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수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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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6-11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이거 혹시 양귀비 아닙니까 ?

여울 2016-06-11 12:00   좋아요 0 | URL
작약입니다. 양귀비는 꽃잎이 4장이죠 ㅎㅎ

세실 2016-06-11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귀비는 꽃잎이 네장이군요^^
분홍빛 작약 예뻐요.
꼼꼼, 세심함이 보여요.

여울 2016-06-11 15:19   좋아요 0 | URL
양귀비는 정말 우아하죠 ㅎㅎ. 감사요
 

시도 그림도 없는 마을



심어놓은 마음씨 모종하랴
심어놓은 마음새싹 키우랴

돋아난 마음싹 보살피랴
피어난 마음꽃 나눠주랴

울고난 마음눈물 닦아주랴
바래진 마음자욱 새기느랴

웃자란 마음정원 손질하랴
깜깜한 생각광맥 캐느랴

챙기느라 즐기느라 자진 걸음
다듬느라 살피느라 휘휘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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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묘보다 어렵다. 색을 만드는 것도 농도를 조절하는 것도 결을 따라가는 것도 말이다. 색감과 기본을 익히거나 시행착오가 많아야 좁힐 수 있을 듯. 시간도. 다시 몇 번 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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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일치의 구원

 

 

저수지 보가 움쭐한다. 몇 년전 평야 지근거리에 있는 저수지 보가 터졌다. 민원이라든가 아우성이라든가 할 만큼 다 이야기를 했는데도 곪아 터졌다. 갈라진 틈으로 물은 터져나와 도로를 휩쓸고, 운동장을 향해, 낮은 주택을 향해 가장 낮은 곳으로 거침없이 흘러갔다.

 

염치의 보가 금이 갔다. 몇 년전 숨도쉬지 못할 것 같은 불일치의 보가 터졌다. 낮거나 비우지 못하는 모든 것들을 내동댕이 칠 기세를 많이많이 모으고 있다. 틈이 점점 벌어지면 그 틈으로 부릴 것들을 휩쓸고, 비우지 못하는 것들을 거침없이 먹고 잡을 것이다.

 

억장이 무너졌다. 몇 달전 숨도 참지못할 것 같은 부릴줄 만 아는 것들에게 도를 넘어섰다. 부끄러워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예의를 잃어버렸다. 틈새는 봉합되지 않으며 넘은 도는 모든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쓸어버릴 조짐이다. 넘쳐버린 것들은 막혀버린 것들을 거리낌없이 무너뜨릴 것이다. 비워진 것들은 스쳐지나갈 것이다. 비울 것들을 밀어내면서 갈 것이다.

 

관성이 있는 것들은 어안이 벙벙할 것이다. 제 무게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한번씩 무너진 다음에서야 느끼게 될 것이다. 무게를 감당하려면 할수록 그 무게로 주변의 감당하고픈 존재들과 짐짝으로 우르르 몰려다닐 것이다. 틈은 점점 벌어져 감당하려는 것들을 휩쓸고, 감당하는 것들을 거리낌없이 밀어붙일 것이다.

 

경계는 없다. 모멸찰 것이다. 삶의 마당뿐만 아니라 제 가슴과 마음의 속을 박박 긁어댈 것이다. 내 안의 불일치라는 광맥을 따라 모멸과 관성과 억장은 물밀듯이 밀려올 것이다. 내 밖의 불일치라는 심장 소리를 따라 걸어야 할 것이다. 뛰어야 할 것이다. 안으로 안으로 스며들 것을 예비하여야 할 것이다. 마음의 정원, 고이게 하는 모든 문턱을 미리 없애야 할 것이다. 이방인과 낯선 여행의 발자국과 숨소리로만 자신을 비워나가야 할 것이다. 비움과 환대의 그릇만이 쓸려간 뒤의 것들을 끌어담을 수 있을 것이다. 숨쉬는 모든 것들을 새롭게 뿌리내리게 할 것이다.

