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의 묘
전민식 지음 / 예담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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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라는 소용돌이에 갇힌다 - 9일의 묘 _ 스토리매니악


소용돌이 속의 정치적, 시대적 상황은 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는다. 우리나라만 해도 그러한 소용돌이를 여러 차례 지나온 터이다. 정치적, 시대적 격변기에는 많은 암투가 벌어진다. 권력이라는 것을 차지하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는 상황이다. 사회는 혼란해지고, 그 혼란 속에서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기는 사람도 생겨난다.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움직여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 책 <9일의 묘>는 바로 그런 상황을 이야기로 구성한 소설이다.

 

시대적 배경은 1979 10, 대통령의 죽음 직후 치러진 9일간의 장례기간이다. 갑작스러운 최고 권력의 공백이 나타나고,주인을 잃은 권력을 차지하려는 자들의 암투가 벌어진다. 이 소용돌이 속에서 이용을 당하는 이들을, 이 소설에서는 풍수사로 설정하고 있다. 음양오행을 기반으로 풍수지리를 보고, 인간의 운명과 자손들의 운명을 읽어 내고, 또 그들의 운명을 바꾸기 위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 소설에서는 권력을 잡기 위해 이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장면들을 그려냈다.

 

풍수라는 것은 욕망이라는 단어와 연관 되어 있다. 집터를 어디에 잡고, 묫자리를 어디 서며, 어느 지형은 좋고 어디는 나쁜지를 가려내는 것이 풍수사들이다. 왜 이런 자리를 가려내고 그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생겨날까? 간단하다. 이를 통해 이익을 얻기 위함이다. 좋은 기운이 미치고, 자손이 번영하기를 원하는 욕망이다.

 

이 소설에서는 권력을 잡고자 하는 이들이 묫자리를 가지고 싸운다. 공백이 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움직인 군인들, 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묫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당대 최고의 풍수사랄 '황창오' 의 아들들을 내세워 묫자리에 자신들의 조상을 모시려 한다. 이 싸움에 휘말린 '중범'  '도학' 은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들에게 이용당한다.

 

제법 그럴 듯한 설정이다. 권력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자들이 풍수지리에 의존하려 한다. 그러기 위해 풍수사가 필요하고, 그들의 정보에 따라 긴밀한 시간을 다툰다. 마치 스릴러 같은 긴장감과 속도감이 살아 있다. 짧은 시간 안에 권력을 잡는 주도세력이 되기 위해 움직인다는 소재가 주는 긴박함이 좋고, 이를 뒷받침하는 풍수사라는 설정이 적절하다.

 

이야기의 진행도 긴장감을 제대로 느낄 만큼 빠르다.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 이 상황에서 움직이는 사람들, 또 하나의 사건들이 연이어 벌어진다. 적어도 이야기 자체만으로는 나무랄 데 없을 정도의 재미를 준다.

 

다만, 그 이야기 속에 묻힌 인물들과 주제의식은 좀 모호하다. 몇몇 중심이 되는 인물은 그 캐릭터가 잘 잡혀 있지만, 그들을 뒷받침 해주는 인물들과 그들이 서사 안에서 벌이는 일들은 언뜻 납득이 안 되는 부분들이 많다. '굳이 이런 행동까지 혹은 이런 사건까지' 라고 할 법한 장면들 꽤 나오고, 이런 부분들이 어떤 개연성을 갖는지 쉽게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 그 일련의 과정 안에서 두 풍수사 '중범'  '도학' 이 하는 행동들은 어쩔 수 없는 운명 안에 놓인 인물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해가 되지만,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인공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참 아쉽기 그지 없다. 뭐랄까, 자신들의 뚜렷한 주관 없이 끌려 다니기만 하는 주인공들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한 번 부딪혀 보지도 못하는 주인공에서 어떤 매력을 찾기가 참 힘들었다.

 

, 이 소설을 통해 어떤 주제를 던져주려 했는가 생각해보면, 언뜻 와 닿는 것이 없다. 전체적인 그림에서 볼 때 느껴지는 주제는 있으나, 과연 이것이 이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인가라고 물으면 솔직히 자신이 없어진다.

