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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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을 내 경험에 따라 재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특히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일은 고 황현산 선생님의 책 제목처럼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고 자기 경험치의 한계를 인정하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 전선은 하나가 아니다. 


타인을 모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다고 착각하여 상처를 주거나 아예 물러서서 뒷걸음질치기도 한다. 갈수록 나는 후자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렇다 해도 타인, 특히 소수자들의 고통을 외면한다면 그들의 절박함을 들어줄 이는 어디 있을까. 


합리성은 종종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얼마만큼 있는가로 결정되기에, 기득권은 사회의 모든 갈등에서 더 ‘합리적인’ 주장을 하기 쉽습니다. 근거는 지식의 형태로 존재하고, 지식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자원과 시간이 투여되기 때문입니다. 

정치인들은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지만 선거철이 지나면 자기 밥그릇 챙기기 바쁠 뿐 공약을 이행하려고 노력하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차별 금지법도 몇 년째 지지부진하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가장 뜨끔했던 말은 '피해자는 ~~~해야 한다.'라는 고정 관념에 대한 것이었다. 나도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피해자도 일상을 유지해야 하고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다. 피해자라고 해서 주눅들어 생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판단하는 것은 시간(역사)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도 재인식하게 된다. 어떤 사람도 완벽한 사람은 있을 수 없다. 선과 악으로 구분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테니 말이다. 


솔직히 천안함 사건을 제대로 들여다보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저자도 관련 책을 저술할 때 무척 두려웠음을 고백했다. 한편으로는 세월호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천안함이 있는 식으로 이분법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아닌가 싶어 반성하기도 했다. 특히나 두 사건은 정치적인 색깔이 덧입혀져 사건의 본질적인 이해에는 가닿기 어려웠던 측면이 존재했다. 가까운 시일 내 주저했던 이 책을 이제야말로 읽어보려고 한다. 


저자의 시선은 논리적이고 냉철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함을 잃지 않는다.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알 수 없지만 실망하지 말자고 한다. 고통에 응답하려는 관심과 노력이 중요하다. 


고통이라고 하는 건 개인의 몸 안에서 발생하는 것이고, 그 고통은 전달되지 않아요. 그래서 누구나 외롭고 힘든 면이 있는 거잖아요.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에 무심하다는 것이 실제로는 그렇게 놀랍지 않고, 오히려 당연하다는 걸 전제로 할 필요가 있어요. 그러지 않으면 자꾸 실망하게 되고 세상을 경멸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한 개인의 몸 안에 있는 고통, 슬픔이라고 하는 것들이 사회적 고통이 되고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는 계기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 고통에 누군가가 응답하기 시작할 때라고 생각해요. 그 응답을 잘해낼수록, 많은 사람이 함께할수록 그 고통은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된다고 생각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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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1-23 1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런 책 읽으려면 쉼호흡을 하게 되죠. 삶이 뒤따라주지 않는 제 자신을 비춰보게 되서 괴롭거든요.

거리의화가 2024-01-23 11:03   좋아요 1 | URL
피하고 외면하고 싶은 게 어쩌면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르겠어요^^; 제 자신을 반성하고, 움츠렸던 기지개를 펴고 행동할 동력을 찾고 그러면서 조금씩 나아간다고 믿고 싶습니다.

잠자냥 2024-01-23 11: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퀴즈 내놓고 곳통스러워하는 사람들 보면서 낄낄대고 있던 제가 조금 ㅋㅋㅋ 반성했습니다....(아주 잠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화가 님 꼭 받으세요!!!!

거리의화가 2024-01-23 11:19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퀴즈 난이도 때문에 많은 분들이 힘들어하고 있는 듯한데! 이번에는 한 번 참여해볼까 고민중입니다. 그래도 한 두문제는 맞추겠죠?ㅎㅎ

희선 2024-01-24 03: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다 어떤 경우에 소수자가 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자신은 그런 일 없을 거다 생각할 때가 더 많을 것 같네요 자신은 장애인이 될 리 없다 생각하는 것도 비슷하군요 다 알지 못하겠지만 조금은 관심을 가지고 제대로 보기라도 하면 좋을 듯합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4-01-24 09:25   좋아요 1 | URL
그러네요. 희선님 말씀처럼 자신은 그런 일이 없을 거라 장담할 수 없지요. 내 의지로 된 것이 아닌데도 일상에 불편함을 느껴야 하고 다른 사람들 눈을 의식해야 한다면 발 붙일 곳은 어디인가 곱씹게 됩니다. 희선님 좋은 댓글 감사해요^^
 
갑골문자 - 중국의 시간을 찾아서 걸작 논픽션 27
피터 헤슬러 지음, 조성환.조재희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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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봄밤이었다. 날씨는 아직 덥지 않았지만 나무가 무성해져 잎이 가로 위로 늘어졌다. 난징에는 옛 성벽이 여전히 남아 있어서 이따금 저 멀리 어두운 윤곽이 보일락 말락 했다. 도처에 사람들이 인도를 따라 늘어서 있었다. 공안은 네거리에 서서 일정한 운율에 맞춰 조금씩 움직이는 시위대를 지켜보았다. 리더의 구호, 짧은 정적, 따라 고함치는 군중 소리. 구호, 정적, 궁중 소리. 우리는 걷다가 갑자기 빨리 뒤고 또 다시 걸었다. - P35


때는 1999년 5월 8일, 중국 도처에서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문화 대혁명 이래 가장 격렬했던 항의 행동이었다. 군중이 분노한 이유는 알바니아 종족의 역경이 빌미가 되어 발생한 나토의 폭격 행동 때문이었다. 거리에는 세 구호가 반복되어 나왔다. “미제를 타도하자, 나토를 타도하자. 켄터키를 먹지 말자.” 

