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걷으면 빛
성해나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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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시간이 찾아 오는 순간,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기분이 든다고 말한다. 아마도, 어두운 터널 끝에 찬란한 빛이, 아니 찬란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고통이 끝나는 순간이 올 거란 실낱 같은 희망을 부여잡고 싶어, 스스로에게 하는,희망고문은 일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소설에는 희망고문이 아닐수도 있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이해 받은 기분이 들었다.


"이목씨는 말했다. 어둠을 걷으면 또다른 어둠이 있을 거라 여기며 살았는데 그게 아니었다고,어둠을 걷으면 그 안에는 빛이 분명 있다고/91쪽" '화양극장' 부분



 장편소설인 줄 알았는데, 소설집이다. 그런데 묘하게 이야기가 연결 되는 기분, 서로 다른 사람들의 고통과 고민을 들으면서, 팔랑귀가 된 것처럼 마음이 정신없이 요동쳤다.어둠 속에서도 묵묵히 빛이 있을 거라 찾아가는 인물도 보였지만, 개운하지 않았던 마음이 크다. 친일에 대한 이야기속 인물들과 마주하면서 답답해진 이유가 크다.우리가 여전히 그 잔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들이 보였고, 쉬이 개선될 것 같지도 않아서다.그러니까 정말 빛이 보이긴 할까? 라는 자조적인 마음이 들고 말았다. "그건 조상의 과오지.우리의 과오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혹시... 단죄라도 하고 싶으신 겁니까?"/200쪽 '소돔의 친밀한 혈육들' 부분

해서 <빛을 걷으면 빛>을 읽으면서 아주 개운한 마음으로 읽어내지는 못한 것 같다. 그렇지만 자신에게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들을 저마다 끌어 안고 조금씩 깨려 하는 모습이 보일 때도 있었다는 것도 잘 알고있다.중요한 건 꺽이지 않는 마음일테니까... '화양극장' 과 '소돔의 친밀한 혈육들'을 인상적으로 읽었다. 늙어감에 대한 고민이 늘고 있는 중이라 '당춘'도 인상적으로 읽었다. 너무 유토피아적이란 생각이 들어 오히려 작위적인 인상을 받았지만,그럼에도 '늙음'에 대한 혐오적인 인식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생각하는 1인이라, 노인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할 시대로 들어서고 있음을 이해했다. 개운한 마음으로 읽지 못한 건, 소설이란 느낌보다, 사회현상을 다룬 다큐를 본 기분이 든 탓이 크다. 그러나 어둠 속에도 빛이 분명이 있을 거란..그 말을 주문처럼 가슴에 기억해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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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동네 웅진 우리그림책 97
나오미양 지음 / 웅진주니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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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에 있는 소란서점 방문했을 때 읽어보고 싶었던 그림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표지 그림만으로 행복해지는 기분이 든 건.. 어릴적 겨울 풍경이 떠올라서였던 것 같다. 그리고 페이지를 넘겨 보고는.. 눈 덮인 곳을 부러 찾아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눈이 내릴때도 아름답겠지만, 눈 내린 이후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란 설명이 결코 과장되지 않았다. 영화 러브레터도 생각났지만, 가보지 않은 북유럽 풍경이 저와 같지 않을까 상상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러니까 그림책 속 꼬마가 사슴을 보기 위해 겨울동네 여행 떠나는 그 마음을 나는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굳이 겨울에..그곳을 가야해?? 라는 시선이 아닌, 겨울이어서 가고 싶은 동네가 있을 수 있다는 것. 



사슴은 만나지 못했지만, 겨울 동네답게 눈내린 풍경을 감상했고, 눈길에 찍힌 동물들의 발자국을 감상했다. 사슴을 보고 싶어 무작정 나선 후 길을 잃고 감기까지 걸리게 되지만,자신이 사슴이 되는 꿈을 꾸게 된다. 비록 사슴을 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그 겨울동네가 아이에게 풍요로움을 남길 수 있었던 건, 계획과 다른 시간 속에서 마주한 것들 덕분이 아니었을까.. 너무 어른의 시선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일수도 있겠지만, 추위 때문에 여행을 망설이게 되는 건,겨울의 진짜 매력을 놓칠수도 있다는 생각... 제목은 분명 추운(?) 데..이상하게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것이 겨울의 매력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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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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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스 피터스의 '욕망의 땅' 을 읽다가 '달과 6펜스'의 주인공이 자연스럽게 생각났다. 스트릭랜드 보다, 그녀의 아내가 떠올랐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삶을 살겠다고 떠난남자... 백 번 양보해서 이해(?)하려고 해도, 그들이 떠나는 방식은 납득하기 어렵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2012년) '달과 6펜스'를 읽었을 때, 스트릭랜드 아내의 마음을 충분히 생각하지 못했음을 인정한다. 내 기억이 어렴풋 그러했던 것 같아, 다시 읽어 보고 싶어졌으니까...

