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빛 없는 밤의 도시
정해연 지음 / 엘릭시르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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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빛 없는 밤의 도시를 상상해 본다. 

하늘에 가득한 별빛이 찬란한 풍경을 상상했더랬다.하지만 소설은 내가 상상한 낭만을 여지없이 깨부순다.어둠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추악하게 일그러진 인간의 진짜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총 네 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아름다운 괴물' 과 '인생 리셋' 은 평범하고 예상 가능한 전개라 아쉬웠다. 그럼에도 '아름다운 괴물' 이란 제목 덕분에..이 소설 전체에 흐르는 화두가 '괴물'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건 좀 아이러니 하긴 하다. 나는 분명 피해자였는데, 어느 순간 가해자가 되어버렸다. 그보다는 '괴물'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된 걸까.. 아니면 꾹꾹 눌러 왔던 어둠이라는 내 본성이 어느 순간 드러나 버리게 된 걸까... 표제적인 '불빛 없는 밤의 도시' '보름' 을 인상적이라 생각했던 건, 마냥 피해자로 살아갈 것 같은, 그래서 절대 괴물이란 세계 속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 같은 이들도 괴물이 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앞서 두 편은 괴물이 될 여지가 보였다면, 인상적으로 읽게 된 두 편의 이야기 속 이들은, 피해자의 삶을 감내 하며 살아갈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 생각은 절반만 맞는것 같긴 하다. '불빛 없는 밤의 도시'에 등장하는 시장을 죽이고 싶은 이들은 얼마나 많았을까.. 만약 내가 저와 같은 상황이라면..이런 가정은 정말 하고 싶지 않다...그러나 누군가 그런 가정을 하게 된다면 ...어둠이 도와준다면 기꺼이 괴물이 되지 않을까.. 중요한 건 내가 괴물이 되어가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하게 괴물이 되어 간다는 사실일게다. 


불빛이 꺼진 도시의 어둠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

어둠 속은 욕망으로 가득한 인간의 모습만을 보여줄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우리 모두 괴물이 될 수 있다는 경고의 소리를 들었다. 나는 괴물사람이 되지 않을 거란 자신을 할 수 없어 더 두려운 마음으로 읽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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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빛 없는 밤의 도시
정해연 지음 / 엘릭시르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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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덫에 걸리는 순간 우리 모두 괴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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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텍스투라
에드거 앨런 포 지음, 노승영 옮김 / 읻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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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유레카'를 보기 전 원작이 따로 있는지 찾아 보았다. 포의 <<유레카>>가 보였다. 원작이 아니란 걸 알았지만 짧은 분량이라 먼저 읽어보았다. 난해하고 어려웠지만, 길지 않은 분량이라 끝까지 읽어낼 수 있었다. 솔직하게는, 영화 '유레카'를 떠올려 볼 수 있는 지점들을 만나는 순간이 있어 포기하지 않고 읽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구는 행성 단위의 관점에서만 고려될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자면 한 사람은 인류가 되며 인류는 우주적 지성체 가족의 일원이 된다"/14쪽


영화가 시작되고 코즈에가 했던 말과 기시감을 느끼게 된 지점이다. 아직 아무일도 벌어지지 않았는데,어째서 우리 모두가 사라지는 것처럼 이야기 했던 걸까 하고... 포선생의 논조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가는 순간이라니.. 포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영화 '유레카'를 내내 따라가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태초에 하나였던 우주가 폭발하면서 원자와 인간이 파편으로 쪼개져 외로움을 느끼게 된 것처럼, 영화 '유레카'는 버스 납치사건으로 트라우마라는 삶의 파편을 직격탄을 맞게 된다. 그래서 포선생의 이론을 따라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영화 속 유레카를 이해할 수 있는 문장들을 찾고 싶었다.


"우리는 하느님의 성격이나 본질에 대해 절대적으로 아무것도 모른다 -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이해하려면 우리 자신이 하느님이어여 한다" /38~39쪽


맥락을 이해할 수 없는데, 오독이 허락되는 자유(?)라니. 영화(유레카)에서 버스납치사건에 피해자가 된 이들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오히려 2차 3차 피해가 그들에게로 향할 뿐.. 누가 그들의 고통을 알 수 있을까.정말 아무도 모른다. 오로지 그들과 같은 고통을 겪은 이들만이?? 그런데 사촌이란 녀석이 아무렇지 않게 지껄이는 말을 보면..자신의 고통을 제대로 마주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영혼은 더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가한 슬픔에 저항하지 않고 자신의 기쁨을 확대하려는 바람으로-그것이 헛된 바람일지라도-스스로의 목적을 증진하고자 한다"/171쪽