한국도 5.18 이후 미국의 이중적인 행태가 드러나자 대학생들의 시위가 줄곧 이어졌다. 이는 1987년 민주 항쟁 이후에도 끊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미군의 장갑차로 여중생들이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고 미국산 소고기 문제도 있었다. ‘미제’라는 단어는 지금 들으면 거부감이 이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으나 당시 한국에서도 미국 제국주의라는 용어가 쓰여진 것으로 알고 있다. 미소의 냉전기 때도, 탈냉전 때도 미국은 패권을 놓으려고 한 적이 없다. 

알바니아는 발칸 반도에 있는 국가로 사회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1991년이 되어서야 수교한 국가다. 1989년 밀로셰비치 대통령 집권 후 코소보가 세르비아인의 성지라는 이유로 자치권을 박탈한다. 이에 알바니아 계 코소보인들이 분리 독립을 주장하면서 유고슬라비아 vs 코소보 해방군 세력 간에 전쟁이 발발한다. 코소보 전쟁에 나토와 미군이 참전하면서 사태는 악화 일로를 겪었다. 


이 책은 1999~2004년 사이 집필되었다. 이 기간 중 중국에서 벌어진 몇몇 사건을 종결 지점까지 그 과정을 추적한다. 중국의 신장 지구, 타이완 등 다양한 공간을 배경으로 하였으며 시간 순으로 배치하여 중미 관계, 북중 관계 등 당시 사회적 상황을 구체적으로 엿볼 수 있다. 저자는 중국에 보도 특파원으로 근무하며 다양한 인물들을 만난 경험을 쏟아낸다. ‘폴라트’를 제외하고는 등장 인물이 모두 실존 인물이기 때문에 마치 사건을 지금 만나듯 박진감 있게 느낄 수 있다.


나는 크게 세 개의 사건에 주목했다. 첫 번째는 이미 언급했고 두 번째는 미국과 중국의 군용기 충돌 사건, 세 번째는 9.11 테러 사건이다.


2001년 4월 1일 아침 두 대의 군용기가 남중국해 해상의 국제 영공에서 서로 충돌했다. 한 대는 미국, 다른 한대는 중국의 것이다. 중국 군용기는 전투기로 심하게 부서졌다. 미국 정찰기는 부딪치자 곧바로 2.4킬로미터 추락했다가 통제를 회복한 뒤 중국의 하이난섬에 긴급 착륙할 것을 요청했다. 비행장 관제탑에서는 회신을 주지 않았으나, 미 군용기는 착륙했다. 비행기의 남녀 승무원 스물네 명은 즉각 인민해방군에 의해 구금되었다.

이 사건 중 어느 것도 독자적이고 비군사적인 관찰자에게 목격되지 않았다. - P476


당시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미국과 중국 모두 입장을 발표했으나 서로 다른 말을 한다. 4월 9일, 당시 미 대통령인 부시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라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장은 “미국은 반드시 중국에 사과하고, 아울러 유사 사건의 재발을 방지할 조치를 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양국의 언론은 완전히 다른 논리로 이 사건을 계속하여 이끌고 갔다. 중국은 미국 비행기가 갑자기 방향을 바꾸는 바람에 비행기끼리 충돌했다고 주장한 반면 미국은 중국의 소형 비행기가 먼저 도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미국은 그 전부터 중국 비행기가 그들의 정찰기에 접근했기 때문에 도발할 의도가 있다 말한 것이다. 

추후 주중 미국 대사는 서한에서 “우리가 구두 허가를 거치지 않고 중국 영공에 들어가 착륙한 대 대해 매우 미안하게 생각하고, 승무원의 안전한 착륙에 대해 매우 위안을 느낍니다. …”라고 표현했으나 콜린 파월은 발표 후 기자에게 말하길 “사과할 만한 것은 없다. 우리가 잘못을 하지도 않았는데 사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튿날 베이징신보 1면 헤드라인 기사의 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미국이 끝내 사과하다’

1999년 중국의 나토&미국 항의 시위 이후 이것이 두 번째 외교 최대 사건이었다. 그런데 중국도, 미국도 서로 다르긴 해도 결국 자국의 기호에 맞게 해석하는 모습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는 것 같아서 뒷맛이 개운하지 않았다. 중국인들은 중국의 뉴스를 보고 미국을 욕했을 것이고, 미국인들은 미국의 뉴스를 보고 중국을 욕할 것 아닌가. 언론은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을 준다. 뉴스코퍼레이션은 똑같은 화면으로 미국과 중국에서 애국주의를 판매한다. 두 곳의 사람들은 모두 그것을 사들인다. 


