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의 섬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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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의 섬>은 오래전부터 꼭 한 번 읽어보고 싶었던 오노 후유미의 작품입니다. 1980년대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일본 신본격 미스터리의 대부 아야쓰지 유키토와 함께 '교토대 추리소설 연구회'에서 활동했고, 그의 부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작가입니다. 좋은 시절이라 국내에도 대부분의 신본격 작가들 대표작이 들어와 있어서 어지간히 읽어봤는데, 유독 오노 후유미의 작품은 기회가 없었거든요. 게다가 출신과 달리 그녀의 출세작은 <시귀> 같은 호러소설이나 대히트를 친 <십이국기> 같은 동양풍 판타지라서 딱히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2001년작 <흑사의 섬>은 완전한 본격 추리소설이라기에 더 망설일 이유 없이 붙잡게 되었습니다. 이건 갑자기 생각난 여담인데, 제가 대학 다닐 때 선배 하나가 TV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진 <십이국기>를 '열두 나라의 명기(名妓)'들이 나오는 성인용 애니메이션인 줄 알고 다운받았던 적이 있었더랬죠...


 

간단히 말해, <흑사의 섬>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떠올리게 하는, 폭풍우로 고립된 섬에서의 살인사건을 탐정이 해결하는 이야기입니다. 이렇듯 본격 추리소설의 영원불멸한 테마에다가 고결한 인간성보다 개화기 이전부터 전해 내려온 잘못된 인습이나 사이비 종교 등에 매몰된 섬 사람들의 추악한 모습이라는 요코미조 세이시 풍미를 끼얹어 자신 있게 내놓은 요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가장 비슷한 느낌을 주는 책이라면 역시 세이시의 대표작 <옥문도>를 꼽아야 할 것 같아요. 처음에는 '흑사의 섬'을 '검은 뱀의 섬'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정식 종교가 아닌 '사이비(黑祠)의 섬'을 뜻하는 것이더군요. 장점이나 단점, 혹은 약점이 케익을 반으로 자르듯 선명하게 나뉘는 작품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제목을 다시 정하라면 <흑사의 섬의 천일야화>라고 하겠습니다. 탐정이 살인사건이 벌어진 이후에 '야차도'라는 섬에 도착한 데다, 이 섬의 절대적인 존재가 증거를 미리감치 전부 은폐해버렸기 때문에 그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탐문밖에 없어요. 관계자를 만나 끝없이 증언을 듣고 또 듣는 게 탐정의 조사 내용 전부입니다. 게다가 탐정이 하필이면(?) 십 수 년 전에 벌어진 두 건의 살인사건과 현재 일어난 두 건의 살인사건이 연결되어 있다는 심증을 가지고 있어서 관계자 한 명씩마다 알리바이를 무려 네 번이나 들어야 합니다. 그야말로 말과 정보의 홍수, 큰따옴표로 시작하는 문장이 책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요. 이 섬마을 사람들은 다들 왜 이렇게 말이 많은 건지, 방문객이 별로 없어서 외로웠던 걸까요ㅠ.ㅠ?  반드시 일일이 따져봐야 하는 살인사건이 네 개나 등장하는 책의 내용상 어쩔 수 없겠지만 결과적으로 구성이 지나치게 복잡해져서 내용을 따라가기 쉽지는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토착 종교와 전근대적인 영주가 여전히 지배권을 행사하는 '흑사의 섬'에 탐정이 당도해 분위기를 잡아가는 초반부는 아주 좋았습니다. 분명히 무슨 일이 벌어졌는데도 입을 모아 그런 일은 아예 있지도 않았다고 잡아떼는 마을 사람들의 천연덕스러운 악의는 은근히 소름이 끼쳐 호러소설로 일가를 이룬 오노 후유미의 실력을 엿볼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 책이 세이시가 활약하던 1950년대가 아니라 2000년대에 나왔다는 걸 생각해보면 과연 아직까지 이런 곳이 남아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죠. 어쩔 수 없이 몰입감이 떨어지는 부분입니다. 게다가 본격 추리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탐정 역의 시키부는 끈질기고 자기 일에 열심이라는 미덕을 제외하면 거의 매력이 없어요. 사건을 조사하기도 바빠 어떤 인간미를 보여줄 기회도 없었고요. 유감스럽게도 주인공 시키부가 이럴진대, 다른 등장인물들도 백지장처럼 얄팍하게 보이는 건 마찬가지겠지요. 추리소설을 다른 말로 탐정소설이라고도 부르기도 하는데, 결정적으로 탐정의 성격이 이처럼 평면적이라면 커다란 흠결이 되는 것입니다.

