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라 돼지 문학과지성 시인선 480
김혜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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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를 살처분하던 두렵던 시절...

그 돼지들의 분노를

누구 하나라도 말로 해줘야 하지 않나 싶었는데,

김혜순의 납작납작한 시어들이 증언을 남긴다.

 

앨리스의 돌이켜도 같은 단어가 되는 was it a cat I saw...같이,

말이란 것이 얼마나 가볍고 장난에 불과할 수 있는지도 생각한다.

 

수사학이 헌법인 나라에 살아본 적이 있습니까?

 

은유 경찰이 그림자 수갑을 철컥 채우는 나라

 

한밤중에 운전대를 잡게 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상상력입니다

 

당신은 무엇무엇의 의인화입니까?

...........

나무가 하늘로 뻗어가는 자세와 천사가 땅으로 내려오는 자세

 

Y(Y, 부분)    

 

  김사인이 계면에서 인간을 그리듯,

김혜순의 인간 역시 무엇무엇의 의인화이며,

수사학의 제한 속에 산다.

 

'금'이 제일 좋았다. 

 

  그 여자는 머리칼을 그리는 화가다. 바람에 흩날

리는 머리칼, 얼굴을 덮는 머리칼, 머리칼이 지붕

에서 내려와 창문을 덮는다. 머리칼이 앞길을 막는

. 머리칼이 왼발을 묶어놓는다. 너는 정처가 없어

서 뿌리를 머리에 이고 다니는 사람. 그 뿌리가 모

두 신경인 사람. 네 신경을 누가 흐느끼듯 켠다.

줄이 터진 듯 아득하면 너는 돌아앉아 검은 실로 목

을 칭칭 감아본다. 젖은 머리칼로 마루에 글씨를 써

본다. 이 고통은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가,

리칼이 바람을 울린다. 네 속을 도는 금들엔 매듭이

없다. 시작도 끝도 없다. 그렇지만 너를 바닥에서 일

으켜 세우는 머리카락으로 짠 그물이여. 무덤 속에

서 썩어가는 제 몸을 내려다보는 가슴 아픈 머리칼

이여. 심장에서부터 뻗어 나와 바람에 맞서는 갈가

리 마음이여. 깊은 숲으로 들어가면 달에서 온 환

그물이 숲 전체를 들어 올린다. 그림 속에서 여자의

얼굴을 타고 숲이 내려온다.(금,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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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좋아하는 창비시선 262
김사인 지음 / 창비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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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만가만한 것을 좋아한다.

가만한 당신이 좋고,

가만히 있는 돌이 좋다.

 

이 길, 천지에 기댈 곳 없는 사람 하나 작은 보따리로 울고간 길

그리하여 슬퍼진 길

상수리와 생각나무 찔레와 할미꽃과 어린 풀들의

이제는 빈, 종일 짐승 하나 지나지 않는

환한 캄캄한 길

 

열일곱에 떠난 그 사람

흘러와 조치원 시장통 신기료 영감으로 주저앉았나

깁고 닦는 느린 손길

골목 끝 남매집에서 저녁마다 혼자 국밥을 먹는,

돋보기 너머로 한번씩 먼 데릴 보는

그의 얼굴

고요하고 캄캄한 길(풍경의 깊이 2, 전문)

 

해설에서 <생과 죽음 사이의 섬세하고 민감한 계면>을 쓰는 시인이라 했다.

그렇다.

우연히 돌연히 삶이 시작되었으나,

겸손하지 못한 또는 어리석은 인간은

그것을 엄청난 것처럼 착각한다.

 

<행방불명>으로 자주 번역되는 '카미카쿠시'란 일본말이 있다.

神隱し라 쓰는데, 신의 세계로 숨어버리는 듯한 인상을 준다.

곧 시간과 육신의 유무 자체가 어떤 면을 경계로

있다가 풀어져 버리는 것을 가리키기에 좋은 단어일 듯 싶다.

그 경계를 노래하면 '계면조'가 되겠다.

 

모진 비비람에

마침내 꽃이 누웠다

 

밤내 신열에 떠 있다가

나도 푸석한 얼굴로 일어나

들창을 미노니

 

살아야지

 

일어나거라, 꽃아

새끼들 밥 해멕여

학교 보내야지(꽃, 전문)

 

역시 시점이 넘나든다.

해설자는 '박수'라 명명했지만,

그 계면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은 가만하지만 깊다.

 

시쓰기는 생을 연금하는

영혼을 단련하는 오래고 유력한 형식이라고 믿고 있다.

시 뒤편 어둑한 골방으로 서둘러 돌아갈 일.(시인의 말)

 

시는 언어로 절을 짓는 행위라 했다.