그런데 예전 독후기를 보면서 한 번 또 놀란 건, <폭풍의 언덕> 히스클레프과 스트릭랜드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다. 내년 영화 개봉 소식을 들은 터라..다시 읽어보려고 했었는데,둘 사이에 공통점(?)이 있을 지 궁금해서라도 다시 읽어 봐야 겠다.(아마 읽게 되겠지~~^^)


"예술가의 개성은 과연 인격의 파탄을 상쇄해 줄 수가 있는가? 세상의 윤리로 보면 그는 이기적이고 비열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그러나 스트릭랜드의 관점에서 보면 사태는 다르다(...)"/ 역자후기 중



고전과 막 친해지기 시작했을 무렵 <달과 6펜스>를 읽은 터라, 고전을 읽는 다는 기분에 빠져..다양한 시선으로 읽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니까 두 번째 읽기지만, 사실 처음 읽는 기분으로 읽었다고 해야겠다. 자신의 꿈을 위해 가정을 버린 남자. 버린게 맞다.. 왜냐하면,그는 남겨진 이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동안 할 만큼 했으니.이제 스스로 알아서 살라는 통보 뿐.이었다. 스트릭랜드의 관점에서 도저히 바라볼 수 없었다. 그가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생각,등등이 읽는 내내 불편했다. 꿈을 찾아 가는 남자로(만) 보이지 않은 이유는, 천재적인 예술가는 일반인과 달라야 한다는 환상을 심어준 것 같은 기분.. 그래서 천재에게는 모든 것이 열외일수 있나.. 역자 후기의 설명처럼, 읽는 내내 두 가지 질문이 따라온 것 같다. 아니 세 가지 정도 일수도 있겠다. 천재라는 이름으로 불려지는 예술가들에게는 모든 것이 면죄부가 되어도 되는 걸까? 혐오수준에 가까운 여성에 대한 시선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몸선생은 부인했다고 하지만, 고갱에게 드리워진 좋지 않은 시선을 천재라는 이미지로 변모시켜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런데 어쩌면 가장 힘든 건, 예술가는 그래도 된다는 암묵적 메세지에 나도 종종 인정하고 넘어갈 때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그렇기 때문에 더 정신 차려야 할 지도 모르겠다. 예술가라는 이유로 늘 면죄부가 만들어진다면....너나 할 것 같이 예술가라는 이름을 갖고 싶어질지 모르니까. 읽어야 할 고전 필독서도 중요하지만,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과 같은 책도 함께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많은 논술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달과 6펜스>>를 읽히고 '비도덕적이고 이기적이지만 위대한 예술가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를 묻는다. 하지만 이는 추상적인 논의에 불과하다. 더 많은 비평과 토론이 이뤄져야할 부분은 <<달과 6펜스>>의 여성혐오적 요소 그리고 실존했던 예술가의 성 착취 행적을 오늘의 관점에서 어떻게 비판적으로 성찰할 것인가이다"/57~58쪽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 (달과 6펜스)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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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한 속삭임 위픽
예소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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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에 있는 책방이름과 닮은 소설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예전 같았다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르겠으나,'위픽' 시리즈에 급 관심이 생긴 터라(성해나 작가의 이야기를 재미나게 읽었다) 메모해 왔다.


"아저씨 여기 지하철이에요"

"그런데요?"

"시끄럽다고요"

"그럼 시끄러운 사람이 나가요"

"아저씨가 나가야죠. 여기 사람들 다 시끄럽다고 생각할걸요?"/8쪽


잠깐 통쾌했다. 지하철을 타도, 버스를 타도 동영상을 자기 집에서처럼 이용하는 사람들로 인해 몹시 피곤한 1인이라 그렇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말 괜찮은걸까 혼자 궁금해하다가, 이제는 어쩔수 없는 상황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변인들의 말에 혼자 의기소침해진다. 사람 무서워서 볼륨 낮추라고도 말못하는 입장에서 누군가 저렇게 말해준다면 고맙겠다는 마음은, 이기적이기도 하고, 내가 참 소심한 사람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까 나같은 사람한테 필요한 모임인걸까.. '속삭이는 모임'은  동영상을 시끄럽게 켜둔 남자를 무시하는 사람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 그녀를 통해 모임이 만들어진다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정말 자그맣게 이야기하면 더 속마음을 털어 놓게 될 것도 같고, 집중하게 되는 것도 같고, 해서 모임이 된 두 사람은,또 다른 모임의 일원을 찾아 나선다. 시끄러움의 대명사격이 될 만한 사람. 그런데 그녀 역시 그렇게 소란스럽게 떠들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그렇지만 도저히 이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소란스럽게 떠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이유는 알겠다. 문제는, 민폐가 될 만한 소란스러움을 정말 이해하는 마음으로 바라봐야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세상이 끔찍하게 시끄러워서 속삭이는 모임을 만들었는데 시끄럽게 구는 훈련을 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35쪽



결국, 내 안의 여러 시끄러움과의 전쟁이었다. 그것을 밖으로 표출하는 사람, 외면하려는 사람, 어떻게든 시끄러움과 싸워 잠재우고 싶은 사람..그렇다해도 나는 동영상을 내집에서 보는 것처럼 하는 사람들을 지켜보기는 버겁다. 그들에게<소란한 속삭임>을 일일이 읽어 보라고 말할수도 없고.소설을 읽는 동안은 재미었는데, 개운한 결론이 내려진 기분은 들지 않는다.