 

 

책이 거의 끝나가는 데도 장점이 별로 보이지 않아 낭패로구나 생각할 때 사건의 전모와 진범(그리고 진짜 00)이 드러납니다. 천만다행으로 여기서 상당 부분 점수를 땁니다. 어쩌면 본격 추리소설은 모든 게 뒤떨어져도 트릭만 쌈박하면 적당히 만족하며 책장을 덮을 수 있는데, <흑사의 섬>이 딱 그런 작품이었어요. 여기서부터는 살짜쿵 스포일러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범인이 두 희생자 후보 여성 가운데 유독 동기가 없는 쪽을 골라서 죽인 것. 그리고 자기들끼리 수십 년간 모여 살아 얼굴을 모르는 주민이 하나도 없는 섬에서 목격자가 범인의 얼굴을 '낯선 이'라고 지목한 것. 이 두 가지 포인트는 대단히 공정하고 분명한 단서들이라서 꼼꼼히 따져보면 독자도 충분히 진상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뭐 저도 못 맞췄지만 이런 힌트를 놓치면 너무 분하죠, 흑흑. 명쾌하게 떨어지는 해설이긴 하지만 역시나 텍스트로만 읽으면 꽤 헷갈리는 트릭이라 확실하게 그림으로 보여주는 애니메이션 등으로 각색되면 훨씬 재미있을 작품이라고 사료됩니다.

 

 

430페이지의 힘든 독서를 버티고 마지막 50페이지의 쾌감을 즐길 수 있는 독자라면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단순히 트릭의 측면에서는 2000년대 이후 일본 본격 추리소설에서 가장 좋은 작품 중의 하나라고도 생각이 들 정도예요. 개인적으로 처음 만난 오노 후유미의 작품이 꽤 만족스러워서 더 찾아 읽어볼 계획입니다. 고전적인 본격 추리소설의 한계를 새로운 시도로 돌파하는 '신본격' 추리소설 운동을 주창한 일군의 작가들. 결사적으로 새로움을 추구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맞부딪치게 되는 위기가 있습니다. 새로움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새로움 빼고는 다른 모든 게 허망한 주화입마 식의 작품이 나올 수도 있을 테고, 또 운 좋게 초반에 남들이 보지 못한 새로운 한방으로 성공했다 해도 새로운 걸 끊임없이 반복하면 어느새 그 새로움 또한 낡게 느껴지는 자기 딜레마가 그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신본격은 더 이상 새롭게 느껴지지 않고 운동 역시 휴지기를 맞은 듯하지만, 젊고 열정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끈질기게 지속했던 작가들이 어느덧 중견이 된 지금도 충분히 멋지고 보기 좋습니다. 오노 후유미도 바로 그런 작가 중의 한 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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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묘점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욱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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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나날 가운데 모처럼 맞은 느긋한 시간, 읽지도 못하면서 산더미처럼 사놓기만 한 추리소설 가운데 무엇을 고를까. 이런 질문만큼 호사스런 고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호사스럽건 궁상스럽건 고민은 어디까지나 고민. 하여 나름 진지하게 따져본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시간이 아니니 재미는 물론 남는 것도 있어야 하며 책장을 다 덮었을 때 진한 감동과 여운까지 주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국내에 소개되는 외국 추리소설은 대부분 그 나라에서 잘 팔리고 평도 좋은 것들이 아닌가. 그러니 어느 것을 골라도 크게 불만족스럽지는 않을 터. 차라리 국적으로 선택할까? 미국, 영국, 일본, 노르웨이...아니면 장르로? 본격, 하드보일드, 스릴러, 첩보... 이쯤되면 더 이상 즐거운 고민이 아니다. 또 하나의 스트레스일 뿐. 이처럼 수없이 쌓인 추리소설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때 나는 결국 마쓰모토 세이초를 잡게 된다. 나른한 휴식시간에 지친 몸과 마음을 식히려고 읽는 책이라면 역시 출간 시기상 고전에 해당하는 세이초의 여유롭고 느긋한 작풍이 딱 어울린다. 더구나 세이초의 작품들은 거의 다 재미있고 남는 것도 있으며, 꽤 높은 확률로 진한 감동과 여운까지 제공하니 가장 안전한 선택일 수밖에 없으리라.

 

 

<푸른 묘점>은 공히 작가의 최고 걸작이라 할 <점과 선>과 같은 시점인 1958년에 집필한 작품이다. 초기작인 만큼 신선하고 생생한 느낌은 있지만 아무래도 같은 시기에 두 작품을 쓰려다 보니 작품들끼리 닮아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일본의 각 지역을 철도와 트럭 등으로 오가며 일종의 알리바이 트릭을 구사하는 형태가 <점과 선>과 상당히 유사한 것이다. 이런 스타일은 1968년작 <D의 복합>에서도 거의 비슷하게 재현되는데, 세이초가 장편만 100편, 단편은 1,000편을 썼다니 이해가 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나중에는 내가 이런 이야기를 썼던가, 저런 트릭을 썼었나, 본인도 헷갈릴 지경이 아니었을까^^ 큰 챕터 안에 서너 개의 짤막한 챕터들이 속해 있는 구성인데, 소 챕터가 끝날 때마다 절묘하게 다음 줄거리를 궁금하게 하는 장면에서 끝나는 걸로 짐작컨대 아마도 토막토막 신문에 연재했던 것 같다.

