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작가들이 존경받을 만한 인간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 불경스럽고 과격하고 시끄럽고 외설적인 인간들이라는 사실에서 오는 은밀한 즐거움이 있었다"/41쪽


"허구는 모든 허구적인 삶을 두 배로 더한다. 즉 우리가 다른 누군가 안에서 자유를 목격한다는 것은 또 하나의 친구를 갖게 된다는 뜻이고 타자의 신뢰 속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우리는 공유하는 동시에 캐묻는다"

(....)

소설을 읽는다는 건 때로는 지나친 사생활 침해처럼 느껴지는데 허구의 인물이 지키지 못한 사생활을 훔쳐보고 있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43쪽









함순작가님을 꼬집어 이야기한 건 (물론) 아니다. 며칠전 노벨문학상 관련 이야기를 접하면서 당혹스러워..궁금해진 작가였다.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걸 예감이라도 한 걸까.. 무튼 얼마전 읽은 몸선생의 '달과 6펜스'를 읽으면서도 불편했던 마음, 작가와 작품이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감안할 정도의 인내는 내게도 있다. 은밀한 즐거움까지는 모르겠고.. 뉴스를 접하기전까지 이름도 몰랐던 작가의 이름을 이렇게 다시 만나고 보니 한 권이라도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물어 보고 싶은게 많은 작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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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 난 영혼
조지 엘리엇 지음, 박희원 옮김, 김선옥 해설 / 아고라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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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라 가능(?)한 이야기라 말하고 싶어진 이유는,제임스 우드의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덕분이다. '벗겨진 베일' 에서 남자는 타인의 의식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고백한다. 자신에게 다가온 종말의 시간까지 예감 할(?) 수 있는 남자.. 시간은 과거로 넘어간다. 포크너의 <고함과 분노>가 이렇게 소환될 줄이야..(이야기 자체가 닮았다는 건 물론 아니다) 보수적이고 완고한 아버지는 장남에게 절대적인 기대를 갖고 있다. 차남인 동시에 나약해 보이는 이유로 아버지 관심 밖이다. 그런데 그에게는 타인의 속마음을 들여다 보는 능력이 있다. 물론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사람이 갖고 있는 이중성에 대해 예민한 감각을 가졌다고 해야 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유독 그가 읽어낼 수 없었던 건 '사랑'에 대한 마음이었다. 읽어낼 수 없어서 오히려 더 집착했던 걸까.. 아니면 정말 사랑에 대한 마음을 품었던 걸까.. 


"아버지를 향한 감정이 누그러졌던 이 시기는 유년 시절 이후로 내가 경험한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 몇 달간의 이 시기에 나는 버사가 애정을 품은 존재라는 환상.그녀가 어쩌면 나를 사랑하리라고 갈망하고 의심하고 희망하는 감미로운 환상을 간직했다"/69쪽


래티머에게 찾아온 능력은 어쩌면 애정결핍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였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사랑하는 마음 보다 의심하는 마음이 크다. 그럼에도 유독 버사의 마음만은 읽어낼 수가 없어 괴롭다고 고백하던 래티머. 사랑을 받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사랑하는 마음을 알지 못했던 건 아니였을까, 형의 갑작스러운 사고가, 그에겐 오히려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고백은 그래서 섬뜩하다.




"(..) '왜' 라는 질문이 소설의 형식 안에서 자주 소환되는 이유는 소설이 삶의 평범한 순간을 환기하는 데 능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마무리되고 완성된 삶의 형식을 단호하게 주장하는 데도 역시나 능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읽고 있는 인물들은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반드시 죽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그들이 죽는 이유가 작가가 그들을 죽게 만들어서다(...)"/68쪽