인간의 영혼은 온 곳을 모르고

갈 길을 몰라 늘 허청거린다.

어둑한 골방에 눕히는 시의 언어는

그래서 서늘하지만 복잡하게 얽힌 인생사를 묽게 풀어낸다.

 

논어에 지자 불혹, 인자 불우, 용자 불구...라 했다.

미혹되지 않고, 근심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한다.

그의 언어를 읽을 만한 이유다.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어린 그 처자

발그라니 언 손에 얹혀

나 인생 탕진해버리고 말겠네

오갈 데 없는 그 처자

혼자 잉잉 울 뿐 도망도 못 가지...

마침내 나 먼저 숨을 놓으면

그 여자 이제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리

나 피우던 쓴 담배 따라 피우며

못 마시던 술도 배우리 욕도 배우리...(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어, 부분)

 

김명인의 시를 모방한 그의 언어들에서,

가치라는 것이 무어냐고,

인간들의 무리지은 생각인 '윤리'가 도대체 뭐냐고,

술취한 노인의 맥빠진 질문이 들린다.

 

길이 있다면, 어디 두천쯤에나 가서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의

버려진 너와집이나 얻어 들겠네, 거기서

한 마장 다시 화전에 그슬린 말재를 넘어

눈 아래 골짜기에 들었다가 길을 잃겠네

저 비탈바다 온통 단풍 불 붙을 때

너와집 썩은 나무껍질에도 배어든 연기가 매워서

집이 없는 사람 거기서도 눈물 짓겠네

 

쪽문을 열면 더욱 쓸쓸해진 개옻 그늘과

문득 죽음과, 들풀처럼 버팅길 남은 가을과

길이 있다면, 시간 비껴

길 찾아가는 사람들 아무도 기억 못하는 두천

그런 산길에 접어들어

함께 불 붙는 몸으로 저 골짜기 가득

구름 연기 첩첩 채워놓고서

 

사무친 세간의 슬픔, 저버리지 못한

세월마저 허물어버린 뒤

주저앉을 듯 겨우겨우 서 있는 저기 너와집,

토방 밖에는 황토흙빛 강아지 한 마리 키우겠네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 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어

아주 잊었던 연모 머리 위의 별처럼 띄워놓고

 

그 물색으로 마음은 비포장도로처럼 덜컹거리겠네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

매봉산 넘어 원당 지나서 두천

따라오는 등뒤의 오솔길도 아주 지우겠네

마침내 돌아서지 않겠네.

                               ― 김명인의 「너와집 한 채」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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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책을 읽으면 대체로 똑같은 내용이 쓰여 있습니다.
자살한 (사람의) 영혼은 살아 있었을 때의 고통에 갇히게 된다고요.
그게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저는 약한 사람이기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만은 하지 말자고 살아왔습니다.
이런 모습(암 투병 중)이 되어버렸지만, 이 또한 재미있잖아요.

 

 

<태풍이 지나가고...> 원제목은 바다보다 더 깊이...

 

 

 

 

이제 아프지 않은 곳에서...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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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한 수업 - 하이타니 겐지로와 아이들, 열두 번의 수업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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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빈 서판'이라고,

그래서 거기다가는 무엇이듯 휘갈겨 쓰면 된다고 말하던 오만도 있었지만,

내 생각은 하이타니 선생님의 생각에 더 가깝다.

아이들은 비어있지 않다.

아직 부족한 나이이긴 하지만, 아이의 생각 안에서도 배울 점이 많다.

그걸 짓누르는 것이 교사여서는 안 된다는 반성이 있다.

 

시행착오의 진폭이 클수록 어린이는 꿋꿋하게 성장(83)

 

코르네이 추콥스키의 말을 인용한다.

여기서 포인트는 '성장'에 있다.

 

성적의 좋고 나쁨은

아주 제한된 범위 내에서

어떤 대응에 숙련되어 있느냐 그렇지 못하냐에 따른 것(128)

 

그래서 성적은 성장과 나란히 가지 않는다.

물론 성적이 좋은 아이들이 잘 성장하는 경우가 많다.

성적이 좋지 못한 경우 성장에 어딘가 문제가 생긴 경우도 많다.

그렇지만 한국 학교는 성장에는 관심이 없고 경쟁에서 이기라고 하는 시스템이다.

그것 뿐이다.

아쉽다.

 

상냥함이란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을지도 몰라요

하고 말했지만,

나는 반드시 변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154)

 

4학년 앞에서 수업한 내용을

아이가 적은 것이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면,

그것은 교육이고, 성장에 도움이 된다.