뉴스 보도에서 두 단어, 즉 ‘스모크’와 ‘펜타곤’을 알아들었다. 조선족이 폴라트에게 테러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들은 함께 스시 식당에서 텔레비전을 보았다. 무너지는 빌딩, 화재에 휩싸인 펜타곤. 뉴스 보도에서 공격은 이슬람교 근본주의자들의 행위이고, 더 많은 폭력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추측했다. 전국의 비행기가 운항을 중단했다. - P499~500

웨칭의 비디오 가게에서 테러리스트 공격의 해적판 영상을 팔았다. 가게 주인은 최초의 해적판 영상이 공격한 지 3일 만에 나왔다고 말해줬다. 9.11 비디오는 저가의 진열대에 들어본 적도 없는 미국 영화와 함께 진열되어 있었다. “인류에게 크나큰 재난을 가져다준 미세 곤충” 그 뒤에 9.11 비디오가 있었다. 모든 9.11 비디오는 할리우드 영화와 유사한 모양으로 포장되었다. 세기의 대참사란 이름의 DVD는 겉면에 오사마 빈라덴과 조지 W. 부시 사진이 붙었고, 배경은 불타는 쌍둥이빌딩이었으며, 밑에는 폭력성과 불건전성의 정도에 따라 ‘R’ 등급이 매겨졌다고 표시한 작은 아이콘이 있었다. - P504


9.11 테러는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에 충격을 가져다 준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이슬람과 무슬림인에 대한 공포로 확산되며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를 견고한 무기 체제(핵무기 등)로 방비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지금도 유효한 사건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당시 중국은 녹화 영상이 해적판 비디오로 길거리에서 팔렸다니 무어라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이 다치고 건물이 파괴되는 사고였는데… 수요가 있을 거라 여기고 급히 만들었을거란 짐작 뿐이다. 얼마나 팔렸는지는 알 수 없다. 

해적판 비디오 하니 과거에는 한국에도 해적판 비디오가 많이 생산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 것을 보면 보지 않았거나 봤다고 해도 인상적인 것은 없었던 것 같다. 


당시 중국은 한국의 산업화 시절의 향수를 불러오게 하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한국이 겪었던 것을 비슷하게 경험한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선전 등 경제 특구를 개발하기 시작하면서 농촌에서 도시로 많은 인구들이 유입된 것, 텔레비전 리모컨을 두고 가족 간에 기싸움을 벌이는 일, 세대 갈등, 열악한 노동자들의 상황, 미국에 대한 환상을 품고 떠난 이민자들, 영어 의무 교육 등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자유 시장 경제로 바뀌었어도 사회주의 국가임은 마찬가지였고 중국의 정치는 오히려 내부 단결의 기치로 이어졌다. 

따라서 중국 정부의 위구르 탄압과 이용(특히 신장 지역), 타이완의 정권 교체에 따른 정치외교군사적 마찰, 위구르족을 탄압하기 위한 미국 정부에 대한 로비 등이 진행되었다.


이 책이 독특한 지점은 기자의 시선에 따른 논픽션 이야기들 사이에 중국 유물들을 설명하고 파헤치는 코너다. 문자의 세계부터 성벽, 청동 두상, 책, 뼈, 글자, 말 등을 싣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중국 간자체가 만들어진 과정이 나온다. 중국의 말 문화는 세월을 거듭하여 달라졌어도 글말은 계속 하나로 고수되었기 때문에 한자는 안정적으로 오래 유지될 수 있었다. 물론 제국의 통일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도 글말의 유지는 중요했다. 그러나 중국은 서양에 거듭 패배를 경험하고 나서 지식인들 내부에 교육 혁신과 언어 현대화의 요구가 끊이지를 않았다. 이에 문언문을 폐지하고 각지의 방언에 한자를 적용하는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지금의 중국 간자체는 마오쩌둥의 지시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문화 대혁명 때 번체를 옹호하며 소신 발언을 한 이는 우파로 몰려 자살을 하고 정권에 아부한 이는 이후 하상주단 대공정(중국의 고대 역사를 앞당기는 프로젝트)의 리더를 맡으며 승승장구했다고 한다. 결정적으로 간자체를 어떻게 만들게 되었을까?


“물론 공산당은 1940년대부터 라틴화한 자모를 사용하기 시작했죠. 그들은 변혁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권력을 장악하자, 더 신중해졌습니다. 그들에게 해결해야 할 다른 일들이 많았는데, 그것이 개혁이 지체된 원인 가운데 하나이지요.

그러나 매우 중요한 다른 요소는 1949년 마오쩌둥의 첫 소련 방문입니다. 당시 마오쩌둥은 스탈린을 전 세계 공산주의의 영수로 존중했으며, 그는 중국이 문자 개혁에 착수하고 있다며 스탈린의 조언을 구했답니다. 스탈린은 그에게 ‘당신들은 대국이므로 자신의 중문 서사 방식을 가져야 하며 라틴 자모 계통을 단순히 써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지요. 그것이 바로 마오쩌둥이 전국적으로 통일한 자모 계통을 바랐던 이유입니다.” -P673


스탈린이 문자 개혁 프로젝트에도 영향을 주었다니 참으로 당황스러운 결말이 아닐 수 없다. 솔직히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입장에서 중국어 간자체와 번자체가 나누어짐으로 인해 공부하기 더욱 복잡해진 면이 있다. 성조도 어려운데 한자가 우리가 예전에 배웠던 한자(번자체)와 달라서 이중고를 겪게 되기 때문이다. ‘간략한 한자’라고 해서 만든 간자체가 오히려 국민들을 더 피곤하게 만든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개인적으로 2000년대 초반까지 신장의 현대사를 간접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어서 좋았다. 신장의 역사를 공부할 때 참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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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1-23 0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이 《갑골문자》여서 중국 글자 이야기인가 했어요 중국 역사군요 그것도 다른 나라 사람이, 서양 사람이라 해야겠네요 삼부작으로 썼다는 말이 있군요 한국사도 다른 나라 사람이 쓴 거 있네요 갑골문자에서 여러 글자가 생기고 간자체로 이어지는군요 중국어 배우는 데 간자체를 다시 공부해야 해서 조금 힘들겠습니다 그래도 공부 오래 하시고 여전히 하시는군요 즐거워서겠습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4-01-23 10:55   좋아요 1 | URL
유물 코너 이외에는 사실 중국의 현대사 이야기입니다. 한자의 시작인 갑골문부터 시작하여 중국의 갖가지 고대 유물을 소개하고 간자체의 탄생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맞아요^^ 중국어는 어려워도 즐거워서 계속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고독한 기쁨 - 그날 이후 열 달, 몸-책-영화의 기록
배혜경 지음 / 지식과감성#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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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진실보다 더 근사한 예술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진실이란게 어쩌면 실체가 없는 것이다. 진실하다고 생각하는 각자의 사실만 있을 뿐. 바로 그 사실만이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 P139


