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신지 모르지만, <인간 희극>에 감탄하다 유튜브 검색하고 보게 된 프랑스 교수 강의. 

자막이 있다면 (번역 자막이 있다면) 매우 감사히 볼텐데, 없고 ..... 그냥 잘 모르는 음악 듣듯이 보았. 

댓글 창에는 "당신의 강의를 듣는다는 것, 그건 그 어떤 순수한 행복인가!" 등등 찬탄의 말들이 넘쳐난다. 

프랑스어로는 모르지만, 영어로는 그런 교수들 적지 않다. 정말로 "pure music" (음악인데, 이 경우엔 알아듣고 이해하는 음악) 같은 강의 하는 교수들 적지 않다. 영어로 그런 강의 하는 교수들 적지 않은 걸 알고 있으니, 불어로도 그렇겠다 상상하긴 한다. 죽기 전 언제 불어 강의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 .... 하게 되고. 




발자크는 일단, 피상적이지가 않다. 

"피상적임. 이것이 가장 악덕이다." 와일드의 그 너무도 심오한 말. Superficiality is the supreme vice.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둘 다를 언제나 보는? 둘 다를 언제나 보기 때문에 둘 다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그런 느낌. 


그리고, 이걸 웃김으로, 그 특유의 유머 감각으로 본 비평가가 거의 없나 보던데, 되게 웃긴다.

<나귀 가죽> (영어 번역은 The Wild Ass' Skin), 이 작품엔 마법을 행사하는 나귀 가죽, 그 나귀 가죽의 마법/저주에 걸린 귀족 청년이 나온다. 그 나귀 가죽은 그 청년이 무엇을 소망하든 그 소망을 실현시킨다. 그리고 그 댓가로 그 청년의 생명을 단축시킨다. 소망이 실현될수록 생명이 줄어드는 마법이자 저주. 소망 실현과 생명 축소가 일어나면, 그 나귀 가죽이 줄어든다. ㅎㅎㅎㅎㅎㅎ 청년은 그것을 믿을 수 없어 한 시점 이후  나귀 가죽 아래에 천을 놓고 나귀 가죽의 둘레를 펜으로 따라 그어 그 면적을 확정해 두고 소망 실현이 있을 때마다 그 면적과 나귀 가죽을 비교해 보는데, 확확 줄어듬. 그 작아진 크기만큼 그의 남아 있는 생명도 작아진 것임.   


이 설정만으로도 한편 무시무시하고 한편 우습고 그럴 것인데, 이로부터 온갖 별의별 황당한 ㅎㅎㅎㅎ 얘기들이 나온다. 나귀 가죽이 더 이상 줄어들지 않게 할 뿐 아니라 확 늘일 수도 있을 거라고 말하는 수학자를 귀족 청년은 만나게 된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을 상상하면서 청년은 외친다. 

"당신의 주장대로 이 가죽을 늘일 수 있다면, 블레이즈 파스칼에게 바치는 거대한 동상을 세우겠어요. (....) 10년 단위로 그 10년 동안 역학에서 있은 가장 위대한 성취에 10만 프랑 상금을 수여하는 상을 수립하겠어요. 당신의 사촌 누이들, 육촌 누이들에게 모두 지참금을 주겠어요. 가난한 수학자와 미친 수학자들을 위한 보호 시설을 설립하겠어요." 





저런 대목이 웃깁.... ㅎㅎㅎㅎㅎㅎ 이게 어쩌다 나오는 게 아니고 그냥 저게, 항시 저러는 게 발자크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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