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이 책 배송된다. 

이것과 카프카 에세이 실린 벤야민 저작선을 같이 주문했는데 

벤야민 책은 품절. 아마존에 재고가 있는 걸 보면 아마 일시품절. 

책값은 비싸고 저렴한 중고가 아직 나와 있지 않아서 벤야민 저작선은 일단 구입 보류. 


<운명론자 자크> 여러 판본으로 나와 있는데 

위의 걸 (노튼 출판사. W. W. Norton) 선택한 건

여기 특유의 폰트, 편집 판형이 다른 출판사들보다 더 독자 친화적이라. 

피터 게이 책들 중에서 <계몽시대>, Freud for Historians, Style in History 등이 이 출판사에서 나왔다. 

이 책들, 굉장히 읽기 편하게 편집되어 있다. 이들을 어쩌다 같은 시기에 같이 보면서 실감함. 영문과 

수업에서 쓰는 노튼 비평판이나 노튼 앤솔로지는 전혀 아닌데 (이것들은 독자 적대적.....) 

일반 단행본으로 나온 책들의 경우엔, 어쨌든 나는 깊은 인상을 받게 되어 

칭송하고 싶어진다. 딱 이렇게 책 만들어 주시면 더 감사히 읽습니다.  


언젠가 수업에서 무슨 책 설명하다가 

그 책엔 위대한 감정이 담겨 있다, 그 감정은 한국에서는 아무도 보여준 바 없고 

그러니 본다 해도 알아보지 못할 감정이다.... 같은 소리 한 적 있다. 어쩌다 서재 블로그도 그렇지만 

다른, 혼자 쓰고 있는 블로그 글들에서 수업에서 저런 얘기 (이것과 저것이 한국에서는 아직 존재한 바 없다..... 류 얘기) 했던 걸 기록해 둔 걸 발견하면 


수업에서 편하게 할 얘기는 아닌 거 같긴 한데 

그러나 진실인 걸 어쩌냐.... (그리고 중요한 진실 아니냐? 

적어도 우리가 지금 어디 있나를 생각하게 하는 진실 아니냐?)


피터 게이의 <계몽시대>에도 그런 위대한 감정이 있고 

아도르노-벤야민 서한집에도 그런 위대한 감정이 있다. 


"깊이 연대하면서 (in heartfelt solidarity)" 아도르노는 이 구절로 편지를 맺기도 하는데 

(다른, sincerely yours라거나 with cordial greetings라거나 흔히 쓸 구절들 외에도) 

깊이 연대함..... 이게 요체인 감정이 있다. 공유하는 목표 앞에서 사감의 소멸? 

한국에 한국의 아도르노와 벤야민이 있었다면, 그들은 일단 목표의 공유에서 시작했다 하더라도 

누가 더 목표의 적격자인가 경쟁했을 것이다. 둘 중 누군가의 우위가 반드시 수립되었을 것이다. 

아마 그런 이유에서도 (같이 가려 하는 길이 있고, 그 길을 같이 가는 중이라 깊이 존중하는 친구들의 

관계가 극히 희귀함) 한국에서 서로 많은 편지를 썼던 사람들이 드물었던 것일 것이다. 


아무튼 한국의 징그러운 삶의 방식, 만인의 만인과의 "경쟁"을 

이들의 편지 읽을 때 떠올리고 진저리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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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르노의 

<사회학 강의> 8강에 나오는 내용. 



*짐멜의 영향 하에 독일과 미국의 일부 사회학자들이 

"사회 갈등이 없다면 사회 진보도 없다. 사회 갈등이 없다면 사회는 정체할 것이다. 

그러니 사회적 삶의 본질 구성 요소로서 갈등을 긍정해야 한다" 방향으로 "갈등 사회학"을 했다는 

얘기를 하고 나서: 


"갈등의 이런 미화에, 갈등이 갖는 이성적(타당한) 목표에 대한 전적인 무지가 있다. 

그 목표는 칸트가 그의 역사철학에서 아주 극명히 인식했던, 인류의 평화라는 목표다. 

현실에서, 갈등을 그들처럼 형식적으로 규정할 때 갈등은 현재의 나쁜 사회에 대한 변론이 될 따름이다. 

