뾰족한 전나무의 땅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7
세라 온 주잇 지음, 임슬애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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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테마 다섯 편의 클래식' 시리즈의 매력을 이제 막 알게 된 것 같아 기뻐했더니,시리즈가 막을 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시즌 8의 주제는 '나의 기쁨,나의 방탕'이다. 이제 '뾰족한 전나무의 땅' 하나를 읽었을 뿐이라,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느낌을 말할수는 없겠지만 <뾰족한 전나의 땅>에서  방탕함에 대한 기운은 잘 느끼지 못했다.잔잔하게 넘치는 '기쁨'에 취한 탓일게다. 그러나 마음 한 켠에서 기쁨은,결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소리가 들려왔다.고통 없이 얻어지는 기쁨은 왠지 진짜 기쁨이 아닐것만 같은...


윌라 캐더의 '미국문학의 3대 걸작' 가운데 하나라는 표현이 결코 과장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시같은 소설, 에세이 같은 소설,일기 같은 소설의 느낌이 좋았다.그래서 내가 당혹(?)스러웠던 건 헨리 제임스의 <보스턴 사람들>에 영감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어디에도 막장(?)에 가까운 이야기는 없었는데, 헨리 제임스는 어디서 영향을 받았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조애나의 사랑이야기가 언급되었다. 그녀에 관한 사랑이야기가 혹, 영감을 받게된 지점 가운데 하나는 아니였을까 생각했다.다른 소설에서 언급 된 '뾰족한 전나무'의 느낌은 뭔가 우울하고,참담함을 은유하는 것처럼 다가왔더랬다. 왜서 나는 소설의 제목을 '뾰족한 전나무의 땅'으로 한 이유도 궁금했더랬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는 항구가 훤히 내려다보였다.길게 펼쳐진 해안을 빽빽이 뒤덮은 뾰족한 전나무들은 짙은 녹음을 입은 모습이 마치 출전을 앞둔 대군 같았다. 저 멀리 바다 먼 곳의 군도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에 전나무들은 바다를 향해 행진하려는 듯 일정한 걸음으로 언덕을 넘어 저 아래 물가까지 나아가려는 듯 보였다"/49쪽 -문장을 마주한 순간 제목에 담긴 은유를 조금....상상해 볼 수 있었다. 빽빽하다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건 아니니까..가까이에서 보는 것과,멀리서 보는 것의 차이.. 특별할(?)것 없어 보이는 마을, 아니 오히려 심심한듯 보이는 마을에서의 일상에, 자연의 색깔이,사람들의 희노애락이 녹아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발견되는 기쁨들... 오롯이 글만 쓸 생각이었는데, 친자매처럼 지나자고 하는 토드 부인이 부담스러웠을 텐데..그녀에게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갈 수 있었던 그 따뜻함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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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 이중성의 살인미학
김상근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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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를 보기에 앞서 카라바조에 대해 조금은 알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 골라 읽은 책이다.그런데 서문을 읽으면서 살짝 당혹스러웠다. 내가 알고 싶었던건 화가의 작품에 대한 해석이었는데, 저자는 카라바조 작품을 통해 법을 어긴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이중성을 살펴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고 했다.그런데 나는 사실 그 사실이 다시 궁금해졌다, 카바바조 작품 어디에서 이중성을 마주하게 될 것인가? 내가 알고 있는 얄팍한 상식은, 그가 살인자로 불리워진다는 사실에 멈춰있다. 마음을 끄는 작품도 있었지만, 그의 괴팍한 성질과 살인자라는 꼬리표가 선뜻 카라바조라는 인물을 예술가로 마주 보게 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해서 영화가 궁금했는지도 모르겠다. 다큐가 아니라서 오히려 더 보고 싶었다. 시간을 오가는 형식이었으나, <카라바조, 이중성의 살인미학>을 읽고 간 덕분에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카라바조를 추적하는 인물을 따라 카라바조를 보게 되었다. 신기했던 건 그러한 시선으로 보았음에도 카라바조가 괴팍한 인물로 그려지지 않았다는 거다. 예술가카라바조에 대한 애정이 감독에게는 있었던 걸까.. 영화의 앤딩을 보면서,불현듯, '카라바조의 그림자'는 카라바조를 시기한 사람들의 시선에서 그려진 영화라는 생각을 했다. <카라바조 이중성의 살인미학>을 읽은 덕분에 내린 결론은 물론 아니었다. 생각이 닮은 지점을 만난 것 같아 오히려(?)반가웠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에 열광했고,또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저주했다. 개인의 탄생을 의심하고 주저했던 수많은 로마의 반동 세력은 그의 작품으로부터 얼굴을 돌리며 카라바조에게 저주를 퍼부었다.실제로 현존하고 있는 17세기의 기록들은 모두 카라바조에 대한 모독으로 넘쳐난다.(...)그의 작품은 요란스러운 폭력의 장면을 절대적인 침묵의 고요함으로 보여줌으로써 뛰어난 이중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332쪽