작가의 문체는 담담한데 감정을 울려서 자주 멈추고 읽어야 했다. 책을 읽기 전에도 생각했지만 어쩜 이렇게 책 표지의 사진이며 제목이며 잘 나왔을까... '고독한 기쁨' 제목이 이보다 더 적절할 수 없다라고 생각했다. 


이 책은 작가가 뜻밖의 사고로 강제로 휴식을 취하게 되었을 때에도 멈추지 않고 몸을 단련하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본 기록을 담은 글이다. 2017년 즈음이었나.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서 움직이고 싶어도 내 맘대로 되지 않는 답답함과 찌릿한 고통에 대하여 정말 동감했다. 나는 한강 변에 놀러 나갔다가 자빠져서 그리 되었던 것인데 작가는 그 와중에도 이전의 생활처럼 책과 영화로 견뎌냈다고 하는 것에 존경이 일었다. 나는 그저 다인실에서의 불편함(커튼을 저절로 치게 되는 경험)과 얼른 빨리 붕대를 풀고 나서고 싶다는 생각, 괴롭고 힘들어서 이어폰과 음악으로 단절한 채 오롯이 보냈던 기억이 난다. 움직임이 가능해져 비로소 걷기를 할 수 있었을 때 문 밖을 나설 수 있다는 것에 행복감을 느꼈었다. 비록 발목은 괴사한 흔적으로 영구히 남았지만 이제는 신경쓰지 않을 정도로 괜찮아졌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아픔의 무게가 조금은 나아진다는 것은 신기하고 놀라운 과정이다. 그 과정을 나도 함께 하면서 덩달아 위로받는다는 느낌이었다. 특히나 작가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나를 여러 번 무너지게 했다. 과거의 사진 속 아빠의 모습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했을 것이다. 작가가 아빠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따뜻함이 느껴졌다. 이제 자주 아프신 나의 아버지도 언젠가 내가 기저귀를 갈아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 그 때가 충격이었다고 고백하는 솔직함에 나도 그럴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봄은 다시 오지 못한다고, 가족이 있어 힘든 날들을 다 이겨 낼 수 있었다고, 사랑한다고. 오래 전에 나는 봄은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늘 있다고 썼다. - P58


매년 오는 봄이 달리 보이는 것은 이제 어느덧 나이듦을 인식하게 되어서인지도 모른다. 매 해 무겁게 느껴지는 몸과 칙칙한 얼굴은 나를 가라앉게 한다.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그래서 이 계절을 오롯히 살아내고자 생각하기도 한다. '걷기'와 '여행'을 예찬하는 작가의 태도는 나도 비슷하게 공명하는 부분이 많았다. 우스갯소리로 함께 사는 사람에게 말하곤 한다. "2023년의 봄이야." 그럼 돌아오는 것은 "또 같은 봄이지." 하지만 내겐 분명 다른 봄이다. 


소개된 책은 그래도 본 것이 몇 권 있었는데 영화는 역시나 본 게 전혀 없었다. 평소 영화와는 담을 쌓고 지내는지라... 그나마 드라마는 보지만. 그래도 작가의 수려한 글솜씨와 아름다운 문체에 반해 읽어 내려가다보면 영화의 장면이 상상이 되었다. 


영화 중에서는 <완벽한 가족>이 기억에 남는다. 가족과의 이별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혼자가 아니라 가족이 있다면 나의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을 내 의지대로 선택하는 일에는 용기와 배려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만큼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소개된 책들 중에서 읽고 싶은 책들이 수두룩하다.


오르한 파묵의 <하얀성>에 대한 이야기인데 도무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는 문장이다. 서로 닮은 두 사람이 서로의 삶을 바꾼 이야기라고 한다. '하얀 성'이라는 것이 높고 아득하다는 것을 보면 저 멀리에 붙잡히지 않는 상상력의 공간 같게도 느껴진다. 어쨌든 직접 읽어보고 싶은 이야기다.

 

나는 무엇인가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무슨 일을 하는가이다. 행복은 높고 아득한 하얀 성에 있지 않고 바로 저 창문 밖, 살랑바람 불어 대는 나무 아래서 그네를 타며 손짓한다. - P148


<화씨 451>은 책이 사람의 인생에 왜 중요한가를 느끼게 한다. 


나는 유튜브를 정말 잘 안 보는 편에 속하는데 그 이유를 생각해봤더니 한 번에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편리함은 있지만 누가 전달하는 정보에 대한 의구심이랄까 그런 것이 있어서인 것 같다. 영상은 시청자에게 수용만을 강요하는 매체이니까 말이다. 책은 그런 면에서 상상력을 발휘하고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책의 보관에도 신경써야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쌓아둔 책이 불타거나 없어지는 상상은 정말이지 끔찍하다.


