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에 아내와 함께 TV 뉴스를 보다가 '참으로 이상한 대화'를 나눴다. 대화의 발단이 정확히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TV 앞에서 잠깐 나눈 대화의 촛점만은 아주 간단했다.

 

"도대체 범인이 누구지?"

 

TV 뉴스를 보면서 이런 얄궂은 질문을 떠올린 건 물론 '미투 열기' 때문이었다. 뉴스에 등장하는 '사건들의 양상'이 너무나 비슷했다. 미투에 엮인 사건들마다 '가해자의 주장'과 '피해자의 주장'이 정반대로 달랐다. 심지어는 미투와 아무런 관련조차 없는 '미투 가해자의 절친'마저 엉뚱한 문제로 뉴스에 뒤섞여 등장했다. 그 사람이 하필이면 미투 가해자가 오랫동안 도지사로 근무했던 바로 그 지역의 '도지사 후보'로 출마하는 바람에, 애먼 가해자(?) 측과 엉뚱한 문제로 연일 '진실 공방'을 벌이고 있었다.

 

피해자의 주장과 가해자의 주장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 중인 사건은 물론 2011년 12월 '어느 날' 여의도의 모 호텔에서 벌어졌다고 주장하는 '성추행 피해 사건'이었다. 마침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서울시장 예비 후보 출마 선언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사건'이 폭로됐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순간에 느닷없이 터져나온 '7년 전 성추행 사건'을 두고 양 쪽은 연일 날선 공방을 벌이고 있었다. 심지어 오늘 낮에 발표된 가해자의 '최신판 반박 회견'에는 사건 당일의 알리바이를 증명하는 데 충분해 보일 만한 '사진 증거물'까지 제시했다. 그 바람에 이제는 '둘 중 하나'는 틀림없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훨씬 더 명백해졌다. 어쨌든 가해자는 23일이든 24일이든 '여의도의 모 호텔'엔 아예 가지도 않았다고 딱 잡아떼는(?) 중이었다.

 

그런데 저녁 뉴스를 보는 와중에도 어느새 '새로운 증인'이 나타났다는 소식이 '자막'으로 지나갔다. 자신이 직접 가해자와 함께 23일 오후에 그 호텔에 갔었다는 내용이었다. 새로 등장한 증인의 주장도 꽤나 놀라웠지만 저녁 늦게 등장한 '피해자의 새로운 반박문'은 더욱 놀라웠다. 그 두 사람의 주장만 들어보면 가해자가 주장하는 '피해자가 꾸민 대국민 사기극'이야말로 진짜로 '대국민 사기극'이 틀림없어 보일 정도였다.

 

어쨌든 '진실은 하나'일 수밖에 없고, 결국 저 '위대한 판관'인 시간이 다 해결해 줄 테니, 관전하는 사람들로서는 그저 조금 더 기다려 보는 수밖에 없겠다 싶다.(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도대체 이 사안을 어떻게 판단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솔직히 처음부터 오늘까지 한시도 '피해자의 주장'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나의 확신은 오늘 가해자가 내세운 '이상하리만치 정확한 사진 증거물' 때문에 도리어 더 단단해졌다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가해'한 사실이 아예 없었다면 굳이 저런 구차한 증거물까지 내세울 필요는 아예 처음부터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가 알겠는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엄청난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튼 두고 볼 일이다.)

 

어쨌든 좋다. 여기서 다시 내가 내세운 나의 화두로 얼른 되돌아 오자.

 

"도대체 범인이 누구지?"

 

TV 뉴스를 보다가 이 화두를 맨 처음 던진 사람이 나였는지 아내였는지조차 어느새 헷갈린다. 최근 며칠 동안에 보도된 여러 사건들이 우리 두 사람의 머리를 너무 뒤죽박죽으로 만든 탓일까. 아무튼 이런 화두가 아내와 나, 두 사람 가운데 한 쪽의 입에서 틀림없이 나왔다는 사실만큼은 명백하다.

 

내가 '피해자의 주장이 훨씬 더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다음과 같은 가해자의 이상한 해명 때문이었다. 이런 해명이야말로 나로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날은 7년 전이고, 이 기억을 다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가해자가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사건 당일을 전후한 여러가지 다른 일들은 아주 상세히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피해자와의 만남 여부'에 대해서만은 한사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투였다. 나에겐 이보다 더 강한 '거부 신호'를 보내는 해명도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그토록 중요한 사건들을 '선택적으로' 기억할 수 있다는 말일까.

 

과연 그럴까. 아무리 7년 전의 일이라고 하더라도 '아주 중요한 사건들'이 하루 온종일 연속해서 일어났다면 그 기억이 결코 흐릿해질 리는 없지 않을까. 이 대목에서 나는 무심코 나의 옛 추억들을 무수히 다시 떠올리게 만든 '어느 소설가의 경우'가 생각이 나서, 그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아내에게 불쑥 꺼내고 말았다.(마침 그 사람이 쓴 자서전 같은 소설인 『데이비드 코퍼필드』도 열심히 읽는 중이었고, '기억의 메카니즘'이 사람마다 다른지 어떤지도 확인하고 싶었다.)

 

"혹시 알랑가 모르겠는데... 영국의 어느 필담 좋은 소설가의 경우는 말이지... '내가 태어나던 날'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서, 자신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 겪은 온갖 일들을 어찌나 생생하게 그려내는지, 까마득한 옛날 일들도 마치 엊그제 일어난 일처럼 너무나 잘 그려놓았더라구. 표현들도 어찌나 놀랍던지, 읽는 내내 감탄을 거듭할 수밖에 없더라구..."

 

"그래?"

 

"그 작품을 읽는 동안에 나도 덩달아 무수히 많은 까마득한 옛날 일들을 아주 생생하게 다시 떠올릴 수 있었지.. 어느 겨울날, 양지 바른 햇살이 내리 쬐는 창고 같은 건물 벽면에 잔뜩 쌓아 놓은 짚더미 사이에 몸을 눕히고 볕을 쬐다가, 그만 꼬박꼬박 졸던 추억들 까지도.. 아무튼.. 온갖 등장인물들이 다들 어찌나 생생하게 그려져 있는지.... 문장들은 또 어찌나 기가 막히고 물 흐르듯 청산유수인지, 셰익스피어를 쏙 빼닮은 느낌이더라구......"

 

"그래? 그게 누군데?"

 

"혹시... 알랑가 모르겠는데... 찰스 디킨스라고 들어 봤어?"

 

"그 사람 알지.. 들어는 봤어.. 마침 어제 TV에도 나오던데? <서프라이즈>에서 말이야..."

 

"아니, 그 사람이 <서프라이즈>에 나왔단 말이야? 어떻게?"

 

"그렇다니까.. 무슨 무슨 드루드의 미스테리인가 하는 소설을 썼다고 하던데, 아직까지도 범인을 잡지 못했다고 하더라구... 그게 아마도 미완성인 추리소설이었다나 뭐라나... 작가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죽는 통에 그랬다나 봐..."

 

햐~ 세상에 이런 기막힌 우연도 있구나 싶었다. 내가 요즘 한창 빠져서 읽고 있는 책이 바로 찰스 디킨스의 작품이었고, 그 작가의 생애와 작품에 대해서까지 '해설'까지 찾아 읽다 보니 어느새 그 작품의 '이름'을 나도 들어봤던 것이다. 아니다. 『에드윈 드루드의 비밀』이라는 책을 어느새 실제로 구경했던 것이다. 그것도 바로 어제 말이다. 결국 어제 하루 동안에 아내는 집에서 TV를 통해 그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보았고, 나는 같은 날 동네 도서관에 가서 그 책의 '실물'을 뒤적거리며 구경했던 것이다. 세상에 이런 기막힌 우연도 있구나 싶었다.

 

"나도 사실은『에드윈 드루드의 비밀』이라는 책을 알고는 있지... 그런데 그게 미완성인 추리소설이라는 정도만 알았지, 그 책이 국내에서 이미 번역까지 되어 나와 있을 줄은 새까맣게 모르고 있었지. 마침 어제 도서관에 갔다가 그 책을 한참이나 '구경'하다가 왔었는데, 바로 그 책이 TV에 소개되었다니 정말 놀랍군...."

 

"그랬구나.."

 

아무튼 찰스 디킨스가 미완성으로 남긴 그 작품이 아직도 그토록 화제일 줄은 몰랐다. 뒤늦게 알고 보니, 그 작품을 두고 '도대체 범인이 누구지?' 라는 문제를 풀기 위해 아직도 무슨 '대회'가 열린다고 한다. 범인이 누군지만큼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도 드문데, 천재 작가인 찰스 디킨스가 바로 그 작품을 미완성으로 남겨 놓았으니, 어찌 사람들이 스스로 '작가'가 되는 일조차 마다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쨌든 '범인'은 기어코 찾아내야 할 테니.

 

"도대체 범인이 누구지?"

