쇤베르크가 말러에게 쓴, 그를 몰라보았음에 용서를 구하는 편지. 전문을 보려면 어디로. 

그들의 편지는 어떤 책으로 나왔나 검색하면서 알게 된 Shoenberg in Words 시리즈.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 

구스타프 말러에게 쓴 편지는 따로 묶이지 않았는데 (말러가 일찍 죽으면서 편지의 양이 많지 않아서?) 알마 말러에게 쓴 편지는 따로 묶였고 440 페이지 정도 분량이다. 구스타프에게 쓴 편지들은 





여기 실림. 

이 둘을 합하면 천 페이지 정도 되고 

이 둘 외에 작곡가들에게 보낸 편지들을 묶은 것이 천 페이지 정도 분량이어서 

지금까지 출간된 편지 양이 약 이천 페이지. (시리즈는 완료되지 않은 거 같다. 책들이 16년부터 19년까지 최근 출간되었다). 


후대의 독자에게 (전문 연구자가 아니어도) 

읽을 이유와 가치가 있는 편지들을 단 한 번인 생에서 이만큼 많이 쓴다는 게 

여기 정말, 엄청난 무엇이 있다는 생각 다시 든다. 


이런 서한집 출간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출판부. 그게 뭘 말하냐도 정말 

엄청난 거 아니냐는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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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9 21: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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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0 04: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도르노는 음악학자이기도 했고, 작곡가이기도 했고 

피아노 연주 실력도 뛰어났다는 듯한데, 철학 저술들에서 음악 얘기는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아도르노가 자기만족이나 허영심에서 쓰는 저자가 아니었음을 여기서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철학 논의를 할 때, 그 사안에 (그것에만) 충실하다는 것. 이게 당연한 거 같아도 이 미덕을 일관되게 보여주는 저자는 

사실 소수다 못해 희귀한 쪽이지 않나 한다. 거의 대부분의 저자들이, 내가 이렇게 많이 알고 있다, 내가 이것도 알고 있다 방향으로 자기 주제를 이탈하면서 수시로 어떻게든 가는 거 같다. 


아무튼 그러한 아도르노가 음악 책을 쓰면 

........... 기절하게 어려운 책을 썼던 거 같음. 

대학원 시절 도서관에서 위의 책을 대출하는데 

도서관 창구에 근무하던 학부생 조교가 "오 말러다! I love him!" 활짝 웃으면서 반색하던 거 기억함. 

말러는 인기 작곡가인 것이다. 로스코가 인기 화가인 것처럼. 


지금 다시 본다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첫줄부터 읽을 수 없었던 거 같다. 왜 그, 들어볼까 해서 다가간 웨이트인데 

들리지 않음. 미동도 하지 않음. 그런 웨이트. 




죽음을 기다리던, 죽음 앞의 며칠 동안에도 

말러는 평생 그랬듯이 철학 책을 읽었다고 한다. 

책을 들고 있을 힘이 없으니 두세 장 찢어내어 페이지로 들고 읽었다. 

그리고 자기 없이 살아갈 쇤베르크를 걱정했다. 내가 세상을 떠나면 누가 그를 이 세상의 "mob"으로부터 보호하지? 


아내 알마 말러는 그와 결혼하면서 작곡을 포기해야 했고 

(구스타프 정도는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알마의 재능도 비범했다)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만 

그들의 결혼은 불행한 결혼이었다. 구스타프 말러는 극히 깊이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다음 재혼도 하고 오랜 세월을 살게 되는 알마 말러가 그 오랜 세월 거의 내내 

그를 원망했다고 하는데, 그녀의 말에 따르면: "그는 순수히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었다. 그게 자기를 중심에 두는 건 아니었다. 자기 음악을 중심에 두는 것이었다. 음악이 그에게 가장 중요했다." 


말러. 사람으로도 극히 흥미로운 사람일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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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스타코비치의 <증언>. 

이 책 얼마 전 도착해서 

당장 이것만 읽고 싶어도 어쩌다 조금씩 천천히 읽고 있는 처지인데 

책 앞에 실린, 그와의 우정을 회고하는 솔로몬 볼코프의 글에 이런 대목이 있다. 


"어느 날 그의 집에 방문했을 때 

그는 쓸쓸하고 동시에 조롱하는 듯한 ("wry" 이 단어가 쓰인다) 미소를 짓더니 

칼 맑스의 전기 영화 영화 음악을 작곡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손가락들로 책상을 톡톡톡톡 치기 시작했다." 


왜 웃긴지 모르겠으나 매우 웃겼던 대목. 

wry grin. 이 구절도 자체로 웃겼다. 쇼스타코비치는 음악하는 "너드"였을 것인데 

너드들의 wry grin. 그가 그의 본성에 반하여 (하고 안하고에 생사가 걸린.......) 하고 있는 

칼 맑스 전기 영화 음악 작곡. 


로버트 그린버그는 

쇼스타코비치를 깊이 사랑하는 듯해서 

(음악학자로서 그는 여러 음악가들의 전문가라고 소개되던데 

쇼스타코비치가 그 음악가들에 속할 거 같다. 가장 깊이 연구한 건 베토벤인 듯하고) 


(.....) 지금 이 곡을 이렇게 부분 절단해 들려주는 건 범죄에 속해. 

게르니카를 왼쪽 하단 손바닥만큼만 보고 보았다고 착각하는 일은 아무도 하지 않겠지. 

우리의 형식 상 이럴 수밖에 없으니 이만큼만 듣는 걸 견디도록 하자. 하지만 너는 이 곡을 전부 

들어야 한다. 이 강의가 끝나면 꼭 음반을 구입해라.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를 들어라. 