 

아쉬운 점도 분명 눈에 띄지만, 이 소설을 그냥 있는 그대로 재미라는 관점에서만 보아도 좋은 소설이라 생각한다. 와 닿는 주제가 없어도, 인물의 행동들이 이해가 안 되어도, 빠른 전개와 서사가 주는 재미가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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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의 루카
세키구치 히사시 지음, 이선희 옮김 / 예담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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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지켜주는 것 - 월요일의 루카 _ 스토리매니악


내게 극장은 추억의 공간이다. 극장에 관한 추억은 움찔움찔 가슴을 찔러댄다. 대게는 어릴 적 기억들인데, 그 형용하기 힘든 고요함, 답답함, 그리고 온기가 생각난다. 가만히 그 기억들을 생각해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왜일까? 요즘처럼 극장이 하나의 소비재가 아니라, 그때에는 커다란 동경의 대상이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극장을 통해 경험했던 것들이 내게 신선한 충격내지는 흥분으로 남아 있어서일 수도 있겠다.

 

추억 하나를 꺼내 보자면요즘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릴 때는 영화를 보다 보면 필름이 끊기는 경우가 꽤 많았다. 한참 영화에 몰입하고 있는데 영화가 뚝 끊기는 사고, 터져 나오는 탄성과 불만의 외침들, 잠시의 시간이 지나고 다시 상영되는 영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영화에 몰입하는 사람들... 일종의 통과의례와도 같은 이런 일들이 매 번은 아니어도 자주 있는 편이었다

 

영화가 중단되면 으레 뒤를 돌아본다. 거기서 영사기가 있기 때문인데, 언뜻 사람의 그림자도 보인다. 그 그림자가 바로 영사기사다. 그때는 영사기사란 명칭이나 역할을 잘 몰랐지만, 저 사람 때문에 영화가 중단 되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영화가 상영 되는 동안은 절대 그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지만, 가끔 그 존재감을 과시해주는 존재로 내 기억에 남아 있다.

 

이 소설의 중심에는 바로 이 영사기사가 있다. 중심 소재로 쓰이는 것인데, 여주인공의 직업이기도 하다. 그녀가 근무하는 곳에서 '게이스케라는 대학생이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영사기사인 여주인공 '루카' 가 다리를 다쳤기 때문에, 그 보조를 하게 된 것이다. 근무조건은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극장 지배인에게 세 가지의 채용조건을 제시 받게 된다. '루카' 와 관련된 이 조건들은 괴상하지만, 묵묵히 제 할 일을 해내던 '게이스케'  '루카' 사이에 어느덧 사랑의 감정이 싹트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통해 두 사람이 가지고 있던 상처가 하나 둘 그 베일을 벗은 이야기다.

 

줄거리를 가볍게 풀어 보기는 했지만, 소설의 내용은 은근히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20대 초반의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하면 조금은 열정적이고 가벼울 것 같은 느낌인데, 이 소설에서의 두 사람의 사랑은 은밀한 분위기를 풍긴다. '루카'  3년 동안 극장 안에서 살며 단 한 번도 밖에 나간 적이 없다. 그 이유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이런 은밀한 비밀 위에 이루어지는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는 일반적인 20대의 사랑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사랑을 느끼면 상대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지는 것일까? '게이스케' 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자 그녀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고, 그러기 위해 자신의 상처를 먼저 내보인다. 수상한 분위기와 소문이 그녀를 감싸고 있지만, 애써 그것을 밝히려 하지 않고 천천히 기다려준다. 이 소설의 백미는 이 기다림이다. 이 기다림의 분위기가 소설의 전체 분위기를 묘하게 매력적으로 만든다. 때로는 복장 터지기도 하지만...

 

이 소설에서 두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키워드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준다는 것' 이다. 이 키워드의 의미가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일 것이다. 두 주인공은 나름의 방식으로 상처로부터 서로를 지켜주려 하고, 두 사람의 상처 또한 이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기인한다. 참 절묘하다면 절묘하다. 지켜주지 못한 사랑 때문에 힘들어 하고, 그 실수를 더 하지 않기 위해 지켜주려는 강한 마음이 둘 사이의 사랑을 견고히 한다. 이런 일련의 구성이 이 소설의 분위기와 더불어 소설의 재미를 더해준다.


“생각해보면 사람은 누구나 누군가에게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시그널이 상대방에게 닿느냐 닿지 않느냐에 상관없이. 

소설에서는 '시그널' 의 의미를 크게 다루고 있는 듯 한데, 내 생각엔 이 시그널의 의미가 크게 와 닿지는 않는다. 전체적인 분위기와 큰 이미지로 보면 이 시그널의 의미가 잘 보이기는 하는데, 읽으면서는 어딘가 모르게 약하다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둘 사이에 시그널이 어떤 역할을 했나 보면 이는 더 명확해진다.