 

[시선강탈] ‘서프라이즈’ 지금까지 논란 중인 찰스 디킨스의 애드윈 드루드...

 

 

 * *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nine 2018-03-13 0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목도 처음 들어보는 책인데요, 일단 제목에 미스테리라는 말이 들어가면 관심이 증폭되어요. 더구나 oren님께서 이렇게 호기심이 가게 페이퍼를 올리셨으니...^^
저도 오늘 뉴스 기사 보면서, 고개를 갸웃갸웃했어요.

oren 2018-03-13 09:37   좋아요 0 | URL
최초에 폭로가 나올 때만 해도 ‘사건의 양상‘이 이렇게 이상한 방향으로 크게 변할 줄은 몰랐어요.

정의원의 주장대로, 애초에 ‘그 날‘ 여의도의 호텔에 가지도 않았다면, 왜 굳이 여러 사람들을 불러 놓은 ‘서울시장 예비 후보 출마 기자회견‘까지 부랴부랴 취소했을까 싶은 의문도 드네요.
 

 

나 오랜 세월을 귀가 먹고 눈이 먼, 그리고 벙어리가 된 불구자처럼 살아왔다. 권력을 추구하는 잡것, 글이나 갈겨 쓰는 잡것 그리고 쾌락이나 쫓는 잡것과 함께 살지 않기 위해서였다.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 *

 

틈날 때마다 들여다본 '뉴스'를 통해 알게 된 '미투 가해자'는 오늘까지 대략 얼마나 될까.

어디 한번 적어나 보자.

 

전 검사장 안태근, 고양지청 김某 부장검사,

수원교구 신부 한만삼, 성락교회 목사 김기동,

시인 고은, 연극연출가 이윤택, 극작가 오태석, 인간문화재 하용부, 극단대표 조증윤,

음악감독 변희석, 전 한예종 교수 김석만, 교수 겸 배우 故 조민기, 배우 조재현, 배우 오달수,

배우 최일화, 배우 한재영, 배우 최용민, 영화감독 김기덕, 만화가 박재동, 드러머 남궁연,

도지사 안희정, 국회의원 정봉주, 함평군수 안병호 등등등...

 

미투라는 이름으로 '나도 당했다'는 처절한 고백들이 터져 나온 이후로 아마도 오늘이 (잠정적으로는) '피크'가 아니었을까 싶다. 뉴스 시간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하나같이 '미투 가해자들'로만 이어질 지경이었으니까. 오늘 아침에 나온 세계적인 뉴스조차 미투 관련 뉴스에 파묻힐 정도였고, 시덥잖은 뉴스들은 뉴스처럼 들리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가증스런 인간들이 저지른 만행의 정도가 너무나 광범위하고 지속적이어서 놀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미투 덕분에 평소에 아무런 관심도 흥미도 없었던 인간들에 대해서 무수히 새로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제까지 드러난 인물들만 해도 일일이 나열하기 벅찰 지경인데, 이 정도는 어찌 보면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듯하다.(여의도에서는 조만간 메가톤급 미투 폭탄이 두엇 더 터져나올 조짐이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한다.) 세상의 모든 추악한 악행들이 어찌 한꺼번에 수면 위로 다 드러날수 있을까마는, 그래도 여태까지 드러난 것만 해도 참으로 경악스럽기만 하다.

 

그런데 피해자들이 절규하듯이 몸부림을 치며 한사코 피해 사실을 증언하는데도 끝끝내 거짓말만 앞세우는 인간들을 보면 치미는 분노를 좀체로 억누르기 힘들다. 저들도 인간일까 싶다.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라 부르기조차 싫다. 인간 쓰레기라 불려 마땅하지 싶다. 도대체 이 세상에 왜 태어났냐고 묻고 싶을 지경이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자신의 잘못조차 뉘우치지 못한다면 그런 인간들을 어찌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들도 분명 알고 있으리라. 비록 잠시나마 일부 사람들을 속일 수는 있다고 하더라도 결코 자기 자신마저 속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자기 자신을 속이는 사기꾼에 비하면 이 세상의 다른 사기꾼들은 모두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 찰스 디킨스, 『위대한 유산』중에서

 

 * *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재인 그는 너무나 많은 재능을 지닌 것 같다. 그 재능은 그에게 묶여져 있는 무서운 기관차 같아서 그는 거기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도, 그것을 멈추게 할 수도 없다. 그는 나를 압도한다! 그토록 왕성한 창작력과 다채로운 재능을 지닌 한 예술가에 대해서, 또한 한 인간으로서 그가 가진 복합적인 성격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할 방법이 없다."

 - 랄프 왈도 에머슨

 

 * * *

 

아무리 탁월한 작가라고 하더라도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읽기 전까지는 대개 작가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막연한 거리감을 도저히 좁힐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설사 그 사람의 사진만 보더라도 곧장 그를 알아볼 수 있고, 그가 남긴 대표작 이름까지 여럿 알고 있다고 해도 사정은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내겐 찰스 디킨스라는 작가도 그런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이었다. 아주 오랫동안.

 

그에 대해 내가 얼마나 무지했던지 심지어 나는 구두쇠 영감 스크루지가 등장하는 그 유명한 『크리스마스 캐럴』조차도 찰스 디킨스와 연결지어 생각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만큼 이 인물에 대해서는 도무지 아는 게 없었다고나 할까.

 

도대체 어떤 연유로 찰스 디킨스를 이토록 새까맣게 모르고 지내왔을까. 가만 생각해 보니 뚜렷하게 내세울 만한 이유도 별로 없다. 굳이 억지로 변명을 하자면 이렇다. 그의 작품 제목이 당최 별로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코퍼필드? 올리버 트위스트? 도무지 무슨 이야기가 거기에 담겨 있다는 거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차라리 『고리오 영감』이라든가 『보바리 부인』이라면 또 모를까. 그런 책들을 먼저 읽으면 읽었지 아무런 실마리조차 잡히지 않는 낯선 제목의 소설부터 선뜻 집어들 생각은 별로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하찮은 이유 하나만으로도 찰스 디킨스는 내게서 까마득히 밀려나 있었다.

 

나도 언젠가는 찰스 디킨스를 한번쯤 만나 봐야지 하는 마음을 처음으로 품었던 건 아마도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읽을 때였지 싶다. 조이스는 그 엄청나게 두꺼운 소설 속에서 수많은 작가들과 작품 속 인물들을 단 한 줄로 간단히 처리하는 매우 특출난 솜씨를 유감없이 드러냈지만 유독 몇몇 작가들에 대해서는 그와는 정반대로 아주 융숭한 대접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인물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작가는 단연 셰익스피어였지만 찰스 디킨스에 대한 대우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왜냐하면 제임스 조이스는 그 책에서 세르반테스의『돈키호테』,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등은 물론이고 마크 트웨인이나 빅토르 위고와 같은 숱한 걸출한 작가와 작품들에 대해서조차 예외없이 '단 한 번' 스쳐 지나가듯 다룬 데 비해 찰스 디킨스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거듭 끌어들였고, 그의 작품 또한 『데이비드 코퍼필드』뿐만 아니라, 『두 도시 이야기』, 『올리버 트위스트』, 『픽위크 페이퍼즈』까지 두루 폭넓게 인유할 만큼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 보였기 때문이다.

 

나중에 다시 한번 찰스 디킨스를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헤럴드 블룸의 『교양인의 책읽기』를 만났을 때였다. 이 해박하고도 노련한 문학 비평가가 찰스 디킨스를 외면할 이유가 어디에 있었겠는가. 하지만 디킨스에 대한 나의 관심이 급속도로 고조된 건 그 작가에 대한 헤럴드 블룸의 도드라진 애정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런 사정까지 알고 나서도 한사코 디킨스를 계속 외면하기란 그리 쉽지는 않은 일이었다.

 

오래된 작품들을 다시 읽는 일은 가장 높은 수준의 즐거움

 

윌리엄 해즐릿이 말한 것처럼 오래된 작품들을 다시 읽는 일은 가장 높은 수준의 즐거움이면서 독자 자신의 열망 깊은 곳에서 새로운 가르침을 준다. 나는 디킨스의 『픽위크 페이퍼즈』를 일 년에 두 번씩 읽곤 했는데, 그 과정에서 여러 권의 책이 닳아 없어지기도 했다. 그게 도피라면 난 기꺼이 그 도피에 참여하리라. 비록 『픽위크 페이퍼즈』에 등장하는 누구도 내게 동일화의 즐거움을 주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 헤럴드 블룸, 『교양인의 책읽기』

 

그런데 헤럴드 블룸의 감동적인 설명을 듣고 나서도 디킨스의 작품들은 여전히 내 마음에 선뜻 와닿지가 않았다. 픽위크 페이퍼즈? 도대체 무슨 이야기가 거기에 담겨 있다는 거지? 책의 제목들은 여전히 아리송하기만 하고, 막연한 궁금증만 더할 뿐이었다. 디킨스와의 거리 또한 조금도 좁혀지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많은 비평가들은 『황량한 집』을 첫 손가락으로 꼽는다

 

디킨스의 애독자들은 『위대한 유산』을 그의 소설 중 제1로 치지는 않는다. 대중적 인기로 치자면 『올리버 트위스트』보다 뒤진다. 디킨스 본인은 『코퍼필드』를 더 우위에 두었지만, 나를 포함해서 많은 비평가들은 『황량한 집』을 첫 손가락으로 꼽는다.