그리고 이 나쁜 사회는 지금 자멸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여기서 내가 갈등 사회학자들을 예로 드는 건, 실은 이게 예 이상이기도 한데, 여러분들에게 

학문적 중립성이라는 것에 대한 의구심을 일깨우기 위해서다. 현재 학문의 중립성이라는 

관념이 사회학의 형식주의적 개편, 형식주의적 사회학에 의해 부단히 힘을 얻으며 확산되고 있다. 

중립을 내세우는 입장을 취할 때, 사회 갈등의 구체적 내용을 무시할 때, 사회의 구체적 적대 상황에서 

자기 편이 어디인지를 밝히지 않을 때, 그러면서 사회 갈등은 그 자체로 좋은 역할을 수행한다고 말할 때, 이들의 

사회 갈등 이론이 하게 되는 사회적 선택이 있다. 중립성에도 불구하고 하는 선택이 아니라 중립성을 수단으로 

하는 선택이다. 그 선택과 함께 이들의 이론은 갈등을 야기하는 사회의 적대적 상태를 옹호한다. 그 이론은 

사회적 주체의 수립, 단지 법적인 구속이 아니라 사회적이며 경제적인 내용을 갖는 평화와 함께, 갈등이 

실제로 소멸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은 제기하지 못한다. (......)" 



여기서 아도르노의 주장 자체는 

이미 상투적으로 들린지 오래일 것이다. 

중립도 선택이다. 나쁜 선택.


강의가 진행되는 상황 맥락에서 

이 말들이 갖게 되는 유별난 힘이 있다.  


어제 읽은 어떤 대목들에서, 정말 이런 건 아도르노만 주는 구원이다... 

아도르노가 구원의 가이드인 것이다......... 이런 잡념 피할 수 없었는데 

그게 그러니까, 사회학적 상상력? C. 라이트 밀즈의? C. 라이트 밀즈의 사회학적 상상력이 

뭔지 모르지만, 그보다는 이게 더, 아니 이것이야말로 사회학적 상상력일 거 같은데? 

의 느낌이기도 했다. 


아도르노에게 깊이 영향 받은 사회학자가, 아도르노가 했다면 했을 바로 그 방식으로 

한국 사회의 감정 사회학을 한다면 


무수한 우리들에게 

구원의 가이드를 주겠지. 제발 누가 좀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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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르노와 크라카우어의 서한집도 나와 있다. 

(2020년 출간 예정인 거 같기도 하다. 2020년이라니. 

서기 2020년이라니. 2024년. 이런 해는 또 어떤 기분일까. 

20년대. 21세기의 20년대. 1920년대도 아니고. 서서히 익숙해지겠지만 일단 2020년은 막고 싶다. 

오지 못하게 하고 싶다.... "서기 2천년이 오면..." 민혜경. 아십니까 민혜경. 그 서기 2천년이 

이렇게 빨리 오고 빨리 가고 있을 줄은....) 


크라카우어는 아도르노보다 14세 연상이었던 분으로서 

15세 소년 아도르노와 (그러니까 그는 29세, 거의 아재.....) 칸트를 읽으셨던 분. 

칸트(칸트같은 철학자) 독해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를 아도르노에게 가르치신 분. 

그러나 세월은 흐르고 그는 제자에게 배우기 시작하는데.... 



벤야민이 아도르노보다 11세 연상이라는 게 

그들이 나눈 편지들 보다 보면 좀 이상하게 느껴진다. 

아도르노가 (나이에 맞지 않게) 위압적이다, 이런 건 아니고 

아무튼 둘은 동급이다. 지성의 능력에서 차이가 없다. (아니 어쩌면 아도르노가 우위. 편지에서도 그 특유의 문체가 있다. 벤야민에게도 있다고들 하지만, 내 생각엔 그다지. 벤야민의 문장은 따라하기 쉽고 이미 여러 저자들이 썼고 쓰고 있을 문장. 아도르노 문장은 모방불가. 모방한다면 모방으로 그침). 그 차이가 없다 보니 나이 차이도 없을 거 같게 느껴진다. 


그런데 무려 11살 차이. 


