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전2권 (한글판 + 영문판)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한글판 + 영문판) 44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허윤정 옮김 / 더클래식 / 201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뒤로 가나 앞으로 가나 같은 인생 -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_ 스토리매니악

 

이 소설은 슬프다. 사람의 감정을 쥐어짜는 감동적인 이야기나, 사건 또는 장치들이 마련된 것은 아니지만, 짧은 이야기 속에서 느끼는 감정은 그야말로 슬프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아련한 슬픔이라 하면 어떨까?

 

이 작품엔 두 개의 슬픔 코드가 들어 있다. 먼저 '시간에 대한 슬픔이다. '벤자민 버튼은 작고 약한 아기로 태어난 것이 아닌, 70대의 노인으로 세상에 태어났다. 남들은 아기로 태어나 노인으로 죽어가는데 비해, 그는 노인으로 태어나 아기로 죽어간다. 자연의 섭리에 거스르는 그의 시간 역행은 진한 슬픔을 남긴다.

 

나이를 먹어가며 시간을 소진하는 슬픔이나, 나이가 어려져 가며 시간을 소진하는 슬픔이나, 시간이 지나 소멸한다는 슬픔은 매한가지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늙어가는 것을 아쉬워하고 슬퍼하지만, 그 반대가 되도 또 다른 슬픔이 남을 뿐이라는 아픈 진실을 이 소설은 전하고 있다. 결국 우리가 원하는 것은 가장 찬란한 시간, 그 순간에 머무는 것이 아닐까? 결국 어디서 시작하느냐는 문제가 아니다.

 

이야기에서는 시간의 경과로 소멸되는 것들에 대한 단상을 들려준다. 관계를 지워가는 사람, 식어버린 사랑, 내 삶이 가장 빛나는 때, 찬란했던 순간들, 이런 것들이 시간이 지나며 사라져가는 모습을 '벤자민 버튼'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삶을 스쳐가며 소멸되어 가는 것들을 이야기에서 잡아낼 때마다 깊은 아련함이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친다.


" 쉰 살. 스물다섯은 너무 세상 물정에 밝고, 서른은 격무에 시달려 피폐해지기 십상이고, 마흔은 말할 때 시가 하나를 다 피울 정도로 이야기가 긴 나이죠. 예순은 음, 예순은 일흔에 너무 가까워요. 그렇지만 쉰은 원숙한 나이지요. 나는 쉰 살이 좋아요. "

또 하나, 이 소설에서 짚어낼 수 있는 슬픔 코드는 '비정상' 의 슬픔이다. '벤자민 버튼은 일반적인 시간의 흐름에 역행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때문에 현실에서 자신의 본 모습을 인정받지 못한다. 주변 사람들은 그의 유별남을 불편해하고 일반적인 기준에 맞추기를 강요한다. 심지어 아버지와 그의 아들까지도 그의 유별남을 지적하며 평범해질 것을 요구한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가족이 주는 이러한 요구는 그에게 더 큰 상처를 남기곤 한다.

 

사람들은 순리의 틀에서 벗어난 사람을 '비정상' 이라 부르며 외면한다. 이런 외면을 보듬어 주어야 할 가족마저 그러한 외면에 동참했을 때, '벤자민 버튼' 이 느꼈을 외로움이란 상상하기도 힘들다. 그 음울한 슬픔의 꼬리가 그의 삶 부분부분에 선명한 흔적을 만들어 놓는다


그의 아이다운 잠에 골치 아픈 기억은 없었다. 용감했던 대학생 시절이나, 많은 소녀의 마음을 빼앗았던 빛나는 날들흔 흔적도 떠오르지 않았다. (중략). 그의 부대를 이끌고 산후안 언덕을 점령했던 맹렬한 공격의 순간, 사랑했던 젊은 힐더가드를 위해 바쁜 도시에서 여름의 어스름이 지는 늦은 때까지 일했던 결혼 초반의 몇 년,  할아버지와 함께 먼로가의 어둑어둑해진 옛 버튼 저택에서 밤늦게까지 담배를 피우던 날들······. 이 모든 과거의 기억이 마치 결코 일어난 적이 없었다는 듯 그의 마음에서부터 실체가 없는 꿈처럼 희미해졌다.

짧은 이야기 속에, 큰 사건이나 이야기의 급격한 전개나 전환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없음에도, 이야기 전체가 상당히 짜임새 있게 느껴진다. 얼핏 한 사람의 인생을 설렁설렁 훑어가는 듯한 구성인데, 묘하게 그 여백을 꽉꽉 채워주는 인간에 대한 연민이 가득하다.

 

순리를 역행하며 사는 사람이라는 작가의 상상력도 대단하지만, 순리대로 흘러가는 인생이나 그것을 역행하여 거꾸로 흐르는 인생이나, 별다를 것 없다고 하는 작가의 결론이 더 깊게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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