원래도 읽으려고 생각했던 책이었거나 기존에 보관함에 담아둔 책들도 많았다. 


<우리에게도 예쁜 것들이 있다>, <지옥(단테)>, <침묵>, <산해경> 등.


<우리에게도 예쁜 것들이 있다>에서는 기계로 찍어내는 공산품이 아니라 직접 손으로 한 땀 한 땀 만들어내는 수공업 제품의 가치, 장인정신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지옥>은 사유하지 않는 인간, 인간의 나약함과 허약성에 대해서 꼬집는다.

<침묵>은 사둔 것은 옛날인데 아직도 묵히고 있네. 진짜 이것부터 읽는 것으로... 신이 있다면 왜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을 신은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가 예전부터 궁금했다.


앞날은 알 수 없다. 때론 넘어지거나 다치더라도 '잃어버리는 삶이란 없다'는 말은 그것이 몸의 경험으로, 삶의 경험으로 이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도 작가의 삶과 사유를 녹여낸 글을 꾸준히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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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1 2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22 09: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4-01-22 01: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 님 다쳐서 병원에 있었던 적 있군요 여러 사람이 있는 병실... 그런 데서도 잘 지내는 사람 있는 듯해요 저는 다른 사람 때문에 병원에 갔지만...

보고 싶은 영화와 보고 싶은 책이 있기도 했군요 살면서 일어나는 일을 잘 받아들이면 좋을 텐데, 안 좋은 일은 그게 조금 어렵기도 하네요 시간이 가면 그게 좀 나아지겠지요 그때는 힘들다 해도...


희선

거리의화가 2024-01-22 09:12   좋아요 2 | URL
네. 6개월에서 1년 정도 고생했던 것 같아요. 다인실이 무척 힘들더라구요. 안 그래도 말이 많은 편이 아닌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강제로 듣는 일은 굉장히 힘들다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_-
사실 어떤 일이 생길지 우리는 모르고 살죠. 닥치기 전에 조심하자 생각하며 살지만 살다 보면 또 그렇지가 않으니까요ㅎㅎ 희선님 맹추위가 왔네요. 건강 조심하시고 행복한 한주 보내세요^^

미미 2024-01-22 19: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병원에서 방문객들 때문에 정작 환자들이 제대로 휴식을 취할 수 없음, 시정되어야합니다. 요즘은 방문객이 1인으로 제한되었다는데 또 모르죠. 화가님 오랫동안 고생하셨군요.
오늘도 읽고싶은 책 한 아름 담아가요ㅎㅎ

거리의화가 2024-01-23 10:52   좋아요 1 | URL
듣고 싶지 않은 말도 들어야 하니까 그런 것이 좀 고달프더군요^^;
읽고 싶은 책들 많이 담으셨다니 저도 좋습니다. 서재 둘러보다보면 보관함에 책이 가득!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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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문학 수상작 작품집을 오랜만에 읽었다. 2021년 이효석 문학상 수상집에서 이서수라는 작가를 알게된 수확이 있었으나 이후 문학상 수상집은 더 읽지 않았다. 한국 소설은 거듭하여 읽으면 비슷한 서사에 상황들이 반복되어 쉬이 질리기 때문이었다. 작년에 이 책의 전반적인 수준이 괜찮다는 후기를 보고 찜해 두고 있었는데 해를 지나 읽게 되었다. 


역시 사람들의 눈은 다르지 않았는데 나도 작품들이 전반적으로 괜찮았다. 



대상작 주인공인 최진영은 이름은 익숙한데 작품을 경험해본 적은 없었다. 작가의 이력을 보니 나와 비슷한 나이 또래였다는 것을 알았고 책에 실린 작가의 글 속에서도 기억의 패턴들이 나로 하여금 동질감을 느끼게 했다. 


나는 죽어가고 있다. 살아 있다는 뜻이다. 죽음을 죽음 자체로 두기 위해 오래 바라볼수록 두려움보다 슬픔이 커졌다. 두려움은 막연했으나 슬픔은 구체적이었다. 거기 나의 희망이 있었다. - P26


말기 암에 걸린 나는 보령에 폐가를 수리하여 이사를 하려고 한다. 엄마는 몸도 아픈데 왜 굳이 그런 곳에서 살려고 하는지 나의 마음을 이해를 하지 못한다. 죽어가는 지금, 나는 불안한 미래를 직시하며 바라본다. 두려움과 슬픔은 다르다. 적어도 슬프다는 것은 막연한 감정이 아니라 좀 더 구체적인 명징성을 갖고 있다. 거기에 희망을 느끼는 나의 마음이 뭔지 알 것 같아서 울컥했다.


시간은 발산한다.