 

그러나 『두 도시 이야기』처럼 『위대한 유산』은 대단히 대중적이라는 면에서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과 수십 편의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에 비견될 만하다. 왜냐하면 영화나 텔레비전이 아닌 모습으로 이 정보화 시대에 살아남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햄릿』과 『맥베드』를 읽듯이 우리는 『위대한 유산』을 끊임없이 읽을 것이다.

 

도대체 어느 작품부터 읽어야 좋을지조차 모르는 나같은 디킨스 문외한에게 이런 설명은 그리 유익한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저 황량한 느낌만 더할 뿐이었다. 도대체 어느 작품이 최고라는 거지?『위대한 유산』은 아닌 듯하고, 그럼 『올리버 트위스트』? 디킨스 기준으로는 『코퍼필드』? 많은 비평가들은 『황량한 집』? 계속 헷갈리기만 했다. 그러나 어쨌든 『위대한 유산』은 '여러 면에서' 읽을 만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싶었다.

 

이렇게 해서 내가 처음으로 읽은 찰스 디킨스의 작품은 『위대한 유산』이 되었고, 그 작품 하나만 읽고도 나는 찰스 디킨스에 홀딱 빠져들고 말았다. 어느새 나는 『올리버 트위스트』, 『어려운 시절』, 『데이비드 코퍼필드』까지 한꺼번에 사들이고 나서 『황량한 집』을 마저 사들이지 못한 걸 살짝 후회할 정도가 되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국내엔 『황폐한 집』은 진작에 나와 있었어도 『황량한 집』은 아예 나온 적조차 없었다. 이런 황당함이라니.

 

 

 (『위대한 유산』은 1,2권 합해서 911족, 『데이비드 코퍼필드』는 무려 1,120쪽에 달하지만 '지루해서 읽기 힘든 소설'과는 아주 거리가 먼 작품들이니만큼 '방대한 분량' 때문에 겁을 먹을 필요는 조금도 없을 듯하다.)

 

『위대한 유산』을 읽는 짧은 시간(?) 동안에 참으로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휙휙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어릴 때 책 속으로 마구 빠져들었던 황홀한 느낌까지도 아주 오랜만에 다시 맛봤다. 디킨스의 작품이 이토록 재미있을 줄은 차마 몰랐다. 그가 쓴 문장과 표현들은 막히는 데가 전혀 없었다. 금세 셰익스피어를 떠올릴 만큼 그의 문장이 아주 생기 넘치고 자유분방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어떤 인물이나 광경이나 심리를 묘사하든 재치와 유머와 위트가 가득했다. 『위대한 유산』에 '나'로 등장하는 주인공 핍이 어린 시절에 겪은 아주 단편적인 이야기조차도 어쩌면 이토록 생생하면서도 흥미진진하게 다가오는지 연신 감탄을 거듭하며 읽어 내려갔다.

 

내가 아주 가금씩이나마 책을 읽다 말고 문득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보면서 한번쯤 상상했던 일 가운데 하나가 '언젠가 나도 작가가 되어 소설을 쓰게 된다면' 쯤으로 시작되는 몹시 유쾌한 상상이었다고 말한다면 어느 누가 얼마만큼이나 믿어줄까 싶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책으로 나올 가망성이 눈꼽만큼도 없는 그 소설 속에 한번쯤 꼭 담아봤으면 하는 심정으로 끄적거렸던 '번개처럼 스치는 아스라한 옛 추억들'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그렇게도 달아날까 두려워 몸을 떨면서 애써 붙잡으려 했던 '너무나 소중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바로 디킨스의『위대한 유산』이라는 작품 곳곳에 잔뜩 스며 있었다. 정말로 놀라웠다. 내가 그런 구절들을 읽을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고 몇몇 대목에서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전율할 수밖에 없었던 건 참으로 놀라운 독서 경험이었다.

 

디킨스가 펼치는 이야기는 너무나 자연스러워 마치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를 누군가가 우리에게 다시 들려주는 것처럼 아주 생생하게 들린다. 때로는 너무나 놀라운 스토리가 박진감 넘치는 추리소설처럼 펼쳐지기 때문에 마치 어린 시절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던 '끝내주는 만화'를 보는 느낌도 자주 들었다. 이처럼 읽는 재미가 샘솟듯 콸콸 흐르는 소설이 도대체 얼마 만이란 말인가. 이름난 서양 문학 고전들 가운데 과연 이만큼 재미있게 읽히는 소설이 있기나 할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저 딱딱하기만 한 주제들, 가령 '종교'와 '사상'과 '정치'와 '철학'까지 다루는 일부 작가들의 깊이있는 소설들, 단적인 예를 들자면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이나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등에 비하면 『위대한 유산』은 얼마나 판이하게 다른가 싶은 생각도 자주 들었다. 왜 진작에 이런 재미있는 소설부터 읽지 못하고 애써 딱딱한 소설들을 읽느라 괜한 생고생을 했던가 싶은 생각 때문에 잠시나마 그런 작품들을 읽은 시간들이 원망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대략 150년쯤 전에 영국에서 쓰여진 소설이 이토록 내 마음속 깊이 숨겨져 있었던 숱한 추억들을 끊임없이 불러 일으킬 줄은 차마 몰랐다. 어린 주인공 핍이 시골에서 겪는 온갖 작은 에피소드들 틈바구니로 내가 실제로 겪었던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끊임없이 비집고 들어오는 바람에 소설에서 눈을 떼기가 힘들 정도였다. 가난하고 어린 소년이었던 핍이 외딴 교회 묘지에서 우연히 맞닥뜨린 탈옥수를 돕는 과정에서나, 읍내에 사는 소문난 부자인 미스 헤비셤의 집을 방문하면서 겪는 온갖 사소한 장면들까지도 내게는 '또다른 나만의 옛 추억'을 끊임없이 불러내는 교묘한 실마리나 열쇠구멍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만큼 디킨스의 문장들은 어느 하나 강력하지 않은 게 없었다.

 

일자무식이던 시골 소년 핍이 미스 헤비셤의 저택에서 양녀처럼 살고 있는 도도하기 짝이 없는 또래 소녀인 예쁜 에스텔러를 만난 이후에 겪게 되는 '심리적 동요'는 어린 핍을 사정없이 뒤흔든다. 그게 결국은 '촌스럽다는 느낌으로부터 벗어나고픈 강렬한 열망'임을 깨달은 핍은 글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수소문한 끝에 읍내까지 먼 길을 오가면서 알파벳을 열심히 배운다. 이른바 '신사가 되고 싶은 열망'의 아주 작은 출발이었다. 대장간에서 하루 종일 쇳덩어리를 두드리며 연장을 만드는 일에 매달리는 착한 매형은 그런 핍을 얼른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힘껏 돕겠다고 거들지만 정작 자신이 그를 도울 능력이 없어 도리어 자책할 뿐이다.(나도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랄 때 '대장간에서 시뻘겋게 달궈진 쇳덩어리를 힘차게 두드리는 대장장이를 본 적이 있었다! 한적한 시골에선 그만큼 훌륭한 구경거리도 드물었다!)

 

장래의 희망이라고 해봐야 고작 매형으로부터 대장간 일을 부지런히 배워서 하루 빨리 매형을 도와줄 생각뿐일 정도로 소박하기만 한 어린 핍은 읍내 최고의 부자인 미스 헤비셤의 집을 들락거리면서 차츰 '새로운 세상'을 엿보게 되지만, 정작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놀라운 사건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엉뚱한 데서부터 시작된다. 혈육이라고는 생활력이 강하지만 억세고 사납기만 한 누나와 착한 매형이 전부인 어린 핍에게 '막대한 기대'를 품어도 좋을 만한 후원자의 대리인이 갑자기 시골에 찾아온 것이다. 후원자의 신분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고, '유산 상속'이 언제부터 개시될 것인지는 오로지 후원자의 판단에 달린 상태였다. 장차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을 때까지 핍에게 주어진 최우선 과제는 '유산 상속을 앞둔 귀한 신분'에 충분히 어울릴 만한 '신사 교육'부터 받는 일이었다.

