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없는 사람 문학과지성 시인선 397
심보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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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것들에 대한 일상의 관심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 한 사람이 시인이 아닐까. 섬세한 감성시각이 담긴 시집이라는 생각이다. 사랑에 대한 단어들이 자주 등장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힘은 사랑에 있다. 2011년에 출간 된 시집으로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 사이에서 헤매는 사람들의 모습을 느낀다. 


단어들이여,

내가 그늘을 지나칠 때마다 줍는 어둠 부스러기들이여,

언젠가 나는 평생 모은 그림자 조각들을 반죽해서 

커다란 단어 하나를 만들리.

기쁨과 슬픔 사이의 빈 공간에

딱 들어맞는 단어 하나를.


19쪽, '나의 친애하는 단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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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배처럼 텅 비어 문학과지성 시인선 485
최승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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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치렁치렁  달고

내가 운들 무엇이며

내가 안 운들 무엇이냐

해 가고 달 가고

뜨락 앞마당엔

늙으신 처녀처럼

웃고 있는 코스모스들


-슬픔을 치렁치렁  달고



좋은 시는 좋은 감정을 만들고 불편하고 힘든 문장은 그것대로 우리 마음을 후빈다. 


최승자 시인의 이 번 시는 죽음과 삶이 다른 곳에 있지 않고 한 곳에 있음을 이야기 한다. 귀닫고 마음닫고 사는 삶을 향해 뭐하고 사는지 묻는다. 그러나 답을 요청하지도 않는다.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분명한 사실이니 알아서 살라는 듯 조용히 건넨다. 


문장들이 주는 힘은 강렬하나 부드럽다. 나약한 인간을 향해서 좀 더 확실하게 살라고 그리고 그 앞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많은 것들을 가지려고 고 하는 삶, 뭔가를 가져야만 살 것 같은 세상에서 삶이 무엇이며 죽음이란 또 무엇인지 생각하고 싶지 않은, 가까이에 두고 싶지 않은 것들을 이토록 쓰는 시인이 있는가. 


운명, 죽음, 삶, 시간, 세월


하루 종일 곡선만 그리다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

죽음이더냐 삶이더냐


바다 뒤에 내리는 흰 눈(雪)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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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화서 - 2002-2015 이성복 시론집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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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의 시론 3권이 동시에 선을 보였다. 그중 한 권이 무한화서이다. 2002년부터 2015년까지 그가 대학 강의를 통해 말해 온 시작법을 중심으로 어떻게 하면 시가 되는 글쓰기를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내용이 가득 담겼다. 번호로 매겨진 수많은 문장들은 시와 글쓰기, 그리고 삶과 시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끊임없이 반복하면서도 새로운 화제를 갖고 시 쓰기로 독자들을 인도한다. 


드러내놓는 것이 시라고 생각해왔던 나의 생각을 뒤집는 이야기를 읽었다. 드러내놓는 것은 시가 아니라는 것이다. 시가 쉽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게 아니다. 시는 어렵다. 그대로 다 드러내놓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그러나 시 쓰기를 겁내지 말라고 한다. 


언어, 대상, 시, 시작과 삶으로 구성된 무한화서에서는 그렇게 시를 어떻게 써야 시가 될 수 있는가를 하나하나 짚어 본다. 예측 가능한 글이 되어서는 맛이 없다. 


"시는 고압의 전류에요. 스파크가 일어나지 않으면 시가 아니에요. 시의 불꽃은 말과 말, 행과 행 사이에서 일어나요. 낮에는 볼품없던 네온사인에 반짝 불이 들어올 때처럼 쓰세요."-본문 39페이지 중에서


평범한 것들을 평범하게 말해서는 시가 될 수 없다. 평범한 것들을 깊게 들여다보고 비범하게 쓰는 것이 시다.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등의 시집을 내고 산문집 펴낸 바 있는 저자 이성복은 모처럼 새로 엮어 낸 이 책 시론에서 시를 쓰기 위해서는 평범한 것들을 오래 지켜보라고 말한다. 


유명한 시인들의 시를 읽어보다가 지하철 역사 내 스크린도어에 걸린 시를 보면 어떠한 차이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들이 무명이라는 점도 있지만 강렬한 그 무엇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유명 시인들의 시가 모두 강렬한 인상을 주지는 않는다. 


