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의 인문학 - 같은 길을 걸어도 다른 세상을 보는 법
알렉산드라 호로비츠 지음, 박다솜 옮김 / 시드페이퍼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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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다니던 길 위에서 아주 낯선 풍경들이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매일 지나치던 거리를 고개 들어 바라보면 있는 줄도 몰랐던 건물이 있기도 하고 매장이 눈에 들어오기도 하고, 수십 번도 넘게 지나쳤던 길가에 서있는 우체통도 문득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분명 어제도 지나갔던 그 길 위에 이러한 것들이 있었나? 라는 물음이 스쳐지나 갈 즈음, 그 동안 내가 알고 있던 거리는 마치 새로운 얼굴을 하고서는 내게 드리우는 느낌이다.

 

 사람은 정상적으로 발달하는 동안 집중할 수 있는 대상 전체에 집중하지 않는 법을 익힌다. 세상은 색깔, 형태, 소리가 넘쳐나기 때문에 우리 몸의 기능을 제대로 쓰려면 그 일부를 무시해야 한다. 그렇다고 무시한 세부 요소들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본문

 

 이미 익히 알고 있기에 더 이상 모르는 것도 없을 것이며, 새롭게 알만한 것도 없을 것이란 생각하는 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막연한 믿음을 깨트리는 새로운 무언가를 늘 전해주는 것이다. 수 많은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는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철저히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만 수용하는, 이른바 집중의 기능을 사용하고 있기에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들에만 눈길을 주고서는 그것만이 세상의 전부인 듯 바라보게 되기에 저자는 똑같은 거리 위를 거닐 때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과 이 책 안에 담긴 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이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서 들려주고 있었고 이 이야기를 바라보노라면 이것이 마치 동일한 길을 걷는 것이 맞을까, 하는 생각과 동시에 내가 만약 이 거리를 걸었더라면 무엇을 발견했을까, 라는 생각들로 수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게 된다

 

길이 아니면 가지 않을 우리와는 다르게 바닥에 코를 박고서는 거닐기를 좋아하는 개의 습성에 따라서 개와 함께 산책하는 이들은 이전에는 바라보지 않았던 새로운 곳으로 향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우리에게는 전혀 관심의 대상이 아닌 거리의 일부를 새롭게 만나는 방법은 개를 통해서뿐만 아니라 우리가 누구와 함께 거닐고 있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지게 되는데 평범한 길 안에서 새로움을 전해줄 12명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녀를 통해서 전해지게 된다.

 

 나는 아이들이 타고난 물활론적 경향 덕분에 어른들이 가르쳐 줄 수 없는 감수성을 갖는다고 느낀다. 아이들은 꽃을 주울 때 친구에게 만들어주려고 몇 송이를 더 줍는다. 길거리의 돌멩이가 다른 풍경을 보게 해주려고 위치를 옮겨놓거나, 이사를 가서 힘들어하지 않도록 돌멩이를 주운 자리에 다시 가져다 놓기도 한다. 이처럼 세상을 살아있는 것으로 상상하면 자연히 연민이 생긴다. –본문

 

 가장 먼저 그녀가 누구와 함께 이 길을 거닐게 될까, 라는 궁금증은 금새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전해지게 된다. 아직 어린 그녀의 아들이 첫 번째 동행자이자 길을 안내하는 사람으로서 선택되었는데, 산책을 시작하기 위해서 집을 나서기 위해 준비하는 순간은 어른인 저자에게 있어서는 아직은 산책이 시작되지 않은, 산책을 위해 나아가야 할 단계라면 그녀의 아들은 이미 산책이 시작된 순간으로서 아이의 눈을 통해서 바라보는 세상은 어른들이라면 전혀 신경 쓰지 않을 것들에마음이 동해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어른이 눈에는 보이지 않을 이등변 삼각형을 찾아내어 조용히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나 도시에 하나 둘 보이는 수도관을 보고서는 인사를 나누고 쓰레기 더미 위에 올려진 신발을 보고는 신나서 종알거리는 아이의 모습은 아이만의 천진난만함을 전해주고 있기에 이 거리에 동행했다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난다.

