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과 해야할 일(그렇다..... 이런 것도 있다. 무려....) 

남아 있는 시간 등을 생각할 때 


1년 단위 계약, 내년이 없는 삶. 

하는 곳에 적을 두는 건 (그것도 적이라 할 수 있다면) 

거의 지옥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지옥보다는 연옥이냐면, 아니다, 지옥 쪽이다. 

아무튼 지옥을 탈출하려면 당연히 다른 무엇보다 논문을 축적해야 하는데 


오늘 아래 포스팅에 쓴 학술지의  

참으로, 진정, 납득하기 힘든 처사를 목격하고 나니 

...... 며칠 마시지 않고 보낸 맥주, 그런데 맥주란 이런 때 마시는 거 아니냐. 




인문학이 착취에 취약한 건 

논문이 쉽게, 많이, 나오기 힘들다는 데에도 있다. 

연구의 퀄리티, 의의, 이런 게 분명치 않다는 데에도 있다. 

이 취약함이 한국에서 어떻게 비틀리고 짓밟히는진. 취약하므로 더 짓밟히는진. 



하이고. 아무튼. 

누구 술 마시면서 서재질 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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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8-26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 마시면서 서재질 하지는 못했지만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여기에 댓글을 달고 있다고 합니다..

몰리 2019-08-27 03:28   좋아요 0 | URL
술 마시고 서재질 언제 꼭 합시다 ㅎㅎㅎㅎㅎ

hnine 2019-08-27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해해드릴수 있어요. 그런데 그게 별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고, 어려운 일이니 그만큼 도전을 계속 하셨으면 좋겠다는 말씀...도 별 도움이 안될것 같고.
지옥이라 생각하진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몰리 2019-08-27 03:30   좋아요 0 | URL
분명히 보고 분명히 생각하면서 버텨야 한다고
술 취해서, 술에서 깨면서, 다짐하는 (으아아아아아, 비명... 절규....)
매일입니다.
 




이 책 포함해서 

당장은 아니라도, 그리고 다는 아니라도, 읽을 것이 거의 확실한 

책들을 알라딘 중고로 구입했고 도착했다. 


바그너. 니체에게 바그너가 보통 중요했던 게 아니어서 

바그너를 아예 모르면 니체의 중요한 어떤 면모도 전혀 모르는 게 되는 거 아닌가 한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구입해 둘 책. 




"내가 자란 집은 음반들이 그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지위를 점했다는 점에서 음악적인 집이었다. 

토요일 아침과 오후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의 라디오 방송에 할애되었다. 우리는 오페라를 듣는 가족이었다. 나의 부모는 오페라에 관한 질문이면 늘 격하게 환영했다. 그러나 음악 레슨을 받으라는 강요는 없었다. 레코드 선반엔 베르디와 바그너가 비틀즈와 롤링스톤즈 바로 옆에 놓여 있었다. 음악을 듣는 동안엔 말을 하면 안되었지만, 듣고 난 다음 토론은 장려되었다. 선물로 레코드를 사달라는 요청은 즉시, 그리고 명랑하게, 수락되었다. 이 탁월했던 환경을 제외하면, 내가 바그너에 헌신해야 할 특별한 이유같은 것은 없다. 나는 음악학자가 아니다. 나는 독일 문화에 딱히 끌리지도 않는다. 그리고 나는 LA 출신이다. LA가 고전을 애호하는 도시로 유명하던가. . . ." 


서문이 저런 말로 시작한다. 

라디오 오페라 방송에 바쳐졌던 토요일 아침과 오후. 

................ 그렇게 산 적 없는 것은 물론이고 상상한 적도 없음에도 

읽는 순간 나도 그의 어린 시절, 그가 그렇게 성장했다는 그 집에 가 있는 거 같은 느낌이었다. 

아주 잠깐 그 행복 나도 알 거 같은 느낌이었다. 


8월 30일 발행인 어느 학술지에 

심사 결과가 아직도 오지 않아서 오늘 문의했더니 

심사평을 쓰지 않은 한 심사위원이 다른 심사위원으로 교체되면서 심사 결과가 미루어졌다고 한다. 

