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아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두행숙 옮김 / 상상공방(동양문고)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힘들게 읽었던 기억 때문에, 파스칼 메르시어의 또 다른 소설 <<레아>>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 <<언어의 무게>>덕분에 '레아'를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솔직히 파스칼 메르시어의 작품이라는 걸 몰랐다면 책 표지 때문에라도 전혀 읽고 싶지 않았을 게다.그리고 읽고 나서 든 생각은,소설이 가진 묵직한 울림에 비해 표지가 너무 성의없어 보인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거다. 레아의 시선으로 읽어내길 바라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거라면 할 말은 없겠지만....


낯선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난 두 남자. 소설은 각자의 딸에 대해 고백하는 여정으로 시작된다.반 블리에트가 쏟아내는 딸 레아의 천재성과 파멸의 기록을 경청하는 아드리안 헤르초크.이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레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헤르초크는 공감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만으로도 위로해주는 거라 생각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어느 순간 마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이 더이상 외과의사를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자신의 딸과 친밀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소설을 다 읽고 나서 곱씹어 보고 나서야 하게 된 생각이다.그 순간에는 그럴수..있지 라고 생각했더랬다. 책을 덮으면서,타인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착각인지 깨달았다. 마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헤르초크는 자신의 내면에서 요동치는 고통을 생각했으니까. 


"나는 그걸 막아야 했다. 정말 그래야 했을까? 내가 그렇게 해도 됐을까? 의사로서 나는 불치병에 대한 분명하고 흔들리지 않는 견해를 갖고 있었다. 그건 존엄성의 문제였다. 하지만 이런 견해를 반 블리에트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인가?"/320쪽


결국 상실을 극복하기 위해 반 블리에트와 레어가 내렸던 선택은 독이 되어 돌아왔을 뿐이다. 이제와서 후회 한들 소용없다.그러니까 우리는 늘 후회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라 그런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답을 정할 수 없는 존엄사의 문제만큼이나 우리가 하게 되는 후회들은 숙명일 지도 모르겠다.표지는 살짝 가벼웠지만, 소설에서 던지는 화두는 무거웠다. 그런데 마음이 한없이 우울하지 않았던 건, 소설의 결말을 꼭 비극적으로만 바로보고 싶지 않아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반 블리에트의 선택에 대해 옳고 그름을 말할수 없었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 훨씬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아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두행숙 옮김 / 상상공방(동양문고)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타인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착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긴 방 마르틴 베크 시리즈 8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2년,<<잠긴 방>>을 처음 읽었다. 매혹적인 시리즈물을 너무 늦게 알았다는 아쉬움도 잠시, 나는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정주행이 아닌 역주행으로 읽게 되었다.살짝 당혹스러웠지만 타임머신을 탄 기분으로 시리즈를 읽어갔다. 오히려 처음부터 읽었다면 끝까지 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후반 시리즈로 갈수록 몰입도가 좋았다.

최근에 '어느 끔찍한 남자'(지붕위의사나이)를 영화로 보게 되면서, 베크 형사의 사고를 마주한 순간 <잠긴 방>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조금은 염세적이라 생각했던 베크형사의 모습은, 다시 읽으면서 ,직업적 트라우마에 대한 관점으로 시선이 바뀌었다. 현재에서 과거를 보는 것과,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모습은 이렇게나 다를수가 있구나.


"십 분도 안 걸려요. 나는 음식을 뚝딱 만들거든요. 전혀 번거롭지 않아요. 그리고 맛있죠. 주어진 사황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거잖아요. 세상이 나빠지기만 하는 것처럼 보여도 언제나 맛있는 걸 요리할 수는 있어요(...)"/278쪽



처음 읽었을 때는 '부조리'한 세상으로 가득해 보였다.책임감 없는 경찰들의 수사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은행 강도짓을 향한 그녀가 처벌받지 않는 모습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마음이 복잡했다.온갖 나쁜짓을 저질렀으니 처벌받아 마땅한 마우릿손의 죄목이 변경된건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피해자인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했던 스베르드의 죽음이 명확하게 밝혀져야 하는 것이 맞는지..회의감이 들었다. 부조리하다는 말로 밖에는 표현할 수 없었던 답답함.. 그런데 다시 읽으면서, 베크 형사 같은 경찰들이 존재해서 부조리한 세상이 무너지지 않을수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할 즈음 레아의 생각을 읽었다.

혹 '잠긴 방'이란 제목은 도저히 열릴 수 없을 것만 같은 그 견고한 성을 열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굳건하게 닫힌 그곳을 열기란 쉽지도 않을 뿐더러, 의도와 상관없는 결과물과 마주할 수 도 있을지 모른다(마우릿손처럼...) 만약 타성에 젖어 일을 처리한다면 쉽게 열 수 있는 문도 더 견고하게 닫힐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사건 현장을 처리하는 형사 입에서 '포기'라는 말은 나오면 안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 그 사건요 그것참. 이해가 안 되지요. 하지만 세상에는 그런 일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떤 일 말입니까?"