 

 

도입부의 줄거리는 이렇다. 소설 잡지사 신참 편집자인 여주인공이 원고를 펑크내고 가족과 여행지로 떠난 작가를 닦달하기 위해 편집장의 명을 받고 쫓아간다. 그런데 이 여류 작가는 신경질이 대단한 성격이라 편집자가 같은 여관 지붕 아래에 있으면서 원고를 독촉하는 것을 싫어해, 여주인공은 그녀가 머무는 여관의 바로 옆에 위치한 여관에 숙박한다. 재미있는 건 절벽 밑에 자리잡은 두 여관이 지척에 있으면서도 높은 담벼락을 둘러쳐 서로 오갈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A여관에서 B여관으로 가려면, A여관이 운영하는 케이블카를 타고 절벽 위로 올라와 B여관이 운영하는 케이블카로 갈아타고 다시 내려가야만 하는 것이다. 두 여관의 이용객들은 몹시 불편하겠지만, 닳고 닳은 추리소설 독자들이라면 딱 눈치를 채야 한다. 작가가 굳이 이렇게 인공적이고 복잡한 배경이나 장치를 그린 데는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음을...과연 다음 날 절벽에서 추락해 죽은 시체가 한 구 나오는데, 이 양반은 여주인공과도 안면이 있는 추잡한 스캔들 전문 정보꾼이다. 하이에나처럼 썩은 내음을 풍기는 이 추잡한 남자가 여기엔 왜 왔을까, 의문이 있지만 어쨌든 사건은 자살로 처리된다. 문제는 여주인공이 잡지사로 복귀한 다음부터 점입가경으로 확대되는데, 여류 작가는 곧 자취를 감추고 심지어 그녀의 작품 전체가 표절이 아닐까 하는 의문마저 제기된 것이다.

 

 

탐정 역은 두 명이다. 언급한 여주인공 노리코와 그녀가 은근히 짝사랑하는 편집자 다쓰오. 두 사람은 뭔가 기사거리가 될 만하다는 느낌으로 이 사건을 조사하다가 처음에는 물리적으로, 종국에는 정신적으로 점차 가까워진다. 개인적으로 출판사를 다녀본 적이 있기 때문에 (비록 50년의 시간 차가 있지만) 하는 일이 나와 대개 비슷했던 두 주인공들에게 커다란 공감을 할 수 있었다. 나도 예전에 작가 분들 만나서 잠깐이면 끝나는 일을 마친 후 회사로 복귀하지 않고 기어코 커피숍에 들러 퇴근시간까지 버티다 들어오곤 했었으니까^^ 물론 나는 그야말로 노닥거렸을 뿐이지만 <푸른 묘점>의 두 주인공은 사건에 관한 추리를 펼친다. 남녀 두 편집자들이 농땡이도 치고, 야근도 하며, 출장도 가는 등 현실적인 직장인의 삶을 살면서 짬짬이 사건에 매진하는 모습에 괜스레 부러워졌다. 내가 다녔던 출판사들은 왜 노리코와 같이 취미를 함께 나누며 가까워질 만한 여성 편집자가 없었던 걸까(물론 그녀들의 생각은 정확히 반대이겠지...).

 

 

각설하고 <푸른 묘점>은 대단히 재미있다. 솔직히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는 결말부에서는 조금 실망한 것도 사실인데, 일단 살인이 벌어지는 결정적인 순간 우연의 요소가 지나치고, 또 알리바이 트릭이라는 것도 사건을 수사한 경찰의 능력이 그 정도 시시한 잔재주를 못 밝혀낼 정도로 졸렬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우선 평범한 직장인들이 평범한 능력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데서 오는 게 아닐까 싶다. 노리코는 사건을 조사하다가 문득 '책에서만 봤던 셜록 홈스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데, 아마도 그 느낌이란 노상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에 시달리는 대다수의 직장인들의 눈까지 덩달아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것일 터. 경찰이 아니니 수사권도 없고, 거대 신문사 기자가 아니라서 그럴싸한 힘도 없는 두 주인공이 오직 끈질긴 노력과 셀 수 없이 세웠다 부수는 가설만으로 진실에 접근해가는 쾌감이 만만찮았다는 말이다. 더구나 이 정도 노력은 우리 같은 갑남을녀도 유사한 일을 맞닥뜨리면 똑같이 따라할 수 있으므로 더욱 몰입감이 생기지 않았을까?

 

 

다음이자 가장 중요한 이유로는 이 책이 로맨스 추리소설로서 일급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노리코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소설이지만 그녀의 내밀한 속마음을, 짝사랑이라는 말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으면서 서서히 교감을 이뤄가는 두 주인공의 로맨스를 솜씨 좋게 그려낸 작가의 솜씨에 감탄했다. 특히 노리코가 홀로 시골로 사건을 조사하러 갔다가 조사 내용을 보고도 할 겸, 남자에게 안부도 전할 겸 보낸 편지는 행간의 사이사이에 애써 감춰둔 본심이 살그머니 드러나는 듯해 몹시 사랑스럽다. 이렇게 예쁜 편지가 나오는 추리소설은 별로 본 적이 없다. 세이초의 작품을 한 편만 권하라면 단연 <점과 선>을 추천하겠지만, 트릭의 밀도는 좀 떨어져도 깔끔하지 않고 무신경한 남자와 당차면서도 상냥한 여자의 섬세한 로맨스를 전면에 내세운 <푸른 묘점>이 오히려 현 시대에 더 먹히는 작품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독서인구의 대다수가 20~30대 여성이라서.

