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공장 - 소설가 김중혁의 입체적인 공장 산책기
김중혁 글.그림 / 한겨레출판 / 201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간이 나오면 덮어놓고 구입하는 작가군이 있다. '김중혁'도 그 중 하나이다. 왠지 기발할 것 같고, 황당한 웃음을 선사할 것 같은 구라쟁이의 글을 손에 들자마자 책 앞표지 안쪽에 책갈피용 포스트잇을 가득 붙여뒀다. 소장할 책인지, 선물할 책인지, 팔아버릴 책인지 결정하지 못한 시점에서 함부로 책에 줄을 칠 염을 내지 못해 내가 선택한 방법이 바로 인상깊은 구절에 포스트잇 붙이기이다. 보통 열댓개의 포스티잇이 붙게 되는데 김중혁에 대한 기대가 기대인 만큼 스무 개가 넘는 포스트잇을 장착하고 읽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에는 포스트잇이 네 군데 붙는 것으로 마쳤다.

 

p6 사람이란, 보이는 걸 꿈꾸게 마련이어서~

 

라는 부분을 읽으며 生이 더 많은 열정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것을 겪고 봐야겠구나 생각하며 작가의 생각에 끄덕끄덕했다.

 

p159 시간은 장점을 단점으로 바꾼다. 혹은 장점이었던 것을 단점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라는 부분에 두 번째 포스트잇을 장착했다. 뻔한 사실이지만 글 속에서 이런 구절을 발견하면 난 다시 한 번 고개를 심하게 끄덕거리곤 한다. 시간의 공평함과 매정함에 대해 요즘 들어 더 절실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인 모양이다.

 

p161 미래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어서, 근거 없는 낙관으로 가득 채울 수도 있고, 보이는 곳 전체를 잿빛 비관으로 도배할 수도 있다. 미래를 낙관하는 사람은 현재를 넘어설 수 없고, 미래를 비관하는 사람은 현재를 더욱 꼼꼼하게 채워간다. 미래란 현재의 동력인 셈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미래란 현재에서 이어지는 시간이지만, 반드시 현재의 결과인 것은 아니다. 때때로 현재에서 준비한 것들이 미래에서 아무런 소용이 없을 수 있다는 걸 안다.

 

이 부분이 제일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다. 희망찬 어린 것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인과응보'와 '권서징악'과 '고진감래'라는 그럴 듯한 옛이야기만 믿고 현재를 저당잡힌 채 살아가는 것이 그리 현명한(?) 일인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미래를 낙관하든 비관하든 그 둘 모두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 힘쓴다는 훈훈한 이야기가 따스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p143 누군가의 실수가 누군가의 기쁨으로 이어지는 일은 많지 않다.

 

이 부분은 라면 공장 산책기에 나오는 문장이다. 너구리라면 속에 들어있는 다시마는 사람이 직접 넣는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우연히 두 장의 다시마가 들어있는 라면을 발견한 기쁨을 이야기한 부분이다. 누군가의 실수가 다른 누군가의 기쁨이 된다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실수한 사람에게 질책이 아닌 미소를 보낼 수 있겠구나라는 행복한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하나 더, 라면의 꼬불거림은 반죽을 뒤에서 밀어내는 속도가 앞에서 당기는 속도를 앞서기에 생기는 현상이라는 이야기도 인상깊었다. 손발이 맞지 않아 생기는 주름투성이의 라면이 바로 라면의 생명력이 되다니 놀랍기만 하다.

 

이번 김중혁의 공장 산책기는 '알랭 드 보통'의 "일의 즐거움"이라는 책을 생각나게 했다. 정확한 제목인지 가물가물. 여튼 그런 류의 제목이었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조용하고 무감한 제품들이 사실은 어딘가에서 이야기를 간직한 존재였다는 것을 알려 준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래서 김중혁의 이야기가 재미있었지만 전작처럼 신선하지는 않았다. 감동의 폭은 겨우 포스트잇 4장이 전부이다.

 

그런데.. 앞으로 '김중혁이 또 책을 쓴다면 구입할까?'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난 여전히 'Yes'라고 대답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