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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구석‘으로부터
fromthecorner 에서

전시를 하게 되었습니다.

9.24일 오후부터 오픈하고
9.27일 (금요일) 작가들과 만남이 저녁밤 19:00에 예정되어 있습니다. 주말에는 상주할 예정이고 주중에는 세 분이상 함께 콜하시면 두세시간내로 만나뵐 수도 있다는 말씀 전합니다 : 10.12일까지 합니다.

(덧붙임;주제도움전시 -Gypsy, 귤님이 3층, 1층에서 전시를 동행합니다)

뜬금없더라도 찾아주시면 어쩔 줄 모를 듯합니다. 엽서가 도착하지 않더라도 너그러이 양해바랍니다. 잠시 경황이 없어서요. 알라디너님들 특별환영^^ 여울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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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 2019-10-01 19: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시회 장소가 꽤 인상적이더군요.
크게 인연이 닿지는 않았아도, 괜스레 반가워 오늘 다녀왔습니다.

˝너-머, 가: 다˝
제목 중간 쉼표의 존재에 눈이 갑니다.
전시된 그림 중 여러 점이 뒷모습인 점도 특이했고,
꽃잎 아래에서 뛰어노는 아주 작은 두 꼬마들의 형체도 흐릿해
쉼표 자체가 경계 없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헛발질을 해봤습니다.

궂은 비에 꽃잎 우산 속으로 뛰어들어가 만나는 세상을 그리며
개인전 축하드립니다.

여울 2019-10-04 08:38   좋아요 0 | URL
그냥 편안하게 봐주시면 했는데요.
살펴주셨네요.

대전 전시라서 사실은 대상은 인연이 많이 닿은 곳과 사람들을 가정했어요. 그리고 힌트는 배경음 역할이나 소품 역할를 하는 영상에 많이 있어요. 그리고 도록에서 슬며시 들어있긴 합니다. 너-머, 가:다 역시 제몫이 아닌 읽고 받아들이는 분들의 몫이기도 해서 해설은 덧붙이고 싶지는 않아요. 다양하게 띄어 읽으셔도 좋습니다. 너 뭐가 너머가 다 너머 가!! 다 변주는 제 몫이 아닙니다.

그리고 공간을 보셨지만 게시된 작품이 적고 많이 추려내었습니다. 공간예술가와 시인이 설치작업을 도와준 결과이기도 합니다.

비오는 날, 보시면 더 좋아요. 이런 설명보다 마음가는대로 보시면 더욱 좋구요. 그림과 길게 내리 걸린 글에 초점은 맞춰져 있어요. 천천히 분할된 공간을 음미하셔도 좋을 듯해요. 물론 설치와 도록도 별도의 작품으로 여겨주시면 더욱 감사해요.

저도 경계가 없었으면 해요. 사람들도 삶도...원래 그런 것이겠다 싶기도...

2019-10-01 2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 ] 사랑이란 결국 자기 안에 머무는 감정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우리는 사랑하는 대상이 죽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할 때에도 그 사랑이 완전히 소멸되지는 않음을 경험한다. 외로움 혹은 다른 어떤 이유 때문에 사랑을 좇는다 해도 사실 그것은, 철저히 자기 안에 머문다.....사랑하는 사람과 사랑받는 사람은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한다. 사랑하는 사람, 그는 사랑받는 사람이 자기 안의 사랑을 일깨우는 역할일 뿐임을 아는 사람이다. 무수한 사랑과 이별 끝엗 자기 내면에 결코 사라지거나 부서지지 않는 것이 있음을 아는 사람이다. 67

[ ] 우리는 어쩌면 태어나지 않은 사람, 또는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만난 적 없는 사람의 언어를 받아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강렬한 감정을 느낄 때, 그것은 사실 내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그이에게서 온 것인지도 모른다.75

[ ] 연인은 일찍이 사회로부터 추방된 존재들이었다. 사랑에 들어선 순간, 공동으로 익명의 존재가 되기를 기꺼이 원하는 자들. 어둠 속에서, 길모퉁이를 돌 때 느닷없이 나타나는 비밀한 사람들. 그들은 우리가 거리에서 지나친다면 누구인지 기억도 못할 평범한 얼굴을 지닌 사람들이다. 101