PS 라디오를 들을때마다, 사연을 보내는 이들의 마음이, 그 정성이 대단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소란한 속삭임>을 읽다가 알았다. 마음의 소리를 가장 크게,그러나 조용하게 표현하는 방식일수도 있겠구나.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집사정을 시시콜콜 들을때마다..괜찮은 걸까 생각할 때가 있었는데, 이제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소란한 속삭임>을 읽으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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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의 여름 캐드펠 수사 시리즈 18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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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정과 긍정의 시선으로 마주한 '반란' 이었다. 전쟁을 한다는 건 결국, 저마다 가진 욕망이 자리한 탓일게다. 더 많은 걸 가진자에게 덜 가진 자가 반란을 일으킬수도. 그러나 이야기가 계속 이렇게만 흘러갔다면, 애정하는 캐드펠시리즈라 해도 (나는),책장을 덮었을지도 모르겠다.누구도 헤치지 않는, 오로지 자신 스스로의 삶을 위해 반란을 도모한 헬레드가 보여 끝까지 읽어낼 수 있었다. 헬레드 덕분에 극과 극의 반란을 비교하는 즐거움(?)이 있었다고 해야겠다. 물론 이번에도 어김없이 살해당하는 인물은 등장했지만, 치열한 전쟁이 오고간 탓에, 그의 죽음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야만 했는데, 이유는 소설 끝에가서 밝혀진다. 그럴거라 예상할 수 있었다. <반란의 여름>에서 중요한건 그 남자를 누가 죽였는가에 있지 않았으니까.


"카드왈라드르 밑에 있던 분이라면 그의 도량이 도토리 속 만큼도 못 된다는 걸 알겠군. 그 사람은 저 야만인들을 귀네드 땅에 끌어들인 뒤 그들과의 약속을 저버렸어요. 그러곤 죄 없는 인질들이야 어떤 곤욕을 치르든 아랑곳없이 저만 살겠다고 내뻐렸죠.(...)"/301쪽


"저를 치워버리는 게 그분의 바람이잖아요. 아버지에게 피해를 주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기왕 떠나온 마당에 다시 돌아가 생전 보지도 못한 사람과 결혼하거나 수녀원에서 썩고 싶지는 않아요(...)"/185쪽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 전쟁을 도모하는 반란과, 자신의 삶 스스로를 개척하기 위해 꿈꾸는 반란은 얼마나 다른가.전자는 수많은 이들에게 희생을 강요하지만, 헬레드의 반란은 스스로 찬란한 여름을 만들어 내는 여정으로 읽혀졌다. 종교인으로 살아가야 할 아버지 조차, 그녀의 존재를 애써 부정하려고 몸부림치는 걸 시대가 그랬기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넘어가지만, 찜찜함은 남는다. 지난시간 얼마나 많은 헬레드와 같은 여인들이 있었을까..를 상상했다. 가볍게 읽고 넘길 부분일지 몰라도, 나는 <반란의 여름>에서 그녀의 모습이 가장 크게 보였다. 자유의 몸일 때보다 포로가 된(물론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기는 하겠지만) 시점에서 더 자유로움을 경험하는 기분이란 말은 ...아버지가, 종교가 그녀를 얼마나 속박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고 본다. 물론 겉으로 보여지는 것이 전부는 아닐테지만, 아이러니하다. 아버지를 위해 선택한 길이 오히려 그녀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포로 신세임에도 그녀는 이곳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자신이 무력한 처지라는 사실을 받아들였으며 자기 뜻대로 할 수 없는 현실과 싸우기를 단념한 채 어떤 기대도 없이 그날그날을 무사히 보낼 수 있는 것에 만족했다. 캐드펠이 보기에 헬레드는 자유로운 몸일 때보다 지금 더 즐겁게 지내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서서히 죽어가고 길버트 주교는 라넬루이에 오자마자 부적격인 성직자들을 가려내겠다며 혈안이 되어 돌아다니던 그 혼란의 시기와 비교하면 더더욱 그러하리라. 당시 그녀는 지옥과도 같은 고통을 겪었다.아버지가 자리를 지키고 싶은 마음에 어머니의 죽음을 바라고 있지는 않을까(...)"/2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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