그에 대한 대다수의 기록이 모독으로 넘쳐난 까닭에,카라바조를 온전히 바라보지 못한 1인이다. 여전히 그의 작품 속 이중성을 해석해낼 안목도 없다. 그러나 책과 영화를 함께 본 덕분에 그의 작품을 열광하는 이들 만큼, 아니 그 이유로 그를 시기할 수 밖에 없었던 이들이 있어야 했던 이유를 알았다.


 출판사마다 고전작품 표지를 달리하는 것에 나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1인이라, 영화 카라바조의 그림자에서 내가 고른 포스터는 관객을 응시하는 카라바조의 시선이었다. 여저힌 괴팍하고 지랄맞은 카라바조의 성향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천재와 불한당을 어떻게 구분해서 바라봐야 할지..모르겠다. 다만 그를 살인자 카라바조라고만 기억하지는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카라바조 작품 속 어디에서 폭력성이 있다는 걸까?에 대한 의문도 많이 풀렸다. 보여지는 것으로 성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도 이제는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그보다는 그런 미소년을 그리게 한 요구자가 누구였는가를 기억하고 싶다.영화에서 어느 그림이 소개될까 궁금했다. 예술가의 창작에 집중하는 영화라기 보다, 그림 속 장면을 관객들에게 다시 재현해 내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카라바조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없다면 조금 지루해할 수 도 있는 장면들이었지만..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그림 '성처녀의 죽음 혹은 영면' 등장은 그래서 반가웠다. <카라바조, 이중성의 살인미학>에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카라바조가 관객들에게 질문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묻고 있다는 상상을 했다. "우리는 카라바조의 <성처녀의 죽음,혹은 영면>에서 두 가지 모습의 카라바조를 발견하게 된다.구도자 카라바조와 사악한 인간 카라바조,두 얼굴을 가진 카라바조가 그의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와 우리에게 말을 건넬 것 같다. "당신은 나를 누구로 보는가? 나는 구도자인가,아니면 사악한 인간인가?"/202~203쪽



영화는 카라바조의 두 가지 마음 모두를 보여주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책을 읽은 덕분에 종교 지도자들이 격노했다는 사실보다 루벤스가 명작임을 알아보고 자신의 후원자에게 구입을 권유했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결국,영국의 찰스1세의 손을 거쳐 프랑스의 루이14세에게 매각되었다는 사실이다) 예술가를 다룬 영화는 언제나 만족도가 높지 않았다. 카라바조..도 작품성 자체가 아주 높다(?)고 말할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런데,카라바조만을 집중해서 책과 영화를 함께 본 기억이 처음이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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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 좀 들어봐
줄리안 반즈 지음, 신재실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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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지금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 보다  잘 '듣는' 훈련이 더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싶다. 물론 읽는 동안 내내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니다.  다 읽고 난 후, 제목을 곱씹어 생각하고, 역자 후기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다소 막장에 가까운 이야기라 생각했다.(솔직히 말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각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그리고 자신들의 생각과 감정의 목소리가 그려진다. 그럼에도 올리버의 다소 일방적이고 억지스러운 태도는 적응하기 힘들었다. 다행(?)히도 얼마전 보게 된 영화 '리얼 페인'의 벤지라는 인물과 오버랩되면서,그에게도 뭔가 씻어내지 못한 상처가 사람들에게 자신을 그렇게 보이도록 연출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이야기 속 인물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만 낸다. 상대방의 마음으로 헤아려 들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저들 각자의 시선으로 상대방을 보고,자신의 마음을 해석하는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소설의 원제목이 실은 '내말좀들어봐' 가 아니라 '의논,설득, 상담,등의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Talking It Over> 라는 사실을 알았다.내 마음을 상대방에게 이해시키기 위한 노력 설득,고민을 터놓고 싶은 상담,당신 생각은 어떻냐고 물어보는 '의논'의 느낌은 전혀 받을수 없었던 아이러니.. 그러니까 역자 후기 설명처럼 이 소설은 왜, 우리가 설득과 의논과 상담을 서로 할 수 없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거다. "그들은 귀먹은 사람들이 아니었다.그저 듣기를 거부한 것일 뿐 다른 깊은 요인을 찾기 어렵다.20세기 후반의 인간관계 특히 대화 부재의 인간관계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343쪽 '역자후기'중에서