 

 

<푸른 묘점>은 주인공들이 작품 내내 여행을 떠나는 '여행 미스터리'이기도 하다. 여행지에서 보고 들은 견문이나 감상, 정서 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데, 1958년은 일본이 전쟁의 참상을 떨쳐내고 발전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겨서 많이들 여행을 다녔나 보다. 그래서 여행을 테마로 삼은 이 작품도 먹힐 수가 있었던 게 아닐까. 일본의 버블경제가 절정에 달했던 80년대에 여행 미스터리가 그렇게 대히트했던 것도 비슷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한 가지 분명한 건 여행 미스터리 역시 세이초가 가장 먼저 시도했다는 것. 과연 일본 추리소설의 진정한 거장답다. 간결하면서도 중후한 필치에 품격 있는 내용, 어른 흉내만 내는 게 아닌 진짜 어른스러운 등장인물 등 세이초의 추리소설이야말로 진정한 '성인의 엔터테인먼트'라고 확신한다. <푸른 묘점>의 장점은 7, 단점은 3. 적어도 확실한 재미는 약속한다. 그리고 이 작품이 재미있었다면 <D의 복합>도 읽어보시길. 그 작품은 두 '남성' 소설가와 편집자가 여행을 다니면서 사건을 추리한다.

 

 

  

 

       

<스포일러 있는 P.S>

 

어쩌면 <푸른 묘점>은 여성의 허영심이 숨겨진 또 다른 주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표절과 도작으로 이름을 날린 여류 작가가 자살한 이유도 정체가 폭로되느니 정점에서 죽겠다는 허영심의 발로였다. 또한 범인으로 드러난 여성은 인간쓰레기를 사랑한 본심을 감추기 위해 유서에서도 그런 뉘앙스만 살짝 풍길 뿐, 한사코 오빠에 대한 복수심 때문에 남자를 죽였다고 '우긴다'. 내가 무척 좋아한 노리코의 편지도 사실은 그녀가 좋아하는 남자한테 삶과 사람을 사랑하는 좋은 이미지로 보이고 싶어 공들여 이 표현, 저 표현을 여러 번 썼다가 지웠을 게 아닌가. 하드한 책만 보다 보니 내가 너무 비뚤어졌나-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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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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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도라는 묵직한 주제를 다룬 데뷔작 <13계단>으로 홈런을 친 다카노 가즈아키의 복귀작이다. 작년 여름에 사놓고도 688쪽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과 페이지마다 빼곡한 글자를 겁내 안 읽고 버티다가 며칠 전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막상 한 번 잡으니까 놓을 수가 없더라. 다 읽고 난 소감은 간단히 말해, 다카노 가즈아키의 현재까지 최고작이라는 것. 최근 일본 추리소설은 연애나 인간관계 등 다소 소소한 테마의 일상 미스터리가 많고, 그 배경이나 설정도 가능하면 평범하게 꾸며 자연스레 독자의 공감을 사는 내용이 인기였던 것 같다. 나와 우리 이웃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듯한 아기자기한 재미의 추리소설, 과연 읽는 사람이나 쓰는 사람도 즐거울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작가의 시공을 뛰어넘는 상상력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방대하고 치밀한 자료조사, 거대하고 진지한 주제를 거침없이 다루는 역작이 그리웠던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소재로 한 거니까 조금만 관찰력을 키우면 나도 쓸 수 있을 것 같아, 하는 기분의 작품과 이런 정교한 구성과 과학적인 설명, 뛰어난 상상력이 어우러진 소설을 나는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 없어, 하는 기분의 작품. 당연히 둘 중 우열을 가릴 수는 없을 테지만, 역시 대부분의 독자를 진정 감탄하게 만드는 것은 후자이리라. 몹시 거친 분류이지만 <제노사이드>는 바로 후자, 다시 말해 비범한 작가가 열과 성을 다해야만 쓸 수 있어 독자들의 자연스런 존경을 자아내는 작품이다.

 

<제노사이드>는 일본과 아프리카의 두 주인공이 번갈아 등장하면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일본 쪽 주인공은 얼마 전 지병으로 아버지를 잃은 평범한 약학 대학원생, 고가 겐토. 물론 전공 공부를 무척 열심히 한 듯 약학 지식이 꽤나 탁월해 평범하다는 말에는 살짝 어폐가 있다(관련 지식이 전무한 진짜 '평범한' 독자들이 보기에는 약학계의 슈퍼히어로다). 겐토의 아버지 또한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학자였지만 그다지 눈에 띄는 업적을 남기지 못했고, 조금 궁상맞아 보이는 언행으로 인해 겐토는 과학자로서 아버지를 별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장례식이 끝나고 날아온 아버지의 예약 이메일 한 통은 겐토의 평범한 삶을 모험과 진지한 연구로 가득찬 신세계로 안내하는데, 이 부분은 흡사 히치콕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 목표 기한 안에 궁극의 신약을 개발할 것. 다만 도처에 위험이 있으니 조심할 것. 겐토는 왜 자신이 이 신약을 개발해야 하는지 이유도 모르는 채 정체불명의 적에게 쫓기면서 연구를 계속한다.