제목만 갔을 뿐 아무런 연관도 없는 두 작품이다.하지만 영화 덕분에 이 난해한 책을 읽어낼 수 있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그곳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하지만 포의 <유레카>를 읽으면서.깨달았다.트라우마라는 분자가 폭발할 때 치유라는 거대한 에너지가 서로를 강렬하게 끌어당기는 기분  영화와  책 어디에도 직접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유레카'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기분이 든 건, 세피아톤이던 영화 속 배경이 컬러로 바뀌어서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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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강 그리고 안젤름 키퍼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지음, 최정애 옮김 / 비트윈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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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아주 유명한 예술가의 이름을 영화 덕분에 알게 되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검색을 해 보았더니, 예술가에 관한 책이 출간되어 있었다. <숲과 강 그리고 안젤름 키퍼> 영화를 조금더 재미있게 관람하기 위해 책을 먼저 챙겨 읽었다. 잘 모르는 예술가였으나, 글이 너무 잘 읽혀 깜짝 놀랐다. 어쩌면 예술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던져진 질문들이 지금 우리 사회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내용들이라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역사란 무엇인가 등등. 독일에서 나치를 언급하는 것이 얼마나 조심스러운 건지 조금은 상상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안젤름 키퍼가 처음으로 전시한 작품이 논란을 키울 요지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조금만 그 속으로 들어가 보면, 나치를 찬양하기 위해서가 아니란 건 누구가 알 수 있지 않았을까.. 무튼 다소 요란(?) 작품으로 예술가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모양이다.


"세상을 향한 우리 자신의 불확실한 접근 방식 우리가 사실은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술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그것은 미스터리에 대한 답이 아닌 미스터리 그 자체인 것이다"/169쪽


"대략 이렇게 나는 키퍼를 이해했다. 그리고 대략 이쯤에서 예술에 대한 담론도 멈춘다. 왜냐하면 예술 또한 그 자체로 존재하는 무언가이며 언어로는 밝힐 수 없기 때문이다.마치 예술은 비밀을 보여주는 동시에 지키고 있는 것만 같다"/171쪽




영화관 데스크 앞에 내가 읽은  책이 보여 반가웠다. 책을 읽고 간 덕분에 영화 보기가 수월(?) 했다. 온전히 이해했다고는 말할수 없겠지만, 책에서 만난 하이데거 정보는 유용했다. 영화에서 비중 있게 다루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하이데거 책을 찾아 읽아도 섭섭하지는 않을 것 같다. 영화를 보면서, 예술가의 숙명이 보였다. 첫 작품이 논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예술가도 하지 않았을까 '거울'처럼 작품을 바라보기를 바랐으니, 관람자들은 여러가지 이유에서 불편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


"키퍼의 작품에서 이들은 마치 읽을 수 없음 자체에 대한 기호인 것 같다. 이해가 멈추는 바로 그 지점,다른 그 무엇도 소통하지 않는 그 지점"/57쪽



영화에서는 예술가의 작품을 좀더 가깝게 호흡할 거라 기대했더랬다. 애써 의미까지는 찾지 않더라도. 그런데 이런 마음으로 영화를 바라본 덕분인지.. 예술가의 숙명이 자연스럽게 전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애써 하이데거를 둔둔하려고(만) 하지 않았다는 느낌, 그 순간 그 자리에 있었다면 누구든 하이데거와 다르게...행동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그래서.. 우리는 또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키퍼는 그것이 예술가의 숙명이라 생각한 듯 보였다. 영화의 앤딩 장면이 오로지 빔벤더스감독의 상상에서 그려진 것인지, 키퍼 자신이 이카루스..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감독이 영화 속 장면을 그려 넣은 것인지..모르겠다. 추락은 오만의 결과일수도 있지만, 예술가에게 이카루스..는 그곳까지 닿고 싶은 열망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나는 하이데거에 대해 이름정도 밖에 알지 못하지만, 책 제목에 '숲과 강' 이 들어간 이유를 어설프게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쩌면 오독일수도 있겠으나.. 숲에 숨은 그림자는 하이데거가 아니였을까.. 키퍼가 숲과 오두막을 잿더미 되기 직전의 모습을 그리는 모습을 보면서... 예술가의 결함과 위대한 사상을 분리해서 봐야 하는 화두..는 그래서 어렵다 그러나 키퍼가 그려내고자 한 열망은 아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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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탄 위픽
백은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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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가 모임에서 말한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생각보다 거창한 철학은 아니었다. 인간은 정의 불가능한 존재이고 본질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에 누구나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인간답게 실존하려면 그만큼 많은 책임과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
그러다 한 문장이 머리에 꽂혔다.
인간은 자유라는 형벌에 처해있다"/30쪽




선거가 끝났다.

예상했던 결과였지만, 나는 습관(?)처럼  '왜'...라는 질문을 하고 있다. 

<나의 사탄>을 읽으면서 기꺼이 허락된(?)오독이 반가웠다.

'자유'가 때로는 인간에게 내려진 보이지 않는 형벌(?)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도 사탄이라 부를수 있는 거 아닌가... 종교를 갖지 않은 내가 '사탄' 이란 말을 입에 올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거리에서 외침을 종종 듣긴한다. 모르는 이에게 무차별적인 저주(?)를 퍼붇는 이들과 일일이싸워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때도 있었다. <나의 사탄>을 읽으면서 불현듯, '사탄' 에 대한 정의가 너무 일방통행은 아니었던가..하는 생각을 했다. 앞서 말한것처럼 오독..으로 읽은 덕분에 가능했던 생각이다.^^

내가 하는 사랑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사탄'이라 규정된다는 건 너무 폭력적이다.

그런데 소설은 그 부분에 대한 항변만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의 마음에는 저마다의 사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위로가 될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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