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십 년 동안 아니 그보다 더 오랫동안 나는 이 경이로운 이야기를 다시 읽고 또다시 읽게 되는데 그 이야기란 안톤 체호프가 스물일곱 살에 쓴 <입맞춤>이라는 짧은 소설이다"/ 73쪽  

체홉의 단편을 애정하는 1인이다. 해서 틈틈히 한 편씩 읽고 있는 중인데, '입맞춤' 이야기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관찰'가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지 궁금했는데, 내가 쓸 독후기에도 '관찰' 이란 시선이 있어 우선 반가웠다.


키스가 부린 마법 효과(?)가 강렬했다. 조금 웃프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소심한 랴보비치는 군인정신이 아주 강건한 인물은 아니었나 보다. 소심해서,사람들 무리에 섞이기 보다는 주변을 머물며 관찰하는 것을 선호한다.자신에대한 컴플렉스가 그를 짓누르고 있는 탓이다. 그런데 느닷없는 반전이 그에게 찾아왔다. 낯선 여인이..랴보비치를 자신의 애인으로 착각하고 키스..를 하게 된거다. (그런데 그녀가 착각을 한 것인지..랴보비치를 놀리려고 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무튼 이후 그는 정체 모를 여인의 키스 덕분에..기분 좋은 상상을 하게 된다.비록 그녀를 찾을 수 없게 된 건 아쉽지만..자신의 마음대로 이미지를 만들고..행복한 모습을 상상하게 되더니...이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을 거란 철학적(?) 사고까지 하게 된다...키스가 그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었다고 해야 할까... "지금 내가 꿈꾸는 것들 이땅에서 일어날 수 없는 모든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본질적으로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야.이 모든 것은 지극히 평범하며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야.이를테면(...)살마노프는 무례한 데다 전형적인 타타르인지만 연애해서 결혼을 했어.....나 역시 그들과 같은 사람이며 언젠가는 모두가 겪는 일을 겪게 될 거야.."/189쪽 진짜 사랑의 키스를 한 것도 아닌데도,이렇게 자신감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 조금 웃프긴 했지만..뭔가 터닝포인트가 될 만한 자극제가 되었다면 그걸로..도 좋지 않니한가..생각했다. 여전히 자신의 운명에 맞서기에는 벅차보이지만...여인의 키스가 그에게 기분 좋은 마법을 부렸다고 믿고 싶다.^^










"<입맞춤>은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이며, 이야기의 정의 중 하나가 이야기란 원래 더 많은 이야기를 불러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야기는 이야기 생산자다.먼저 체호프의 단편소설이라는 형태의 이야기가 있고 라보비치에게 툭 하고 떨어진 별개의 사건이 있고 그 사건을 생각하며 랴보비치가 지어내고 상상하고 상상하다 실패해서 결국 말하지 못한 수만 가지 이야기가 있다.어떤 한 가지 이야기도 그 이야기 하나만으로 그 속에 있는 이야기를 전부 설명할 수가 없으며 이 이야기의 핵심에 놓여 있는 수수께끼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79쪽


'낯선여인의 키스'를 읽으면서 랴보비치의 소심함이, 키스 덕분에 컴플랙스를 조금은 극복하게 된 건 아니였을까 상상하며 읽었는데,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를 읽으면서 남자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관찰'을 하다보면 어느덧 상상하게 되고,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게 될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솔 벨로(포크너도 읽었고, 헤밍웨이도 읽었으니까^^) 의 책들을 읽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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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작품을 읽어가면서, 어는 순간 마지막으로 읽게 될 책은 성경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혼자만의 생각인 줄 알았는데, 제임스 우드선생의 글을 읽으면서 격하게 공감했고, 반가웠다.


(...)내가 소설을 사랑해왔고 지금도 사랑하는 이유는 종교적인 텍스트와 근접하면서도 최종적으로 다르다는 점이었다. 소설에서의 진실은 언제나 믿음의 문제이고 그곳을 검증하고 확인하는 것은 독자에게 달렸다. 우리는 믿으라는 요청을 받지만 언제라도 그 요청을 자유롭게 거부 할 수 있다. (...)소설에서의 믿음은 은유적 믿음이며 실제 믿음과 유사할 뿐이다(..)종교에서는 위험이 되는 바로 그것이 소설에서는 근본 구조가 된다/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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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작가들이 존경받을 만한 인간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 불경스럽고 과격하고 시끄럽고 외설적인 인간들이라는 사실에서 오는 은밀한 즐거움이 있었다"/41쪽


"허구는 모든 허구적인 삶을 두 배로 더한다. 즉 우리가 다른 누군가 안에서 자유를 목격한다는 것은 또 하나의 친구를 갖게 된다는 뜻이고 타자의 신뢰 속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우리는 공유하는 동시에 캐묻는다"

(....)