이 음악은 너의 삶을 바꿀 것이다. (.....) 


저런 말을 한다. 

"이 음악은 너의 삶을 바꿀 것이다." 이 한 문장에는 그의 삶 전부에서 합한 한숨이 들어간 거 같기도 했다. 

말이란 얼마나 제한된 수단이냐. 내가 지금 너에게 이 말밖에 하지 못함은 얼마나 애석하냐. 



강의들이 음악사에서 거인들 중에서도 거인들만 모은 강의들이다보니 

전부 (아 예외도 있다. 아직까지는 한 사람인데, 하이든. 전혀 신동이나 천재가 아니었다는. 

대기만성형이었다는. 독실한 천주교도여서 "나는 곡이 안 써지면 묵주기도를 해. 묵주 기도 하면서 

방을 몇 바퀴 돌면 곡이 써지기 시작해..."라 말했다는 하이든....) 상상을 초월하는 천재들이다. 


쇼스타코비치에게도 

초능력에 속할 여러 천재적 면모들이 있었다. 

그가 St. Petersburg 음악원 다닐 때, 그를 가르쳤던 스승이 그보다는 아니었지만 그 역시 천재였고 

해서 제자 쇼스타코비치를 잘 이해했는데, 이 스승의 음악적 천재성에 대해서 


"그의 성취는 일 단위가 아니라 시간 단위로 일어났다. He made progress not by the day but by the hour"고 

그 스승의 스승이 탄복하며 말했다고 


그린버그 교수가 전해 줌. "일 단위가 아니라 시간 단위로" 진보함. 이것 처음 듣는 얘기였다. 

그럴 수도 있구나 인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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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도 이렇게 세 권 분량 전기가 있다. 

말러를 잘 몰라보고 말러와 맞짱뜨다가 말러의 천재성을 정확히 이해한 다음 

그랬던 자기 전적을 뉘우치는 편지를 쇤베르크가 말러에게 보냈다고 한다. 편지의 일부를 

음악 강의하는 로버트 그린버그 교수가 읽어주는데 


음악가들의 편지에도 

길고 정확한 문장, 여러 수준으로 정확하고 풍부한 어휘, 그를 통해 쓰는 이의 정신 모두가 거기 담김 등의 

특징이 (문인, 사상가들의 편지와 비교해서 전혀 다르지 않게) 온전히 있구나 

.................. (편지란, 그게 부르주아 문화의 정수같은 거라 해도 어쨌든 가장 좋은 

인간이 다른 인간을 만난다는 것의 모델......)  


쇤베르크의 그 편지는 

음악사 전체를 통틀어 비슷한 사례가 단 하나도 없다고 한다. 


한 천재가 다른 천재에게 

내가 당신을 몰라보았었음을 인정한다, 당신에게 용서를 청한다, 당신의 천재성 앞에 무릎 꿇겠다고 

진실하게 간절하게 전하는 편지. 


로버트 그린버그는 

정말 감탄이 이는 교수다. 

저런 "천재" "천재" "천재" 어쩌고 계속 반복되는 내용을 말할 때, 그럴 때에도  

극히 절묘하게 가장 올바른 지점에서 말하고 그러면서 "가르친다." 그 절묘한 지점, 말에는 담기지 않으면서 

제시되고 전해지는 그 (뭐라 해야 함) 스타일, 감수성 이런 것이  


그러니까 아마 학생들의 정신을 "형성"할 것이다. 



19년 내내 수시로 절감한 것 중 이것도 있다. 

타인의 정신에 좋은 자극이고 정신을 형성하는 힘을 가진 이들. vs 그 정반대인 이들. 

후자가 이 세상에 너무 많다. 그를 만나야 하는 날이 잡히면 두 달 전부터 매일 담배 없이는 살 수가 없고 

그를 생각하면 순간 질식할 거 같은 이들. 그들이 이 세상에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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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ger Scruton (1944-2020). 

로저 스크러튼이 타계했다는 이메일이 와서 

.... 아직 살아계셨나? 가실 때도 되었지, 32년생 정도시지 않나 

같은 느낌이었다. 그의 책 읽은 것도 없고 그가 그리 관심 저자인 것도 아닌데 

그런데 그의 책들이 집에 있기는 하고, 내게 그는 한 이십년 동안 70대 느낌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75세에 타계하신 분에게 "일찍 가셨다" 같은 생각 들지 않았을 거 같은데 

지금 그런 생각이 든다. 이른 나이 같다. 44년생이면 앞으로 적어도 10년은 더 왕성히 활동하다 갈 수도 있을 거 같다.  


그리고 또 다른 부고 이메일이 왔는데 

74년생 철학자 데이빗 엘퍼드. 부고로 처음 들은 이름이긴 하다. 

그런데 위키피디아에 그의 항목이 있고 그 외 적지 않은 검색 결과들이 있다. 


David Elfird (1974-2020). 

로저 스크러튼은 엘퍼드보다 30년을 더 살았다. 





Thomas Weiskel (1945-1974). 

낭만주의 연구자였던 토마스 바이스켈. 

예일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예일대에 재직 중이었다. 

74년 12월 1일. 어린 딸과 집 옆 연못에 썰매를 타러 나갔다가 

얼음이 꺼지면서 딸과 함께 익사했다. 


해럴드 블룸이 Possessed by Memory에서 바이스켈에 대해 말하기도 한다. 

나의 제자였고 장래가 촉망되던, 뛰어난 영문학자였던 토마스 바이스켈. 그는 그렇게 

딸과 같이 죽었어. 


부고를 접하면 

산자들의 의무는 무엇이고 

삶의 의미는 무엇이고.... 이런 생각 

잠시라도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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