두 책을 함께 읽게 된 건 아무리 생각해도 기쁜일 이다. 솔직히 말하면 소설을 애정하는 입장에서 <인생에 가장 가까은 것>은 옆에 두고두고 읽게 될 책이기도 하다. 비단 조지 엘리엇 소설과의 인연으로 끝나지 않을 거란 확신. <고함과 분노>를 읽으면서 '왜'라는 질문을 집요했다는 사실이 떠올라 반가웠다. 의식의 흐름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계속 질문을 해야 할 것 같았다.몰락하는 가문 보다 몰락하는 사람들이 더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그런데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에서 왜..라는 질문을 해야 하는 이유도, 작가들이 '죽임'을 만들어 놓는 이유도,큰 그림이란 사실을 이해했다. '벗겨진 베일'에서 형의 죽음과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비로소 래티머가 알게 되는 것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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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제목은 <고장 난 영혼> 인데 소제목은 '벗겨진 베일' 과 '제이컵 형' 이다. 아직 '벗겨진 베일' 만 읽었으니, 서로 다른 이야기인 동시에 교집합도 있을테지만.. 나는 '벗겨진 베일' 이란 제목 때문에 계속 몸선생의 <인생의 베일>이 떠올랐다. 물론 제목만.. 너무 오래전에 읽은 터라 세세한 줄거리가 기억나지 않았다. 



고통으로 가득한 세상에 잠깐 머물렀다가 가는 신세로도 모자라 자신을 고문하다니 인간은 얼마나 딱한 존재인가? /238 쪽


즐겨듣는 라디오 프로에서 '인생의 베일'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몇 해 전 읽은 터라 반가웠다.그리고 궁금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놀랐다.'콜레라'에 대한 언급이라니...마침 메르스로 인해 바이러스에 대해서도 알아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콜레라에 대한 설명을 통해 자연스럽게 '감염병과 인문학' 에 대한 책의 소개까지 이어졌다. 다시 '인생의 베일'을 읽어야 겠다고 생각했다.'인생의 베일'을 처음 읽었을  때 사랑의 열병에 힘겨워 하는 그녀(키티)에게만 정신을 집중했던 것 같다. 그녀 남편(월터)의 직업이 세균학자였다는 사실도,그가 콜레라에 감염되어 죽었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읽을 당시에는 퍽 깊은 생각을 하며 읽은 것 같았는데 기억에 남는 것이 이렇게 없을 줄이야.그런데 다시 읽으면서 알게 된 점은 그녀(키티)에 대해서도 굉장히 표피적으로 밖에 읽지 않았구나 라는 사실이다.사랑하지 않는 남편과의 갈등,진정한 사랑을 찾아 몸부림 치고 싶어하는 여인에 대한 연민 혹은 공감보다,우리는 고통 없이 진실을 바로 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이 없는 것일까?에 대한 야속한 원망이 앞섰던 것 같다.해서 키티의 인생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나는 기억하지 못햇던 것이다.부끄럽게도.삶의 고통없이 진실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이야 물론 행복(?)하겠지만(행복할까?..잘모르겠다.) 현재로선 행복할 것이라 믿고 싶겠지만,콜레라 처럼 예고하지 않는 고통이 내 앞에 찾아왔을때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키티처럼 상황을 마주하고 해결하고,이겨낸다면 이후 만나게 될 성숙이란 이름은 또 얼마나 멋진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런면에서 월터의 삶이란 얼마나 비극적이고 슬픈것인지...키티 보다 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처럼 보였던 월터의 모습은 그래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인생에 대해 전혀 진지할 것 같지 않았던 키티,인생을 퍽 이성적으로 바라 보았던 월터.그러나 고통(콜레라)이 각자의 삶을 후벼팠을 때 대하는 방식은 정반대였다.  (2015년 나의 독후기를 읽으면서, 줄거리가 기억나지 않았다는 건 놀랍지 않았으나, '벗겨진 베일'에서 비슷한 감정이 읽혀진 것이 신기했다. 타인의 의식을 읽을 수 있는 것이 래티머에게는 불행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다. 다시 <인생의 베일> 을 읽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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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단어를 기계적으로 암기할 뿐 의미로 익히지 않는다.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우리 생명의 피로 값을 치러야만 하며 그 의미는 우리 신경의 섬세한 가닥에 새겨져야 한다/81쪽 ‘벗겨진 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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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희망도서를 챙겨왔다.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 과 조지 엘리엇의 <고장 난 영혼> 


그리고..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을 펼쳐 본 순간 조지 엘리엇의 문장이 보였다.

인생까지는 모르겠는데, 가까이에 책들이 있다는 건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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