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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의 루카
세키구치 히사시 지음, 이선희 옮김 / 예담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사랑은, 지켜주는 것 - 월요일의 루카 _ 스토리매니악
내게 극장은 추억의 공간이다. 극장에 관한 추억은 움찔움찔 가슴을 찔러댄다. 대게는 어릴 적 기억들인데, 그 형용하기 힘든 고요함, 답답함, 그리고 온기가 생각난다. 가만히 그 기억들을 생각해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왜일까? 요즘처럼 극장이 하나의 소비재가 아니라, 그때에는 커다란 동경의 대상이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극장을 통해 경험했던 것들이 내게 신선한 충격내지는 흥분으로 남아 있어서일 수도 있겠다.
추억 하나를 꺼내 보자면, 요즘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릴 때는 영화를 보다 보면 필름이 끊기는 경우가 꽤 많았다. 한참 영화에 몰입하고 있는데 영화가 뚝 끊기는 사고, 터져 나오는 탄성과 불만의 외침들, 잠시의 시간이 지나고 다시 상영되는 영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영화에 몰입하는 사람들... 일종의 통과의례와도 같은 이런 일들이 매 번은 아니어도 자주 있는 편이었다.
영화가 중단되면 으레 뒤를 돌아본다. 거기서 영사기가 있기 때문인데, 언뜻 사람의 그림자도 보인다. 그 그림자가 바로 영사기사다. 그때는 영사기사란 명칭이나 역할을 잘 몰랐지만, 저 사람 때문에 영화가 중단 되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영화가 상영 되는 동안은 절대 그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지만, 가끔 그 존재감을 과시해주는 존재로 내 기억에 남아 있다.
이 소설의 중심에는 바로 이 영사기사가 있다. 중심 소재로 쓰이는 것인데, 여주인공의 직업이기도 하다. 그녀가 근무하는 곳에서 '게이스케' 라는 대학생이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영사기사인 여주인공 '루카' 가 다리를 다쳤기 때문에, 그 보조를 하게 된 것이다. 근무조건은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극장 지배인에게 세 가지의 채용조건을 제시 받게 된다. '루카' 와 관련된 이 조건들은 괴상하지만, 묵묵히 제 할 일을 해내던 '게이스케' 와 '루카' 사이에 어느덧 사랑의 감정이 싹트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통해 두 사람이 가지고 있던 상처가 하나 둘 그 베일을 벗은 이야기다.
줄거리를 가볍게 풀어 보기는 했지만, 소설의 내용은 은근히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20대 초반의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하면 조금은 열정적이고 가벼울 것 같은 느낌인데, 이 소설에서의 두 사람의 사랑은 은밀한 분위기를 풍긴다. '루카' 는 3년 동안 극장 안에서 살며 단 한 번도 밖에 나간 적이 없다. 그 이유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이런 은밀한 비밀 위에 이루어지는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는 일반적인 20대의 사랑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사랑을 느끼면 상대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지는 것일까? '게이스케' 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자 그녀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고, 그러기 위해 자신의 상처를 먼저 내보인다. 수상한 분위기와 소문이 그녀를 감싸고 있지만, 애써 그것을 밝히려 하지 않고 천천히 기다려준다. 이 소설의 백미는 이 기다림이다. 이 기다림의 분위기가 소설의 전체 분위기를 묘하게 매력적으로 만든다. 때로는 복장 터지기도 하지만...
이 소설에서 두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키워드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준다는 것' 이다. 이 키워드의 의미가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일 것이다. 두 주인공은 나름의 방식으로 상처로부터 서로를 지켜주려 하고, 두 사람의 상처 또한 이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기인한다. 참 절묘하다면 절묘하다. 지켜주지 못한 사랑 때문에 힘들어 하고, 그 실수를 더 하지 않기 위해 지켜주려는 강한 마음이 둘 사이의 사랑을 견고히 한다. 이런 일련의 구성이 이 소설의 분위기와 더불어 소설의 재미를 더해준다.
“생각해보면 사람은 누구나 누군가에게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시그널이 상대방에게 닿느냐 닿지 않느냐에 상관없이.”
소설에서는 '시그널' 의 의미를 크게 다루고 있는 듯 한데, 내 생각엔 이 시그널의 의미가 크게 와 닿지는 않는다. 전체적인 분위기와 큰 이미지로 보면 이 시그널의 의미가 잘 보이기는 하는데, 읽으면서는 어딘가 모르게 약하다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둘 사이에 시그널이 어떤 역할을 했나 보면 이는 더 명확해진다.
그런 아쉬운 점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소프트한 따뜻함이 있는 소설이라 평하고 싶다. 임팩트 있는 부분은 없지만, 이야기의 재미를 놓칠 만큼의 끊어지는 부분도 없었다. 캐릭터도 잘 살아 있고, 물 흐르듯 이야기가 잘 흘러간다. 두 사람의 사랑 분위기에 어울리는 소재를 잘 갖다 썼고, 이를 절묘한 구성으로 잘 엮어 놓았다. 뜨겁고 화려한 사랑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런 소프트한 그리고 따뜻한 사랑도 꽤 매력적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