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사 다니엘 슈타인 대산세계문학총서 200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음, 차지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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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정말 지겹도록 원죄에 관해,지옥에 관해 관심을 보였어.나는 다니엘 신부님이 지옥이 믿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어.신부님은 손을 내저으며 말씀하셨어(....) 스스로 만들지 마십시오.지옥은 없을 것입니다"/702쪽



페이지를 펼치기 전까지, 실존했던 인물을 바탕으로 씌여진 소설이란 사실을 몰랐다. '통역'이란 직업이 갖는 매력에만 집중했던 탓이다. 그런데,다니엘 슈타인의 통역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른 위치에 있어 놀랐다. 유대인이었으나, 게슈타포 통역사로 일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였을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것 같아서..그런데 심지어 그는 비밀요원 역활까지 하면서 나치 학살 계획을 게토에 있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기까지 한다. 전쟁이 끝났다. 당연히 그는 유대인 입장에서 용서 받지 못할 일을 한 사람으로 보여질수 밖에 없다.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신부가 된 다니엘 슈타인. 이스라엘로 건너가 가톨릭과 유대교,아랍세계의 갈등을 중재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너무나도 처절해 보였다. 그리고 700페이지가 넘어서고 나서야 나는 이 소설의 제목에 '통역사'가 들어간 이유가 궁금해지게 되었는데, 그 순간, 전쟁이 위험하다는건 우리 인류에 끝내 통역이 불가능한 영역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나의 오독일수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이 목숨 걸고 다투는 복잡한 종교적 이해관계를 온존히 이해하기는 어려웠다(통역불가의 영역...) 책에서도 살짝 언급되었지만, 이럴때는 내가 무신론자라서 다행(?)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같은 신을 믿으면서도,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전쟁을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승리'와 '애국'이라는 위선적인 언어로 권력자들은 사람들을 증오와 공포심을 갖게 만들었다. 상대방을 사랑이 아닌 섬멸해야 할 적으로 통역되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통역할 수 없는 것들을 통역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린 지금보다 평화로울까? 소설을 덮으며 스스로 하게 된 질문이다. 전쟁이 가진 위험성에 대해 바른 통역이 가능해진다면,지금보다는 세상이 평화로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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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7
소포클레스 지음, 강대진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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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었을 때는 왕의 '오만함'이 보였다.신탁을 비웃으며 자신의 지혜로 비극을 피해 갈 수 있다고 믿었던 자신감이 오만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읽었을 때는 '두려움'을 느끼는 왕의 모습이 보여서 놀랐다. 미스테리아 잡지에서 작품이 씌여질 당시, 역병이 돌았고, 작품 배경에서도 전염병이 도는 상황을 왕의 부덕으로 고민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인것 같다.그러다 아버지를 죽인 자가 자신일수도 있다는 공포와 두려움.그런데 스스로 자신의 죄를 묻는 모습은 숭고하다기보다, 다시 그의 오만함이 보이는것처럼 느껴졌다. 애초에 오이디푸스에게 잘못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아들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신탁을 듣게 된 라이오스가 오이디푸스를 산속에 버렸으니, 그것이 비극의 단초를 제공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연극이 올려진다는 뉴스를 듣고도 살짝 망설였는데, 오이디푸스 비극의 현대적 부활이란 문구가 보인 <호모 파버>를 읽다가, 연극도 보고 싶어졌고, <오이디푸스 왕>도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막스 프리쉬 소설에서 '오이디푸스'를 어떻게 오마주 했을까 궁금했는데,소설 덕분(?)에  '오이디푸스 왕'을 읽으면서, 우리의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다는 걸 생각하게 되었다. 모든 걸 신탁에 의지해서 살아간다는 건 인생을 순리대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그 반대일수도 있지 않을까.. 자신이 살고자 아들을 죽이려 했던 라이오스는 결국 아들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가 바란건 분명 아니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또 인생은 순리대로 흘러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라이오스와 오이디푸스가 맞이한 파국은 신의 장난이 아니었다. 자식을 버리고 인간성을 배신한 라이오스의 죄가 인과응보가 되어 가문 전체를 파국으로 가게 한 것일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파국 끝에 닿은 오이디푸스 왕에게 현명한 지혜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 비극은.완전한 비극으로 끝맺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자신의 딸까지 놓지 않으려는 오이디푸스에게 크레온은 차갑게 말한다. "모든 것을 지배하려 하지 마십시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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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 블랙 쇼맨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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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녹나무의 파수꾼>을 흥미롭게 읽지 못했다. 해서 내 취향과는 거리가 있나 보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작가님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기사를 읽고 나서, 무작정 한 권을 골랐다. 빨간 표지와 상상력을 자극하는 제목...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이번에도 성공(?)하지 못했다.


