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다니던 길 위에서 아주 낯선 풍경들이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매일 지나치던 거리를 고개 들어 바라보면 있는 줄도 몰랐던 건물이 있기도 하고 매장이 눈에 들어오기도 하고, 수십 번도 넘게 지나쳤던 길가에 서있는 우체통도 문득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분명 어제도 지나갔던 그 길 위에 이러한 것들이 있었나? 라는 물음이 스쳐지나 갈 즈음, 그 동안 내가 알고 있던 거리는 마치 새로운 얼굴을 하고서는 내게 드리우는 느낌이다.
사람은 정상적으로 발달하는 동안 집중할 수 있는 대상 전체에 집중하지 않는 법을 익힌다. 세상은 색깔, 형태, 소리가 넘쳐나기 때문에 우리 몸의 기능을 제대로 쓰려면 그 일부를 무시해야 한다. 그렇다고 무시한 세부 요소들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본문
이미 익히 알고 있기에 더 이상 모르는 것도 없을 것이며, 새롭게 알만한 것도 없을 것이란 생각하는 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막연한 믿음을 깨트리는 새로운 무언가를 늘 전해주는 것이다. 수 많은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는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철저히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만 수용하는, 이른바 ‘집중’의 기능을 사용하고 있기에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들에만 눈길을 주고서는 그것만이 세상의 전부인 듯 바라보게 되기에 저자는 똑같은 거리 위를 거닐 때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과 이 책 안에 담긴 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이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서 들려주고 있었고 이 이야기를 바라보노라면 이것이 마치 동일한 길을 걷는 것이 맞을까, 하는 생각과 동시에 내가 만약 이 거리를 걸었더라면 무엇을 발견했을까, 라는 생각들로 수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게 된다
길이 아니면 가지 않을 우리와는 다르게 바닥에 코를 박고서는 거닐기를 좋아하는 개의 습성에 따라서 개와 함께 산책하는 이들은 이전에는 바라보지 않았던 새로운 곳으로 향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우리에게는 전혀 관심의 대상이 아닌 거리의 일부를 새롭게 만나는 방법은 개를 통해서뿐만 아니라 우리가 누구와 함께 거닐고 있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지게 되는데 평범한 길 안에서 새로움을 전해줄 12명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녀를 통해서 전해지게 된다.
나는 아이들이 타고난 물활론적 경향 덕분에 어른들이 가르쳐 줄 수 없는 감수성을 갖는다고 느낀다. 아이들은 꽃을 주울 때 ‘친구에게 만들어주려고’ 몇 송이를 더 줍는다. 길거리의 돌멩이가 다른 풍경을 보게 해주려고 위치를 옮겨놓거나, 이사를 가서 힘들어하지 않도록 돌멩이를 주운 자리에 다시 가져다 놓기도 한다. 이처럼 세상을 살아있는 것으로 상상하면 자연히 연민이 생긴다. –본문
가장 먼저 그녀가 누구와 함께 이 길을 거닐게 될까, 라는 궁금증은 금새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전해지게 된다. 아직 어린 그녀의 아들이 첫 번째 동행자이자 길을 안내하는 사람으로서 선택되었는데, 산책을 시작하기 위해서 집을 나서기 위해 준비하는 순간은 어른인 저자에게 있어서는 아직은 산책이 시작되지 않은, 산책을 위해 나아가야 할 단계라면 그녀의 아들은 이미 산책이 시작된 순간으로서 아이의 눈을 통해서 바라보는 세상은 어른들이라면 전혀 신경 쓰지 않을 것들에마음이 동해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어른이 눈에는 보이지 않을 이등변 삼각형을 찾아내어 조용히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나 도시에 하나 둘 보이는 수도관을 보고서는 인사를 나누고 쓰레기 더미 위에 올려진 신발을 보고는 신나서 종알거리는 아이의 모습은 아이만의 천진난만함을 전해주고 있기에 이 거리에 동행했다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난다.
무엇보다도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인 알렌고든과 함께 하는 산책은 경이로움이 전해지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는데 앞을 보지 못하는 그녀와의 산책이 과연 어떻게 그려질까, 라는 궁금증을 따라 가보다 보면 내가 가지고 있던 편견, 그러니까 그들은 세상을 바라보고 그 안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나눈다기 보다는 어떠한 필요에 의해서만 길을 내 딛게 될 것이며 그 걸음걸음마다 두려움이 서려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그녀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고 있었다. 방향을 찾기 위해 벽을 향해 걸어가는 당당한 걸음걸이며 거리에 불어오는 미세한 바람을 느끼며 길이 끝났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노라면 내가 미처 모르고 있던 모습을 그녀만이 찾아내고 있다는 것에서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길이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단 하나의 진정한 여행은 낯선 땅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눈을 갖는 것. 다른 사람의 눈으로 그것도 백 명이나 되는 다른 사람의 눈으로 우주를 보는 것.
그들이 저마다 보고 있으며 그들 자신이기도 한 백가지의 우주를 보는 것이리라. -본문
누구와 함께 걷느냐는 것을 통해서 전혀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듯한 이 신비로운 이야기를 마주하며 읽는 내내 내가 바라본 세상은 그저 또 하나의 우주일 뿐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수 많은 세상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하나씩 하나씩 배워가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