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부는바람 - 시각과 청각이 없는 장애로 태어난 한 소녀와 가족의 다큐멘터리. 감독평처럼 언어과잉과 소통부재의 세상. 그 속에 마음이 어떻게 닿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레나도 같이 읽고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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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목욕탕 - 시집 세 권을 골라 간다.

달력 뒷장을 오려 못에 꾹 눌러 싸인펜으로 쓴 시나 글귀에 대한 보답인 셈이다. ˝세 출판사 모두 시집 까다롭게 감수하는데네요˝하신다.

돌아오는 길 ˝문태준 안도현 도종환 세 분 모두 생각많으신 분들이죠˝라고 ˝잘 보시겠다˝ 한다.

발. 생각의 격차가 많이 섞였으면 한다. 삶의 처지가 달라도, 작은 모임 성원들 사이도 ㆍㆍㆍ선물하길 잘했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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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피부, 하얀 가면 - 포스트콜로니얼리즘 시대의 책읽기
프란츠 파농 지음, 이석호 옮김 / 인간사랑 / 199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공명 - 두 역, 아니 세 역. 강남, 구의 그리고 곡성. 두 제단. 아니 공무원 그림자와 공무원의 안타까운 죽음. 그냥 스쳐가는 줄 알았다. 늦밤 떠지는 눈. 혹 우리가 놓치다 가는 건 아닐까.


강남.

하얀 가면들. 눈치채지 않으려던 우리 속의 그 사회적 가면의 경계를 문지르고 있는 건은 아닐까. 서구라는 쫒아가는 서양의 공모자와 같이 몸에 배인 남자라는 근거없는 정체성을 `사회적 공명`이란 약자의 울림으로 그 지문이 지워지고 있는 건 아닌가.

그렇게 하얀 가면을 부수는 지표로 흰 그림자를 드리워 사회의 아우성을 깃발처럼 날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 다른 제단에 바쳐지는 국화꽃들.

구의.

정규직이라는 지문을 지우고 사회적 형평을 찾아가는 민주주의를 찾아가는 공명의 흔적이자 또 다른 흰 그림자는 아닐까.

곡성.

그리고 또 다를 절규. 곡성에 울부짖음. 산자와 사자가 한몸이란 걸. 살 자와사자가 한 몸이란 걸. 또 다른 제단에 꽃을 바친다.

신문 사회면, 한줄기사의 안타까운 비운에도 공명하던 한 세대 전, 반세기 전의 일상들. 곡성이 일상인 퇴행의 시대.

`사회적 공명`이 또 다른 형태로 귀환하는 것이자 여명처럼 오는 것이라고. 우리는 너무 멀리 온 것이라고. 결코 가벼운 , 사소한 죽음은 없는 것이란 그림자.

곡성의 비극. 그 죽음에 흰꽃을 바치며 삼가고인들의 명복을빕니다. 눈물의 그림자를 올립니다.

발. `오보에를 위한 협주곡` 외 몇곡 더 연주회에 다녀오다. 너무 안스럽기도 했다. 붉게 부푸러오르는 얼굴. 호흡과 연주 사이의 간극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연주와 표정의 안온함이 같이 어울린 건 단 한차례. 어느 귀족이 자신의 악 취미를 위해 작곡시킨 건 아닐테지. 나라면 우리라면 저 작곡은 시키고 즐기고 싶진 않아. 그러고 싶었다. 삼삼오오 연주자와 식구들과 지인들과 뒤풀이. 즈문동이 아이들의 맘과 삶이 걸려온다. 밤바람도 좋은 날. 문득 생각이 사선으로 불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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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 - 늦밤 막내에게 공부한지 2백일이 되어가냐고 건넨다. 과외한지 백일은 되어가는지 하고 말이다. `아직`이라고 한다. 힘들거라고, 좋아하는 농구처럼 재미가 붙으면 좀 낫거나 하고싶을 거라고 그 고개쯤 와 있을거라고 한다.

