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하게

간절하게 참 철없이 - 2009 제11회 백석문학상 수상작 ㅣ 창비시선 283
안도현 지음 / 창비 / 2008년 1월

안도현의 시, 최근에 나온 시집을 한 권 들었다. 안도현 시인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인이다. 시를 읽으면 마음이 가라 앉는 기분이 좋다. 이번에 나온 간절하게 참 철없이는 제목이 사람을 끄는 시집이다.

그 중에서도 ‘조문’이라는 시는 한 할아버지의 죽음과 사람의 정을 그리움이 팍팍 묻어나게 한다. 아, 이 알 수 없는 목매임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모르겠다. 시인의 시 한편이 사람들의 마음을 울게 한다. 풀들도 정이들어 할아버지가 지나는 길을 내주었다고 표현할 수 있는 시인이다.

이 번 시집에는 먹는 음식, 자연, 혹은 동물들에 대한, 인간의 생존을 위해 ‘몸’ 바친 동물들에 대한 영혼을 달래주려는 듯, 그러한 시들이 들어앉아 있다. 하나의 음식에 얽혀있는 가난한 삶의 사연과 깊이있는 맛을 띄어줄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이러한 것들이 안도현 시인만이 낼 수 있는 맛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명자꽃은 또 어떤가. 어린 날, 채 피어나지 않은 가슴을 안고 사랑을 했던 누나에 대한 그 무엇을, 이리도 명자꽃에 담아 표현할 수 있을지 말이다. “내 짝사랑의 어리석은 입술이 칼날처럼 서럽고 차가운 줄을 처음 알게 된 / 그해는 4월도 반이나 넘긴 중순에 눈이 내렸습니다

아, 그리운 사람아!

포옹 - 당신을 안고 내가 물든다
문태준 지음 / 해토 / 2008년 6월

문태준 시인의 시도 좋은데, 그가 좋아하는, 시인의 눈을 흘리게 만든 시가 어떤 시인지를 돌아보는 것, 같이 읽음으로해서 시긴의 감성과 느낌을 조금 더 가까이 알아볼 수 있는 시집이 아닌가 싶다. 최근에 읽었던 시인들의 시도 있고, 좀 낯선 그러나 우리 삶 바닥, 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어렵고 슬픈 날들, 그리고 사무치는 그 그리움으로 눈가가 젖는다. 마음이 뭉클하지 않을 수 없다. 여러 시인들의 그 빼어난 글들, 도종환 시인의 여백이라는 시는 참 좋다.

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비어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참 좋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는 시인의 글이 부럽다.

나에 대해서, 우리를 돌아볼 수 있는 그런 시들, 그리고 사람에 대해서, 특히 부모, 그리고 형제, 그리고 부부, 떼어놓고 살 수 없는 사람사이에 대한 여러 시인들의 다양한 표현과 묘사를 한 곳에서 읽어보며,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음에 살이 찌는 듯한 느낌이다.

신현림 시인의 ‘사랑이 올 때’는 또 어떤가.

봄바람이 온몸 부풀려갈 때
세월 가는 걸 아파하지 않으리
오늘같이 젊은날, 더 이상 없으리
아무런 기대 없이 맞이하고
아무런 기약 없이 헤어져도
봉숭아 꽃물처럼 기뻐
서로가 서로를 물들여가리

장철문 시인의 ‘신혼’이라는 시는 참 애틋하다. 살 맞대고 살아논 부부간의 그 매력이 사라졌지만 처음 이불을 덮고 잔 그날 밤을 그리워하며 지금껏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는 시간.

그녀의 뒤척임과 치마 스적임과
그릇 부서지는 소리가
먼 생을 스치는 것 같다

시인의 설명과 한 시 한 시가 끝날 때마다 그 노트가 있어서 시의 이해를 돕고, 또한 이 시를 묶어 엮은 시인의 마음을 같이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좋다.

삶의 슬픔이 담겨있는 아름다운 시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박경리 시집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6월

사실 이 분 유명하시고, 토지라는 거대한 책을 쓰신 분이라는 것은 알지만, 책을 읽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 기회에 토지를 한 번 읽어볼까 생각 중이었다. 그러다가 이 시집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개인적으로 시를 좋아하는데, 어떤 간절한 사연들이 담겨있는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깊이있게 살다가신 분의 글이 어떤가 하고 집어들었다.