"시는 낯선 것을 익숙하게 하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해요. 시를 쓸 때는 일단 모르는 데서 시작하세요. 모르는 쪽으로 손을 벌리고, 모르는 쪽으로 기대야 해요. 진정한 시는 한 번도 시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이에요." -본문 100페이지 중에서


그간 '시는 이것'이라고 나름 생각했던 것들에 부합하는 것들이 없다. 내 기준, 내 생각이 모자랐음을 새삼 느낀다. 그렇다고 다 동의하기는 어렵다. 시는 결국 시를 쓰는 사람의 삶과 경험, 상상의 차이가 드러내는 결과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시도해보지 못한 생각해보지 못한 것들이 많아 창작의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이성복의 시론, 무한화서는 좋은 글, 시 쓰기에 대한 고민과 창작욕구를 불태우고 있는 사람들의 길을 짚어볼 수 있는 책이 되어줄 것이다. 두고 두도 다시 되짚어 볼 말과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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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하는 말들 - 2006-2007 이성복 시론집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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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이성복 시인의 책 3권 중 한 권인 '불화하는 말들'은 강연회 내용을 정리한 것이라고 한다. 시의 형식을 빌어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어떤 강연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정리된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몇 번을 읽고 또 읽는다면 그만큼 더 글을 쓰는 힘을 보태줄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어떤 형식의 글을 쓰는 것인가 하는 점도 있지만, 본질은 같다고 나는 생각한다. 무엇을 쓰든 말이다. 이 책은 시가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기 위한 원칙들은 있어야 하기에 그 부분을 강조하고 그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시, 그리고 시를 쓰는 사람은


한 발 더 밀어내야 하고, 

하루라도 거르지 말고 써야 하며,

무언가 묻어나게 해야 하고,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삐딱하게 이야기할 줄 알아야 하고

남 얘기하듯하지 말고 무조건 달라붙어야 한다.

말의 각을 또한 세워야 하고,

멀리 갔다가도 다시 돌아와야 한다.


말이 또한 장난치게 해야 한다.

글 안에는 또한 우연과 돌발변수를 넣어두어라.


매 쪽마다 이렇게 시를 쓰는 사람의 길을 제시하고 알려준다. 


시가 쉽기도 하지만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이러한 원칙을 갖고 가지 않는다면 그건 인생이 담긴 시가 아니라는 것이다. 언어의 빛깔도 알아야 하고.... 갈고닦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쓰고 또 쓰라고 하는가 보다.


시인은 시를 쓸 때 대상을 묘사하고 설명하려고 하지 말라고 한다. 예상하고 행동하고 점칠 수 있게 해서는 안된다. 내가 아픈 만큼 시가 더 성장하고 잘 읽힐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시적인 것'이 숨어 있는 구멍을 잘 찾아야 해요. 귓구멍으로 백날 냄새 맡아봐도 맡아지지 않아요. 한 행에서 다음 행으로 넘어갈 때도, 반드시 시의 구멍을 통과해야 해요. 실패하더라도, 계속 시의 구멍 앞에 서 있어야 해요. 번번이 힘들 거예요. 그렇지만 귀한 건 다 어렵게 얻어져요."-121페이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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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당나귀 곁에서 창비시선 382
김사인 지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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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를 마치고

어린 섬들을 안고 어둑하게 돌아 앉았습니다.

어둠이 하나씩 젖을 물립니다.


김사인의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 '통영' 중 일부


이런 문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1956년생으로 충북 보은에서 태어난 김사인 시인의 시집에서 우리 가정, 우리 사회의 낡은 모습을 보고 떨쳐내고 싶은 삶의 애환을 만난다. 시를 읽는 일은 나에게 탐욕으로 물든 혹은 물들어가고 그 속으로 돌진하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 속에서 생수 한 잔, 맑은 물줄기다. 시인에게 시는 삶이고 고통이고 과거이며 또한 미래일 것이다. 문장 하나하나 허투루 이루어지는 것이 있을까. 그러지 않을 것이라 나는 믿는다. 


나도 잘 모른단다.

여기가 어딘지, 어떻게 왔는지, 저건 무언지

나도 실은 모른단다.

무서워서

입을 닫고 있단다.

내가 누군지도 사실은 모른다고

고백해버릴 것만 같네.

참아온 울음이 터질 것 같네.


김사인의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 '이게 뭐야?' 중 일부


사람에 대한 애정을 표하고 그리움을 문장 한 줄로 절제하며 쓴 시를 통해서 무겁고 질질 끌려가는 내 삶을 돌아본다. 발랄함도 있고 속 시원하게 쏟아내는 말도 있다. 그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관찰, 들여다보는 시인의 눈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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