 답답하다고만 생각했었는데..'괴담'보다 더 무서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현타가 왔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우리는 괴담을 찾아 읽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 속에서는 응징이 있기도 하지만,진짜 일어나는 일은 아닐거란 일종의 안도감 같은 것이 느꺼져서.. 그냥 '괴담' 이라고 말하면 그만이니까.. 무서운 영화는 사양하지만, 무서운 이야기는 환영한다.그래도 덜 무섭기 바랐는데, '괴담' 자체는 무섭지 않았다.(서늘한 괴담을 기대했다면 실망할수도...) 그런데 나는 괴담 보다 더 무서운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떠올리며 읽고 말았다. 그것이 가장 공포스러운 순간이었다.


"요컨대 위화감이나 어긋남,그러니까 이해할 수 없다는 게 무서운 거야"/25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의 옛 연인
윌리엄 트레버 지음, 민은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윌리엄 트레버의 소설집 <밀회>를 읽고 난 후 조지클라우센의 '전등옆에서 책 읽기' 그림이 떠올랐는데, <그의 옛 연인>을 읽으면서는 호퍼의 그림 몇 점이 떠올랐다. 상상으로 이해되던 그림을 텍스트로 정리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무튼..그것이 중요한 건 아니지만..


가장 강렬했던 이야기는 '재봉사의 아이' 와 '방' 그리고 '아일랜드의 남자들'과 '올리브힐에서' 였다.앞서 읽은 두 편이.이 소설 전체의 이야기를 내내 관통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두려움과 본능' 교통사고를 낸 것이 분명한데, 남자는 차를 세우지 않았다. 사실을 말하기보다, 두려움이란 본능이 그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물론 '본능'이 그를 우선했기 때문일거란 생각은 '재봉사의 아이'를 읽으면서 미처 하지 못했다. 왜 외면했을까,단순히 두려워서? 그런데 카할 만큼 섬뜩한 아이의 엄마가 등장한다. 그덕분에 나는 카할이 느꼈을 두려움이 그를 잠식해버린 걸로 이해하고 넘어가려 했던 것 같다. 다음 이야기 '방'에서 어김없이 등장한 두려움에 대한 감정이..이끄는 끝에 '본능'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 이유를 말해줄 수 없었을 것이다. 그저 처음 그 질문을 받았을 때 당혹감과 혼란이 시킨 것처럼 나중에는 본능이 시켜서 그런 거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방' 53쪽 자신의 남편이 범인인지, 아닌지를 의심할 수가 없다. 그녀는 그냥 두려웠다. 본능이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하게 만들었다. '진실' 이란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지만, 정작 진실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시시때때로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진실과 마주할 용기를 갖지 못하기 때문인데, 윌리엄 트레버선생은, 그것이 인간의 '본능'이라고 담담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위로를 받는 것 같으면서도 뭔가 개운치 않은 기분이 들었던 건 자신의 죄를 두려움이란 본능이 잠식해서 온전히 진실과 마주하지 못하는 사람들 보다, 타인의 죄를 겪지 않은 신부님이 죄책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은 또 그래서 여전히 버겁게 균형의 추를 맞추며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죄를 짓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들,그 부끄러움을 온전히 껴앉고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는 가볍지 않지만 '소설 읽는 맛'을 오롯이 느낄수 있어 좋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도둑 성장기 위픽
함윤이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목 만큼 강렬한 첫 문장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나의 첫 도둑질...이 남의 몸속에서 이루어졌다니...' 지금껏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생각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엄마의 무언가를 내가 '도둑' 질 했을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지나친 은유라고 누군가는 우겨보고 싶을 수도 있겠으나, 나는 인정했다. 이후 소설의 이야기가 조금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누군가의 삶을 '도둑' 질 했다는 강박에 사로잡히게 된다면 결코 자유로울수 없을게다.