소설을 읽는다는 건 때로는 지나친 사생활 침해처럼 느껴지는데 허구의 인물이 지키지 못한 사생활을 훔쳐보고 있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43쪽









함순작가님을 꼬집어 이야기한 건 (물론) 아니다. 며칠전 노벨문학상 관련 이야기를 접하면서 당혹스러워..궁금해진 작가였다.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걸 예감이라도 한 걸까.. 무튼 얼마전 읽은 몸선생의 '달과 6펜스'를 읽으면서도 불편했던 마음, 작가와 작품이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감안할 정도의 인내는 내게도 있다. 은밀한 즐거움까지는 모르겠고.. 뉴스를 접하기전까지 이름도 몰랐던 작가의 이름을 이렇게 다시 만나고 보니 한 권이라도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물어 보고 싶은게 많은 작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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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제목은 <고장 난 영혼> 인데 소제목은 '벗겨진 베일' 과 '제이컵 형' 이다. 아직 '벗겨진 베일' 만 읽었으니, 서로 다른 이야기인 동시에 교집합도 있을테지만.. 나는 '벗겨진 베일' 이란 제목 때문에 계속 몸선생의 <인생의 베일>이 떠올랐다. 물론 제목만.. 너무 오래전에 읽은 터라 세세한 줄거리가 기억나지 않았다. 



고통으로 가득한 세상에 잠깐 머물렀다가 가는 신세로도 모자라 자신을 고문하다니 인간은 얼마나 딱한 존재인가? /238 쪽


즐겨듣는 라디오 프로에서 '인생의 베일'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몇 해 전 읽은 터라 반가웠다.그리고 궁금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놀랐다.'콜레라'에 대한 언급이라니...마침 메르스로 인해 바이러스에 대해서도 알아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콜레라에 대한 설명을 통해 자연스럽게 '감염병과 인문학' 에 대한 책의 소개까지 이어졌다. 다시 '인생의 베일'을 읽어야 겠다고 생각했다.'인생의 베일'을 처음 읽었을  때 사랑의 열병에 힘겨워 하는 그녀(키티)에게만 정신을 집중했던 것 같다. 그녀 남편(월터)의 직업이 세균학자였다는 사실도,그가 콜레라에 감염되어 죽었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읽을 당시에는 퍽 깊은 생각을 하며 읽은 것 같았는데 기억에 남는 것이 이렇게 없을 줄이야.그런데 다시 읽으면서 알게 된 점은 그녀(키티)에 대해서도 굉장히 표피적으로 밖에 읽지 않았구나 라는 사실이다.사랑하지 않는 남편과의 갈등,진정한 사랑을 찾아 몸부림 치고 싶어하는 여인에 대한 연민 혹은 공감보다,우리는 고통 없이 진실을 바로 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이 없는 것일까?에 대한 야속한 원망이 앞섰던 것 같다.해서 키티의 인생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나는 기억하지 못햇던 것이다.부끄럽게도.삶의 고통없이 진실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이야 물론 행복(?)하겠지만(행복할까?..잘모르겠다.) 현재로선 행복할 것이라 믿고 싶겠지만,콜레라 처럼 예고하지 않는 고통이 내 앞에 찾아왔을때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키티처럼 상황을 마주하고 해결하고,이겨낸다면 이후 만나게 될 성숙이란 이름은 또 얼마나 멋진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런면에서 월터의 삶이란 얼마나 비극적이고 슬픈것인지...키티 보다 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처럼 보였던 월터의 모습은 그래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인생에 대해 전혀 진지할 것 같지 않았던 키티,인생을 퍽 이성적으로 바라 보았던 월터.그러나 고통(콜레라)이 각자의 삶을 후벼팠을 때 대하는 방식은 정반대였다.  (2015년 나의 독후기를 읽으면서, 줄거리가 기억나지 않았다는 건 놀랍지 않았으나, '벗겨진 베일'에서 비슷한 감정이 읽혀진 것이 신기했다. 타인의 의식을 읽을 수 있는 것이 래티머에게는 불행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다. 다시 <인생의 베일> 을 읽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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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단어를 기계적으로 암기할 뿐 의미로 익히지 않는다.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우리 생명의 피로 값을 치러야만 하며 그 의미는 우리 신경의 섬세한 가닥에 새겨져야 한다/81쪽 ‘벗겨진 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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