"앞뒤가 맞는다고 꼭 정답이란 법은 없지"/ 290쪽



형의 죽음을 직접 추리해 가는 다케시의 모습은 매력적이지 않았지만, 그가 우문현답처럼 내놓은 말은, 마치 이 작품을 읽으며 내가 느낀 마음을 정확히 표현한 것 같아 놀랐다.중학교 교사이자 마을에서 존경 받던 마요의 아버지가 살해당했다.경찰이 기동력 있게 추리해 나가야 겠으나.갑자기 나타난 동생이 완벽에 가까운 추리를 진행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완벽함을 선호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부연 설명이 많은 것처럼 느껴질때마다 피로감이 느껴졌다.그럼에도 범인이 누군인지,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 알고  싶어서 끝까지 읽어낼 수 있었다. 주기적으로 언급된 단어가, 스모킹 건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속단 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은 돈이 문제였던 걸까.라고 생각한 순간, 표절이란 문제가 언급되서 놀랐다. 조금은 뜬금없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런데 우리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들로 세상에 좋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걸 수없이 목격하고 있으니,뜬금없는 상황이 아닐수도 있겠다. 범인이 밝혀지는 과정도, 살해이유도, 범인을 추리하는 과정과 비교하면 너무 간단하게 정리된 것도 아쉬웠다.  자신의 성공과 비밀을 지키기 위해 스승을 살해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더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심리적인 주제로 접근하는 방식을 선호하다보니,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에 섭섭함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누가 왜 죽였는가를 알게 되었을 때의 느낌보다, 이 소설의 에필로그를 더 인상적으로 읽은 기분이다. 겐타의 민낯은 미처 거기까지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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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파버 을유세계문학전집 113
막스 프리슈 지음, 정미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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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비극의 현대적 부활" 이 한 문장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호기심을 자극해서' 구입(만) 하고 오랫동안 묵혀두었더랬다. 호기심과는 별개로 잘 읽혀지지 않았던 것 같은 기억..(오류일수도 있겠으나...) 무튼 8월 연극 오이디푸스왕을 예매해 두고 보니,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읽기에 앞서 이 책을 먼저 읽어 보고 싶어졌다.


운명도 숙명도 믿지 않는 발터 파버는 모든 것을 수학과 확률 그리고 과학적으로만 상대를 바라본다.그런데 그가 부정(?)하고 픈 '운명' 과 '숙명'이 꼬리표처럼 그를 따라온다. 비행기안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남자는 자신이 알고 있었던 남자의 동생이었다. 그를 통해 한때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가 그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고 친구를 찾아 가지만, 그는 이미 목숨을 끊은 상태다.20년 전 사랑했던 여인의 딸과 우연히 사랑에 빠지게 된다(자신의 딸을 알아보지 못하고 사랑하는 오이디푸스적 비극을 맞는다) 당연히 한나의 딸 자베트가 자신의 딸일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나서야 한나의 딸이란 사실도, 자신이 그의 아버지란 사실을 알게 되고 충격을 받는다. 다시 그는 왜 운명을 믿지 않는 사람이 되었을까? 모든걸 과학적으로 이해하려는 남자. 그가 이성적으로 생각하려고 한 건 역설적으로 자신의 과거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몸부림이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을 감추기 위해, 가면을 쓰고 살아가기 위한 몸부림..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인생은 그렇게 계획한대로 흘러가주지 않는 다는 사실을...