아도르노-벤야민 서한집 한국어판 

알라딘 미리보기 나와 있는 분량을 보았는데 

번역히 많이 아쉬운 편이다. 특히, 구어체에 속한달까, 구어체라기보다 속어랄까 

'이디엄' 한국어가 어색하게 자주 쓰인다. "그들이 우리 편이 아니던 게 어제 오늘 일이랍니까?" 이런 문장.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어느 한국어판에, 과한 칭찬을 받은 작중 인물이 "너무 절 그렇게 비행기 태우지 마세요" 

이러는 대목이 있었다. "비행기 태우지 마세요" 같은 유형 한국어 표현들이 너무 많이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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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리 2019-12-11 0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혜경 --> 민해경. ;;;;;;
 



독일 사회학에서 실증주의 논쟁. 

이 책 갖고 있다. 여기 아도르노의 

무지 무지 무지 무지 무지 무지 무지막지하게 어려운 

글이 실려 있다. 몇 년 전 읽다 포기하고 

... 음 몇 년 지난 후인 이 즈음 다시 도전하려고 

근처에 둠. 


최대한 빨리 끝내려고 작정하고 읽고 있는 건 

<사회학 강의>인데 (한국어판 제목이 <사회학 강의>, 영어판은 Introduction to Sociology) 

..................... 아무리 칭송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한다. 


radical thinkers. 

Verso 출판사의 시리즈 명이지만 

그 시리즈에 속한 사상가들 중 그리 별로 radical 하지 않은 사상가들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도르노의 경우엔 정확하고 합당하다 생각한다. 이게 급진 사상임. 그가 급진 사상가가 아니면 누가 급진 사상가임. 




왜 "radical thinkers"를 읽어야 하냐에 대해 

radical thinkers가 (한 사람이어도 좋지만 다수가), radical하게 말해준다면 좋겠다. 


벤야민과 아도르노는 그들 편지에서 서로 끝없이 (거의 끝없이) 

너의 편지가 나의 시야를 확장했다, 너와 대화함이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이런 칭송 교환한다. 

이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독자거나 이들 편지들을 너무 빨리 읽는 독자라면 

이 칭송들에 큰 의미두지 않고 지나칠 수도 있을 거 같다. 지금 내 경우 이들에게 

극히 우호적이고 빨려 들어가듯 읽는 중이라 그렇기도 할 텐데, 이들이 

실제로 "시야의 확장" "새로운 관점의 확보" 강하게 체험했을 거 같다.  


시야의 확장. 

새로운 관점의 열림. 

이것들의 약한 버전이 있고 강한 버전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의 강한 버전은 오직 "radical thinkers"를 읽을 때만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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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서문에서 

저자가 아버지의 임종을 회고한다. 


"아버지의 죽음은, 이런 일들이 그렇듯이 예고없이 찾아왔다. 

임종을 준비하라는 소식에 나는 아버지 댁으로 날아갔다. 그런데 아버지의 저무는 황혼 세계에서 

내가 있을 곳은 어디였을까? 혼란스러운 꿈에 잠겨 떨던 아버지의 손을 나는 잡았다. 

48년 사랑했던 대상이니 오래 보지 않아도 아버지는 나를 알아보았다. 아버지의 시선이 

잠시 내게 고정되었고 아버지는 희미하게 웃었다. 약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눈을 감으셨다. 

나는 모를 수 없었다. 아버지에게 나 말고 중요한 다른 일이 있다는 것. 아버지 혼자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것. 아버지는 터덕터덕 당신의 길을 가기 전에 아들이 잘 있는지 확인했던 거 같다. 

나를 키울 때 그랬듯이, 아버지는 생각하면서 나를 떠나셨다." 



저 마지막 문장 때문에 적어두고 싶어진 대목이다. 

Then he left me, as he raised me, thinking. 영어로 이런 문장인데 

......................... 어떻게 번역해야 합니까. 


나를 키울 때 그랬듯이 나를 떠날 때도, 아버지는 생각했다. (x)

나를 키울 때 그랬듯이 나를 떠날 때에도, 아버지는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x) 

.........................



서문 전부가 저자의 자전. 

왜 어떤 사적인 이야기는 깊이 빨려 들어가고 여러 번 다시 읽게 되는데 

어떤 사적인 이야기는 그만 해라.... 그만 하지 않으면 내가 그만 두겠다. 가 되는 것이냐. 

이 책의 이 서문은 사실 후자였을 수도 있었을 내용인데, 전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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