 

무엇보다도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인 알렌고든과 함께 하는 산책은 경이로움이 전해지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는데 앞을 보지 못하는 그녀와의 산책이 과연 어떻게 그려질까, 라는 궁금증을 따라 가보다 보면 내가 가지고 있던 편견, 그러니까 그들은 세상을 바라보고 그 안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나눈다기 보다는 어떠한 필요에 의해서만 길을 내 딛게 될 것이며 그 걸음걸음마다 두려움이 서려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그녀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고 있었다. 방향을 찾기 위해 벽을 향해 걸어가는 당당한 걸음걸이며 거리에 불어오는 미세한 바람을 느끼며 길이 끝났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노라면 내가 미처 모르고 있던 모습을 그녀만이 찾아내고 있다는 것에서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길이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단 하나의 진정한 여행은 낯선 땅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눈을 갖는 것. 다른 사람의 눈으로 그것도 백 명이나 되는 다른 사람의 눈으로 우주를 보는 것. 
 
그들이 저마다 보고 있으며 그들 자신이기도 한 백가지의 우주를 보는 것이리라. -본문

 

 누구와 함께 걷느냐는 것을 통해서 전혀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듯한 이 신비로운 이야기를 마주하며 읽는 내내 내가 바라본 세상은 그저 또 하나의 우주일 뿐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수 많은 세상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하나씩 하나씩 배워가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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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사생활 / 알렉산드라 호로비츠저 


 

 

독서 기간 : 2015.03.28~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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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15.4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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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터의 이야기가 이번 4월호를 기점으로 발간된 지 만 45주년이 되었다고 한다. 이미 나보다도 더 오랜 세월을 보낸 샘터는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서는 교감을 나누는 매개체가 되었을까.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만큼 샘터를 기억할 사람도, 그 안에 함께했던 이들도 가득했을 샘터에 이제 나 역시도 그 안에 동참하는 기분이라 왠지 모를 뿌듯함이 전해진다.

 내일에 대한 불안감, 언제라도 건드리면 폭발할 것 같은 분노, 더불어 사는 즐거움은커녕 모르는 사람과는 눈도 마주치기 싫어하고, 오직 스마트폰에만 매달린 듯한 이들이 주변에 너무 많아 보입니다. 점점 더 따뜻함보다는 거칠고 차가운 세상을 만나게 되는 작금의 사회에 대해 샘터만이 전적인 책임을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한의 책임감은 느낍니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미래를 만들 수 있게 도움이 될까, 고심하게 됩니다. 어떨 때는 세상과는 동떨어진 한가로운 얘기만 하고 있지는 않나 스스로 묻기도 합니다. -본문

 누구에게나 샘물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샘터의 이야기는 45년동안 이어져 온 지금 그들의 바람이 더욱 절실하고 간절하게 느껴진다. 세상의 맑은 물을 쉼없이 전해주는 매게체가 되고 싶다는 바람의 담은 이번 4월호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깊은 울림을 전해주고 있었는데 이번달에 만난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은 한국학을 통해서 전통의 한류를 전세계에 알리겠다는 원대한 포부로 이야기의 시작을 전해주고 있다.

 

 "조광조(1482~1519. 중종 시대 개혁가)의 시권을 보면 임금이 고뇌에 차 던진 문제에 대해 선비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고 극복하고자 했는지 알 수 있어요. 지금 우리 시대에도 어려움이 있잖아요?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겨낼 방법을 찾는 거죠."
 
시권을 찾아내 조명하는 일은 이 원장의 역사에 대한 이해와 스토리텔링 능력, 아이디어가 합쳐진 결과물이다. 그는 "고전을 번역하는 일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조상의 문화를 재구성하고 지금 세대와 소통해야 한다." "장서각에 갈 때마다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했다. -본문

 한국 고전을 번역하는 것은 물론 해외에도 한국학의 연구에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스스로가 왜 이토록 이런 일에 집념을 가지고 임하고 있는가, 에 대해 알게되면 조용히 숙연한 마음이 들게 된다. 일제강점기 시대의 이야기를 찾아보며 주권이 없는 나라의 설움과 역사를 알고 배워야하는 이유를 찾았기에 그녀가 하는 일에 대해 더욱 자부심을 가지고서 임하고 있다고 한다. 내일이면 조상이 되는 오늘의 이야기를 열심히 닦아 나가겠다는 그녀으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가 가는 묵직한 발걸음을 다시금 배워보게 된다.

<쌍송국수>라는 예산의 오래된 전통제면서 안의 장인의 솜씨를 보고 영화 <국제시장> '꽃분이네'의 실제 모습도 마주하게 된다. 치열하게 살아오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이 책자를 보며 편안하게 지내고 있는 나는 너무 쉬이 무위도식하며 살고 있구나, 를 느끼게 된다.