 

가난한 어린 핍이 하루 아침에 막대한 유산 상속자로 돌변하게 되자 어린 핍을 핀잔 주거나 구박하기 바빴던 온갖 주위 사람들이 태도를 돌변하여 너나없이 칭송하기 바쁘고, 심지어 적잖은 나이 차이가 있는 매형까지도 핍을 '나으리'로 부르는 지경에 이른다. 어린 핍에겐 자신이 살던 마을과 읍내가 어느새 초라하게만 느껴지고, 대도시 런던으로 떠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새 양복까지 맞춰 입는다. '행복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더없이 소중한 존재인 매형 조와의 이별조차 대수롭잖게 여길 정도로 핍의 마음은 변한다. 착하디 착한 매형은 그런 핍에게조차 무한한 애정으로 감싸며 '기약없는 기나긴 이별'에 눈물을 흘리면서 오로지 핍의 성공만을 간절히 빌어준다.

 

고향을 떠나 런던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한 핍은 차츰 새로운 친구들을 여럿 사귀고 사교클럽을 드나들 정도로 변모하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행복한 시절을 보냈던 '어린 시절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과는 점점 멀어지고 만다. 어느덧 핍은 조금씩 분수가 넘을 정도로 사치에 빠져들면서 이내 빚까지 늘어나는 지경에 이른다. 어느덧 성년을 넘긴 나이에 접어든 핍은 '익명의 후원자'가 결국 미스 헤비셤일 거라고 확신하지만 그런 확신에 대해서는 어떤 근거도 찾지 못한 채 막연히 추측할 뿐이다. 후원자의 대리인이자 변호사인 재거스는 미스 헤비셤의 법률 대리인을 겸하지만 정작 '후원자'에 대해서는 어떤 질문도 허용치 않는다.

 

세월이 흘러 몰라보게 아름다운 아가씨로 성장한 에스텔러는 언제나 핍의 마음 한복판을 가득 차지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핍에게 냉랭하기만 하다. 언젠가부터 에스텔러는 런던으로 옮겨와 살지만 핍과 만나더라도 그의 연인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에스텔러를 향한 간절한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결코 그녀의 본심 때문이 아니라 '결혼식 당일 아침에 파혼을 당한 충격으로 평생 독신으로 지내는' 미스 헤비셤의 원한 서린 복수심 때문이라고 여긴 핍은 틈나는 대로 미스 헤비셤의 저택을 방문하고, 혼자서는 결코 풀 수 없는 그 '단단한 매듭'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 헤매지만 매번 헛수고에 그칠 뿐이다.

 

그러던 어느날 주인공 핍에게 매그위치라는 혐오스런 인물이 찾아 오는데... 자세히 살펴 보니 그 흉악하게 생긴 인물은 어린 시절 핍이 온갖 위험을 무릎쓰고 부엌에 남아 있는 음식을 누나 몰래 잔뜩 싸들고 늪지대까지 몰래 찾아가 도와줬던 바로 그 '굶주린 탈옥수'가 아닌가. 그 이후로 전개되는 놀라운 이야기들은 정말 숨가쁜 긴장과 짜릿한 흥분과 놀라운 반전의 연속으로 전개된다. 마치 어린 시절에 팔딱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읽었던 '셜록 홈즈 시리즈'를 다시 떠올릴 정도였다. 디킨스의 이야기 솜씨가 이토록 '대중적'이면서도, 각각의 인물들에 대한 성격과 행동 묘사에서 드러나는 '인간성에 대한 놀라운 통찰들'이 두루 함께 어우러질 수 있다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하루 아침에 거대한 유산 상속자로 바뀌어 런던으로 훌쩍 떠난 이후로도 핍은 언제나 '조와 함께 보냈던 마냥 순수하고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들'을 결코 잊지 못하지만 그저 짧은 순간에만 그러할 뿐이다. 정작 자신의 필요에 따라 고향에 들를 기회가 가끔씩 생기더라도 핍은 읍내에서 머물 뿐 결코 매형네 집까지 찾지는 않는다. 이젠 대장장이로 일하는 매형이 그리 자랑스럽게 여겨지지 않을 뿐더러 자신의 신분과도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핍이 줄곧 '은혜를 모르고 배은망덕하게' 런던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조 가저리의 핍을 향한 고결한 우정은 결코 변치 않는다. 결국 먼 훗날 핍이 급격하게 몰락하고 심신마저 피폐해진 끝에 중병을 앓을 때가 되어서야 핍은 다시금 조의 따스한 보살핌을 받고 구제된다. 몹시 휘어지고 부서진 채 마치 먼 여행에서 맨발로 돌아오는 처량한 나그네처럼 딱한 신세에 빠진 핍을 기꺼이 맞아 준 사람도 조밖에 없었다. 핍이 조와 눈물겹게 재회하는 장면은 안타깝기 보다는 차라리 숭고하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핍이 고향을 떠난 이후로 아주 오랫동안 옛시절을 잊고 지내왔다고 하더라도 진정으로 핍이 가슴 깊이 간직했던 '소중한 가치'는 바로 거기서 다시 복원되기 때문이다. 둘 사이에 맺어진 끈끈하고 순박하면서도 한없이 따스한 우정은 마크 트웨인의 소설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 나오는 헉과 짐의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우정과도 빼닮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디킨스의 풍요로운 작품 세계를 어찌 한 권의 장편소설로 다 헤아릴 수 있을까마는,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 솜씨가 얼마만큼 놀랍고 흥미로운지, 또한 등장 인물 각각에 대한 묘사가 얼마나 생생하면서도 위트와 재기가 넘치는 것인지는 『위대한 유산』만으로도 별로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앞에서도 미리 살펴봤지만 이 작품이 찰스 디킨스의 '제1의' 작품이 아니라는 평가도 있는 만큼 어서 빨리 디킨스의 다른 작품들로 달려갈 마음도 굴뚝같다.

 

내가 두 번째로 읽고픈 디킨스의 작품은 아무래도 『데이비드 코퍼필드』가 되지 싶은데(아차, 이 글을 올릴까 말까 주저하는 사이에 벌써 이 책을 110쪽 넘게 읽었다.), 책을 구입하고 보니 이 소설의 분량이 그리 만만치 않다. 작품해설까지 포함하면 무려 1,118쪽에 이르는데, 책의 말미에 딸린 104쪽 분량의 「찰스 디킨스의 생애와 문학」를 먼저 읽어 보니 작가에 대한 기대가 더욱 부풀어 오른다.

 

디킨스는 몹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로도 유명하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큰 빚을 지는 바람에 학교조차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가족들은 점점 더 런던 외곽으로 밀려나 지저분하고 헐벗은 아이들이 득시글거리는 곳에서 비참한 생활을 이어갔다. 12세부터는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쥐들이 우글거리는 구두약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채무 때문에 수감되는 바람에 다섯 가족들이 다함께 감옥에서 동거하며 지낼 만큼 형편이 어려웠다. 따로 떨어져 나와 공장에서 일하던 디킨스는 일요일만 되면 6마일을 걸어 감옥에 들어가 부모님과 형제자매들과 만나 시름을 달래며 하루를 보냈다.

 

아버지가 감옥에서 풀려나고 잠시 생활이 나아지자 디킨스는 2년 정도 학교를 다녔다. 그 뒤 다시 가족들과 아는 사이였던 어느 변호사 사무실에서 말단 사무원으로 일하게 되고, 18세가 되면서 독학으로 속기를 배운 덕분에 재판소에서 자유계약 속기사로 일하고, 20세에 드디어 국회 신문기자석에 저널리스트로 데뷔하기에 이른다. 이듬해 의회의 휴회 기간에 처음으로 잡지에 자신의 이야기가 실리자 그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린다.

 

"나는 웨스트민스터 홀까지 걸어가서 안에 들어가 30분쯤 그곳에 있었다. 넘치는 기쁨과 자랑스러움으로 눈에 눈물이 글썽해져서 길거리에는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23세의 나이로 완전히 자립하여 유능한 기자로 높은 평판을 얻은 그는 잡지에 고정 연재물을 기고하게 되면서 차츰 전문적인 작가의 길로 나서기 시작하는데, 24세에 발표한 『피크윅 페이퍼즈』와 25세에 발표한 『올리버 트위스트』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디킨스는 일찌기 25세의 나이에 '불꽃처럼' 드높은 명성을 향해서 불쑥 솟아오른 끝에 그 인기를 한평생 동안 누리게 된다. 인물을 창조하는 작가의 비범한 재능을 알아본 비평가들은 이내 그를 셰익스피어나 월터 스콧 경과 같은 대작가에 비견하게 되었다.