소설은 파버의 처절한 파멸을 통해 인간의 원죄를 묻는다.이성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비겁한 무지는 결국 소중한 자식을 파멸로 이끌고 말았다. 읽는 내내 불편했다. '오이디푸스 왕' 보다 더 '숙명'이란 올가미가 크게 느껴져서..그런데 '원죄'라는 단어를 곱씹어 볼수록 단순히 신화를 새롭게 오마주한 것이 아니라,세상을 방정식으로만 정리하려는 남자에게 그것은 결코 정답이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싶었던 건 아니였을까 생각했다. 숙명이나, 운명이나 믿지 않는 다는 말 속에는, 그 속에서 자신이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였을까?  현실을 마주하기보다 가면 속에 숨어 살고 싶었던 열망이 결국 그를 더 고통스러운 삶으로 이끌었다는 느낌을 받았다.파버는 세상을 방정식으로 통제하려다 비극을 맞았다.순리대로 살아간다는 건,무언가를 체념하거나 핑계를 대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고,오만한 마음을 내려놓는 것..어느 때 보다 더 필요한 마음이 아닐까 싶다. 이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다시 읽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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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마거릿 애트우드 외 지음, 남명성 옮김 / 비채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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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관심을 두었던 소설은 아니었다.'스콧 터로' 의 소설을 마침 재미나게 읽고 난 후라, 반가운 마음에 골랐다. 당연히 소설집인 줄 알았다. 방대한 분량이라, 스콧 터로의 이야기부터 골라 읽어봐야지 생각했는데..맙소사!! 여러 명의 작가들이 마치 하나의 목소리를 내듯 써내려간 이야기였다. 편집자의 능력도 있었을게다.그러나,한명의 작가가 썼다고 해도 나는 의심하지 않았을 것 같다. 도저히 서로 다른 작가들이 써내려간 소설이란 느낌을 받을수 없었다. 간혹 흥미가 덜한 에피소드가 그려지기도 했지만,테피스트리가 떠올랐다.서로 다른 색깔이 모여,하나의 멋진 작품이 완성된 모습.


코로나 시절이 언제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 만큼 벌써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지금, 소설은 다시 그 시간으로 독자를 불러왔다. 소설의 제목이 '14일' 인 이유가 바로 생각났다.거리두기 라는 사회적 제약이 단지 서로를 위한 최선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고 해야 할까.. 낡은 아파트에 사는 이들은 답답한 감금에서 숨을 쉬고자 옥상으로 올라온다. 그리고 각자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순간 단테의 <신곡>이 생각났다. 그 시절 나도 읽어보려 시도했고, 읽다가 포기했던 기억이 나서.. 그런데 아파트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는 가짜 같은 가짜..가짜 같은 진짜..이야기가 그려진다. 자연스럽게 인종차별, 빈부격차, 젠더 갈등,이민자문제 등등..타인의 입을 통해 나의 슬픔을 보고 나의 이야기를 통해 타인의 고통을 이해받는다. 


옥상이라는 열린 공간에서 목소리를 나누며 살아있음을 느꼈을 것이다.바이러스가 우리를 단절 시켰던 그 순간에도 우리는 알게 모르게 연결되어 있었던 셈이다. 스콧 터로 소설 매력에 빠져 한 편 더 읽어 보려고 골랐다가,수많은 이웃의 목소리를 들었다.무엇보다 서로 다른 색깔의 작가들이 하나의 멋진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경이를 표하고 싶어졌다. 코로나 시절을 겪지 않았다면, 조금은 작위적인 구성이라는 느낌을 받았을 테지만,그 시절을 함께 겪어온 입장에서 지금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계속 생각했다. 다른 어느 때보다 경청과 공감이 필요한 시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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