 

 

볕뉘.

 

1. 사회적 조짐이라는 것이 있을까. 퇴행의 끝에 밀려나온 것들의 반격이라는 것이 있을까. 며칠 전 사회적 공명이라는 표현을 써보았다. 하지만 울림이라는 것이 울음소리 뒤에 차갑게 오는 것이 공명이라면, 느낌이라는 것도 흐느낌 속에서 구제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예민하고 과도해진다. 하지만 나이와 세대를 불문하고, 성별을 묻지 않고 이런 것이 서슴없이 도둑처럼 왔으면 좋겠다. 그동안 지키던 것을 모조리 앗아가더라도 말이다.  더듬이를 올려본다. 더듬이가 잘리더라도, 나의 관행과 관성과 모멸이 나를 울그락불그락거리게 만들더라도 그 더듬이의 아픔이 가슴 속 깊이 더 스며들게 하고싶다. 불일치를 기꺼워하면 할수록 그 파고와 밀려오는 사회적 밀물의 진동을 예민하게 느낄 수 있으리라. 사회적 감수성이 예민하고 예리한 자들로 또 다른 지층이 생겼으면 좋겠다. 무디고 투박하고 거친 것들은 각오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

 

2. 말씨는 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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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다

 

왜 나는 자꾸

40대의 소작인 처가 허리를 꼬부리고 걸어가는 것만

이야기하는가?

처녀들의 젖가슴은

예나 이제나 따스한데

- 베르톨트 브레히트,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전에 고등학교 때 한참 정치에 꿈이 부풀어 있을 때, 국회의원 딸에게 편지를 보냈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대학 갓 들어가 예술이니 사상이니 미쳐 있을 때, 유명화가의 전시회에서 심오한 질문을 해댔다. 화가는 한참 쳐다보더니 쌩까버렸다. 다시는 글 안 쓴다고 군대에 가서는, 한참 뜨고 있는 여류시인에게 오밤중에 전화를 했다. 그녀가 정중히 전화를 끊었을 때, 그때도 참 부끄러웠다. 그러나 두고두고 창피한 것은 회사 들어가 처음 만난 여자 앞에서 노동자들이 불쌍하다고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다.

  

  

 

어리석음은 박멸할 수 없는 것

 

내 청춘의 거짓된 허구한 나날 내내

햇빛 속에 잎과 꽃들을 흔들었네.

이제 진실 속으로 시들 수 있으리.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지혜는 시간과 더불어 오다

 

옥수수 박사 김순권 교수의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옥수수에 기생하는 스트라이거 균과 공생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 스트라이거 균은 박멸할 수 없다. 강한 약 기운에 숨어 있다가 더 큰 내성으로 되살아나는 것. 어리석음은 박멸할 수 없다. 늙기 전부터 지혜는 어리석음과 함께 있었던 것. 지혜의 나무 무성한 잎새를 보려거든, 땅 속 어리석음의 뿌리에도 자주 물을 줄 것. 잘 자란 나무에 꽃이 피면, 진실이니 거짓이니 그런 시비는 벌이지 마라, 지혜롭지 못한 것.

   

 

 

한 번 온 적도 없었다는 듯이

 

, 우리가 장미를 찾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왔을 때, 장미는 거기에 피어 있었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 어떻게 우리가 이 작은 장미를

 

하루 만에 다 자랐다. 방 안에 들여놓은 호랑가시나무 화분에 흰 버섯 하나. 나도 아내도 눈 동그랗게 뜨고, 딸아이는 손뼉까지 쳤다. 언제 누가 오지 말란 적 없지만, 언제 누가 오라 한 것도 아니다. 잎 전체가 가시인 호랑가시나무 아래 흰 우산 받쳐들고, 오래전에 우리도 그렇게 왔을 것이다. 아내와 나 사이 딸아이가 찾아왔듯이. 언젠가 목이 메는 딸아이 앞에서 우리도 그렇게 떠날 것이다. 잎 전체가 가시인 호랑가시나무 아래 살 없는 우산을 접고, 언젠가 한 번 온 적도 없었다는 듯이.