해서 30일 발행인 학술지에는 실리지 못하고 다음 호를 기약해야 할 거 같다고 하는데 

............... 오늘의 황당한, 쉽게 납득하지 못하겠는 일. 심사결과가 나오지 않아 제 때 실리지 못할 거 같다면 미리 알려 주었어야 하지 않나. 아닌가. 내가 잘못 알고 있나. 무엇이 예의인가. 알고 싶다. 무엇이 관행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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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솔로몬의 <1750년 이후 대륙철학>은 기대 이상 

재미있고 도움되는 책. 지금 읽는 칸트 장에서는 그렇다. 


이런 대목이 있다. 



경험이나 인식이 있기 위해 필요한 조건 중 하나가 자아의 존재다. 경험을 하고 그 경험을 이해할 자아가 필요하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어떤 경험이든 "누군가의" 경험이다. 이 점에서 칸트는 데카르트의 유명한 진술을 반복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 경험의 통합성은 초월적 필연성으로만 설명될 수 있다고 칸트가 주장할 때, 그는 데카르트 너머로 간다. 그 난해한 칸트의 범주 연역, 이것은 외부 세계에 대한 우리 인식을 증명하는 데카르트의 시도와 비슷하다는 (훨씬 더 정교하고 세련된 것이긴 하지만) 의견이 항상 있어 왔다. 그러나 칸트의 자아 개념과 자기 인식 개념은 단지 추론되는 것에 불과한 게 아니며, 경험의 가능성의 조건에 불과한 것도 아니다. 칸트에게 자아는, 그 자체로 경험의 원천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칸트에게 자아는, 세계가 존재하기 위한 조건이 된다


이 관점은 순전히 넌센스로 보일 수도 있다. 

철학과 학부생이라면 재빨리 반론할 것이다. 

우리가 (우리 중 누구라도) 여기 있기 오래 전부터 세계는 존재했다고. 그리고 

우리가 (우리 모두가) 사라지고 난 다음에도 이 세계는, 파괴를 견딘 후의 이 세계일지라도, 오래 존재할 거라고. 

(......) 



이런 거 언제나 좋다. 

"철학과 학부생이라면 재빨리 반론할 것이다." 

저 문장이 들어가는 글을 매일 하나씩 읽을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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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6 1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26 15: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26 17: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예일 오픈 코스, 정치철학입문 강좌에서 담당 교수 스티븐 스미스가 

"심지어 아이비리그 학교들에도, 심지어 지금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있다"면서 

믿을 수 없어함(그들의 맹목, 멍청함을)을 과장하던(가장하던?) 한 장면이 있다.  



근데 마르크스. 

글 너무 잘 씀. 


완전 최고임. 


니체도 잘 쓰죠. 

니체도 어떤 땐 황홀경이(황홀경에?) 듭니다. 읽다가.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긴 하지만, 드물게라도 일어나는 게 어딥니까. 


마르크스 저술 극히 조금 읽었지만 

거의 모두에 감탄했던 거 같다. 


방금 어제 도착한 로버트 솔로몬의 <1750년 이후 대륙철학>에서 칸트 장을 펴보았는데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한 문단이 인용되고 있다. 


그리고..... 

오 뭐 이렇게 잘 씀? 

눈물나게 잘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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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마 모랄리아. 

The Simpsons에도 출연했었나 봄. 


자기의식, 자기이해에 도달하는 반지성주의는 

지성주의인 것. The Simpsons의 주제가 이것 아닌가. 

그 주제 포착하는 짤. 



사회가 개인의 실체이므로 

탈사회화, 반사회화가 성숙으로 가는 길일 것이다. 

투명하게 온전히 사회화됨은 맹목적 자연으로 퇴행함일 것이다. 






아침에 유럽지성사 교수가 이 책의 의의에 대해 얘기하는 걸 들었는데 

그가 보여주는 바로 그런 게 탈사회화, 반사회화 아니냐 생각했다. 사회를 물리치고, 아니면 

사회를 (사회 안에서) 관조하며 나를 되찾음이 이런 거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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