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이다지도 슬픈데, 주여 바다는 너무나 파랗습니다" 일본 체류 시절 무엇에 홀리듯 나가사키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 때문이었다" /149쪽 엔도 슈사쿠의 소설을 처음 읽은 것이 2023년이다.나는 무엇에 홀린듯 사무라이(전혀 나와 거리가 먼 듯한 제목^^) 를 골랐고.. 읽었으며...심지어 너무 흥미롭게 읽혀 다른 작품을 연이어 읽었더랬다. <침묵>만 읽지 않았는데.. '그리고 한 문장...'에서는 <침묵>을 소개하고 있다. 인간은 이다지도 슬픈데..라는 문장을 만나기 위함이었을까...



생각해 보니까..세 권을 읽고 나서 <침묵>도 읽어야지 하고 생각했던 것 같긴 하다. <사무라이> 독후감에 기록된 메모가..오늘 내게 한 문장으로 남았다고 기록해야 할 것 같다.


"인간이라는 것은 언제까지고 왜 이렇게 추하고 이기적인 것일까?"/260쪽












"에도시대 초기,소토메는 끔찍한 고난의 장소였다.가톨릭을 믿었던 사람들은 이곳에서 잔혹하게 고문당하고 처참하게 죽어갔다.그들은 바다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대기를 찢는 비명에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는 신을 원망했을까?누구도 알 수 없다.엔도 슈사쿠의 대표작 <<침묵>>은 바로 이때 이야기다"/149쪽


2023년에 읽지 못했던, 아니 잊고 있었던 <<침묵>>을 읽어야겠다. 에세이와 함께 읽어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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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에 대한 정리를 받고 싶어 이 책을 고르게 된 걸까.. 요즘 '작가들의 말'에 관한 책을 찾아 읽다 자연스럽게 <그리고 한 문장이 남았다>까지 왔을 뿐인데...책에 대한 이야기 보다, 우리나라 '보수'에 대한 생각을 읽으며,울컥 했다. 시인은 보수의 품격이 오는 날에 대해, 요원하다 생각했는데.나는 탄핵의 시간이,보수와 우익으로 정리가 되는 마중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진정한 보수의 품격을 경험하지 못했으니까...


한국에서 보수는 때 묻은 단어다. 의무를 저버린 채 사익을 추구한 세력,지역 감정을 조장하고 개발에 따른 부와 기회를 독점한 세력,인권 탄압에 가담한 세력,이들이 보수라는 브랜드를 걸치면서 한국에서 제대로 된보수와 진보의 대결은 태어나지도 못한 채 사라져 버렸다. 대결이 없으니 진보 역시 수구화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한국에서 보수의 품격과 진보의 참신함을 볼 수 있는 날이 올까 요원한 일이다/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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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첫 장면에서 벽에 총이 걸려 있다면 마지막에는 반드시 발사돼야 한다"/149쪽 '반드시'라는 표현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재미나게 보았던 일본 영화 '드라이브 마이카'에는 반복적으로 체홉의 희곡 '바냐 외삼촌'이 나온다. 오마주처럼...체홉의 저 말이 힌트가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깐..무튼 다음부터 체홉의 작품을 연극으로 볼 기회가 오면,유심이 지켜봐야 겠다.^^


그리고 톨선생과 도선생과 체홉에 대한 시선에 공감할 수 있어 반가웠다. 집착에 가까웠던 '교양'이라고 해도 왠지 수긍하고 싶어지는 마음^^

체호프의 희곡에서는 무대 위의 모든 물건이 극의 내용에 중요한 역활을 하며 관객이 극을 더 깊이 이해하도록 돕는 도구로 존재한다.연극의 첫 장면에서 책상 위에 꽃병이 놓여 있다면 언젠가는 그 꽃병이 반드시 중요한 역활을 하게 된다(...)/149쪽

체호프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 보면 ‘교양‘이라는 주제에 대해 집착이라고 할 정도로 깊이 고민했음을 발견할 수 있다.그는 유럽식 교양과 러시아식 교양을 비교하거나 교양이란 무엇인지 고민했다/153쪽

체호프는 지금도 러시아에서 ‘우아하고 세련된 작가‘로 인식된다.그는 완벽함을 추구하고 교양을 강조하면서도 유럽의 세련됨과 러시아의 독특함을 아름답게 묘사했다고 평가받는다.이는 인생의 의미와 종교적 문제를 탐구한 톨스토이,인간의 어두운 면과 사악한 마음을 드러내기 좋아하는 도스토옙스키와는 차별화되는 부분이다/1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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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이 무식하게 미치광이와 건강한 사람을 구별하지 못해서 수십,수백 명의 광인들이 자기 맘대로 거리를 나돌지 않소.도대체 왜 나와 여기 이 불쌍한 사람들만이 속죄양처럼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이곳에 갇혀 있어야 하는 거요? 당신,보조의사,사무장,그리고 당신 병원의 모든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도덕적인 태도에 있어서 여기에 있는 우리보다 훨씬 더 나쁜데 도대체 왜 우리는 이곳에 갇혀 있고 당신들은 그렇지 않은 거요? 무슨 논리가 그렇소? '6호병동',160쪽 틈틈히 체홉의 단편을 읽고 있는 중에, <체호프의 문장들>을 만났다. 반가움에 마음 가는 대로 찾아 문장을 음미하는 중이다. '6호병동' 속 문장을 보는 순간 웃픈 마음도 들고, 위로가 되기도 하고..그랬다. 아직 읽지 않은 '6호병동'인가..생각하며 읽어야지 했더니..2002년 3월7일 읽었다는 기록이 선명하다^^