 

디킨스는 이제는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 런던 사교계에서 추앙 받았고, 특권 신사들의 클럽, 즉 개릭 클럽과 애서니엄 클럽 회원이 되어(찰스 다윈과 동시에 애서니엄 회원이 되었다), 공공장소에서 연설을 하는 일도 많아졌다. 1841년 에든버러 시민들이 디킨스에게 경의를 표하고 만찬회를 열어, 그를 에든버러 명예시민으로 추대했다 ㅡ 20대 청년에게 이것은 '더없이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디킨스는 그 일을 돌이키며, '내가 처음으로 받은 공식 표창이어서 아주 감격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는 그 무렵 문단 명사들과 만나 우정을 나누었다. …… 디킨스의 '품위 없는' 큰 웃음소리와 한껏 멋을 부린 차림새에 이맛살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의 날카로운 지성을 높이 평가한 사람은 더 많았다. 역사가 토마스 칼라일은 그를 처음 보고 나서 '섬세하고 몸집이 작은 사내'라고 썼다. '더없이 재주 많은 얼굴을 하고 있다. …… 조용하고, 예민해 보이는 작은 사내로, 자신의 본질은 물론 다른 사람들의 본질도 매우 잘 알고 있는 듯이 보인다.'(1042쪽)

 

 - 『데이비드 코퍼필드』, <찰스 디킨스의 생애와 문학> 중에서

 

이후로 디킨스가 어떤 작품들로 얼마나 더 많은 독자들을 더욱 매료시켰고, 당대를 주름잡던 수많은 작가들로부터 얼마나 훌륭한 평가를 더 얻게 되었는지, 혹은 그의 작품들이 지닌 '문학적 가치'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어떤 변천을 겪었는지를 더 언급하는 건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굳이 여기서 그의 문학과 삶을 평가하는 빼놓지 말아야 할 사실이 더 남아 있다면 그건 바로 그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일 것이다.

 

내가 『위대한 유산』다음으로 읽고 싶은 있는 작품은 『데이비드 코퍼필드』인데, 여러 다른 책들에서 이 소설이 언급될 때마다 나중에 꼭 한번 읽어 보리라 마음먹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작가 스스로도 '가장 사랑하는 내 아이'라고 부를 만큼 사랑했고, 서머싯 몸이 '세계 10대 소설'로 꼽았을 정도로 높은 평판을 얻었지만 '방대한 분량' 때문인지 명성만큼 그리 많이 읽히지는 않는 듯하다.

 

오랫동안 그저 작가의 이름과 작품의 제목만 알았던 책들을 감명깊게 읽고 나면 괜히 뿌듯한 느낌마저 든다. 아직도 많은 작가와 작품들이 내게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지만, 『위대한 유산』을 통해 뒤늦게나마 찰스 디킨스라는 탁월한 작가를 만난 것만 하더라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앞으로 여러 날을 그의 작품과 함께 울고 웃으며 지낼 수 있으리라는 상상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하다.

 

 * *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겨울호랑이 2018-03-10 09: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위대한 유산」의 영어 원제가 왜 「Great Expectation」인지 oren님 리뷰로 알게 되었습니다^^:)

oren 2018-03-10 13:10   좋아요 1 | URL
작품의 원제인 Great Expectation의 정확한 뜻은 ‘큰 재산을 얻거나 물려받을 가능성이나 기대‘일 테죠. 그래서 ‘위대한 유산‘이라는 번역 제목은 원래의 뜻을 정확히 옮긴 것이라고 할 수 없는데, 이걸 ‘막대한 기대‘ 또는 ‘막대한 유산‘으로 번역하더라도 원작이 지닌 제목의 뜻이나 뉘앙스와는 너무 달라져 곤란한 점이 있겠더라구요. 책을 다 읽어본 뒤라야 저렇게 번역한 역자의 고충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겠더군요.
 

 

TV 뉴스 보기가 겁난다는 말은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꽤나 믿음직해 보이던 정치인이 하루 아침에 미투라는 거센 폭풍에 휩쓸려 걸레처럼 찢겨나갔다. 건실해 보이던 미소 이면에 감춰진 추악한 몰골이 만천하에 다 드러나고 말았다. 자신이 당한 피해를 간신히 세상 밖으로 힘겹게 밀어내는 듯한 가련한 피해자의 인터뷰를 보고 있자니 유력 정치인의 말도 안 되는 변명에 다시금 치가 떨릴 지경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가해자들이 미투 폭풍에 계속 까발려질지 도무지 짐작이 가질 않는다. 아직도 수면 아래에서 괴물처럼 몸을 숨긴 채 갖은 방법으로 피해자를 억누르고 협박하면서, 자신들의 악행이 드러날까봐 노심초사 전전긍긍하는 인간들이 얼마나 더 많이 남아 있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우리나라 속담 가운데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은 때로는 너무 나약하게 들릴 때도 있다. 성폭행을 당해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파괴된 여자가 자신이 당한 끔찍한 폭행조차 세상에 알릴 수 없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그 원통함이 얼마나 뼈에 사무칠까. 나로선 감히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오늘 저녁 뉴스를 보면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대목도 바로 피해자가 TV 인터뷰에 나온 이유을 밝히는 대목에서였다. 그녀는 절규하고 있었다. 이렇게라도 세상에 밝히지 않으면 도저히 '거기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고, 오늘이라도 당장 자신이 죽을 것만 같았다고 말이다. 그런 가슴아픈 절규가 어찌 이 땅에 그녀뿐이랴. 소리없는 수많은 아우성이 그녀의 가녀린 목소리 뒤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아직도 숨을 죽인 채 '사무친 원한'을 그저 가슴 속에 파묻고 고통스런 삶을 이어가야 할 피해자들이 얼마나 더 많이 남아 있을까.

 

아주 오래된 서양 신화에서조차 '성폭력 사건'은 빠지지 않았다. 한 번만 읽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성폭행 사건의 끔찍한 전말'이 '프로크네와 필로멜라의 복수'에 모두 담겨 있다. 이 이야기를 맨 처음 읽은 이후로 좀처럼 잊을 수 없어서 베껴놓은 싯구절들이 적지 않았다. 프로크네와 필로멜라의 복수  그 이야기를 이번 기회에 교훈 삼아 다시금 재정리해 보고 싶다.

 

 * * *

 

 

필로멜레와 프로크네, 윌리앙 아돌프 부그로, 1861, 퐁텐블로 성

 

 

까마득한 옛날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 판디온이라는 왕이 살고 있었다. 야만족의 무리가 바다를 건너와 이 나라를 어지럽힐 때 이웃 나라 트라키아에 살던 테레우스 왕이 원군을 이끌고 와서 적들을 패퇴시켰다. 그가 재산도 많고 군사도 많았던 터라 판디온은 그를 프로크네와 결혼시켜 자신의 편으로 삼았다.

 

결혼한 지 다섯 해가 지나자 프로크네가 남편에게 아양을 떨며 말했다. "그대가 아우를 조금이라도 사랑하신다면 내가 아우를 방문하는 것을 허락해주시든지 아니면 아우가 이리 오게 해주세요." 라고. 그래서 테레우스는 곧 함선들을 바닷물에 띄우고 직접 아테네로 향했고, 이내 장인에게 '용건'을 말한 뒤 처제를 자기와 함께 가게 해주면 빠른 시일 안에 돌려보내겠다고 약속했다.

 

그때, 보라, 필로멜라가 화려하게 성장하고 들어왔다.

하나 그녀의 아름다움은 더 화려했다. 물의 요정들과 나무의 요정들이

숲 속을 거닐 때의 모습이라고 우리가 들었던 그런 모습이었다.

그들도 그녀처럼 세련되고 우아할 수 있다면 말이다.

소녀를 보자 테레우스는 순식간에 활활 타올랐으니,

그 모습은 마치 누군가가 익은 곡식이나 마른 풀이나

축사에 쌓아놓은 건초 더미에 불을 지를 때와 다르지 않았다.

그녀의 미모는 실제로 그럴 만도 했다. 하나 그의 경우 타고난

욕정에 더욱 자극 받은 데다, 원래 그 지방 사람들이 애욕에 약했다.

그렇듯 그는 자신의 부족과 자신의 악덕 탓에 타올랐던 것이다.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6권 447∼460

 

 

정욕에 눈이 멀게 된 테레우스에게 무슨 일이 더 남았겠는가. 어서 빨리 처제를 배에 태우고 떠나는 일 말고. 그가 장인에게 드리는 간청 때문에 도리어 칭찬까지 듣게 된 건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미친 사랑의 포로가 된 만큼 감행하지 못할 짓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의 가슴은 그 안에서 타고 있는 불길을 억제할 수 없었다.

이제 그는 지체되는 것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프로크네의 부탁을

열심히 되풀이하며 그녀의 이름을 빌어 자신의 소원을 이루려 했다.

사랑은 그를 달변으로 만들었고, 자신의 요구가 지나치다 싶으면

그때마다 그것은 프로크네의 뜻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것도 그녀가 그렇게 시킨 양 그는 간청에 눈물을 덧붙이기까지 했다.

