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이 무식하게 미치광이와 건강한 사람을 구별하지 못해서 수십,수백 명의 광인들이 자기 맘대로 거리를 나돌지 않소.도대체 왜 나와 여기 이 불쌍한 사람들만이 속죄양처럼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이곳에 갇혀 있어야 하는 거요? 당신,보조의사,사무장,그리고 당신 병원의 모든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도덕적인 태도에 있어서 여기에 있는 우리보다 훨씬 더 나쁜데 도대체 왜 우리는 이곳에 갇혀 있고 당신들은 그렇지 않은 거요? 무슨 논리가 그렇소? '6호병동',160쪽 틈틈히 체홉의 단편을 읽고 있는 중에, <체호프의 문장들>을 만났다. 반가움에 마음 가는 대로 찾아 문장을 음미하는 중이다. '6호병동' 속 문장을 보는 순간 웃픈 마음도 들고, 위로가 되기도 하고..그랬다. 아직 읽지 않은 '6호병동'인가..생각하며 읽어야지 했더니..2002년 3월7일 읽었다는 기록이 선명하다^^
체홉의 단편을 한편씩 읽고 있다. <자고 싶다>에 실린 이야기 가운데는 이미 읽은 것도 있고, 처음 만나는 이야기도 있다.그 가운데 인상적인건 '자고 싶다' 와 '6호 병동' 이라고 말하고 싶다.(물론 다른 단편들도 전혀 아쉬운 이야기란 뜻은 아니다^^) 특히 '6호 병동'은 분량이 제법 되어서 일수도 있겠지만 멈추는 지점이 많았다. 답답하면서도 공감이 가고...그래서 잘 살아간다는건 애초에 불가능하기만 한 걸까 싶은 질문으로 부터 자유롭지 못했다.."삶은 참으로 성가신 덫입니다.생각할 줄 아는 인간이 성숙함에 이르러 제대로 판단하게 되면서 자신이 출구 없는 덫에 걸려 있다고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82쪽 이런저런 고민에 봉착하는 순간 차라리 생각을 하지 않는 삶이 편안한 삶인 걸까...라는 바보 같은 생각도 하게 되고. 다시 소설 이야기로 돌아와 보면, 처음에는 정신병동 사람들의 이야기인줄 알았다. 자신을 옥죄는 불안으로부터 해방되지 못한 인물(이반 드미트리치) 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병동을 책임지는 의사가 등장한다. 처음에는 그의 성격이 특별히 드러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는데..이반이란 인물과 대화를 하게 되면서 의사는 자신이 하고 있었던 고민의 본질을 알아가게 된다. (그걸 눈치(?)챈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그를 정신이상자로 모는건 당연한 수순이되고 만다) 그래서 두 사람의 대화는 매 순간 흥미롭다. 정신병원에 갇힌 남자의 논리는 철학의 존재를 매순간 부정하고,의사는 그럴때마다 이성을 앞세운 철학의 논리를 주장한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의사의 논리가 공허하게 다가온다.인간의 평화가 내면에서 부터 있어야 한다는 건 너무 잘 알고 있는 말임에도 불구하고..그 생각조차 이반은 뒤집는다.정신병자의 궤변이라고만 생각할 수 없었던 이유는,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가면 밝혀(?)진다. 아니 안드레이가 비로서 깨닫게 된다.고통으로 몸부림치며 살아가는 이에게 지성의 사고라는 것이 늘 옳고 바른 길잡이가 될 수 만은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여기 이 사람들 달빛 아래 검은 유령처럼 보이는 이들은 바로 이런 고통을 몇 년 동안 날마다 당해왔으리라는 생각이었다.20년 넘는 세월 동안 어떻게 이걸 몰랐을까? 어떻게 알려고 하지조차 않았을까? 그는 고통을 몰랐고 그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했으니 죄가 있다고는 할 수 없었다.하지만 양심이 마치 니키타처럼 완고하고 거친 양심이 그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서늘하게 만들었다"/141쪽 '생각 하는 인간' 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오히려 더 많은 두려움과 마주해야 하는 거라면...생각을 멈춰야 하는 것이 옳은가. 그래서 니키타처럼 사는 게 더 편안 삶일까... 소설을 읽는 내내 함정 같은 질문 속에 빠져 정신차리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니키타처럼 살고 싶지는 않은데....
'6호병동'에 관한 감상을 읽으면서,어떤 내용이었는지 떠올랐다. 기억을 하지 못했다는 것도 그렇지만, 가슴에 콕 와서 박히는 문장이,다시 체홉의 '6호병동'을 읽어 보라 권유하는 것 같다. 이번에는 열린책들에서 나온 버전으로 읽어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