 

아프리카 쪽 주인공은 아들이 걸린 불치의 유전병 치료비를 대기 위해 이라크 등 교전지역에서 용병 생활을 하는 전직 군인, 조너선 예거. 예거는 거액의 사례를 약속받고 다른 용병 세 명과 함께 특수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아프리카 콩고로 잠입한다. 그러나 작전 개시에 대비한 모의 훈련에서 예거는 한 가지 의혹을 느끼는데, 왠지 그들의 제거 목표가 어린이의 몸집을 가진 것 같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아들을 구하기 위해 남의 아들을 죽일 수 있을까? 도덕적 딜레마를 애써 묻어두고 어쨌든 서서히 목표 지역으로 나아가는 예거 일행의 앞을 아프리카의 무자비한 정글 외에도 각종 중화기로 무장한 준군사 조직들이 가로막는다. 겐토의 챕터가 서스펜스 영화라면, 예거의 챕터는 흡사 브루스 윌리스가 나올 듯한 액션영화 같은 모험과 위기의 연속이다. 개인적으로 지구 반대편에서 펼쳐지는 두 이야기가 어떻게 접점을 이룰지 몹시 궁금했는데, 마침내 하나로 맞닥뜨린 이야기의 본질을 알고 나서 굉장히 감탄했다. 온 사방으로 뻗어 나간 이야기 줄기가 이 정도로 정교하게 맞물린 소설은 정말 오랜만에 읽었다.         

 

'제노사이드(Genocide)'라는 제목은 '종족 말살'을 뜻한다. 나치의 홀로코스터나 아프리카 부족 간의 격렬한 인종 청소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듯한데, 인류 역사상 수없이 반복되어 왔고, 지금도 지구 어딘가에서 계속되고 있는 비극이다. 다만 이 책에서의 제노사이드는 인류와 인류 간의 제노사이드가 아니라는 데 재미의 핵심이 있다. 내용을 전혀 모르고 보면 훨씬 놀랄 일이 많을 듯해, 구체적으로 현 인류의 제노사이드 대상을 밝히지는 않겠다. 아무튼 이 책에 나오는 인류의 '적'은 상상조차 못할 정도의 비범한 능력을 지녀 현 인류 중에서 가장 뛰어난 석학들과도 멋진 적수가 된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체스 게임처럼 전개되는 두 세력 간의 치열한 두뇌싸움에 흠뻑 젖어보시길. 약학, 인터넷, 항공, 인류학 등 다양한 전문 영역을 깊이 있는 취재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마이클 크라이튼, 베르나르 베르베르 같은 선배 과학 스릴러 작가에 부끄럽지 않고, 아프리카에서의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와 그 와중에 마주치는 소년병 등 현대 아프리카의 비극을 그린다는 점에서 후나도 요이치의 모험소설도 생각난다. 어떻게 봐도 모처럼 만난 소설계의 역작임에는 틀림없다. 데뷔작과 몇 편의 후속작들에서 이만한 깜냥을 짐작하지는 못했는데, 열정과 노력으로 자신의 한계를 돌파해낸 작가에 박수를 보내며, 독자들에게도 강력하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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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클락
케네스 피어링 지음, 이동윤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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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던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는 괜찮은 할리우드 스릴러영화들이 제법 있었다. 얼핏 기억나는 작품을 몇 개 뽑아보자면 일단 <해리슨 포드의 의혹>, 스콧 터로의 걸작 법정소설 <무죄추정>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당연히 해리슨 포드가 주인공이다. 지금은 셰익스피어 전문배우로 더 유명한 케네스 브래너가 감독하고, 주연까지 한 <환생>도 으스스한 서스펜스가 넘쳐났던 작품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노 웨이 아웃>. <언터처블>로 한창 뜨고 있던 케빈 코스트너가 한창때의 멋진 모습을 뽐냈던 잊지 못할 스릴러영화의 고전으로 아주 어렸을 때 봤지만 가슴이 타들어가는 긴박한 장면들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날 정도,

 

 