우리는 대화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잘 '듣는' 것에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 사회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누구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하는 말 아닌 모든 말은 거짓말..이라고까지 우기는 지경에 이르렀다.소설 마지막 부분에 귀먹은 강아지의 최후는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강아지에는 미안하지만- 내 말좀 들어달라고 하기 전에,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를 헤아릴 수 있었다면 스튜어트와 질리언은 헤어지지 않았을 거라 생각된다. 사랑에 대한 올리버의 끝없는 궤변에도 스튜어트와 질은 잘 설득할 수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스튜어트를 향한 질리언의 마지막 퍼퍼먼스는 영화적으로는 재미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반전이었지만....그녀는 끝까지 스튜어트를 향한 배려(?)를 자기 중심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을까... 스튜어트가 행복을 느끼(?)며 그녀 곁을 떠난걸로 믿고 싶지만... 사랑과 거짓말에 관한 조금은 통속적인 소설일거라 생각했으나,귀를 막아버리게 되는 최후를 마주한 기분이 들었다. 이야기 사이사이 '줄리언스의 말' 메모장이 만들어질 만큼 기억해 두고 싶은 문장들을 읽는 건 기쁨이다. 질리언의 직업 복원에 대한 엿보기 과정은 보너스처럼 달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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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부러진 경첩
존 딕슨 카 지음, 이정임 옮김, 장경현 감수 / 고려원북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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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낙엽>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 소개된 또 하나의 소설..관심을 끈 건 '애거서 크리스티' 도 두 손 들었다'는 문구 때문이었다. 출판사의 계획(?)된 마케팅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독자는..그냥 그 전략에 일단 빠져 보고 싶어졌다. '붉은 낙엽'을 재미나게 읽기도 했지만(단지 출판사가 같다는 이유로...^^) 애거서 크리스티가 어느 지점에서 매력을 느꼈을까 궁금했다. 감히 찾아낼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알고 궁금했다. 그리고 <구부러진 경첩>을 읽는 내내 감탄할 만한 지점이 혹..이점일까 혼자 상상해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보통의 추리소설이라면 어느 시점에서 범인을 예상할 수 있는 지점이 보이는데, 구부러진 경첩의 경우...소설이 거의 끝날때까지 정말 안개속이었다. 답답한 안개속이 아니라, 긴장감이 느껴지는. 그렇기 때문에 이런 소설은 결말에 치명적 약점(?)이 보일수도 있다, 어쨌든 결론은 나야 하니까. 범인의 정체가 밝혀지는 과정이 너무 심플해서 앞서 긴장하고 복잡했던 마음에 허탈해졌다. 범인을 예상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범인이 너무 쉽게 자백(?)을 해서.현실에서는 도저히..아니 쉬이 만날수 없는 범인의 고백이다. 그리고 집요하게 따라오는 질문, 복수를 위해서라면 살인을 용인해 줄 수 있는 것인가? 그런데 나는 <구부러집 경첩>을 읽으면서 자꾸만 탄핵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우리 모습이 보여서 쓸쓸했다. 


우선 우두머리의 존재가 언급된 순간이었다.

"머레이는 웰킨보다 훨씬 젊었지만 모여 있는 사람들의 '우두머리' 격이었다. 그에게는 어딘지 '우두머리'다운데가 있었다.무뚝뚝하고 당당하지만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65쪽 추리소설에서 속단은 금물인데, 머레이를 우두머리로 지목하는 바람에,나는 그가 범인가 밀접한 인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떤 암시같은...어쩌면 진짜 범인이 궁금하지 않아졌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시선으로 읽다보니 우두머리와 꼭두각시가 언급되는 부분에서 나는 진짜 머레이가 범인이라면..어떡하지 생각했다. 점쟁이가 언급되는 것 만으로도 가슴이 내려 앉았다...