[ ] 감수성이 교육을 통해 변화 가능하다는 손택의 주장은 인간이 배움을 통해 다른 차원의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암시하는 듯하다. 나는 사랑에도 이런 시각이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거기에는 우리가 개인의 영역이라 여기는 사랑에 있어서조차 온전한 나만의 욕망은 있을 수 없다는 것, 우리가 아무리 자유롭다 여기는 욕망이라 해도 이 세계 안에서 철저히 길들여진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이 전제된다.120

[ ] 철학자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은 [반디불의 잔존]을 통해 말한다. 오늘날 반딧불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어두운 곳에 있지 못한 거라고, 그러니 반딧불을 보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당연히도 반딧불을 볼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이상한 말이었다. 어떤 것을 바라보기 위해 우리가 충분히 어두워져야만 한다는 것은. 145

[ ] 글썽이는 것들은 모두 그곳에 묻히지요. 이원, 서로의 무릎이 닿는다면.....이 시는 이미 다른 세상으로 간 사람을 향한 연서처럼 읽힌다. 우리가 결별한 사랑의 대상에 대해 마땅히 갖춰야 할 애도의 형식으로 읽힌다. 바라보기 위해 테이블을 놓아, 당신과 나 ‘사이‘의 거리를 만들어내야만 하고, 글썽이는 바다까지도 놓아야만 하는 사람.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별은 잊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부재하는 사람과 마주않을 한 개의 테이블을 필요로 한다. 154

[ ] 사랑을 통해 우리는 타인의 한 점과 또다른 타인의 한 점이 만나는 이미지를 목격한다. 개별적인 삶을 살아왔던 것으로 보이는 두 개의 사건(언제나 축적된 시간 속에서, 그를 통해 존재한다는 점에서 인간은 곧 사건이다)은, 그러나 맞닿는 순간 서로의 과거를 포용한다. 포용한다는 것은 서로의 속내를 듣고 이해하거나 존중한다는 차원이 아니다. 두 개의 사건이 맞부딪친다는 것은 그런 차원을 넘어선다. 설령 물리적으로 과거가 공유되는 지점이 없다고 해도 말이다. 186

[ ] 다 보여선 안 된다는 문학 선생의 말은 우리 삶의 비밀에 관한 거친 충고였다고, 이제는 생각한다. 이 세상에는 인간인 내가 끝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결코 이해할 수 없고 알 수 없는 사랑이 있으며, 당신이 있으며, 운명이 있다. 그러므로 비밀을 남겨둬야 하는 것이 있다. 다 보여선 안 된다는 것은 비밀을 지킴으로써 당신이 내 안에 머물 자리를 마련하는 일이다. 213

[ ] 흔히 표현은 나로부터 먼 곳에서,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지점을 건드리는 데서 도래한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생각하며 표현에 다가가고자 했다. 내가 느낀 것을 쓰는 게 아니라 내가 본 것을 씀으로써 읽는 사람이 그 장면을 느낄 수 있으면 했다. 보는 것은 나이지만, 내 감정을 지우고 이미지를 남길 때 그 표현은 비로소 시에 가까워졌다. 그것을 나라고 적을 주어 자리에 타인이 머무를 자리를 마련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217

볕뉘.

컬트 포르토 탐정소설의 장르적 우울과 클리셰: 실종의 키메라의 뒷글 ‘혼자 행진하는 사람‘을 읽고 어쩌다가 저자의 이름이 남아 이렇게 이어진다. 십년의 기록을 농축하다...어쩌면 졸이고 졸여 이렇게 세상에 내어놓은 게다. 아껴 아껴 읽고, 후기를 남겨야지 미루다가 봄마루를 한참이나 지나 이렇게 남긴다. 책을 다 읽고 난 뒤에서야 윤여일저자의 흔적이 남았다는 것을 알았다. 여행이나 관광이라는 말은 애초의 서투름만 남기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여행보다는 삶의 진한 자국을 남겨놓는 이들의 재주야 말로 여행을 또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일인 게다. 멋진 작가를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다 싶다. 올해 봄이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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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생트