<빅 클락>이 그런 <노 웨이 아웃>의 원작이라고 해서 읽어보았다. 알고 보니 <노 웨이 아웃><빅 클락>의 두 번째 영화판이더라. 50년대에 만들어진 영화가 원래 있었다고. 아무튼 <노 웨이 아웃>이 미해군을 배경으로 소련(당시 기준) 스파이까지 나오는 등 스케일이 좀 더 크다면, 원작 <빅 클락>은 주로 출판사에서 모든 일이 벌어지는 살짝 소소한 이야기다. 물론 <고질라>가 최고의 스릴러영화가 아니듯이 스케일의 크기와 스릴의 크기는 아무 상관이 없다. 절묘한 상황 설정과 심장이 죄어오는 듯한 긴박한 분위기, 폭발적인 클라이맥스만 유지한다면 8평짜리 아파트에서 등장인물 두 명만 갖고도 충분히 매력적인 스릴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 <빅 클락>은 위에 언급한 몇 가지 잘된 스릴러의 필요, 충분조건을 남김없이 갖고 있는 소설이었다. 먼저 대강의 줄거리를 보자. 거대 출판사 사장의 애인과 불륜관계에 빠진 주인공 스트라우드. 홧김에 애인을 살해한 사장은 스트라우드에게 유일한 목격자인 어둠 속의 남자를 찾아내라는 지시를 내린다. 하지만 어둠 속에 있어 사장이 얼굴을 보지 못한 그 목격자는 다름 아닌 스트라우드 자신이었던 것이다. 이제 스트라우드는 자기 자신을 추적하는 팀을 조직해 스스로를 사냥해야만 한다!

 

 

한마디로 해설에서 멋지게 표현한 것처럼 자신을 추척하는 사람이라는 끝내주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제목의 <빅 클락>이 상징하듯, 시계 부속처럼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현대인들이, 영원히 멈추지 않고 재깍재깍 돌아가는 현대 문명의 거대한 시계 속에서 조금씩 그 본질을 잃어간다는 주제도 마음에 든다. 각 장마다 화자가 달라지는 구성 또한 독서의 지루함을 줄여주는 역할을 해서 만족스러웠다. 개인적인 취향에 가깝겠지만 분량이 다소 짧은 점도 나쁘지 않았다. 주인공의 대소사, 가정사, 여담, 객담을 끝없이 늘어놓는 요즘 스릴러에 독자들이 과연 진정한 스릴을 느낄 수 있을까. 내 생각에 서스펜스 스릴러는 플롯 진행에 꼭 필요한 이야기 위주로 날렵하고 군더더기 없이 뻗어나갈 때 가장 밝은 빛이 나는 것 같다. 반드시 몰입할 수밖에 없는 줄거리에 마치 히치콕 영화와 같은 경제적인 진행, 그것이 <빅 클락>이 가지고 있는 궁극의 장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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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12-11-28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다이님 간만에 리뷰 남기셨네요. ^^ <노 웨이 아웃>의 원작이라면 안 볼 수 없군요.

jedai2000 2012-11-28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오랜만입니다. 야클 님.

리뷰를 쓰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는데, 그놈의 시간이 발목을 잡네요ㅜ.ㅜ
앞으로는 자주 쓰겠습니다. 자주 뵈어요~~
 
7년전쟁 세트 - 전5권 7년전쟁
김성한 지음 / 산천재 / 2012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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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소설을 즐겨 읽는다. 물론 대다수의 역사소설은 권수가 무척 많은지라 자주 붙잡을 수 없고, 또 슬프게도 오랜 시간을 기꺼이 투자할 만큼 만족스러운 역사소설도 그리 왕왕 눈에 띄지는 않아 1년에 한두 편에 불과하지만. 언제 역사소설을 읽고 싶으냐면, 저녁 밥값을 고민할 때나 장바구니에 넣어둔 물건을 살까 말까 줄기차게 재는 상황에서 주로 생각난다. 다시 말해, 팍팍한 현실에 움츠러든 내 모습이 싫어지는 순간 억눌린 내 마음은 장쾌한 역사의 현장 속으로 달음박질 쳐가는 것이다.

 

역사소설은 이미 끝이 정해져 있는 얘기다. 그래서 역사 속 실존인물들의 행보를 가슴이 터질 만큼 조마조마하게 지켜보지 않아도 된다. 충신열사, 재자가인, 장삼이사, 기군역적의 다채로운 인간군상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흥미로운 인간 드라마를 때로는 감탄하며 혹은 비분강개하며 죽 감상하면 되는 일이다. 소설보다 실제 있었던 일이 더욱 흥미롭다는 말처럼 대부분의 역사는 알면 알수록 재미나고, 게다가 오늘날의 삶에 충분히 되살릴 수 있는 교훈까지 제공하고 있으니 읽어서 손해 볼 걱정이 없다.

 

역사소설이 이렇게 재미있고 가치 있는 것이라지만 그래서 내가 무엇을 읽었나를 생각해보면 조금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3할이 사실이요, 7할이 허구라는 <삼국지> 등의 중국 고전이나 일본의 역사소설 거장 시바 료타로의 작품들을 주로 읽어왔는데, 남의 나라 역사만 줄기차게 들고파는 것도 물론 장점이 있겠으나, 먼저 우리 것을 알고 밖으로 눈을 돌리는 게 순서가 아닐까 하는 의문은 항상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과문한 탓이겠지만 다른 나라의 뛰어난 역사소설에 버금가거나 혹은 능가하는 작품을 쉽사리 찾지는 못했다. 그러던 차에 만나게 된 김성한의 <칠년전쟁>은 과장을 조금 보태 내게는 축복이나 다름없었다. 그토록 바라마지 않았던 '일독의 가치가 있는' 우리의, 우리만의 역사소설이었기 때문이다.