    

 

 

고통의 경계를 표시하려는 것처럼

 

크나큰 고통이 지난 뒤엔, 형식적인 느낌이 오네 -

마치 무덤처럼, 신경들은 엄숙히 가라앉고 -

- 에밀리 디킨슨, 크나큰 고통이 지난 뒤엔

 

셀 수 없는 다리처럼 바지런한 고통이 있고, 탱크의 캐터필러처럼 뚜렷한 자국을 파는 고통이 있다. 고통 속에는 누군가 타고 앉아 핸들을 잡고 있다. 그가 힘껏 페달을 밟으며 너털 웃음 터뜨리면, 웃음소리에 맞춰 새로 해 박은 당신의 어금니가 흔들리고, 멀쩡한 다리는 석유 시추공처럼 내려 박힌다, 예정된 속도와 정확한 각도로. 이윽고 고통이 멎으면, 당신은 또 한쪽 다리를 들고 뜨거운 오줌을 찔길 것이다. 그 와중에도 오직 당신의 것인, 고통의 경계를 표시하려는 것처럼.

    

 

 

애인아, 우리 화해하자

 

나 그것을 보고 싶지 않네!

내 추억이 불타오르네.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뿌려진 피

 

내 미친 짓을 보고 싶지 않다고? 넌 누구냐? 네가 널 모른다면 차라리 내 얘기를 해줄까? 난 나무꾼과 선녀다. 난 장화홍련이다. 줏대 없는 네 아버지고 의심 많은 네 계모다. 차라리 네가 읽은 동화책이라고 할까. 그러니까 넌 내 동화책의 음화거나 혼성모방. 넌 나무꾼의 날개옷 훔치는 선녀이고, 계모를 독살하는 장화 홍련이다. 내가 아는 건 그뿐, 내가 막힌 배수구로 흘러드는 생활하수라면, 넌 터진 정화조에서 새어 나오는 오물의 일부, 혹은 그 반대일 뿐. 애인아, 이제 흐르면서 우리 화해하자.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한 이래로 우리가 보아온 이성복 시인의 일관된 열망 중의 하나는 삶과 화해하고자 하는, 이 세계 속에서의 인간의 운명과 화해하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이었다. 그리고 화해하고자 하는 그 열망의 밀도에 따라서, 뒤집어 말하면 불화의 강도에 따라서, 시의 리듬은 고통스럽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의 분출하는 듯한 속도로 거칠어지기도 하고, 연민의 물결에 실려 천천히 흐르기도 하고, 잠언의 비극적인 침묵 속으로 가라앉기도 하였다.....시인은 세상에서 무엇을 보는가?....시인이 본 세상의 풍경 속에서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물러터지고, 균열이 가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 속에 있다......문제는 결국 끊임없이 다른 뚝배기 속에 생을 다시 끓여내는 일이다....시인은 이제 의 모든 선입견과 집착을 내려놓고 마치 처음인 듯, 삶의 풍경 하나 하나, 시간의 마디 하나 하나를 있는 그대로다시 바라보고자 시도 한다....그 사유방식은 선 수행의 화두 잡기와 유사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선적인 세계관이기 보다는 선 수행의 방법론이랄 수 있는 철저한 부정의 정신이다...그 시들은 시의 건강을 염려하는 시인의 사유의 요가에 가깝다. 삶의 일정한 사태 앞에서 말의 뼈다귀를 박아 넣는다.....그러나 그 부정의 변증법은 결코 합에 이르지 못하는 변증법이다....“길 없음의 삶의 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언어.......이 시집은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을 이리저리 끌고다니는 알록달록한허기들, 삶의 풍경들을 만들어나가는 허기의 정체에 대해 말하고 있다. 116-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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