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 흑 2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6
스탕달 지음, 이동렬 옮김 / 민음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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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을 때 프랑스 정치사를 좀 더 알고 읽었다면 더 재미있게 읽지 않았을까 생각했었다. 그때는 쥘리엥의 연애사를 따라가기에도 벅차다고 생각했던 것이다.그런데 다시 읽으면서 쥘리엥의 사랑은 보이지 않았다. 굳이 '사랑' 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야망을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이 보였을 뿐이다. 나폴레옹처럼 되고 싶었던 남자. 그러나 그의 바람은 욕망이었을 뿐이다. 굳이 쥘리엥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계급이 철저했던 왕정복고 시대라 평민 출신인 그가 나폴레옹처럼 위대해지고 싶어도 정당한 기회가 허락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모순을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고전을 장식한 표지는 저마다 의미가 있다는 게 개인적 생각이다. 그럼에도 처음 읽을 때는 표지에 그다지 시선을 두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쥘리엥이란 남자를 이해하고 싶지 않아서,자꾸만 표지로 눈이 간 모양이다. 당연히 그림 속 모델은 여성(레카미에 부인의 초상) 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쥘리엥인 듯 혹은 마틸드인 듯한 복합적인 얼굴로 다가왔다.왕정복고 시대라는 장벽에 막혀 몸부림치는 쥘리엥만 보인 것이 아니라, 사랑에 몸부림치는 여인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서로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인간의 욕망. 마치 프로이트에게 정신상담이라도 모두 받아야 할 것 같은 사람들....쥘리엥은 가질수 없는 명예에 대한 열망이,마틸드는 가질수 없는 것이 사랑이라 생각한다. 서로를 바라보지만 정작 상대방의 존재가 아닌 자신이 갖지 못한 환상만을 쫒았던 건 아니였을까.


이 소설을 어떻게 보는가에 대한 의견이 다양한 만큼(정치소설,심리소설,모험소설,행복에 관한 소설..) 적과 흑 제목에 대한 의견도 다양한 듯 하다. 예전에 읽을 때는 제목에 은유가 담겨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입센의 '민중의 적'을 읽고 난 후라 그런지  '적'에서, 에너미 라는 중의적 의미로 해석하고 싶어졌다.결국 쥘리엥은 외부에 수많은 적들(왕정시대라는 점,귀족들..) 로 인해 자신이 고통받는 다고 생각했다. 자신 안에 숨어 있는 욕망이라는 가장 무서운 적이 있다는 사실은 끝내 알지 못했다. 


"나 스스로 자신을 멸시한다면 내게 무엇이 남겠소? 나는 한때 야심에 차 있었지만 지금 와서 그것을 자책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때는 시대의 조류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지요. 지금은 아무 희망 없이 그날그날 살아가고 있습니다.그러나 지금 내가 어떤 비겁한 짓을 한다면 이 지방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스스로 비열한 인간이 되는 꼴일 것입니다.."/4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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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민중의 적, 들오리 ㅣ 완역 헨리크 입센 희곡 전집 7
헨리크 입센 지음, 김미혜 옮김 / 연극과인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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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크 입센의 <<민중의 적>>이 연극 '에너미'로 무대에 오른다는 소식에 원작을 먼저 펼쳐 들었다.원작의 제목을 연극은 '에너미'로 변화를 준 이유를 찾을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연극의 포스터는 2인극 같은 분위기를 연출해서,잠시 에너미의 뜻을 잊고 있었다.아직 연극은 보기 전이지만,작품이 훨씬 더 포괄적인 의미의 적을 그려낼것 같은 기분이 든다.(연극으로 감상하게 될 때 눈여겨 볼 지점 발견하는 기쁨이기도 하다)