 

그런 아쉬운 점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소프트한 따뜻함이 있는 소설이라 평하고 싶다. 임팩트 있는 부분은 없지만, 이야기의 재미를 놓칠 만큼의 끊어지는 부분도 없었다. 캐릭터도 잘 살아 있고, 물 흐르듯 이야기가 잘 흘러간다. 두 사람의 사랑 분위기에 어울리는 소재를 잘 갖다 썼고, 이를 절묘한 구성으로 잘 엮어 놓았다. 뜨겁고 화려한 사랑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런 소프트한 그리고 따뜻한 사랑도 꽤 매력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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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전2권 (한글판 + 영문판)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한글판 + 영문판) 44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허윤정 옮김 / 더클래식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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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가나 앞으로 가나 같은 인생 -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_ 스토리매니악

 

이 소설은 슬프다. 사람의 감정을 쥐어짜는 감동적인 이야기나, 사건 또는 장치들이 마련된 것은 아니지만, 짧은 이야기 속에서 느끼는 감정은 그야말로 슬프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아련한 슬픔이라 하면 어떨까?

 

이 작품엔 두 개의 슬픔 코드가 들어 있다. 먼저 '시간에 대한 슬픔이다. '벤자민 버튼은 작고 약한 아기로 태어난 것이 아닌, 70대의 노인으로 세상에 태어났다. 남들은 아기로 태어나 노인으로 죽어가는데 비해, 그는 노인으로 태어나 아기로 죽어간다. 자연의 섭리에 거스르는 그의 시간 역행은 진한 슬픔을 남긴다.

 

나이를 먹어가며 시간을 소진하는 슬픔이나, 나이가 어려져 가며 시간을 소진하는 슬픔이나, 시간이 지나 소멸한다는 슬픔은 매한가지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늙어가는 것을 아쉬워하고 슬퍼하지만, 그 반대가 되도 또 다른 슬픔이 남을 뿐이라는 아픈 진실을 이 소설은 전하고 있다. 결국 우리가 원하는 것은 가장 찬란한 시간, 그 순간에 머무는 것이 아닐까? 결국 어디서 시작하느냐는 문제가 아니다.

 

이야기에서는 시간의 경과로 소멸되는 것들에 대한 단상을 들려준다. 관계를 지워가는 사람, 식어버린 사랑, 내 삶이 가장 빛나는 때, 찬란했던 순간들, 이런 것들이 시간이 지나며 사라져가는 모습을 '벤자민 버튼'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삶을 스쳐가며 소멸되어 가는 것들을 이야기에서 잡아낼 때마다 깊은 아련함이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친다.


" 쉰 살. 스물다섯은 너무 세상 물정에 밝고, 서른은 격무에 시달려 피폐해지기 십상이고, 마흔은 말할 때 시가 하나를 다 피울 정도로 이야기가 긴 나이죠. 예순은 음, 예순은 일흔에 너무 가까워요. 그렇지만 쉰은 원숙한 나이지요. 나는 쉰 살이 좋아요. "

또 하나, 이 소설에서 짚어낼 수 있는 슬픔 코드는 '비정상' 의 슬픔이다. '벤자민 버튼은 일반적인 시간의 흐름에 역행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때문에 현실에서 자신의 본 모습을 인정받지 못한다. 주변 사람들은 그의 유별남을 불편해하고 일반적인 기준에 맞추기를 강요한다. 심지어 아버지와 그의 아들까지도 그의 유별남을 지적하며 평범해질 것을 요구한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가족이 주는 이러한 요구는 그에게 더 큰 상처를 남기곤 한다.

 

사람들은 순리의 틀에서 벗어난 사람을 '비정상' 이라 부르며 외면한다. 이런 외면을 보듬어 주어야 할 가족마저 그러한 외면에 동참했을 때, '벤자민 버튼' 이 느꼈을 외로움이란 상상하기도 힘들다. 그 음울한 슬픔의 꼬리가 그의 삶 부분부분에 선명한 흔적을 만들어 놓는다


그의 아이다운 잠에 골치 아픈 기억은 없었다. 용감했던 대학생 시절이나, 많은 소녀의 마음을 빼앗았던 빛나는 날들흔 흔적도 떠오르지 않았다. (중략). 그의 부대를 이끌고 산후안 언덕을 점령했던 맹렬한 공격의 순간, 사랑했던 젊은 힐더가드를 위해 바쁜 도시에서 여름의 어스름이 지는 늦은 때까지 일했던 결혼 초반의 몇 년,  할아버지와 함께 먼로가의 어둑어둑해진 옛 버튼 저택에서 밤늦게까지 담배를 피우던 날들······. 이 모든 과거의 기억이 마치 결코 일어난 적이 없었다는 듯 그의 마음에서부터 실체가 없는 꿈처럼 희미해졌다.