 15,000원짜리 부케와 함께 결혼한 이들의 따스한 사연도, 어릴 때는 그토록 싫었던 아버지의 담배 냄새가 그립다는 사연도, 아직도 세상이 따스하다는 것을 전해주는 4월의 샘터와 함께 따스한 봄날을 보낸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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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15.3 / 샘터 편집부저 


 

 

독서 기간 : 2015.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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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 모여 인생이 된다 - 내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되는 법 아우름 4
주철환 지음 / 샘터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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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의 인생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면 그의 주변에 있는 친구들을 보면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의 주변에 있는 이들이 그가 살아온 인생을 알 수 있는 총체적인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그의 곁에 있는 사람들은 곧 그의 삶을 말해주는 것이리라. 그렇기에 현재의 나의 곁에 있는 이들은 내가 그 동안의 삶을 어떻게 지내왔는지를 알려주는 이들일 텐데 천성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게으름과 늘 안일한 마음 덕택에 누군가를 먼저 찾아가기는커녕 늘 누군가에게 연락이 와야만 나가곤 하는 이 몹쓸 행태는 안 그래도 편협한 인간관계의 씨를 마르게 하는 장본인이 되고 있다. 이렇게 해서는 안돼, 라는 것을 알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린 것은 아닐까, 라는 마음에 그 무엇도 할 수 없이 종종거리던 나에게 이 <인연이 모여 인생이 된다>는 지나온 시간은 물론이거니와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지막이 전해주고 있다. 

 정현종 시인도 <방문객>이라는 시에서 말했습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라고요. 우리가 친구가 되어 기꺼운 마음으로 만나고, 인생을 이야기하고, 고단한 어깨를 주물러 주고, 악수하며 격려해 주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습니까.
 
친구의 수를 늘리기보다는, 나를 만나서 진정 행복한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꼬였던 마음이 풀어지고 서로로 인해 새롭게 결심하게 되는, 그런 만남을 여러분도 하고 싶지 않나요? –본문
 

 핸드폰의 무수한 연락처를 넘기면서도 그 안에 정작 마음을 터놓고 있는 이들은 별로 없다는 것을 보면서 이 편협한 인간관계를 어찌하면 늘릴 수 있을까, 라고만 생각했었다. 이미 가지고 있는 이들에 대한 마음을 열지도 않은 채 더 많은 사람을 알게 되면 이 헛헛함이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상 그 이후에 누군가를 또 알게 된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 나의 행태를 늘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게 만들었으니 나는 내 안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만 했고 그 교정을 위해서 이 안의 이야기들을 조금씩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전환점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어렸을 때 한창 영어에 맛들일 무렵 무척 좋아했던 말은 ‘If I were you’였습니다. 발음을 할 때 모양도 귀엽고 의미 또한 정겹기 때문이지요.
내가 너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내가 너라면 어떤 느낌을 가질까, 빙의 놀이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 
 
상상이 벽을 넘어가 처지가 다른 사람에게 이른다면 그것이 빙의입니다. 사업 실패에 경매로 집까지 날린 가장, 자식이 학교 폭력으로 괴로워하고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린 부모, 온갖 불이익을 감내하며 열심히 일했지만 끝내 계약 연장이 안 된 비정규직 청년…… 뉴스만 보아도 빙의할 소재들로 넘쳐나지요. –본문
 

누군가를 만나면 내 이야기를 널어 놓기에 정신이 없었던 나의 모습은 그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리기 보다는 그저 내 안의 것들만 쏟아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현재 그 사람이 처해있는 현재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관심 따윈 없이 그저 나는 나일 뿐이었으며 시간을 공유한 그 순간에도 나는 나의 이야기를 전달하기에만 급급했을 뿐이니, 타인에게 있어서 나는 늘 오롯이 혼자만 존재하는 사람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읽어내려 감에 따라 그럼에도 내 주변에 있는 이들이 얼마나 감사한 사람들인지에 대해 조용히 생각해보게 된다. 현재의 내가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는 그들의 있었기에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늘 그들을 외면하며 지내왔었다. 이 책을 통해 나의 지난날은 물론이거니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삶의 태도를 배우게 된다. 앞으로는 나의 곁에 있는 이들을 살뜰히 챙기며 이 모든 인연이 서로에게 따스해 질 수 있도록 노력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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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좋아진 날 / 송정연저


 

 