온천수가 오염되었다는 과학적 사실이 순식간에 경제를 망치려는 음모로 둔갑한다. 정치와 언론이 사실을 숨기는 것도 모자라, 왜곡하고 자극적인 음모론을 만들어내는 모습은 오늘날 우리 사회와 너무 닮아 있어서 놀랍지도 않았다.그러나 가장 섬뜩한 진실은 선동에 동조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었다. 내 이익을 위해 눈 감는 우리의 모습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진짜 적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택하면서 서서히 눈이 멀어버리는 우리 자신은 아닐까(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홀로 서있는 사람이다" 라는 박사의 외침은 씁쓸함을 남긴다.누군가의 적이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고립되어야 한다는 결말.너무 극단적이란 생각밖에 들지 않아서... '온건함'을 주장하는 말 속에 진실을 감추고자 하는 함정이 녹아 있다는 아이러니.거대한 광기 앞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겠다는 원론적인 답변 밖에 할 수 없는 현실. 그럼에도 이익 앞에서 마냥 무너지지 않으려는 생각이라고 부여잡고 살아가는 것이,극단으로 치닫는 것들로부터 최소한의 방어는 되지 않을까...작품 해설을 읽지 않고 작품을 읽었다면, 입센선생이 살았던 시대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 궁금했을 텐데, 실제사건을 기반으로 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온천장에 콜레라가 발생했고, 의사의 양심에 따라 사실을 밝혔을 뿐인데, 사람들부터 지탄을 받고,도시를 떠나야 했다는 기록. ..언제즘 우리는 진실을 말하는 이들에게 돌맹이가 아닌, 박수를 보낼수 있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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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과 흑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5
스탕달 지음, 이동렬 옮김 / 민음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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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처음 읽었을 때는 프랑스의 복잡한 정치적 역학 관계와 권태로움에 몸부림치는 시대상만 보였더랬다.(쥘리엥의 사랑이 도드라지게 보이지 않았다는 게 신기한 경험이었다) 다시 읽으면서 쥘리엥이란 남자의 욕망이 보였다.되고 싶은게 너무나 많은 남자.문제는 그가 품은 욕망이 오로지 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진짜 자신'은 없는,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성공을 바라는 남자.자신의 것이 없는 사람의 성공을 진짜 성공이라고 부를수 있을까? 우리 사회를 둘러봐도 그렇지만.. 1부를 덮으면서 그가, 독립된 인간으로 성장하게 되었을까 하는 물음이 남았다.2권을 마저 읽어야 하는 이유다^^


욕망으로 가득찬 사람에게 그림자처럼 따로오는 것이 '거짓과 위선'이란 생각을 했다. 나폴레옹을 숭배하는 마음을 숨기려고,라틴어성경을 통째로 외우며 사제 지망생을 연기하는 남자.상류사회를 증오하지만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순종적인 태도를 취하는 모습,사랑도,종교도,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거짓으로 포장할 수 있는 남자.문제는 그것이 잘못된 길이란 걸 모른다는 거다.거짓과 위선이,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쥘리엥의 마지막 모습이 벌써 궁금해진다.


그토록 거짓과 위선으로 자신을 숨기면서까지 성공하고 싶었던 걸까,어쩌면 노력과 능력만으로 신분의 벽을 넘을 수 없었던 시대라 자신은 그것이 저항이라 믿고 싶었던 건 아니였을까.하지만 그는 자신도 타인도 믿지 못하는 함정에 빠져서 타인의 순수한 호의도 자시 마음대로 왜곡하는 모습을 보인다.이제 파리라는 더거대하고 추악한 위선의 무대로 향하는 쥘리엥 그가 진정한 독립된 인간으로 변모하게 될지, 아니면 더 추악한 위선과 거짓으로 살아가게 될지,2부가 궁금해진다. 쥘리엥을 포함해서 우리에게도 너무도 간절히 필요한 중용의 마음. 쥘리엥에게 그 마음이 자리할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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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유리 동물원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8
테네시 윌리암스 지음, 김소임 옮김 / 민음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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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동물원'이 무대에 올려진다는 소식 듣자마자 예매를 했다. 예전에도 분명 연극으로 만났다고 생각하면서도, 다시 보고 싶어졌던 거다. 그런데, 그때 본 연극은.. '뜨거운 양철 지붕 위위 고양이'였다.


