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덕분(?)에 일년 전 <오직, 그림>을 읽겠다 약속했던 사실을 알았다. 냉큼 도서관에서 빌려와 휘리릭 페이지를 넘겨 눈에 들어온 그림...을 보는 순간, 나는 컵이 마치 화가 난, 혹은 어떤 감정을 표현하는 것으로 읽혀져서 피식 웃음이 났다. 이 그림을 설명한 제목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사물을 사유하게 만드는 그림'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의 이름을 검색해 보고 한 번 더 놀랐다. 아니, 비로서 '희생양' 이란 그림을 그린 이유도 알겠다. 화가의 신분이 수도였던 거다.
주제 사라마구의 <카인>을 읽으면서 표지 작품이 궁금해서 당시에도 아마 화가 이름을 검색해 보게 되었고..그러다 르네 지라르의 <희생양>도 읽어 보겠노라.. 했던 것 같은데. 아직까지 르네선생의 <희생양>은 읽지 못하고 있다. '컵 속의 물과 장미' 그림과 '하나님의 어린양'은 같은 화가의 그림이란 생각을 하기 쉽지가 않다.그런데 굳이 컵 속..의 정물화를 그린 화가의 신분이 수도사라는 설명 때문이 아니라, 그림에서 어떤 분위기가 느껴지는 건 분명하다. 저자의 설명대로라면 고요함,시선의 깊이일텐데..나는 사물들의 개별성을 드러내는 느낌에 한표를 주고 싶다. 아무리 봐도 컵의 표정에서 사람의 감정이 읽혀져서... 이제 화가와 이 그림에 대한 해석을 들어 볼 차례다.
"세비야를 활동무대로 삼은 수도사이기도 했던 화가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은 특히 종교화와 정물화로 명성을 얻었다.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은 그는 깊이 있는 사실주의와 단순한 구도 및 색채와 결합된 조각적 형태를 명확하게 구현하고 있다. 그의 정물은 정지된 사물 이상의 것으로서 마치 명상에 의해 존재의 신비를 꿰뚫는 것처럼 보인다(...)"/80쪽
"컵에 담긴 깨끗한 물은 정화를, 레몬은 부활절을 장미는 성모마리아를 상징한다.이 그림은 마리아를 기원하며 자신의 죄를 사하여달라는 뜻이다. 매우 고요하고 정적이지만 우리의 모든 감각이 일깨워진다"/82쪽
설명대로라면 나는 완전한 오독을 했다. 변명하자면, 그림 속 정물들의 상징을 알 수 없고(종교인이라면 알았을까..) 내 눈에 그림 속 레몬도 보이지 않았다.(보였다고 달라지지도 않았을 게다..) 내 시선을 사로 잡은 건 결연한 느낌으로 전달 된 '컵의 표정' 일 뿐. 그런데 예술에서 '사물' 이란 것이 기꺼이 오독으로 읽혀져도.,.읽혀질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받은 기분이다. 화가 수르바란의 의도는 알 수 없겠지만 말이다.
"이 그림은 사물에 대한 작가의 애정 어린 시선과 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사물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일상과 감각에 대한 단호한 몰입을 말한다. 이 그림은 더없이 감각적이도 촉각적이다. 한 개인의 눈과 몸, 감각에 신경이 집중된 이미지다. 그래서 보는 이의 망막에 와닿는다. 그러는 순간 우리 몸은 거대한 더듬이가 되어 저 사물의 관능적인 피부 위에서 조심스럽게 떨린다"/8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