과거는 사라지고 현재는 여기 있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무언가가 폭발하여 사방으로 무한히 퍼져나가는 것처럼 멀리 떨어진 채로 공존한다.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하거나 기억하지 못할 뿐. 미래는 어딘가에 있다. 쉽사리 볼 수 없는 머나먼 곳에. 나는 종종 과거와 미래를 헷갈리는 것만 같다. 과거의 일이라고 기억하는 상황을 현재에 그대로 겪을 때가 있으며 미래의 일을 짐작하여 이야기하면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지 않았느냐는 대꾸를 듣는 경험들. 인류가 동시에 과거, 현재, 미래라는 개념을 망각한다면 어떻게 될까. 혼란에 빠질까? 누군가는, 아주 찰나일지라도, 평생 경험한 적 없는 엄청난 자유를 실감할지도 모른다. 출생과 죽음, 성장과 노화, 발생과 소멸을 시간이란 개념 바깥에서 이해하고 싶다. 얼음이 물이 되고 물이 수증기가 되듯 바뀌어 달라지는 것. 시간을 배제하고 변화를 말할 수 있을까. 죽음 다음이 있다면, 어쩌면, 시간에서 해방된 무엇 아닐까. - P15


그곳에 살았던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과거의 사람이 남기고 간 물건은 그 사람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종종 과거와 비슷한 상황의 일을 겪으면 혼란스러울 때가 있었다. 특히나 잊어버리고 싶었던 기억을 또 마주하는 순간 지금이 과거인지, 현재인지, 미래인지 아득해진다. 그럴 때는 주저앉아 잠시 그런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미래에 또 그런 순간이 올까, 아닐까.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그 시간을 견디고 살아낸다.


우수상 작품들도 대부분 훌륭했는데 나는 그 중 특히 김기태의 <세상 모든 바다>, 이장욱의 <크로캅>이 좋았다.



<세상 모든 바다> 에서는 지금은 대세가 된 K-POP 그룹의 공연장을 찾은 팬인 자이니치 '하쿠'와 한국인 '백영록'의 교류(연대)를 보여준다. 하쿠의 부모는 자이니치 3세대이고 본인은 일본 국적을 취득했지만 유학생으로 서울에 왔다. '하쿠'는 '백'이라는 성을 일본식으로 음독한 성이라고 하니 백영록과의 만남이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필연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마도 방탄소년단이 기점이었을 것 같은데 가수 뿐 아니라 아이돌 팬들이 세계 문제에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내며 기부를 하기도 하는 등 긍정적인 활동들을 하는 것 말이다. 세모바(SMB)의 멤버들도 그런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원전을 반대하며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발전해야 생존한다는 절박감으로 군청 앞에서 행인들에게 전단지를 건네며 원전 반대 무효를 이야기한다. 하쿠는 이 두 가지 상황에 부딪쳤을 때 피하고 뒷걸음질쳤다. 나는 과연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며 행동할 수 있을까 묻게 되었다.


그 사정에서 나의 몫에 대해 무언가를 생각해 내려 했으나 잘되지 않았다. 큼지막한 파도 하나가 방파제에 부딪쳤다. 하얀 물보라가 세차게 튀어 올랐다. 얼굴에 와 닿는 차가운 물방울의 감각. 실제로 닿았을까. 느낌뿐이었을까. 분명한 건 내가 뒷걸음질을 쳤다는 것이다.



<크로캅>은 결말까지 멈출 수 없는 흡인력 있는 이야기였다. 아마 재미만으로 따지면 이 작품이 최고일 것이다. 격투기 링 위에 선 두 남자가 사투에 가까운 격투를 벌인다. 나는 수비자일까, 공격자일까. 입장의 차이에 따라 나는 수비자가 되기도 하고 공격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경기장 밖의 일상에서도 혼란을 겪고 있다. 


마스크를 쓴 유령을 본 적이 있는가. 유령처럼 그자는 스르르 걸어다닌다. 표정도 없이 걸어다닌다. 계단으로 걸어 다니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고 거리를 휘적휘적 돌아다닌다. 원한을 품은 자답게, 당신을 노리는 자답게, 당신의 죽음을 기다리는 자답게, 당신의 주위를 떠나지 않는다. 하이에나가 사체 주위를 배회하듯이, 독수리가 죽어 가는 동물의 머리 위를 선회하듯이. - P201


나는 상대방을 공격자이자 침입자로 규정하고 행동한다. '그는 나를 죽일지 몰라. 그럼 어쩌지?' 루쉰의 광인일기가 오버랩되기도 했다. 나는 창문에 창살을 설치하고 보안 장치를 달며 방비를 한다. 그런데 그런다고 완벽할까? 완벽한 시스템이라는 것은 없을텐데. 마음만 먹으면 이 혼란한 세상에서 내가 온전히 버틸 수 있을 것인가. 심지어 나를 공격하는 이는 윗집이자 과거 같은 회사에 다녔던 동료였던 사람이다. 그들은 왜 철천지 원수가 되었을까. 


윗집.

적의 집.

동료였으므로 더욱 가증스러운 자의 집.

당신을 적의와 증오와 분노의 나락으로 빠뜨린 자의 집.

(...)

혼자 정의로운 척, 혼자 외로운 척, 혼자 개폼을 잡고 술잔을 비운 뒤에, 그자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지. 아.... 이 새끼가.... 저주받을 새끼가.... 왜 그렇게 생각이 없다.... - P221~222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작품은 박서련의 <나, 나, 마들렌>이다. 


목이 잘리는 꿈을 꾸고 일어나서 옆을 보니 내가 있었다? 어느 쪽이 원본일까? 나인가? 나를 쳐다보는 그 사람인가? 아무튼 그 때 마들렌은 옆에 없었다. 마들렌은 소설 창작 수업에서 처음 만난 친구다. "나 언니네 집에 가면 안 돼요?" 하더니 내 집에 눌러앉은 마들렌. 마들렌은 소설가에게 성추행을 당해 그를 고소했고 재판이 열렸다. 마들렌은 나에게 증언을 요청하는데...


가끔 내가 둘 이상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많은 일을 하고 싶은데 몸은 하나라서 해낼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을 때다. 그런데 내 몸이 둘 이상이라면 나는 과연 같은 생각을 지닌 인간일까? 같은 인물이 다른 장소에서 각각의 일을 한다니... 