[ ] 알지 못할 또는 친숙한 온갖 것들이, 우리들 등 뒤로 조심히 옮겨 다니면서 그러나 소리마저 감추지는 않는 채, 탄식과 호소와 한숨을 교환하는 것이다. 29

[ ] 나는 새벽이 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것은 이미 와 있었다. 그것은 내 안에서 부드럽게 피어나 있었다. 내 안의 동녘이 희미한 빛을 예고하고 있었으니, 빛은 내 안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동이 터오고 내 최초의 기억들이 물들어가면서, 나는 내가 조용히 내 인간적인 형태의 옆에, 어딘가, 이미 아침의 꿈들이 도달한 곳에 놓이는 것을 느꼈다. 62

[ ] 그것은 대상 없는 염려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것이 일으키는 동요는 내 이성 뒤편의 잘 알려지지 않은 그리고 깨어날까 두려운 감각들에 은밀히 작용했다. 나는 내 안에 그러한 감각들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 본질은 모른다. 그 감각들의 망은 소리와 빛의 파장들 너머, 내가 알지 못하는 데로 펼쳐져 있다. 그 신비한 틀 안에서, 그것들은 보이지 않는 삶의 기미들을 포착한다. 87

[ ] 가을은 피의 힘을 자극했고, 그 끓어오름은 나에게 극히 혼란스런 황홀경을 제공했었다. 이제 겨울은 나에게 대지로부터 떨어져 나온 순수한 정신적 풍경을 펼쳐 보였다. 거기에서는 한 가닥 나뭇가지도 가냘프고 뚜렷이 부각되었다. 나는 영혼의 모습들을 그릴 순수의 지평을 가지고 있었다. 거의 비현실적인 그 표면 위에서 나는 내 나름의 감성적 기하를 상상했으며, 거기서는 추억과 회환과 희망의 곡선들이 다정한 지성에 의해 그려지는 듯했다. 102

[ ] 내게 고향이라곤 서너 사람의 영혼뿐이야..... 168

[ ] 내게 일시적이나마 인격을 부여한 것은 그 꿈이었다. ...나는 정신이 채 들지 않았고, 저 섬세한 깨어남들과 미약한 잠 사이에서, 희미한 경계밖에 건너지 못한 채 그 위를 떠돌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의식을 잃지는 않았지만, 때로는 삶의 첫 선물들 즉 세계로부터 오는 모든 감각들에서, 그리고 때로는 내적 질료에서 자양을 취하고 있었다. 드물고 희박한 질료였지만, 새로운 감각들에는 전혀 빚지지 않은 것이었다. 왜냐하면 내 진짜 기억들은 전부 파괴된 반면, 모든 것이 내 상상적 기억의 특별한 신선함으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196

[ ] 나는 모든 재능을 받았소. 나는 모든 재보들을 만들었소. 나는 사랑했고, 주었소. 그런데 당신은 이렇게 가난하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을 거절했소....주문들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건 나도 안다오. 그것들은 육신에밖에 작용하지 않아. 나는 영혼에는 힘을 미칠 수가 없었소. 정원에 결여된 것이 무엇인지 이제야 알겠소.306

[ ] 나를 벗어나는 존재, 존재 그 자체가 있소. 그를 끌어당길 수 없소. 그가 오고 있소. 나는 그를 내 나름대로, 대지의 방식대로 존중했다오. 하지만, 이렇게 늙고 죽음에 임박해서도, 나는 아직 그를 맞아들일 만큼 가난하질 못하구려. 308

[ ] 흔히 소설 짓는 이들은 소설을 구상함에 있어 사건의 전개, 인물, 묘사 등을 포함하는 계획을 가지고서 모종의 관념을 구현하려 한다. 그렇게 미리 정한 바대로 지은 소설은 알레고리나 논증 내지는 논문이나 마찬가지라, 관념만 무성할 뿐 삶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소설은 써나가는 동안 미리 예견하지 못했던 질문들에 대해 살아 있는 답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예견하지 못했던 질문들일수록, 그 답은 한층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316

[ ] 마침내 나는 내 뺨 위에 여린 숨결을 느꼈다. 따스한, 인간적인 숨결이었다...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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