짧은 이야기 속에, 큰 사건이나 이야기의 급격한 전개나 전환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없음에도, 이야기 전체가 상당히 짜임새 있게 느껴진다. 얼핏 한 사람의 인생을 설렁설렁 훑어가는 듯한 구성인데, 묘하게 그 여백을 꽉꽉 채워주는 인간에 대한 연민이 가득하다.

 

순리를 역행하며 사는 사람이라는 작가의 상상력도 대단하지만, 순리대로 흘러가는 인생이나 그것을 역행하여 거꾸로 흐르는 인생이나, 별다를 것 없다고 하는 작가의 결론이 더 깊게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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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슈라라봉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3
마키메 마나부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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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코믹을 제대로 보여주마 - 위대한 슈라라봉 _ 스토리매니악


<위대한 슈라라봉> 한 편의 명랑만화 같은 이야기다. 작가 '마키메 마나부는 이런 류의 소설을 참 잘 쓴다. <가모가와 호루모> <가노코와 마들렌 여사>에서도 그런 솜시를 유감 없이 발휘한 바가 있는데, 일본 전통문화와 판타지적 요소가 결합 된 청춘소설이라는 작가 나름의 영역을 구축한 듯 하다.

 

작가의 다른 소설도 그렇지만, 이 소설에서는 유독 코믹한 면이 도드라진다. 일본 최대의 호수 비와 호가 있는 이와바시리를 배경으로 '히노데 ' '나쓰메 가''의 불가사의한 힘, 그 힘을 둘러싼 한 없이 웃긴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은 '히노데' 본가에 일종의 수련 겸 유학을 가게 된 '료스케'가 이끌어 간다. 가진 힘을 성가셔 하면서도'히노데 가' 사람으로써의 운명에 저항하지 못하는 소심남이다. 그가 이와바시리의 본가에 들어가, 본가의 도련님인 '단주로와 원수 가문의 '나쓰메 히로미' 등과 커다란 사건에 맞닥뜨린다.

 

딱히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이야기는 술술 이어지는 편이다. 두 가문의 애증의 관계, 비와 호의 힘을 받은 두 가문이 갖고 있는 저마다의 특별한 힘, 두 가문을 위협하는 제 삼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꽤 두꺼운 책인데도 읽어나가는 과정이 전혀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이야기에 재미가 있다. 한 편의 코믹 드라마를 보는 듯한 재미도 있고, 청춘물이라 파릇파릇, 팔딱팔딱 하는 감정이 엮인 사건을 보는 재미도 있다. 무엇보다 일본 전통 문화에 기반한 판타지가 엮어 내는 상상력의 재미가 좋다.

 

문장에 빨려 들게 하는 흡입력을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하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인데, 저자는 각각의 캐릭터에 확고한 저마다의 성격을 찰싹 달라붙게 만들어 놓음으로써,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캐릭터들이 부딪히고 엮여 만들어내는 재미의 농도가 상당히 진하다. 때문에 이야기 전체의 스토리를 즐기는 재미도 있지만, 각각의 캐릭터를 들여다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 얘를 우리 아버지처럼 멈췄다가 원상회복시켜봐. 그걸 증명한다고 해서 당신이 손해 볼 건 없잖아? "

" 자, 잠깜만 있어보시라니까요? "

주춤거리는 나를 기요코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잡아끌었다. 눈앞을 스쳐 지나는 단주로에게 도와달라고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지만, 완전히 무시당했다.

" 그만하세요. 뭐하는 거예요? 갑자기! "

" 죽는 것도 아니잖아. 멈추더라도 네 안에서 시간이 흐르지 않으니까 정지한 것 자체를 못 느낄 거야. 물론 저 사람이 말한 게 사실일 때지만. "

" 아, 안 돼요! 절대로 싫다고요. 이건 말도 안 돼! "

" 시끄러워. 빨리 앞으로 가. "

기요코가 재빨리 내 등 뒤로 가더니 있는 힘껏 나를 떠밀었다. 고꾸라지듯 튀어나간 나를 교장은 아주 귀찮은 표정으로 내려다보더니, 포기했다는 듯 중얼거렸다.

" 알겠다. 할 수 없지. "

교장은 오른손을 가슴 앞으로 스윽 움직였다. 

