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배처럼 텅 비어 문학과지성 시인선 485
최승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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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치렁치렁  달고

내가 운들 무엇이며

내가 안 운들 무엇이냐

해 가고 달 가고

뜨락 앞마당엔

늙으신 처녀처럼

웃고 있는 코스모스들


-슬픔을 치렁치렁  달고



좋은 시는 좋은 감정을 만들고 불편하고 힘든 문장은 그것대로 우리 마음을 후빈다. 


최승자 시인의 이 번 시는 죽음과 삶이 다른 곳에 있지 않고 한 곳에 있음을 이야기 한다. 귀닫고 마음닫고 사는 삶을 향해 뭐하고 사는지 묻는다. 그러나 답을 요청하지도 않는다.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분명한 사실이니 알아서 살라는 듯 조용히 건넨다. 


문장들이 주는 힘은 강렬하나 부드럽다. 나약한 인간을 향해서 좀 더 확실하게 살라고 그리고 그 앞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많은 것들을 가지려고 고 하는 삶, 뭔가를 가져야만 살 것 같은 세상에서 삶이 무엇이며 죽음이란 또 무엇인지 생각하고 싶지 않은, 가까이에 두고 싶지 않은 것들을 이토록 쓰는 시인이 있는가. 


운명, 죽음, 삶, 시간, 세월


하루 종일 곡선만 그리다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

죽음이더냐 삶이더냐


바다 뒤에 내리는 흰 눈(雪)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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