"설명할 수 없는 일.답이 없는 수수께끼.그래서 그냥 포기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되는 일 말입니다"/6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어의 무게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아주 힘겹게 읽었던 기억 때문인지 <언어의 무게>를 읽겠다는 용기를 선뜻 내지 못하고 있었다.그런데 찾아 가는 책방마다, 조금은 촌스러워 보이는 분홍 표지가 나를 유혹하는게 아닌가.해서 냉큼 구입했다. 언젠가는 읽게 되는 날이 오게 될 거라 믿으면서.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서사 자체의 흡입력과 소설로서의 재미에 흠뻑 빠져들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도 다시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번역가 레이랜드가  시한부판정을 받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그가 아내에게 편지를 쓰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소설 읽으면서 거의 울지 않는 편인데..그만큼 레이랜드 삶 속으로 내가 들어간 모양이다) 레이랜드의 시한부판정이 오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라 풋..하고 웃음이 났고,정신을 차리고 나니 화가 났다. 그리고 단지 이야기의 흥미를 돋우는 장치게 그치지 않고  '언어의 무게'라는 핵심 주제로 나아가기 위한 '무엇' 이란 느낌을 받았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들로 넘쳐나는 시대를 살고 있다보니, 나 역시 언어가 갖는 무게에 대해 아무런 생각없이 살아왔다는 생각을 했다. 표현하는 문장에서, 단어 하나에서, 저마다의 가치와 의미..그리고 언어가 갖는 무게를 생각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나는 나만의 목소리(언어)를 갖고 있는가 라는 질문까지 하게 되었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언어들에는 이런저런 것들이 있고, 사라졌으면 하는 단어들이 있고, 소중히 지켜야 할 언어들이 있다는 사실... 을 찾아가는 여정이 매력적이었다.


조금은 추상적인 제목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읽어갈수록 그렇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언어가 가진 무게와 가치에 대해 깊이 생각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나만의 목소리'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결국 언어라는 것이 우리의 인생, 혹은 삶을 담아내고 드러내는 또 다른 표현이 아니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33
루이스 캐럴 지음, 존 테니얼 그림, 김희진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르한 파묵의 소설<검은 책>을 읽으며 내가 마주한 것은 파묵의 소설 속 이야기만이 아니었다. 종종 언급된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대한 언급이 호기심을 지폈다.나도 모르게 흰토끼를 따라 자연스럽게 앨리스의 세계로 들어간 기분...분명 예전에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마치 처음 읽는 기분이었다. '환타지 동화' 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 읽었을 때 기발한 상상력이 품어내는 환타지에 몰입했다면, 다시 읽으면서는 상상력 뒤에 감춰진 진짜 모습을 마주한 기분이었다.특히 권력과 법에 대한 풍자가 그랬다.사라진 타르트를 찾는 법정 모습을 보면서,여왕이 마음대로 휘드르는 권력이 무섭게 다가왔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무렇지 않게 처형하라고 명령할 수 있는 권력자의 모습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공포스러웠으니까. 이런 권력의 지배를 받는 시민들을 상상해보라, 자신들의 실수를 감추기 위해 하얀장미를 빨간색으로 그려 넣으려고 한다. 작은 허물을 감추려다, 더 큰 사고가 일어나게 되는 일들을 떠올려봤다. 매순간 '교훈'을 찾으려고 애쓰는 거 아니냐는 말도 나오지만, 그냥 상상력에서 비롯된 이야기로 넘어갈 수가 없었다.


몸이 커졌다 작아지는 앨리스 모습 조차 환타지로 읽혀지지 않았다. 커져버린 순간, 어린 시절이 그리워질 수 있고,커지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는 고약한 성질의 모습,시시때때로 후회도 하고, 그러나 용기를 가져야 하는 순간을 생각하게..된다. 그리고 책장을 덮으며 나는 앨리스가 이런 꿈을 꾸게 된 이유가 궁금해졌다. 어쩌면 모순과 폭력으로 가득한 어른들의 세계로 편입되고 싶지 않아서는 아니였을까.아니면 그런 현실로부터 도망쳐 영원한 아이로 남고 싶다는 무의식적인 저항의 마음이 꿈에서 실현될 것일수도..그러니까 그런 어른이 되지 않으려면,호기심과 용기,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까.. 앨리스가 꿈 속에서 가장 힘있게 보여준 모습은 '용기'를 갖고 행동할 때였다.



'입다물어! 여왕은 얼굴이 자줏빛으로 변해 말했다.

"싫어요! 앨리스가 말했다.

"저것의 목을 쳐라!" 여왕이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누가 당신을 신경이나 쓸 줄 알고?" 앨리스는 말했다. (..)너희는 기껏해야 카드 한 벌일 뿐이야!" /150~15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