독서 기간 : 2015.03.29~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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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의 초상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16
로버트 네이선 지음, 이덕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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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덜터덜 길을 걷고 있던 한 남자의 앞에 한 소녀가 나타난다. 재잘재잘 자신의 이야기를 떠들고 있던 아이가 입고 있는 옷을 보노라면 요 근래에 아이들이 입고 다니는 옷의 느낌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그 아이가 신고 있었던 구두마저도 지금의 것이 아닌 이전의 것 같다는 알싸한 생각이 스치고 지나갈 때 즈음 소녀는 다시 만날 그날을 기약하며 홀연히 사라지게 된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가 뭔지 아시겠어요?” 소녀는 물었다.
몰라내가 대답했다.
소망놀이랍니다.”
가는 그 애가 가장 소망하는 게 뭐냐고 물었다.
제가 자랄 때까지 선생님이 기다려 주셨으면 해요.” 소녀가 말했다. “하지만 그렇진 않으실 테죠, 아마.” 눈 깜짝할 새 소녀는 돌아섰다. 그러고는 몰 가 아래로 조용히 되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소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거기 서 있었다. 이윽고 나는 더 이상 소녀를 볼 수 없었다. –본문

평범한, 아니 그보다는 가난한 화가였던 이벤은 미지의 소녀인 제니를 만나고 나서부터 화가로서의 명망을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한다. 그것은 바로 제니를 화폭 안에 담고 나서부터 변화된 것으로 희한한 일은 제니는 나타날 때마다 우리가 아는 시간의 진리를 거슬러 너무도 빠르고 신기할 정도로 훌쩍 변화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니까 그녀는 처음에는 천진난만한 아이의 모습에서 소녀로, 소녀에서 숙녀로 급작스럽게 변화하게 되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이벤의 모습은 거의 변화되는 것 없이 상대적으로 제니만 변화되는 모습은 무언가 신비스러움을 전해주게 된다.

비록 내가 그녀를 만나지 못해 쓸쓸하긴 했어도, 또한 그녀에게 도달할 수는 없었다고 해도 내가 전혀 그녀 없이 지낸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나는 내 기억이 점차 더욱 날카로워졌음을 발견했다. 그렇지 않으면 기억이 내게 속임수를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내가 과거 속에 살기 시작했다기보다 오히려 과거가 더욱더 뚜렷하고 실제적인 현재의 형태를 취하고 나의 대낮의 사고 속으로 침투해 들어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반대로 현재는 점차 조금씩 몽롱해져서 나로부터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것처럼 보였다. –본문

폭풍을 넘어 허리케인이 몰아치던 날, 제니와 이벤은 마주하게 된다. 무언가 더 애틋함으로 가득하길 바랐던 그들의 만남은 안타까움을 가득 남긴 채 종결되어 버린다.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이지? 라는 냉철한 질문 따위는 던져버리곤 그저 애잔함을 남기게 하는 이 이야기를 보며 그 무엇도 이들의 관계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겠지만 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오히려 그들을 처연하게 만든다. 이벤과 영원히 함께 있을 때 돌아오리라 약속했던 제니는 이제 이벤의 마음 속에서 평생 함께 하는 것일까? 이 풀리지 않을 이야기가 답답함을 느낄 틈도 없이 그저 아름답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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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달리는 소녀 / 츠츠이 야스타카저 


 

 

독서 기간 : 2015.03.28~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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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애사 대한민국 스토리DNA 1
이광수 지음, 이정서 편역 / 새움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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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역사를 넘어 세계의 역사를 돌아본다고 해도 이토록 통탄할 역사가 없었을 것이라 말하는 저자의 이야기를 보면서 계유정난의 일을 국사 책 속에서 배우긴 했다만 그 문제에 대해서 무언가 심도 있게 생각해본 적은 없는 듯 하다권력 앞에 눈이 먼 수양대군의 폭군과 같은 모습에 두려움에만 떨었던 것이 잠시그 이후에 나는 조용히 교과서를 덮고서는 그 이후에는 별다른 생각 없이 역사 속의 한 사건으로만 그날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심지어 재작년 개봉했던 영화 <관상속의 수양대군의 역할을 했던 이정재의 모습을 보면서 그의 포악했던 모습이 스크린 속에서는 오히려 부각되는 것을 보면서 그저 환호성으로 그의 모습을 바라볼 것이 아닌 실제의 그 날을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지에 대해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에 이 책을 조심스레 펼쳐보게 되었다.

왕이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두 학사는 무슨 말씀이 계실 것이라 여겨 자연스럽게 왕이 좌우로 한 걸음쯤 뒤쪽에 섰다왕은 몸을 돌려 두 학사를 그윽이 바라보다 말했다.
 “
경들에게 어린 손자를 부탁한다나를 섬기던 충성으로 이 어린 손자를 섬겨 다오.”
 