하늘의 신들이시여, 얼마나 많은 눈먼 밤이 인간의 가슴속을 지배하는

것입니까? 테레우스는 자신의 범죄 계획 자체에 의해 경건하다는

평을 들었고 자신의 범행으로 칭찬까지 들었던 것이다.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6권 465∼474

 

장인은 마침내 자신의 딸에게 그녀의 언니를 방문하도록 허락했고, 먼 길을 찾아온 사위를 대접하기 위해 푸짐한 잔치를 베풀고 나서 이튿날 사랑하는 딸과 눈물의 작별을 나누었다.

 

일단 필로멜라가 색칠한 배에 오르고 노를 저어

육지가 멀어지자 그는 "내가 이겼다! 내가 바라고

바라던 것이 나와 함께 실려가고 있다!"고 외쳤다.

야만인은 기뻐 날뛰며 마음속으로 자신의 욕망을 간신히

뒤로 미루었고, 그녀에게서 결코 눈을 떼지 않았으니,

그 모습은 마치 윱피테르의 맹금류인 독수리가 구부정한 발톱으로

산토끼를 낚아채어 높다란 곳에 있는 제 둥지를 내려놓으면

포로는 도망갈 데 없고 포획자는 제 먹이를 노려볼 때와

다르지 않았다. 어느새 여행이 끝나자, 그들은 여행에 지친

삼선들에서 내려 자신들의 해안에 상륙했다.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6권 511∼519

 

그 이후에 테레우스는 판디온의 딸을 태고의 숲으로 가려져 있는,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외양간으로 끌고 가서 그곳에 가두었고, 마침내 흑심을 드러낸 왕은 한낱 소녀에 불과한 그녀를 힘으로 제압했다. 이 끔찍한 성폭행 직후의 피해자의 절규와 가해자의 끔찍한 만행을 오비디우스보다 더 절절하게 묘사할 시인은 찾기 어려우리라.

 

그녀가 떨고 있는 모습은 부상당한 채 잿빛 늑대의 입에서 벗어났지만

아직 자신의 안전을 믿지 못하는 겁먹은 새끼 양이나, 또는 제 피에

깃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아직도 겁에 질려 자기를 꼭 붙잡고 있던

그 탐욕스런 발톱을 무서워하는 비둘기와 같았다.

곧 정신이 돌아오자 그녀는 자신의 헝클어진 머리를 쥐어뜯고

애도하는 사람처럼 두 팔에 타박상을 입히다가 두 손을 내밀며 말했다.

"오오, 야만인이여, 이 무슨 끔찍한 짓이오!

오오, 잔혹한 자여! 내 아버지의 지시도, 내 아버지의 경건한 눈물도,

내 언니의 사랑도, 내 처녀성도, 그대의 혼인 서약도

그대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던가요? 그대는 모든 것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놓았어요. 나는 언니의 시앗이 되고,

그대는 이중의 남편이 되었어요! 나는 그런 벌을 맏을 만한 짓을

하지 않았어요. 배신자여, 더 저지르지 않은 범죄가 없도록

왜 내 목숨은 빼앗지 않는 거죠? 그대가 나를

난행(亂行) 하기 전에 그렇게 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랬더라면 내 혼백은 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련만! 하지만 만약

하늘의 신들께서 이 일을 보고 계시다면, 신성이란 것이 있다면,

만약 내가 없어진다고 해서 모든 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언젠가는 그대는 이 죗값을 치러야 할 거예요. 나 자신이 부끄러움을

벗어던지고 그대가 행한 짓을 폭로할 거예요. 그럴 기회가 주어지면

백성들에게 다가가 알릴 거예요. 만약 이 숲 속에 갇혀

지내게 된다면 나는 숲을 내 비탄으로 가득 채우고

내 치욕의 증인인 바위들을 감동시킬 거예요. 그러면 그것을

하늘이 듣고, 하늘에 신이 계시다면 신도 들으시겠지요."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6권 527∼548

 

사나운 폭군은 이 말에 화가 나기도 하고 또 두렵기도 했기 때문에 칼집에서 칼을 빼어 든 다음 그녀의 머리채를 잡더니 두 팔을 등 뒤로 비틀고 그 팔들을 꼭꼭 묶었다. 그녀가 계속 항의하고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용을 쓰자 그는 집게로 그녀의 혀를 잡고는 무자비한 칼로 잘라버렸다.

 

…… 남은 혀뿌리는 떨고 있었고,

잘린 혀는 꿈틀거리며 검은 대지에게 무엇인지 중얼거리고 있었다.

마치 토막난 뱀의 꼬리가 뛰어오르듯 팔딱팔딱 뛰는 혀는 죽어가면서

안주인의 발을 찾고 있었다. 이런 악행을 저지른 뒤에도

(나로서는 믿어지지 않지만) 테레우스는 욕정을 채우기 위해

성치 않은 소녀의 몸을 몇 번씩이나 더럽혔다고 한다.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6권 557∼562

 

그런 짓을 저지르고 나서 테레우스가 뻔뻔스럽게도 프로크네에게 돌아갔을 때, 아내는 남편에게 아우의 행방부터 물었다. 그는 괴로운 듯 신음하면서 '그녀의 죽음'에 대해 지어낸 이야기를 들려주며 믿게 하려고 눈물까지 흘렸다. 그러나 그들의 가혹한 운명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태양신이 이륙 십이, 12궁을 모두 통과하자 일 년이 지나갔다.

필로멜라는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감시자가 그녀의 도주를

막고 있고, 단단한 돌로 쌓은 외양간의 담들은 튼튼했으며,

말 못하는 입은 당한 일을 알릴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고통은

사람을 매우 창조적이게 하고, 역경은 약삭빠르게 하는 법이다.

그녀는 야만족의 조잡한 베틀에다 날실을 걸고는 흰 바탕에

자줏빛 글자를 짜 넣어 자신이 당한 범행을 새기고 있었다.

그것이 완성되자 그녀는 그것을 한 시녀에게 건네주며 왕비에게

갖다 주라고 손짓으로 부탁했다. 부탁 받은 여인은 자기가

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프로크네에게 갖다 주었다.

야만적인 폭군의 아내는 그 천을 펼친 후 자신의 아우의

비참한 운명을 읽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그렇게 할 수

있었다는 것은 기적이었다.) 고통이 그녀의 말문을 닫았고,

혀는 분한 마음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말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눈물을 흘릴 겨를도 없었다. 그녀는 정의와 불의를

가리지 않고 앞으로 내달았고, 마음속은 온통 복수의 일념뿐이었다.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6권 571∼586

 

그 무렵은 마침 삼 년에 한 번씩 열리는 박쿠스 축제가 열리던 때였다. 프로크네는 축제의 밤을 틈타 포도덩굴 관을 쓰고 무구를 갖춘 채 하녀들과 급히 숲 속을 찾아가 아우를 찾아냈고, 얼떨떨해하는 아우도 박쿠스 여신도처럼 변장을 시켜서 성벽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눈물을 흘리는 아우를 보며 언니는 말을 이었다.

 

"지금은 눈물을 흘릴 때가 아니다. 칼을 쓰거나,

칼보다 더 강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쓸 때란다.

아우야, 나는 어떤 범행이든 저지를 각오가 되어 있어.

나는 횃불로 이 왕궁을 불지르고 간악한 테레우스를

불속에 던져 넣거나, 칼로 그자의 혀를 자르고

눈을 뽑고 너에게 치욕을 안긴 사지를 절단하거나,

수천의 상처로 그자의 죄 많은 영혼을 몸에서 내쫓을 것이다!

어떤 큰일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어. 하지만 그게 무엇이 될지

나는 아직 확실히 모르겠어." 프로크네가 말하고 있는 동안

이튀스가 다가왔다. 아들을 보자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난 그녀는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며 "아아, 너는 아버지를

얼마나 닮았는가!" 라고 말했다. 그녀는 여러 말 않고

속으로 조용히 분을 끓이며 끔찍한 범행을 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들이 다가와 어머니에게 인사하며

작은 팔로 목을 껴안고 소년답게 응석을 부리며

입맞추자 어머니는 마음이 흔들렸다.

그녀는 분노가 한풀 꺾였고, 그녀의 두 눈은

그녀의 의사와는 달리 본의 아니게 흘러내린 눈물로 젖어 있었다.

하나 일단 지나친 모정으로 자신의 결심이 흔들린다고 느끼자

그녀는 다시 아들에게서 아우의 얼굴 쪽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둘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왜 한 명은 사랑스런 말을

건넬 수 있는데, 다른 한 명은 혀를 잘리고 아무 말도 못하는 거지?

왜 그는 어머니라고 부르는데, 그녀는 언니라고 부르지 못하지?

판디온의 딸이여, 대체 어떤 남편과 결혼했는가? 너는 못난 자식이야!

테레우스 같은 남편에게 성실하다는 것은 범죄야!"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6권 611∼635

 

복수심에 불타는 프로크네는 이튀스를 높다란 궁전의 외딴 곳으로 끌고 갔다. 이내 "어머니! 어머니" 라고 비명을 지르며 애원하고 매달리는 아들을 그녀는 칼로 쳤다. 