소설가의 성추행 이야기를 보면서는 이서수의 <미조의 시대>가 생각났다. 거기서 수영이란 인물이 나오는데 그녀는 IT 회사에서 일하며 회사 오너의 요구에 따라 성인 웹툰을 그리고 있다. 가면 갈수록 가학적인 말도 안되는 스토리와 그림을 그리라는 요구에 원형탈모증까지 겪어가며 꾸역꾸역 일을 해나간다. 작품에는 육체적인 접촉이 나오지는 않지만 왠지 그게 있을 것 같아서 불쾌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돈과 권력, 지위를 이용해 상대를 누르는 행위는 너무나 흔한 일이지만 이것이 먹고 사는 문제와 연결되면 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돈이냐, 예술이냐.


나는 나를 향해 결심에 찬 눈빛을 보냈다. 나 역시 나에게 고개를 끄덕여 결의를 표했다. 이것 말고는 역시 방법이 없는 걸까. (...) 나는 싱크대 하부 장을 열어 식칼을 꺼내와 나와 나 사이에 내려놓았다. 나와 나는 식칼을 가운데 두고 공손히 무릎을 꿇었다. 곧 또 하나의 내가 집으로 돌아올 시간이었다.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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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4-01-18 10: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가 님의 문학 리뷰, 제가 왜 반갑고 좋은 걸까요? ㅎ
김기태의 <세상 모든 바다>가 급 궁금해지고요!

거리의화가 2024-01-18 11:34   좋아요 0 | URL
ㅎㅎ 오랜만에 문학 읽기를 시도해봤습니다. 그래도 한국 소설은 주변의 이야기라 공감이 더 가서 읽기에 편한 것 같아요. 외국 소설은 너무 어렵습니다ㅋㅋ
김기태의 작품 좋았어요. 심지어 등단한지 얼마 안되었던데(2022년 신춘문예) 놀라웠어요!^^ 앞으로가 기대되는 작가일 것 같습니다.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
이삼성 지음 / 한길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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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을 피부로 느낀 것은 일상을 통해서이지만 내가 분단체제라는 개념에 대해 글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지난 해 별세한 강만길의 <분단체제의 역사인식>이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조선은 식민지 시기를 거친 후 진통을 겪고 통합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전쟁을 겪으며 분열과 갈등이 더욱 심화되었다. 강만길은 이 분단체제에 대해 한국 사회에 화두를 던진 것이다. 

저자는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을 주창하며 백낙청의 '한반도 분단체제론'을 비교 대상으로 던진다. 백낙청은 분단체제론을 통해 남과 북은 외견상 자본주의체제와 사회주의체제사회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양자는 교묘하게 얽혀 상호작용을 하는데, 이는 적대적 상호의존을 통해서라고 했다. 

백낙청은 기고를 통해 저자의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을 비판하는데(아시아의 상황을 일본과 아시아 나머지가 대립하는 체제로 논하는 것은 개념의 남용이다) 이를 두고 저자는 백낙청이 주장한 '한반도 분단체제론'은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 문제를 한반도 내로 국한해서 규정 짓기 때문에 동아시아적 맥락이 빠져 있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저자가 주창하는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은 무엇을 말하는가. 

 

저자는 탈냉전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상호의존은 깊어지는 반면 군사정치적인 갈등이 격화되어 지역통합을 저해하고 있는 동아시아의 지역구도를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라는 개념으로 접근하고자 했다.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는 미소 냉전과 결부되면서도 중국과 일본이라는 차상위국가들의 역사심리적 대립이 결합된 미일동맹체제 대 아시아 대륙이라는 구조를 갖는다.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는 하위에 남북 분단과 중국과 타이완의 분단이라고 하는 ‘소분단체제’를 거느리고 있다. 이는 탈냉전이 되었음에도 해체되기는커녕 강화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한국은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최대의 희생자이자, 지정학적 역사심리적 ‘중간자’(아시아적 전망의 관점)라는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고 동아시아 분단체제를 해체하고 공동의 안보질서로 나아가는 적극적인 주체로서 역할을 할 것을 주장한다. - P695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의 시각에서 과거와 현재의 미중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의 하나는 미국의 동아시아 경영이 그 근간에서 일본과의 유서깊은 연합에 기초했다는 사실을 주목하는 것이다. 태평양전쟁으로 일시 파국에 직면했던 미일연합(태평양 전쟁 이전까지 미일 관계는 밀착되어 있었다)은 원폭투하와 미국의 일본 단독점령, 미국이 취한 일본 재건 정책에 의해서 복원의 길을 걷는다. 

전후 동아시아 질서의 다른 축은 중국대륙이다. 반식민지 단계의 중국은 미국이 일본과의 제국주의 연합에 의한 경영의 대상이었지만, 태평양전쟁 기간에 장제스의 중국 국민당 정권은 미국의 동맹국이었다. 그러나 전후 3년(1946~1949)에 걸친 내전 끝에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신중국이 탄생한다. 중국 공산당은 1949년 미국과의 외교관계 개선을 탐색했으나 미국이 이를 거부하면서 미중 갈등의 매듭은 풀어지지 못했다. 같은 해 말 중소동맹조약이 맺어지면서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원형이 완성되었다.