그 목소리는 심히 무겁고도 슬픈 빛을 띠었다왕의 두 눈에는 눈물까지 빛나는 듯하였다그에 젊은 두 학사는 전신이 찌르르하여 굽힌 허리를 오래 들지 못했고목이 메러 말이 나오지가 않았다. –본문

 세상이 더 없이 축복이 가득한 원손의 탄생에도 불구하고 세종은 마냥 기뻐하는 모습이 아니었다그도 그럴 것이 현재의 세자가 효심 가득한 장손이기는 했으나 그의 몸이 병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세자의 아우들 중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의 존재의 위험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자신이 세상을 떠난 이후 세자와 원손의 세상이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그렇기에 세종은 이 축복 가득한 순간뒷날 드리울 암흑과 같은 그날을 염려하며 그의 곁을 지키고 있는 대신들에게 자신의 손주를 자신과 같이 부탁한다는 이야기를 나지막이 던지고 있을 것이다.

 찬란한 조선의 역사를 꽃피운 세종대왕의 그늘이 사라지고 아버지였던 문종마저 사라진 지금. 5년이란 짧은 시간 동안에 단종의 힘이 되어줄 사람들을 모두 떠나 보내고서는 왕상의 자리를 홀로 지켜야 했던 단종이 느끼는 압박감과 두려움은 감히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그의 목을 죄어오고 있었다.

 단종을 지키기 위한 김종서와 그의 측근들이 그의 주변에 있다고 한들권력을 가지고자 하는 탐욕으로 가득한 수양대군은 교묘히 자신의 세력을 점점 키워가고 있었고 왕좌에 앉아있는 것은 단종이지만 영의정을 넘어 병조이조판서를 동시에 위임하고 있는 수양대군은 조카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점차 그의 야심을 키워나가는 것을 보노라면 권력 앞에 드러나는 한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잔혹한 것인지에 대해 마주할 수 있다.

“나더러 부왕께서 전하여 주신 왕위를 버리란 말이야그것이 대신이 할 말이야그것이 어느 성경현전에 있는 신하의 도리야정인지의 목에는 칼이 들어갈 줄을 몰라?
왕은 용안이 주홍빛이 되고 발을 굴렀다.
 “숙부가 이제 정인지를 시켜 이런 말을 하게 한단 말이냐? (중략요망한 늙은 것이 오늘따라 가장 충성이 있는 듯하기로 무슨 소리를 하는고 하였더니언감생심 그런 소리를 한단 말이냐이놈네가 선조의 녹을 먹고 고명하심을 받았거든 이제 이심을 품으니 천의가 없으리란 말이냐누구 없느냐이 역신을 끌어내는 놈이 없단 말이냐!” 하는 왕의 두 눈에서는 원통한 눈물이 흘렀다. –본문

수양대군의 야망을 이루는데 있어서 눈엣가시였던 이들은 한명회의 살생부 명단 위에 하나 둘 기록되면서 단종의 병풍으로서 자리하고 있던 이들마저도 점점 사라지게 된다뿐만 아니라 수양대군의 형제들은 수양과 같은 이단을 꿈꾸는 이를 척결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참혹하게 죽음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 모습을 보노라면 과연 권력이라는 것이 무엇이길래 이토록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이 계속되어야 하는 것인지먹먹함만이 밀려들게 된다.

 

 끝끝내 자신의 자리를 수양에게 넘겨 주어야 했던 단종은 결국은 영월로까지 유배 생활을 떠나게 된다한 나라의 왕이었던 그가 왕위를 빼앗긴 것으로 모자라 유배 생활에 올려져야 했고 그를 다시 왕의 자리로 복귀하려 노력했던 이들은 모두 세상을 떠나게 되었으며 결국 수양의 손에 죽음의 길을 걸어야 했던 조선의 비운의 왕이었던 그는 죽어서도 자유롭지 못한 채 차가운 강물에 던져져야만 했다.

 과연 그는 살아생전 큰 소리로 자신의 목소리를 지를 기회조차 있었을까그저 계유정난이라는 하나의 사건으로만 바라보기에는 단종의 삶이 너무 아득하게만 느껴진다권력이라는 정치 놀음 속에서 희생양이 되어야만 했던 그를다시금 깨울 수만 있다면그는 그의 삶을 뭐라 말할지책을 덮는 순간에도 먹먹함만이 밀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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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님 여의옵고 / 이광진저 


 

 

독서 기간 : 2015.03.24~03.28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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