 

 

그러고도 그녀는 얼굴조차 돌리지 않았다. 소년에게는 이 한 번의

가격으로도 충분했을 터인데 필로멜라가 칼로 그의 목을 잘랐다.

그리고 그들은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는 그의 사지를 해체했다.

이어서 그 중 일부는 청동 솥에서 부글부글 끓었고,

일부는 꼬챙이에 꿰여 지글지글 소리를 냈다.

방 안에는 피가 냇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이어서 아내가 아무 영문도 모르는 테레우스를 이 잔치에 초대하며,

자기 고국의 풍속에 따른 신성한 잔치로 남편만이 참석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시종들과 하인들을 따돌렸던 것이다.

테레우스는 선조들에게서 물려받은 왕좌 위에 높다랗게 앉아

혼자 식사를 하며 제 살로 제 뱃속을 채웠다. 그리고 그는 완전히

마음이 눈멀어 "이튀스를 이리 불러주시오!" 라고 말했다.

그러자 프로크네는 자신의 잔인한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안겨준 파국을 맨 먼저 알리고 싶어서

"그대가 찾는 사람은 안에 있잖아요!" 라고 말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가 재차 묻고 부르자 필로멜라가 자신이 미쳐서

살해한 소년의 피를 머리에 뒤집어쓴 그대로 튀어나오더니

핏방울이 뚝뚝 듣는 이튀스의 머리를 그의 아버지의 얼굴에다

내던졌다. 그녀는 이때처럼 자신의 혀가 말할 수 있기를, 알맞은 말로

자신의 희열을 표현할 수 있기를 더 바란 적은 없었을 것이다.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6권 642∼660

 

이 끔찍한 '피의 복수극'을 그린 그림이 스페인의 어느 미술관에 걸려 있다. 문득 올 초에 스페인으로 훌쩍 여행을 떠났던 아내와 딸이 이 그림까지 돌아봤는지 자못 궁금하다. 스페인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가 이름난 미술관과 박물관을 실컷 둘러보는 일이었다고 하니 말이다.(특히 '프라도 미술관'에 대해서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 책까지 빌려봤던 걸로 알고 있다. 언젠가 스페인 마드리드에 가실 분들은 이 그림을 놓치지 마시길!)

 

 

아들 이튀스의 머리를 마주한 테레우스, 루벤스, 1636~1638년,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

 

'제 자식의 고기'를 심킨 트라키아의 왕이 그 이후로 어떤 '광란의 몸짓'을 보여줬는지, 그가 분노에 휩싸여 칼을 빼든 채 얼마나 빠른 걸음으로 판디온의 두 딸을 뒤쫓았는지에 대해서도 오비디우스는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간다. 시인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들 가운데 한 명은 숲으로 향했고, 다른 한 명은 지붕 밑으로 날아들었는데, 그들에겐 어느새 날개가 돋아 났다고 한다. 오늘날까지도 그들의 가슴에서는 살인 행위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았고, 그들의 깃털은 피로 얼룩져 있다고 한다.(그리스 시인들에 따르면 프로크네는 나이팅게일이 되었고 필로멜라는 제비가 되었다고 한다.)

 

 

접힌 부분 펼치기 ▼

 

'필로멜라 이야기'는 T. S. 엘리엇의 시 『황무지』 에도 등장한다. 그 대목만 소개하면 이렇다.

 

그 고풍의 벽난로 위에는

마치 숲 풍경이 내다보이는 창처럼

저 무지한 왕에게 그처럼 무참히 능욕당한

필로멜라의 변신 그림이 걸려 있다.

나이팅게일은 맑은 목청으로

온 황야를 채우지만,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그 짓을 계속한다.

그 울음은 더러운 귀에 "젹 젹" 소리로 들릴 뿐.

 

고대에 실제로 있었던 '성폭행 사건' 가운데에는 '루크리스의 강간'도 한번쯤 살펴볼 만하다. 이 사건 때문에 '로마의 역사'가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바뀌었으니 말이다. 이 유명한 역사적 사건은 로마 최대의 역사가였던 리비우스의 『로마사』에도 기록되어 있고, 『변신』을 쓴 시인인 오비디우스의 작품 『로마 달력』제2권에도 실려 있는데,  아무래도 그보다는 영국의 시인 셰익스피어가 새롭게 설화시로 창작한 『루크리스의 강간』이 더 유명하지 싶다.

 

로마의 역사를 뒤바꾼 ‘성폭행 사건‘을 둘러싼 내밀한 심리 묘사가 압권인 작품

 

 

 

펼친 부분 접기 ▲

 

 * * *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2018-03-06 0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단에는 고작 한두 사람쯤만 이름이 나왔을 뿐입니다..

oren 2018-03-06 09:48   좋아요 0 | URL
정말 그런 듯싶어요. 문단을 비롯한 문화계뿐 아니라 교육계와 종교계 등 수많은 분야에서 숱한 악행들이 저질러진 게 아닌가 싶어요. 어떻게 그런 몹쓸 사람들이 그토록 고상한 분야에서 버젓이 고개를 들고 남들을 가르칠 수 있다는 건지, 그게 더 끔찍합니다.

겨울호랑이 2018-03-06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을 부모에게 먹이는 잔혹한 복수는 ‘아트레우스-티에스테스‘ 이야기 속에서도 확인되는 것 같습니다. 동생에게 아내를 빼앗긴 아트레우스의 복수가 끔찍한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 같네요. 매우 잔혹한 복수이지만, 복수자들의 내면을 들여다 본다면 이들을 잔인하다고만 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드네요. 미투 운동이 확산되면서 사회에 미치는 충격이 매우 크네요. 사회에 던진 큰 파장만큼 우리 모두의 생활 여러 곳에서 작은 변화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보게 됩니다.

oren 2018-03-07 00:12   좋아요 1 | URL
일명 ‘펠롭스家의 저주‘라고도 불리는 아트레우스 가문의 이야기는 수많은 고대 그리스 문학 작품에서 너무나 자주 나와서,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리 낯설지 않은 것 같습니다.

펠롭스는 펠로폰네소스 반도로 가서 힙포다메이아와 결혼하는데,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그녀의 아버지인 엘리스 왕 오이노마오스와 ‘전차 경주‘를 해서 반드시 이겨야 하는데, 펠롭스는 오이노마오스의 마부를 매수해서 경주 때 바퀴가 빠져 왕이 전차에서 떨어져 죽게 만들지요. 그런데 펠롭스는 마부에게 약속한 보수를 주기는커녕 도리어 그를 바다에 던져 죽이고 말지요. 그리하여 이 유명한 ‘펠롭스 가문의 저주‘가 시작되더군요.

펠롭스의 두 아들 가운데 아트레우스가 뮈케네의 왕으로 있을 때 아우인 튀에스테스가 아트레우스의 아내 아에로페를 유혹하다 발각되어 추방되고, 나중에 아트레우스는 서로 화해하자면서 튀에스테스를 불러놓고는 그의 두 아들을 죽여 그 고기로 음식을 장만하고 잔치를 벌이지요. 그 내막을 알게 된 튀에스테스는 아트레우스 가문을 ‘저주‘하고요.

튀에스테스가 모르고 자신의 친딸과 교합하여 태어난 자식이 아이기스토스인데, 그는 나중에 ‘트로이아 전쟁의 총사령관‘ 아가멤논의 아내 클뤼타임네스트라의 情夫가 되어 아가멤논 왕을 살해하고 왕위를 차지하게 되지요.(아가멤논은 아트레우스의 아들이니 아이기스토스와는 서로 ‘4촌‘ 사이였던 셈이죠.)

훗날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와 딸 엘렉트라가 결국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다시 뮈케네로 돌아 오고, 부정을 저지른 어머니인 클뤼타임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를 죽이고 ‘죄를 씻기 위해‘ 아폴론의 명령에 따라 머나먼 타우로이 족의 나라(지금의 크림 반도)로 아르테미스 여신상을 가지러 가지요. 거기서 죽은 줄만 알았던 이피게네이아를 만나고요.

이 ‘펠롭스家의 저주‘ 이야기는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스』 3부작, 에우리피데스의 『오레스테스』,『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 『엘렉트라』, 소포클레스의 『엘렉트라』에서 계속 등장하고, 오비디우스의 『변신』과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도 끊임없이 반복해서 나오는 이야기여서 나중엔 저절로 익숙해지더군요.
 

 

갑자기 '괴물'로 변해 버린 어느 시인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놀랍다. 몇 줄이라도 끄적거리고 싶어서 오랜만에 '글쓰기 창'을 열었더니 어젯밤에 스쳐 지나간 엉뚱한 뉴스 한 토막이 어느 틈에 내 머릿속을 비집고 끼어든다.

 

그 뉴스의 제목은 이랬다.