"(...)패트릭 고어가 입심이 좋고 흥미로운 점이 있다 보니 그를 그 무리의 리더로 잘못 생각했다는 거예요.냇은 머레이 씨가 진짜 스릴러에서 그들이 사용하는 그 무시무시한 단어가 뭐죠? /주모자?/바로 그거예요 그 무리의 주모자예요,고어와 웰킨과 머레이로 이루어진 무리의 주모자라는 거예요. 고어와 웰킨은 어떤 범죄든 저지를 용기가 없는 꼭두각시였고요(...)/253쪽  x탄핵의 시간 속에 있지 않았다면, <구부러진 경첩>을 바라보는 시선은 달랐을 것 같다. 적어도 머레이를 수사 선상에 놓지는 않았을 것 같다. 범인을 숨기기 위한 작가의 트릭이라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진짜와 가짜에 대해, 마녀사냥에 대해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며 읽지 않았을까... 다행(?)히 저들은 우두머리도 아니었고, 주모자도 아니었다.그러나 그녀를 지키기 위해 광기를 보이는 인물들이 보인다. 그것이 그녀를 위한 최선이라 믿는 사람들.원론적으로 돌아가 생각해 보면, 가짜가 진짜처럼..행동했던 시간에 대한 판결을 묻는 것 같다. 누군가 죽어야만 끝나게 되는 것인가 라고. 존 판리의 죽음은 ,죽어 마땅한 죽음이라 생각해도 되는 걸까? 잘못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은 그래서 중요하다. 면죄부와 수많은 예외들이 있어 왔기에,억울한 이들은, 스스로 복수하고 싶은 마음을 품을수 밖에 없는 것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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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트라베이스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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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다큐는 언제든 환영한다. 아주 유명한 연주자였으나, 나는 이제서야 알았다. 시간이 짦아서 아쉬울 만큼 그리고, 다큐를 보는 내내  쥐스킨트의 <콘트라베이스>가 떠올랐다. 왜냐하면소설 속 남자는 더블베이스연주자인 자신의 모습에 대해  불만이 가득한 이야기를 늘어 놓았던 것만 기억이 나서...오케스트라연주단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정작 조연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고, 그것에 대해 기꺼이 매력을 느낀 오린 오브라이언연주자와 다른 시각으로 더블베이스를 바라본다는 것이 흥미로운 지점이란 생각을 하게 된거다.다시 <콘트라베이스>를 찾아 읽었다. 100페이 정도 밖에 안되는 분량이지만,여전히 재미나게 읽혔다. 어김없이 자신이 가진 악기에 대한 불만, 아니 그보다는 사람들이 더블베이스에 대해 갖고 있을 법한 인상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그는 이렇게 불만이 가득할까, 그렇다면 더블베이스와 굿바이 하면 되는 거 아닐까... 그런데 그의 이런 복잡한 마음은 짝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의 불만을 악기에 투영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누구나 각자 자기 나름대로 서 있어야 할 위치가 있고 또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그러므로 사람들에게 왜 그 사람이 그 일을 하게 되었고 그가 왜 그 일을 계속하고 있는지 따위는 물어볼 필요도 없는 겁니다"/95쪽


그러고 보니 소설 속 남자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처음 읽을 때는 콘트라베이스 악기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를 끌었다. 다시 읽을 때는 남자가 사랑에 목말라 투정을 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또,또 다시 읽으면서 비로소 뭔가 합쳐진 느낌이 들었다 내 속에 수많은 내가 있어서,종종 나조차 내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워질 때도 있겠지만, 우리는 결국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그리고 우왕좌왕하게 되는 이유까지 보였다. 


"뭔가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고 가위 눌림 같은 것을 느끼며 이런 안정된 생활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공포로 두려워합니다.(....)"/98쪽


안정된 생활에 공포를 느낀다는 말에 대부분의 사람은 동의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저마다 마음 속 두려움을 품고 살아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요즘처럼 어수선한 상황이라면 더욱더...

그리고 문제는 바로 그런 지점에서 폭발하게 되는 건 아닐까? 두려움을 자기만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외부의 탓으로 돌리게 되는 순간 세상은 어지러워질수 밖에 없다. 그래도 이야기 속 남자는 자신을 단단히 다잡아야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지 않는 것 같아 다행이라 생각했다.예술가가 이고 싶은데,예술가가 아닌 것 같은 그의 마음을,그 두려움을 이해할수 있을까? 그럼에도 그가 미치짓 않기만을 바랄뿐이다. 아니 우리 모두..자신안의 두려움을 미친짓으로 풀어내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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