한국전쟁 발발 후 미국은 한반도에 군사개입을 단행했고, 동시에 타이완해협에도 항공모함을 파견하면서 중국에 압박을 가한다. 여기에 마오쩌둥이 한국전쟁에 개입함으로써 미중 간의 정면 대결이 벌어졌다. 1951년 미일동맹으로 미일-한반도/타이완의 소분단체제가 이루어지고,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면서 인도차이나에도 소분단체제가 만들어졌다. 인도차이나의 소분단체제는 두 소분단과 함께 ‘미일동맹 대 중국’이라는 대분단 기축과 서로 지탱하고 심화시키는 상호작용 관계를 형성하면서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미국과 일본은 태평양 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협력 관계에 있었으며, 진주만 사건 이후 양국 관계가 틀어졌지만 중국 내전과 한국 전쟁으로 미일 관계는 돈독해졌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은 한일 관계 협력을 종용하였고, 남한과 베트남도 미일 연합 체제에 들어오게 되었다. 미중 관계는 중소 간의 갈등이 벌어진 이후에 개선이 되었으나, 소련 해체와 함께 시작된 탈냉전 이후에는 중국이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면서 미중 간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갈등이 심화되었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특히 한미동맹의 유연화를 주문하는데 무릎을 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한미동맹이 애초부터 잘못 설정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지금도 한미 간 관계가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남북 간 평화 정착과정과 함께 이후 동아시아에서 한국 외교의 미래에 대한 거시적 방향감각이 필요하다. 하나는 유연한 동맹의 정치이며, 다른 하나는 동아시아 공동안보의 추구다. 한편으로 동아시아질서에서 한국의 영토적 존엄 및 안보와 동아시아 세력균형에 기여하는 유연한 형태의 동맹의 정치를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동맹외교에만 머무른다면 동아시아에서 경직된 동맹체제에 바탕한 국가 및 진영 간 군비경쟁과 군사정치적 긴장의 영속화에 기여할 뿐이다. 그러한 구조는 한반도의 운명에 항구적인 위협으로 남는다. 그러므로 다른 한편으로 공동안보질서를 지향하는 노력이 필요하며, 그 노력의 한가운데에 한국이 있어야 한다. - P827

 

더불어 중국과 러시아, 일본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외교는 영리하면서도 합리적으로, 고무줄처럼 유연해야 하는데 끌려 다니거나 아예 거부하거나 모 아니면 도 식으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기본적인 것부터 안되니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가는 느낌이다. 다시 말하지만 주체는 한국이어야 한다. 

 

저자는 2000년 초반부터 논문, 칼럼, 기고, 책 등을 통해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의 이론을 정립하고 살을 붙여 나갔는데 이 책이 그 결과물이다. 책은 최근 글부터 역순으로 하여 2000년 초반까지의 글을 담아내고 있어 순서대로 읽으면 저자의 최근 생각부터 그 기원을 추적해나가는 방식으로 읽게 되는 것이고, 뒷부분부터 시작하여 거꾸로 읽으면 최초의 생각부터 현재까지 심화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정신적 폐쇄회로로 기능하는, ‘일본의 역사문제‘로 상징되는 동아시아질서 안의 역사심리적 간극을 해소해나가는 것이 한국인을 포함한 동아시아인 모두의 절실한 숙제라는 점은 누구라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라는 질서의 전체 구조의 핵심 요소이자 그 전체를 감싸는 정신적 폐쇄회로라는 사실은 그것이 단순한 역사문제에 그치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 폐쇄회로를 해체하는 실마리를 찾기 위한 전제는 그것의 현실적이며 논리적인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 정신적 폐쇄회로는 두 가지의 딜레마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는 ‘반성하지 않는 일본‘ (unrepentant Japan)이라는 문제의 구조적 조건에 관한 것이다. 이 문제는 분명 일본이라는 특정 사회의 역사적 자기성찰 능력의 미성숙을 표현한다. 그런데 문제는 일본 사회의 반성적 역사의식의 미성숙이 미일동맹의 문제를 포함한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속성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반성을 거부하는 일본‘과 그것을 변화시키기 위한 외부 압력이 동아시아 대분단체제 자체의 지속성에 던지는 문제다. - P348~349

 

나는 한미동맹에 대한 생각, 일본과 한중 간에 벌어지는 역사적 마찰의 문제에 있어서 일본이 해야 할 역할이 인상적이었고 좋았다. 

 

마오쩌둥과 중국 공산당의 이데올로기가 아시아 냉전의 근원적 토대라면, 동아시아에서 민족해방운동에 대한 미국의 뿌리 깊은 거부감과 적대의 이데올로기는 왜 세계와 아시아에서 냉전의 뿌리 깊은 근원적 요인의 하나로 거론하지 않는가라는 의문을 응당 던질 수 있다. 중국과 인도차이나, 필리핀, 그리고 한반도에서 모두 미국이 혁명적 사회운동에는 강한 적대감을 갖고 대처한 점에서 일관성을 보였다. 이 지역들 모두에서 반혁명적 엘리트집단과는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데 또한 익숙한 일관성을 보였다. 중국과 미국 쪽의 동력을 가급적 균형 있게 깊이 돌아다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그런 맥락에서다. - P799

 

저자가 20 여년간에 걸쳐 한 이론을 체계화시키며 누적한 결과물을 책으로 만나는 것이 소중하고 짜릿한 경험이었다. 특히나 온 세계가 전쟁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는 이 시점에 이 책을 읽게 되어 한편으로는 가슴이 뜨거워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머리가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 냉철한 이성과 논리로 무장하고 이 중 하나씩이라도 차근히 해결해나가는 해법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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