 

요즘 국어 교과서를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90년대 중고교 교과서에는 김성한의 <바비도>나 <오분간> 등의 단편이 실려 있었다. 당시에도 우리나라 작가가 중세 유럽의 종교재판을 소재로 소설(<바비도>)을 썼다는 게 이채로웠는데, 이른바 '순문학' 작가로 활동하던 시기에도 첨예한 역사적 순간을 배경으로 삼았던 걸 보면 원래 역사에 예리한 감각이나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작가인 듯하다. 실제로 60년대에는 영국에서 역사학을 정식으로 공부했고, 작가생활의 말년에는 본격적으로 역사소설을 집필했다고 한다. 아마도 임진왜란을 다룬 <칠년전쟁>을 이 시기, 김성한의 대표작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을 것 같다.

 

임진왜란이 왜 일어났고, 어떤 양상으로 전개됐으며, 어떻게 끝을 맺게 되었는가. <칠년전쟁>의 핵심이라 할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백년 전국시대를 마감하고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공했고, 조선은 나라의 존망이 위태로운 절체절명의 상황까지 몰리다가 수군대장 이순신이 분전해 일본군을 쳐부수어서 전쟁이 끝났다, 이 정도밖에 알지 못했다. 심지어는 전쟁이 7년 동안 지속된 것도 몰랐고, 정유재란이라는 일본군의 2차 침공에 대해서도 깜깜했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임진왜란에 대해 나와 비슷한 수준의 지식만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내가 너무 얕보는 건가)? 임진왜란이 동북아 삼국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었던 대전이었다는 점에서 당시 상황에 대한 무지는 가슴 아픈 부분이다. 오늘날에도 한중일, 삼국은 각자의 이익과 자구를 위해 열심히 경쟁하고 있는 처지니까. 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도 있듯이 과거의 전쟁을 자세히 알면, 그 공부 속에서 오늘날 적용할 수 있는 교훈을 찾아내어 향후의 전략을 세워볼 수 있을 것이다. 80년대에 나온 김성한의 <칠년전쟁>이 요즘 독자들에게도 충분히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리라.

 

전5권으로 된 <칠년전쟁>의 각권 내용을 거칠게 요약해보자면 1권에서는 일본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거쳐 명나라까지 집어삼키려는 야욕을 부리자, 조선과 일본의 중계무역으로 먹고 사는 쓰시마(대마도) 도주 이하 신하들은 전쟁을 막기 위해 총력을 다한다. 서서히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막후에서 펼쳐지는 이 치열한 외교전은 임진왜란을 다룬 어느 매체에서도 본 적이 없어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마침내 20만 일본 대군의 침공이 시작되는 2권에서는 문치주의를 숭상해 전혀 방비가 되지 않은 조선이 속수무책으로 밀리는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조선 왕, 선조가 명의 국경과 맞닿은 의주까지 피난을 갈 정도였으니 그 참상이 오죽했겠는가.

 

전쟁 초기의 충격에서 벗어나 각처에서 의병이 일어나고, 전라도 수군대장 이순신이 바다에서 일본군을 격파해 그들의 보급망을 끊어버리는 조선의 반격이 3권의 줄거리다. 이즈음 선조는 명나라에 지원군을 요청하고 지난한 노력 끝에 마침내 명의 파병 승인을 이끌어낸다. 명나라의 원군과 조선군의 합동작전으로 평양을 탈환하고, 보급을 제대로 받지 못해 지친 일본군이 서울에서 방어선을 치며 전쟁은 장기화 조짐을 보인다. 한편 명에서는 희대의 걸물 심유경이 등장해 삼국의 화평을 중계하여 크게 한탕을 할 계획을 세운다. 민간에서 땅 한 뙤기 파는 것만 중재해도 구전이 떨어지는 판국에 항차 나라 간의 거래를 성사시키면 그 이득이 어떻겠는가. 4권은 이 화평회담에 얽힌 구구절절한 이야기가 핵심이다. 대미의 5권에서는 결국 화평회담이 결렬되고, 재침공한 일본군(정유재란)은 다시 위세를 북돋우다 히데요시의 사망으로 인해 본국으로 철수한다. 이러한 일본군의 퇴각 과정에서 최후까지 적을 추격하던 명장 이순신은 전사하고 만다.

 

대강의 줄거리만 봐도 알 수 있듯이 7년에 걸친 임진왜란의 양상이 무척이나 선명하게 제시된다. 게다가 이건 그저 줄거리일 뿐, 실제 책을 읽으면 그 압도적인 정보량과 정교한 당시 정세의 묘사에 마치 그 시대에 살고 있는 기분이 들 정도이다. 10년에 걸친 작가의 자료 조사와 치밀한 고증에 힘입어,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삼국의 궁정과 초유의 사태에 고뇌하는 고관대작, 전쟁의 참상에 신음하는 민간 등 어느 곳이라도 소홀히 다뤄지는 법 없이 고유의 빛을 발하고 있다. 때로는 아이맥스 카메라로 전국을 멀찍이서 조망하는가 하면, 가끔은 다큐멘터리 8밀리미터 카메라로 치열한 전쟁터 한복판에서 들고 찍는 등 변화무쌍한 서술 방식이 일품이다.