 

"성매매 사실 폭로하겠다" 무작위 전화에 남성들 '수백만 원' 입금

 

이런 속임수의 원조는 아마도 '노벨상'에 빛나는 버나드 쇼가 아닐까. 그가 어느날 영국의 사회 지도층 인사들에게 보낸 장난 전보 하나에 런던이 온통 아수라장이 되었다고 하니 말이다. 전보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

 

"모든 게 들통 났다. 빨리 튀어라!"

 

어느 여검사가 오랜 침묵 끝에 자신이 '직장 내에서' 겪은 성추행 피해를 폭로한 게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미투 운동이 어느새 오랫동안 당대 최고의 시인으로 군림하던 사람까지 벌써 추악한 괴물로 추락시켰으니 그 여파가 어디까지 번질지 가늠하기 어렵다.

 

요즘처럼 정보 전달 속도가 빛의 속도만큼 빠른 세상도 일찍이 없었으니, 어느 누가 아주 그럴싸한 문장을 시대에 맞게 새로 꾸며내어 당장 내일 아침에 수백 만 남성들에게 '무작위'로 충격적인 메시지를 보낸다고 상상해 보라. 뻔한 보이스 피싱 하나만 듣고도 기겁을 하며 수백만 원씩 덜컥 입금하는 형편이니, 아주 그럴싸하게 꾸민 '메시지' 하나만으로도 놀라 자빠질 사람은 도대체 얼마나 많겠는가.

 

최영미 시인의 인터뷰 기사를 읽어 보니 문득 '시인과 술자리'를 다룬 고대 그리스의 고전이 생각난다. 시인과 술자리에 더해 에로스까지 다룬 작품 가운데 플라톤의 『향연』을 제쳐 놓을 순 없다. 에로스에 관한 거의 모든 고찰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니 말이다.

 

그 유명한 대화편의 무대가 마침 '등단'을 축하하는 술자리였다. 때는 기원전 416년이었다. 레나이아(Lenaia) 제(祭)의 비극 경연에서 처음 우승한 젊은 시인이 자축하기 위해 자신의 저택에 손님들을 불러모았는데, 그들은 너무나 '고상하게도' 밤새도록 술을 마시면서 '에로스'에 관해 각자 돌아가면서 자신들의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펼쳤다.

 

그 술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의 면면이 너무나 화려해서 입이 벌어질 지경이다. 모두들 하나같이 '당대 최고'라 불려 마땅한 인물이었다. 아니 '당대 최고'로는 조금 부족할지 모른다. 인류 최고라 불러 마땅한 인물들도 여럿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 자리엔 서른한 살의 나이로 처음 우승을 차지한 아가톤 자신 말고도 당시 나이가 쉰넷이었던 소크라테스가 최연장자로 참석했고, 서른네 살쯤 된 희극시인 아리스토파네스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또한 플라톤의 형 글라우콘도 있었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맹활약한 군인이자 정치가였던 알키비아데스도 끼어 있었다.(알키비아데스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서도 다뤄지는 아테네의 영웅이었으며, 특히 소크라테스와 아주 친밀한 사이였다.)

 

그들의 대화 속에서 내가 새삼 끄집어내고 싶은 대목은 다음과 같다.

 

나쁜 연인이란 혼보다 몸을 더 사랑하는 범속한 연인이네. 그래서 그런 연인은 한결같지 않은데, 한결같지 않은 것을 사랑하기 때문이지. 그가 사랑하던 몸에 꽃이 지기 시작하면 그는 '날개를 타고 떠나간다네', 수많은 말과 약속이 물거품이 되게 하고는. 반면 고상한 성격을 사랑하는 연인은 평생 한결같은데, 이는 그가 한결같은 것과 하나로 융합되었기 때문이라네. 그러니까 우리의 법이 의도하는 바는 이 두 종류의 연인을 제대로 잘 검증하여, 어떤 연인의 청을 들어주고 어떤 연인을 회피해야 할지 보여주는 것이네. 그래서 우리의 법은 연인은 연동을 뒤쫓고 연동은 달아나도록 격려하는데, 이런 시련과 시험을 통해 연인과 연동이 이 두 부류 가운데 어디에 속하는지 보여주려는 것이지. 또한 그런 이유에서 첫째, 연동이 빨리 잡히는 것은 추한 일로 간주되네. 만물의 시금석인 시간이 개입할 여지를 남겨두기 위해서지. 둘째, 돈이나 정치권력에 잡히는 것도 추한 일로 간주되네. 박해에 주눅 들어 저항하지 못하고 굴복하든, 부와 권력을 맛본 뒤 그런 특혜를 무시하지 못하든 말일세. 그도 그럴 것이, 이런 특혜들에서는 고귀한 우정이 생겨날 수 없다는 점은 차치하고, 그런 것들은 어느 것도 확고하지도 한결같지도 않은 것 같기 때문이네.(264∼265쪽)

 

 - 플라톤, 『향연』 

 

 

플라톤이 『향연』에서 풍성하게 펼쳐 놓은 '사랑에 대한 찬가'는 너무나 유명해서 이미 수많은 철학자나 시인들에 의해 셀 수도 없이 읽혀 왔다. 뿐만 아니라 대화편의 내용과 형식 자체가  철학과 문학과 예술 분야에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을 제공해 왔다. 그 가운데 일부를 여기서 조금 더 인용하면 이렇다.

 

 

에로스의, 절제, 용기에 관해 말했으니, 이제는 그분의 지혜에 관해 말하는 일이 남아 있네. 이에 관해 나는 빠짐없이 다 말하도록 최선을 다해야겠지. 먼저, …… 에로스가 남까지 시인으로 만들 수 있을만큼 지혜로운 시인이라는 점을 지적해두겠네. 에로스의 손길이 닿은 자는 '전에는 비예술적인 자라도' 모두 시인이 되니 말일세. 거두절미하고, 우리는 이 점을 에로스야말로 모든 예술 창작 분야에 능한 시인이라는 증거로 삼아도 될 것이네.(289쪽)

 

 - 플라톤, 『향연』  

 

 

무려 2,600년 전에 있었던 고대 아네테의 어느 젊은 시인을 위한 '데뷔 축하연'이 어쩌면 이토록 고상할 수 있을까. 당대 최고의 시인과 정치가와 철학자들이 모여서 밤새도록 나눴다는 대화가 어쩌면 이토록 고상하고도 아름다울수 있는지 그저 경이롭기만 하다. 물론 그 당시만 하더라도 너무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직접 술자리에 참석할 수 없었던 플라톤이 나중에 '그날밤 술자리에서 나눴던 여러 이야기'를 그저 전해듣기만 하고도『향연』이라는 산문 걸작으로 되살린 것도 놀랍기만 하다.

 

다시 '우리 시대의 괴물' 이야기로 되돌아 오자. 어느 누구든 오랫동안 저질러 온 온갖 비행과 추행이 결코 영원토록 묻힐 수는 없는 법이다. 더구나 당사자들이 저지른 추악한 행위들이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조차 아무런 거리낌없이 공공연하고도 광범위하게 반복해서 저질러졌다면 더 따져 물을 필요도 없다.

 

괴물을 괴물로 똑바로 알아보지 못하고 속고 살아왔던 어두운 지난 과거가 너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괴물'을 옹호하려고 몸부림치는 괴물들이 아직도 여기저기서 호시탐탐 반격을 노리는 듯해 몸서리가 처진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느새 괴물로 변한 사실조차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듯하다.

 

어떤 시인이 최영미 시인을 두고 벌써부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며 자신의 페이스북에 버젓이 올린 글 때문에 밤늦도록 분을 삭이지 못하다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데, 치밀어 오른 분노가 아직까지도 좀체 풀리지 않는다. 혹시라도 이제는 문제가 된 글을 내리지 않았을까 하고 다시 또 찾아가 봤더니 도리어 한술 더 뜨는 모습이다. 그 사람도 시인이란다. 참으로 놀라운 궤변이고 그저 경악스러울 뿐이다.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961658813991227&id=100004413510440

 

(2018.2.27 추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랑스레 궤변을 늘어놓았던 그 사람이 이제야 비로소 정신이 드는 모양이다. 참으로 오랫동안 당당하게(?) 내걸어 두었던 페이스북 글을 마침내 내렸으니 말이다. 그런데 슬그머니 감춘 그 사람의 '흉한 꼬리'가 엉뚱한 데서 다시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드러나는 숱한 괴물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한데, 그런 괴물들을 옹호하는 또다른 괴물까지 봐야 하다니 참으로 소름이 끼친다.

 

최영미 비판한 이승철 시인님, 그해 성추행 잊었나요?

 

 * *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거서 2018-02-08 08: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페북 글이 내려져 있군요.

oren 2018-02-08 09:29   좋아요 0 | URL
제가 링크한 문제의 글은 아직까지 그대로 남아 있는 듯합니다.
지금은 내려진 글이라면 ‘한술 더 뜬‘ 글 말씀이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