그래서 '도둑질' 을 했다고?  라고 물어 온다면, 설명할 수 없다. 애초에 말이 안되는 상황일수도.. 그런데 도둑질..을 통해 분투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정말 도둑(질)을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이 어떻게 끝나게 될지 궁금했다. 딱히 해야할 이유도 없는, 도둑질...그런데 어느날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게 된 남자를 통해,그의 묵직한 질문을 통해 그녀는 알게 된다. 조지 엘리엇 소설('제이컵 형' )인물이 떠올랐다.'고장난 영혼'들 그녀가 태어났을 때 엄마로부터 받았던 충격적인 말들을 액면 그대로 믿어버리는 것이 화근일수도, 애정을 듬뿍 받지 못한 것이 원인이 되었을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모두 도둑질을 하진 않지만..결핍이,설명될 수 없는 결핍이 도둑질을 하게 했다면, 성준이란 인물을 통해 조금 알게 된다, 도둑질은 나쁘다는 식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질문 "너 꼭 이런 식으로 살아야만 해?" /43쪽  누구도 그녀에게 해 주지 않았던 말. 그리고 소설은 그녀 자신이 무언가를 진짜 잃어버리는 순간이 오면서 알게 된다. 


"나는 엄마의 말을 되새긴다. 잘못 삼킨것.그 표현을 곱씹을수록 계속하여 기침과 헛구역질이 나온다. 내가 처음으로 또 제대로 훔친 무언가를 잘못 삼켰다는 사실.그로써 그것이 영영 내 손을 떠났다는 사실에 목 안쪽이 벅벅 긁히듯 아프다.그리고 그 순간 나는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일이 얼마나 서러운지 온몸으로 깨닫는다"/7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장 난 영혼
조지 엘리엇 지음, 박희원 옮김, 김선옥 해설 / 아고라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조지 엘리엇의 <고장난 영혼>을 읽었다. 중편정도의 소설인 줄 알았는데, 두 편의 이야기('벗겨진 베일' 과 '제이컵 형')가 실린 소설집이었다. 공교롭게도 ~베일이란 제목 덕분에 몸선생의 '인생의 베일'을 떠올릴수 있었고, '제이컵 형'은 윌림언 포크너의 <고함과 분노>를 떠올려 볼 수 있어 읽는 즐거움이 배가 되었던 것 같다.(물론 '벗겨진 베일'에서도 포크너의 소설이 생각났다)










고장(?)난 영혼에 관한 이야기였다. 포크너 소설의 사람들이 다시금 이해되는 상황이다. 영혼이 고장난 사람들...굳이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고장난 영혼들이 얼마나 많은가, 타인의 의식을 읽어낼 수 있어 불행했던 '벗겨진 베일' 속 남자.그러나 나는 애정을 충분히 받지 못한 탓에 타인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한 걸로 이해했다. 예전에 읽었다면, 만약이란 가정을 해보았을 텐데, 지금은,우리에게 사랑이 얼마나 필요한지, 정서적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가 자라면서 겪게 될 고통을 생각했다. '제이컵 형'은 '벗겨진 베일' 보다 더 포크너의 <고함과 분노>를 떠올리게 했다. 형제가 등장한다는 건 특별하지 않지만, 장애인(그것도 콕 찍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을 등장시켰다는 점이 그랬고,그 속에서 발악하는 데이비드는 포크너 소설의 제이슨을 떠올리게 했다.이름을 바꾸는 상황(지금까지 소설을 읽으면서 이름을 개명하는 장면은 자주 접하지 못했기 때문에..)도 데이비드가  프릴리라는 이름으로 개명까지 하면서 성공하고 싶었으나, 그의 앤딩이 결코 해피앤딩으로 막을 끝나지 않아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을 했는데, 그 상황도 포크너의 소설 <고함과 분노>에서 제이슨이 마주한 상황과 비슷해서 신기했다. 시간의 격차를 두고 읽었다면 포크너의 소설을 떠올리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니까 두 소설을 연이어 읽게 된 건 기쁨이다. 포크너 소설 인물들에 대해..조지 엘리엇이 '고장난 영혼'이라고 정리해 준 셈이니까. 포크너 소설을 읽을 때 몰락하는 가문보다 몰락하는 사람들이 더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그 중심에 부모님 특히 자기 중심적인 엄마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제이컵 형' 이야기 속 엄마는 그 반대였음에도 불구하고 데이비드에게 문제가 있었다. 정서적 사랑을 듬뿍(?) 받으면 건강한 아이로 자라게 될 것이란 생각은 지나친 낙관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두 소설을 나란히 읽은 덕분에, 포크너 소설 속 인물들의 '영혼'이 고장났다는 사실을 받아 들였다. 단지 부모의 사랑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이 있음도 이해받았다. '벗겨진 베일' 보다 '제이콥 형'을 더 재미나게 읽었다. 포크너 소설에 대한 생각,그리고 오늘날 유행하는 디저트열풍이 이미 과거부터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선량한 포 부인은 전적으로 무력해 작디작은 다른 선택조차 할 수 없었던 이토록 불량한 아들을 자신이 세상에 내놓았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못했다. 어째서인지 아들이 비뚤어진 것은 부모의 의무를 다하는 데 손톱만큼이라도 부족함이 있었을 그 아비,어미의 탓인 것만 같았다.부인이 생각하는 부모의 의무란 고상하고 은근한 것이 아니라 (....)"/176쪽 '제이콥 형'