그것이 아니라면, 아이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다.

나를 반성한다.

얼마나 송곳으로 아이들을 찔러댔던가를...

 

수업이 좀 어려워서

처음에는 재미없겠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꽤 재미있었고

마지막엔는 엄청 재미있었다.

처음엔 뭐가 뭔지 몰랐지만

나중에는 대충 다 이해할 수 있었고

마지막에는 아주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재미있었던 거다.(157)

 

물론 특강이었으니 아이들이 귀 쫑긋 하고 들었겠지만,

아이들은 이해할 수 있고, 재미있다고 여길 수 있다.

 

하야시 다케지 선생은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 동반되지 않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고 늘 말씀하셨습니다.(169)

 

우리도 이오덕 선생이나 권정생 선생 같은 이에게서 배웠지만,

잊고 말았다.

아이들이 죽고싶게 만드는 건 교육이 아니다.

 

성적도 하나의 데이터입니다.

그걸 전부 무시하라는 건 아닙니다.

단지 사람의 마음이 없는 교육이라면,

그 교육은 아이들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점을 말하고...(192)

 

아, 하이타니 선생님...

상냥한 수업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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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의 몸값 2 오늘의 일본문학 9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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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에서는 시점도, 시간 운용도 긴박하게 잘 이끌어간 반면,

2권에 오면서 급격히 긴장감이 떨어진다.

 

1권의 사건을 2권에서는 해설하는 느낌이어서,

이미 알고 있는 사건의 트릭을 설명해주는 부분을 읽는 일은 싱겁다.

그렇지만 사랑스런 반항아 구니오(國男- 오ㅡ 나라의 남자라는 이름이라니...)의 안위를 걱정하며

그가 어떻게든 해피엔드를 맞기를 바라는 독자는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다.

 

별로 앞뒤가 안맞더라도, 구니오가 돈을 벌어서

탁발승이 되어 아오모리까지 걸어가는 모습으로 끝을 맺는 것도 나름 멋질 텐데... 하는 아쉬움.

 

나는 국가따위 어떻게 되건 관심 없습니다.

예전에 민중을 전쟁터로 몰아넣은 지배층은

이제는 사람들을 경제의 노예로 몰아넣으려 하고 있어요.

일본의 올림픽 개최는 그런 의미에서도 근대사의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겁니다.(64)

 

도쿄만 느닷없이 근대도시로 얼렁뚱땅 꾸며놓고

도대체 무엇을 세계에 보여주고 싶다는 것인가.(17)

 

그래도 시골은 가난해요.

부는 도쿄에만 집중되어 있죠.

이익을 중앙으로 빨아들이기 위한 체제가 착착 완성되고 있는 거예요.(336)

 

이런 비판적인 시선은 신선하다.

서울 올림픽 역시 그런 것이었다.

그렇지만, 서울 올림픽 개최 덕분에 1987이라는 열린 공간이 가능했던 것이다.

아니었다면, 다시 계엄의 어둠을 겪었을는지도...

마치, 올림픽이 끝나자, 전국 교장단회의에서 아이들 교복을 일제히 입히기 시작했던 것처럼...

 

도쿄대에 들어갈 만큼

머리 좋은 아이니까

제발 세상 좀 바꿔줘.

우리 같은 일용직 인부가 희생물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할 거 아니냐.(363)

 

전쟁을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의 정치가들에게 기대할 것은 없다.

그렇지만, 공산주의 이론 투쟁의 전선에서 투쟁한 경험 뿐,

현실적으로 얻은 것은 없는 일본의 정치에 대고 외치는 외침은 슬프지만 공허하다.

 

그래서, 나라국, 사내남을 쓰는 구니오란 사내는

자신의 영달을 위해 도쿄대 경제학과를 이용하지 못한다.

 

마음 속이 온통 스르르 무너져 형태를 이루지 못하는 마른 모래 같다.(137)

 

필로폰을 맞으면서 섬세해지는 감각을 느끼는 구니오,

그럴수록 현실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는 상태를

마른 모래가

스르르 무너져 형태를 이루지 못하는 것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슬프다.

 

한국으로 원정 경기를 간 일본인 복서 같은 심정(302)

남을 열정적으로 도와주는 건 조선민족의 특징일까.(322)

 

일본과 조선의 관계에 대해서도

피상적이지만 관심을 보이는 오쿠다의 관점도 흥미롭다.

 

 

*** 번역을 해야하는 말...

 

히에라르키라는 말을 번역하지 않고 여러 차례 쓰고 있다.

hierarchy는 위계, 계급 등으로 해설할 수 있는데... 해설없이 히에라르키라 쓰는 것은 좀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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