이런 류의 소설을 좋아해서인지, 엄지를 척~ 치켜 들고 싶다. 코믹, 판타지, 청춘소설 중 하나의 코드라도 즐기는 분이라면,재미 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라 생각한다. 다만, 판타지적인 상상력에 민감한 분이라면, 조금은 난감할 수도 있다

" 얘를 우리 아버지처럼 멈췄다가 원상회복시켜봐. 그걸 증명한다고 해서 당신이 손해 볼 건 없잖아? "

" 자, 잠깜만 있어보시라니까요? "

주춤거리는 나를 기요코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잡아끌었다. 눈앞을 스쳐 지나는 단주로에게 도와달라고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지만, 완전히 무시당했다.

" 그만하세요. 뭐하는 거예요? 갑자기! "

" 죽는 것도 아니잖아. 멈추더라도 네 안에서 시간이 흐르지 않으니까 정지한 것 자체를 못 느낄 거야. 물론 저 사람이 말한 게 사실일 때지만. "

" 아, 안 돼요! 절대로 싫다고요. 이건 말도 안 돼! "

" 시끄러워. 빨리 앞으로 가. "

기요코가 재빨리 내 등 뒤로 가더니 있는 힘껏 나를 떠밀었다. 고꾸라지듯 튀어나간 나를 교장은 아주 귀찮은 표정으로 내려다보더니, 포기했다는 듯 중얼거렸다.

" 알겠다. 할 수 없지. "

교장은 오른손을 가슴 앞으로 스윽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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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 2 - 내일을 움직이는 톱니바퀴
다니 미즈에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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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를 찾아가는 추억의 톱니바퀴 - 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 2 _ 스토리매니악

살아가다 보면,  바꾸고 싶은 과거가 하나 둘쯤은 누구에게나 있다. 후회되는 순간, 잊어버리고 싶은 순간, 그 순간에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바뀌었을 지금의 모습을 생각하며 지난 과거의 추억을 곱씹게 된다. 그런 과거의 시간들을 수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이 소설 <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 2>는 이런 명제에서 출발한다.

 

전작에 이어 더 탄탄한 에피소드로 찾아 왔다. 쇠락한 상가의 시계방에 찾아 오는 손님들은 아픈 추억을 수리해지기를 바라며 들어 온다.이곳의 주인 '슈지'는 다정한 성격에 상가 사람들에게 깊은 신뢰를 받고 있다. 이 상점 거리의 문 닫은 헤어살롱 유이에 이사  '아카리',그녀도 아픈 과거를 치유하며 지금은 '슈지'와 연인 관계다.

 

이 둘은 중심으로 하여 이야기들은 이어진다. 간단하게 비교를 하자면, 전작에 비해 틀이 많이 잡힌 느낌이다. 전작에서 분위기 조성에 힘쓰는 부분이 많았다면, 이번 2편에서는 전작의 설정을 그대로 이어 받기에 에피소드 자체에 더 충실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픈 과거를 수리하고 싶은 사람들과, 이들의 치유를 돕는 두 사람이 어우러져 따스한 온기가 전해 오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이번 에피소드들을 보면 유독 '복선'이 눈에 띈다. 하나하나의 소품들과 각각의 행동들이 앞으로 있을 이야기들의 복선이 되는데, 다양하면서도 이것들이 잘 엮여져 있어 무리한 느낌이 전혀 없는 복선이다. 때로는 그 복선이 무엇을 위한 장치인지 잘 보일 때도 있는데, 그것에 실망스럽기 보다는 앞의 이야기를 더 기대하게 만든다. 이 책의 메인 소재이기도 한 시계처럼, 각각의 복선들과 소품들 그리고 캐릭터들이 톱니바퀴 맞물리듯 잘 맞아 들어가는 느낌이다.

 

비중은 크지 않을지 몰라도 적재적소에 등장하는 새로운 캐릭터들도 즐겁다. '유이'의 동생 '카나', 과일가게 부부 '다모쓰' '요코', 마지막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개도 새로움과 더불어 이야기에 활력소를 만들어낸다. 이야기는 '슈지' '아카리'가 끌고 가지만,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이러한 캐릭터들이 그 사건의 중심에 있으면서, 캐릭터만의 개성과 이야깃거리를 전해준다. 이들 캐릭터가 엮이고 엮어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풍성하다.

 

이야기를 다 읽고 책을 덮으니 보들보들한 카푸치노 한 잔이 생각난다. 이 시리즈는 그런 부드러운 분위기,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것이 매력이다. 이야기 구성이 추억을 수리한다는 힐링이라는 관점에 맞추어져 있는데, 이런 부드럽고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점 자체도 또 다른 힐링 포인트가 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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