공교롭게도,뜨거운 양철..을 본 시간도, 올해 '유리 동물원'을 보는 날이 같다. 뜨거운 지붕.. 덕분에 '유리 동물원'도 함께 읽었지만, 세세한 독후기를 남겨 놓지 않았더랬다. 언젠가 '유리 동물원'을 보게 된다면...? 하고 생각했던 걸까... 시간이 흘러 결국,연극으로도 만나게 되었고, 다시 작품을 읽어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등장 인물은 엄마,딸,아들,그리고 '신사 방문객' 총 네 명이 전부다. 직장 동료로 등장하는 오코너를 굳이 '신사 방문객'으로 설명한 이유가 궁금했다.아마, 이 작품에서 어떤 상징성을 갖는 역활(?)이라 그렇다는 걸 다시 읽으면서 알았다. 로라가 청혼 받기를 희망한 어맨다 윙필드(엄마)의 마음을 대변해 주기 위한 은유.19세기말에서 20세기초 미국 남부 사회에서 청혼 가능성 있는 남성이 찾아오는 문화를 일컫는 말이란다. 2017년 읽을 때는 궁금하지 않았거나, 기록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번에는 확실(?)히 각인되려나. 내용 역시 그렇지 않을까 싶다. 처음 읽을 때는 분명 자신이 갖고 있는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로라..가 안타까웠는데, 다시 읽으면서,로라를 그렇게 불행(?)하게 만든 건 엄마의 책임도 한몫한 건 아니였을까 생각했다.


"말도 안 돼 로라. 그런 말은 절대로 절대로 쓰면 안된다고 말했지. 이런 너는 절름발이가 아니야. 단지 작은 결점을 갖고 있을 뿐이지.... 거의 나타나지도 않아! 그런 사소한 단점을 갖고 있을 경우에 사람들은 그걸 보상하기 위해 다른 것들을 개발하지(...)"/220쪽



그녀에게 자녀들은 독립된 인격체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채워줄 대리인게 불과했다.딸의 장애 조차 억지로 당당함을 연기하게 만드는 엄마의 태도는,당당함이 아니라 마주하기 두려운 현실을 외면하려는 모습으로 느껴졌다. 엄마라는 이름과,사랑하는 마음이란 감옥이,그녀의 아이들의 영혼을 가둬버린 기분이 들었다.엄마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동물원은 그래서 깨지기가 쉽지 않다. 우선 엄마부터 자신이 만들어 놓은 그곳을 깨뜨려야 할텐데..쉽지가 않아 보인다. 그래서 비극이다. 그녀가 바라는 구원은 쉽게 마주할 수 없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타인을 통한 행복을 찾으려는 마음부터 깨뜨려야 가능할테니까...


"누구나 문제를 갖고 있어요. 로라 양뿐만 아니라 실제로 모든 사람들이 문제를 가지고 있지요. 당신은 유독 자기만 문제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죠. 실망한 사람은 자기뿐이라고 여기면서 말이죠. 하지만 주위를 돌아보면 로라 양만큼 실망한 사람을 많이 보게 될 거예요(..)"/2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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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락 ㅣ 창비세계문학 11
알베르 카뮈 지음, 유영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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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락>을 다시 읽게 된 건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연극을 예매했기 때문이다.어떻게 연극으로 만들었을까를 상상하며 책장을 넘기다,생각났다. 내가 예전에 '전락'을 읽으면서 일인극 연극으로 무대에 올려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는 사실이'콘트라베이스' 같은 느낌 -1인칭 고백 체라서- 기억났다.


자기애가 넘치던 남자(변호사)가 어느 날 센강에서 한 여인의 자살을 방관한 일을 계기로 자신의 삶이 위선적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암스테르담에서 '속죄판사'라는 신분으로 변신해 낯선이들에게 자신의 치부를 고백한다.평생 잘난척만 하며 살아가던 남자가 이렇게 쉽게(?)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는 것을 나는 의심했다.그것 또한 또다른 위선은 아닐까..왜냐하면 그가 자신의 문제를 고백하는 순간,뭔가 물귀신작전..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데, 당신들은 괜찮아? 잘못 한게 없어..왜 스스로 한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지 않는 거지...너희들 모두 스스로 정당하다는 착각...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 하지 않니...? 이 물음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있을까? 고백과 자기비하를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까지 하다가.나는 끝내 남자가 진정 속죄판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애초에 그가 속죄판사라는 역활을 자처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물귀신작전을 벌인 행동은 얄미웠고,그가 쏟아내는 수다에 가끔은 귀를 닫고 싶었는데, 요즘 모두가 극단으로 치닫는 것 같은 모습을 보면서, 상대를 향한 화살을, 나는 어떤 사람인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면, 지금보다 세상은 덜 시끄럽지 않을까.. 이 물귀신작전 같은 전락 프로젝트가 사람들에게 작동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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