그런데 정말 잘 집었다. 간절하고, 애닯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그리움도 깊고, 슬프기도 하다. 내가 겪어보지 못했던 그 때 그 시절들의 이야기. 이런 분들의 글을 통해 간접경험을 해보고, 사람소식을 들어본다. 젊은처럼 아름다운 순간은 없고, 그 순간이 너무 짧다는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글자 몇자 안되는 것이지만 그 엮어진 글이 너무 가슴을 밀고 들어온다. 글을 쓸 수 밖에 없었던, 그리고 그것이 삶을 어떻게 지탱해주었는지에 대한 생각을 해 볼 수 있었다.

흝어져있던 그 모든 것들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 앉아있는 느낌도 든다. 제각각 모양대로 떠돌다가 그 앞에서는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느낌이다. 전쟁 피난길에서 빌린 돈을 갚고 가는 어머니의 성격, 성미로 인하여, 가족이 살 수 있었던 이야기 앞에서는 가슴이 쓸린다. 그리고 이 구절은 또 어떤가.

인색함은 검약이 아니다
후함은 낭비가 아니다
인색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 낭비하지만
후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는 준열하게 검약한다.
(‘사람의 됨됨이’ 중에서)

마음이 바르게 서면
세상이 다 보인다
빨아서 풀 먹인 모시 적삼같이
사물은 싱그럽다
(‘마음’ 중에서)

작가의 시는 그냥 시가 아니라 교훈이, 삶의 경험을 통해 나오는 교훈적인 내용들이 함께 잠들어 있는 것 같다.

사람이 사람다운 것은 가끔 그리운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그리움이 마음을 또한 따뜻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작가가 남긴 이런 유산들이 잘 전달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의 마음 곳곳에 따뜻하고 풍요롭게, 그리고 조금은 슬프게.

슬픔, 그 깨끗함으로의 복귀

바람의 사생활 ㅣ 창비시선 270
이병률 지음 / 창비 / 2006년 11월

이 시를 읽고서는 참 슬프다는 생각도 들고 그랬다. 기분이 하여튼 묘하다. 시 중에서 구멍가게 이야기가 나오는 ‘희망의 수고’가 특히 마음을 울린다. 순정이라는 제목의 시 가운데에 나오는 구절 중에는 ‘풍경을 벗기면 벗길수록 죄가 솟구치는 자리에 뭔지 모를 것이 끊어져 자리라고 할 수 없는 자리에’라는 말이 있는데....이 말에서 나는 지금 어느 자리에 있는가를 묻게된다. 시인의 생각과는 사실 다르겠지만.

읽는 이의 상황에 맞쳐서 재해석 되는 것이 시이니. 밑바닥 같은 느낌도 들지만, 그것을 벗어나서 살고자 몸부림치는 메시지도 읽혀지는 것 같고, 그런 느낌을 받는다.

이별의 그 아스라함도 있고, 슬픔도 있고. 연민도 있고, 쓸쓸함도 있고, 가을과 겨울의 그 차가운 느낌을 뚫고 나오는 삶의 간절함도 있다. 사라진 기억에 대한 혹은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아보고자 애쓰는 아쉬움도 들어있다.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듯한 기분

말랑말랑한 힘 - 제3의 시 ㅣ 시인세계 시인선 12
함민복 지음 / 문학세계사 / 2005년 1월

삶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슬픔과 기쁨, 고통이 느껴진다. 개발과 밀려오는 도시화로 인하여 설 자리를 잃어버린 한 사람의 모습도 보이고, 가족의 모습도 느껴진다. 먹고 살기 위한 그 몸부림이 느껴진다. 또한 그런 힘겨운 삶과의 전쟁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소박한 사람의 모습을 느끼게 한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말랑말랑한 힘이 주는 말이 그렇듯, 그렇게 쉽게 물러서지 않고, 자연앞에 사람앞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그 순진함과 소박함이 담겨 있다.

태양이 어서 일터로 나가라고

넥타이를 매주듯 그림자를 매주었다

이 부분은 질긴 그림자의 첫 부분이다.

옥탑방에 나오는 부분은 또 어떤가.

도시에서의 삶이란 벼랑을 쌓아올리는 일

24평 벼랑의 집에 살기 위해

42층 벼랑의 직장으로 출근하고

3부 ‘죄’라는 제목으로 등장하는 시는 도시화로 인하여 매몰되어가는 인간의 감정을 이야기한다.

바다, 삶, 뻘 힘겨운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오늘 아침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러나 그 무거움은 오히려 나를 정화시키는 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