"내 인생은 그런 것과는 전혀 달랐지. 엄마가 말했다./그런 사악한 짓을 하다니.더 이상 알고 싶지도 않다.나는 대부분 사람들과는 달라"/390쪽 '고함과 분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장 난 영혼
조지 엘리엇 지음, 박희원 옮김, 김선옥 해설 / 아고라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이라 가능(?)한 이야기라 말하고 싶어진 이유는,제임스 우드의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덕분이다. '벗겨진 베일' 에서 남자는 타인의 의식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고백한다. 자신에게 다가온 종말의 시간까지 예감 할(?) 수 있는 남자.. 시간은 과거로 넘어간다. 포크너의 <고함과 분노>가 이렇게 소환될 줄이야..(이야기 자체가 닮았다는 건 물론 아니다) 보수적이고 완고한 아버지는 장남에게 절대적인 기대를 갖고 있다. 차남인 동시에 나약해 보이는 이유로 아버지 관심 밖이다. 그런데 그에게는 타인의 속마음을 들여다 보는 능력이 있다. 물론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사람이 갖고 있는 이중성에 대해 예민한 감각을 가졌다고 해야 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유독 그가 읽어낼 수 없었던 건 '사랑'에 대한 마음이었다. 읽어낼 수 없어서 오히려 더 집착했던 걸까.. 아니면 정말 사랑에 대한 마음을 품었던 걸까.. 


"아버지를 향한 감정이 누그러졌던 이 시기는 유년 시절 이후로 내가 경험한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 몇 달간의 이 시기에 나는 버사가 애정을 품은 존재라는 환상.그녀가 어쩌면 나를 사랑하리라고 갈망하고 의심하고 희망하는 감미로운 환상을 간직했다"/69쪽


래티머에게 찾아온 능력은 어쩌면 애정결핍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였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사랑하는 마음 보다 의심하는 마음이 크다. 그럼에도 유독 버사의 마음만은 읽어낼 수가 없어 괴롭다고 고백하던 래티머. 사랑을 받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사랑하는 마음을 알지 못했던 건 아니였을까, 형의 갑작스러운 사고가, 그에겐 오히려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고백은 그래서 섬뜩하다.




"(..) '왜' 라는 질문이 소설의 형식 안에서 자주 소환되는 이유는 소설이 삶의 평범한 순간을 환기하는 데 능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마무리되고 완성된 삶의 형식을 단호하게 주장하는 데도 역시나 능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읽고 있는 인물들은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반드시 죽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그들이 죽는 이유가 작가가 그들을 죽게 만들어서다(...)"/68쪽


두 책을 함께 읽게 된 건 아무리 생각해도 기쁜일 이다. 솔직히 말하면 소설을 애정하는 입장에서 <인생에 가장 가까은 것>은 옆에 두고두고 읽게 될 책이기도 하다. 비단 조지 엘리엇 소설과의 인연으로 끝나지 않을 거란 확신. <고함과 분노>를 읽으면서 '왜'라는 질문을 집요했다는 사실이 떠올라 반가웠다. 의식의 흐름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계속 질문을 해야 할 것 같았다.몰락하는 가문 보다 몰락하는 사람들이 더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그런데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에서 왜..라는 질문을 해야 하는 이유도, 작가들이 '죽임'을 만들어 놓는 이유도,큰 그림이란 사실을 이해했다. '벗겨진 베일'에서 형의 죽음과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비로소 래티머가 알게 되는 것들이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