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떠나지 못하는 여자 - 린다 B를 위한 진혼곡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2월
평점 :
어떤 이유에서인지 연인과 격한 싸움을 하고 난 후 그녀는 사라졌고, 갑자기 국가정보부에서 루디안을 찾아왔다. 한 여자가 자살을 했다. 그런데 작가 루디안의 서명이 예사롭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녀와의 관계를 집요하게 물어온다. 루디안은 린다를 모른다고 말한다. 자신의 연인으로 부터 부탁을 받았을 뿐... 그러나 공산국가에서 작가의 말을 믿어줄..리가 없다. 해서 남자는 자신의 연인이 실은 정보국의 '끄나풀'은 아니였을까 의심까지 하는 지경에 이른다.
"만약 오프레우스가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렇게 묻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협정을 지켜서 그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닥쳤을까?
무슨 일이 닥쳤을까?... 그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은 반드시 오게 된다.......이 이야기에는 '사기당한 오르페우스'라는 제목이 붙어도 좋을 것이다.이 이야기가 인류의 가장 어두운 신화로 통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140~141쪽
나는 오프레우스가 사기당했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의 욕심이 의심이 그런 상황을 만들어 버렸다고 생각했다.(다시 읽어봐야 겠다) 그런데 어쩌면 저 표현은 작가의 복잡한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얼굴도 알지 못하는 이에게, 상투적으로 사인을 했을 뿐인데..그녀의 자살에 작가 자신이 얽혀들어간 기분... 함정도 이런 함정이 있을까 싶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그녀의 연인은 린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알바니아 사회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는 없지만,유배의 삶을 살아야 하는 고통에 대해 감히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전제하고, 린다를 바라 보고 있으려니 많이 답답했다. 무엇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유일한 구원이었던 루시안의 책. 그런데 루시안의 작품도 검열과 감시..를 받게 되는 상황에서 그녀는 너무도 숨이 막혀버리게 되었다. 그럼에도 작가는 버티고 있었는데, 정작 루시안의 작품을 더이상 볼 수 없게 된 것 같은 절망이 찾아온 순간 그녀는 삶의 끈을 놓아 버린다. 자신의 억유된 삶보다, 루시안의 작품을 더이상 볼 수 없는 것이 그녀에게 더 큰 고통으로 다가왔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싶지만,억유된 삶에서 루시안의 작품을 볼 수 없다는 건 더 큰 좌절로 다가왔을 것 같다. 마음이 한없이 답답하고 무거워진 이유이기도 하다. 예술도 구원이 될 수 없는 세상이 존재할 수 도 있겠다는 기분이 들어서...
<부서진 사월>을 흥미롭게 읽은 터라 다른 작품을 더 찾아 읽어 보고 싶어 읽게 된 소설이다. 이야기가 막 시작되었을 때만 해도 흥미로웠다. 국가정보부와 루시안의 싸움.린다의 죽음을 어떤 식으로 그려낼지,내심..첩보물 느낌으로 읽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을 나도 모르게 가졌던 것 같다.그런데 어느 순간 회색빛으로 가득한 느낌이 들었고 비로소 '진혼곡'이란 부재가 보였다.린다가 사랑한 건 루시안이 아닌, 루시안이 그려낸 예술이었을 게다. 자신보다 더 뜨거운 삶을 살았던 것이 린다일수도 생각한 루시안..예술이 구원이 될 수 있을까? 혹 함정은 아닐까? 그럼에도 루시안은 계속 예술이 구원이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작품을 써가지 않을까.. '떠나지 못하는 여자'가 아니라, '떠나 보낼 수 없는 여자'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