발. 부쩍 힘들어해서 여러 변화를 엄마와 나누어 보고 헤아려본다. 형의 판단도 저간의 상황도 겹쳐본다. 불쑥불쑥 지난 관성이 스며나오는 지점이다. 돌아보지 못한 것이 있는지 다시 한번 새겨볼 시점이다. 나에게도. 막내에게 챙겨온 책 두권을 전했다. 파인만과 이안스튜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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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네가 맨가슴으로

 

그날 네가 맨가슴으로

내려앉은 건 한쪽 다리가

펴지지 않아서였던가

아직 잎새 돋지 않은 살의

한쪽 모롱이가 열리면서

나는 네 전신을 받았다

살붙이여, 잦은 흔들림 외에

다른 살이 없을 때 소금쟁이

떠 있는 수면의 안간힘으로

너를 견뎠다, 피붙이여 23

 

음이월의 밤들

 

음이월의 밤들은 저마다

꽃핀 동백 가지 입에 물었다

종일 흐리다 환한 밤에는

진눈깨비 다녀가고 눈이 퉁퉁

붓도록 운 다음날 아침엔

사랑이 지나갔다, 발자국도 없이 43

 

벌레 먹힌 꽃나무에게

 

나도 너에게 해줄 말이 있었다

발가락이 튀어나온 양말 한구석처럼

느낌도, 흐느낌도 없는 말이 있었다

 

, 너도 나에게 해줄 말이 있었을 거다

양말 한구석에 튀어나온 발가락처럼

느낌도, 흐느낌도 없는 말이 있었을 거다 64

 

 

그렇게 속삭이다가

 

저 빗물 따라 흘러가봤으면,

빗방울에 젖은 작은 벚꽃 잎이

그렇게 속삭이다가, 시멘트 보도

블록에 엉겨 붙고 말았다 시멘트

보도블록에 연한 생채기가 났다

그렇게 작은 벚꽃 잎 때문에 시멘트

보도블록이 아플 줄 알게 되었다

저 빗물 따라 흘러가봤으면,

비 그치고 햇빛 날 때까지 작은

벚꽃 잎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고운 상처를 알게 된 보도블록에서

낮은 신음 소리 새어나올 때까지 71

 

국밥집 담벽 아래

 

겨울 오후 국밥집 먼지 앉은

비닐 장판에 미끄러져 들어온

햇빛, 선팅한 유리 창살 격자를

죽은 듯이 눕혀놓는다 아침부터

테니스 치고 땀에 쩔어 들어온

국밥집, 오늘 하루도 벌건 국밥에

썰어 넣은 대파같이 잘도 익었구나

소주 한 병에 여섯이 달라붙어,

구이집 마담의 무성한 거웃이나

재혼한 친구 마누라 탱탱한 궁뎅이

감탄하닥, 비틀거리며 국밥집

나올 때면 부끄러워라 국밥집 담벽

아래 바르르 떠는 참대나무 앞에서

그만, 얼굴 폭 가리고 울고 싶어라 134

 

멍텅구리 배 안에선

 

밤의 별들은 남지나해에서 선상 반란을

일으킨 선원들 같다 지금도 신안 앞바다

어디쯤 새우잡이 배를 타고 있을 젊은이

몇이 모질게 두들겨 맞고 있을지 모른다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폭력이

있다 나도 폭력 앞에서는 아버지!하고 무릎

꿇는다 멍텅구리 배 안에선 어쩔 수가 없다

 

밤의 별들 몸 던지는 유원지 못가에 낚시꾼들

갖은 미끼로 물고기를 괴롭히고, 우거진 덤불

숲 황금 거미 한 마리 홀로, 거룩히 빛나신다. 136

 

이성복은 삶과 죽음의 협곡에서 또 다른 육체로 현현된 자신을 발견하며 스스로는 스스로를 부를 수 없다는 성찰을 이끌어낸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부를 때, 그건 이미 인간이 아닌 다른 것, 3차원이 아닌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이물이 되고 만다. 그러면서 그것을 듣()는 사람을 당신이라는 2인칭 대명사로 겹쳐진 존재의 여러 가지 얼굴 속에 숨겨버리고 만다. 그 순간, 나는 없다. 오로지 나라 불리는, 무언가 나 아닌 것들이 존재의 허방을 메우면서 세상 풍경을 불가사의한어떤 것으로 바꿀 뿐이다. 162

 

마라가 나를 부를 때, 나는 이미 마라의 목소리로 시를 낳으며 죽음 이편의 공간에서 또 다른 축생의 단계로 접어든다. 그리고 그것은 생멸하는 모든 존재의 내부에서 피와 바람을 몰고 수시로 솟구치고 토하는, ‘마라의 한시적 현존 양태가 된다. 늘 같지만, “부풀고 꺼지고 되풀이하면서변화하는 햇빛 한 덩어리가 자신의 생에 복수하는 유일한 방법그것이 바로 . 시인은 비참의 가상임신형태로 현재의 삶을 기만하는 행복에게, 그리고 그것이 가상 임신인 줄 알면서도 거기에 굴복하고야 마는 스스로에게 복수하기 위해 여태껏, 더디디더딘 발걸음과 스스로에 대한 악착같은 뒤집기로 시를 쓰고 있는 것이다.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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