체홉의 단편을 한편씩 읽고 있다. <자고 싶다>에 실린 이야기 가운데는 이미 읽은 것도 있고, 처음 만나는 이야기도 있다.그 가운데 인상적인건 '자고 싶다' 와 '6호 병동' 이라고 말하고 싶다.(물론 다른 단편들도 전혀 아쉬운 이야기란 뜻은 아니다^^) 특히 '6호 병동'은 분량이 제법 되어서 일수도 있겠지만 멈추는 지점이 많았다. 답답하면서도 공감이 가고...그래서 잘 살아간다는건 애초에 불가능하기만 한 걸까 싶은 질문으로 부터 자유롭지 못했다.."삶은 참으로 성가신 덫입니다.생각할 줄 아는 인간이 성숙함에 이르러 제대로 판단하게 되면서 자신이 출구 없는 덫에 걸려 있다고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82쪽 이런저런 고민에 봉착하는 순간 차라리 생각을 하지 않는 삶이 편안한 삶인 걸까...라는 바보 같은 생각도 하게 되고. 다시 소설 이야기로 돌아와 보면, 처음에는 정신병동 사람들의 이야기인줄 알았다. 자신을 옥죄는 불안으로부터 해방되지 못한 인물(이반 드미트리치) 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병동을 책임지는 의사가 등장한다. 처음에는 그의 성격이 특별히 드러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는데..이반이란 인물과 대화를 하게 되면서 의사는 자신이 하고 있었던 고민의 본질을 알아가게 된다. (그걸 눈치(?)챈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그를 정신이상자로 모는건 당연한 수순이되고 만다) 그래서 두 사람의 대화는 매 순간 흥미롭다. 정신병원에 갇힌 남자의 논리는 철학의 존재를 매순간 부정하고,의사는 그럴때마다 이성을 앞세운 철학의 논리를 주장한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의사의 논리가 공허하게 다가온다.인간의 평화가 내면에서 부터 있어야 한다는 건 너무 잘 알고 있는 말임에도 불구하고..그 생각조차 이반은 뒤집는다.정신병자의 궤변이라고만 생각할 수 없었던 이유는,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가면 밝혀(?)진다. 아니 안드레이가 비로서 깨닫게 된다.고통으로 몸부림치며 살아가는 이에게 지성의 사고라는 것이 늘 옳고 바른 길잡이가 될 수 만은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여기 이 사람들 달빛 아래 검은 유령처럼 보이는 이들은 바로 이런 고통을 몇 년 동안 날마다 당해왔으리라는 생각이었다.20년 넘는 세월 동안 어떻게 이걸 몰랐을까? 어떻게 알려고 하지조차 않았을까? 그는 고통을 몰랐고 그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했으니 죄가 있다고는 할 수 없었다.하지만 양심이 마치 니키타처럼 완고하고 거친 양심이 그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서늘하게 만들었다"/141쪽 '생각 하는 인간' 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오히려 더 많은 두려움과 마주해야 하는 거라면...생각을 멈춰야 하는 것이 옳은가. 그래서 니키타처럼 사는 게 더 편안 삶일까... 소설을 읽는 내내 함정 같은 질문 속에 빠져 정신차리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니키타처럼 살고 싶지는 않은데....











'6호병동'에 관한 감상을 읽으면서,어떤 내용이었는지 떠올랐다. 기억을 하지 못했다는 것도 그렇지만, 가슴에 콕 와서 박히는 문장이,다시 체홉의 '6호병동'을 읽어 보라 권유하는 것 같다. 이번에는 열린책들에서 나온 버전으로 읽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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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삼암돈대에서 마주한 풍경이다. 분명 풍평을 보고 있는 거라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사람이 보였고, 밀림 속에 있는 모습이 저와 같지 않을까 상상하며 스마트폰에 담아 놓았던 사신을 다시 소환하게 되는 일이 생겼다.^^



체홉 소설에서 언급된 화가의 그림을 찾아볼 생각으로 검색하다가 깜짝 놀랐다. 강화도에서 본 풍경과 닮은 그림을 만나게 될 줄이야.. 체홉 소설에 소개된 그림은 정작 찾아 보지 못했지만, 화가 이름을 검색하게 된 덕분에..내가 본 풍경과 닮은 그림을 만났다. 











"5등 문관 샤라므이킨의 객실은 기분 좋은 어스름 속에 잠겨 있다. 녹색 갓을 씌운 커다란 청동 램프는 벽에 걸린<우크라이나의 밤>과 가구와 사람들의 얼굴에(...)"/43쪽 (역,러시아의 풍경화가 아르히프 쿠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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