 

아무래도 역사소설은 과거를 다루다 보니, 당대의 고색창연한 대화법이나 뜬구름 잡는 고담준론이 별로 익숙하지 않아 독서를 방해한다고 투덜대는 분도 있을 것이다. 단언컨대 <칠년전쟁>은 그렇지 않다. 인물 간의 대화는 대개 두 줄 이상을 넘어가지 않을 정도로 짧으며 점잔빼는 꾸밈이나 꿈지럭거리는 서두 없이 꼭 필요한 핵심만 제시된다. 대화에 있어서는 일부 리얼리티를 벗어난 형국이지만 그만큼 속도감이 넘치며 독자들이 대화 속에 담긴 정보를 받아들이기에도 훨씬 수월하다. 하드보일드에 가까운 날렵한 묘사는 꼭 인물의 대화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서술에도 적용되는데, 빠르고 날렵하여 한마디로 군더더기가 전혀 없다.

 

조선, 일본, 명의 수많은 인사들이 등장해 한 폭의 풍경화를 이루고 있지만 각각의 인물이 거대한 풍경에 매몰되는 일 없이 오롯이 개성을 지키고 있다. 누군가(특히 이순신)의 무조건적인 장점만 보는 신격화나 적군이랍시고 사람의 형상을 한 악마 식으로 묘사하는 유치한 이분법도 보이지 않는다.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을 방불케 하는 화법으로 무지몽매한 군신을 일깨우는 정승 정유길의 지혜, 초일류의 군인다운 청결한 고상함과 기품을 지닌 이순신, 비록 전쟁에는 나왔지만 인명을 살상하는 일에 죄책감을 느끼고 평화를 갈구하는 천주교 신자 고니시 유키나가, 히데요시의 미친 야욕을 진심으로 믿고 진군 또 진군하는 전쟁중독자 가토 기요마사, 물건을 사고파는 시시한 장사치가 아니라 나라를 거래해 천금을 희롱하려는 명나라의 심유경 등 예를 들자면 끝이 없다. 전술한 대로 이들 군상들이 이합집산하며 펼치는 인간 드라마가 <칠년전쟁>의 정수가 아닐까 싶다.

 

유독 전쟁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들도 충분히 만족할 만하다. 각 군의 분포도와 주요 전장의 형세에 얽힌 지도 등 소규모 전투의 양상을 통찰할 수 있는 자료도 풍부하고, 무엇보다 다른 나라가 아닌 우리나라 안에서 펼쳐진 전쟁이라 한국 사람이라면 직관적으로 전쟁의 세부도가 들여다보인다. 예컨대 경상도 전역을 제압한 일본군은 여세를 몰아 전라도로 침투하려 하는데,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진입하는 목줄이 바로 진주여서 전쟁의 향방을 가늠하는 이 진주를 둘러싸고 치열한 교전이 몇 차례에 걸쳐 펼쳐진다. 만약 다른 나라의 전쟁이라면 이곳이 핵심 장소니 어쩌니 해도 깊이 다가오지 않는다. 잘 모르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조금 안 된 얘기지만 <칠년전쟁>의 주요 전장은 대개 우리가 잘 아는 곳이라서 따로 공부할 필요 없이 그냥 읽기만 하면 되니까 그런 점에서도 편하다.

 

아주 허접한 책이 아닌 이상 한 권의 책 속에는 으레 교훈이 있게 마련이고, <칠년전쟁> 같이 좋은 책에는 당연히 더 많은 교훈이 있다. 예컨대, 전쟁을 잘 모르는 군신들이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이순신을 파직하고, 원균에게 총공세를 지시해 수군을 전멸시킨 일화를 통해서는 농사는 농사를 잘 아는 농부에게, 전쟁은 전쟁을 잘 아는 군인에게 맡기라는 소박한 원칙을 확인할 수 있다. 화평회담을 이끌기 위해 온갖 거짓말을 불사한 심유경의 파멸을 통해서는 비록 뜻이 좋다 해도 큰일에 있어서는 역시 신의가 중요하다는 교훈도 느꼈다. 무엇보다 '무능한 지배자는 만번 베어 죽여도 부족하다'는 말이 대선을 앞둔 지금 우리들에게 가장 중요한 교훈일 테지만. 결국 한 권의 책에서 3할을 얻을 것인지, 절반을 취할 것인지, 작가가 의도한 전부를 얻을 것인지는 개인의 깊이 있는 독서를 통해 결정될 테니 부디 뜻 있는 독서를 하시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내가 <칠년전쟁>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직접 전쟁(6. 25)을 경험한 작가만이 쓸 수 있는 휴머니즘에의 갈구였다. 전쟁을 통해 무고한 백성들이 수도 없이 일본군은 물론이고, 도와주러 온 중국군의 손에도 죽어나갔다. 작가는 그 참상을 낱낱이 묘사해 하늘 아래 더는 이러한 인면수심의 지옥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부르짖고 있다. 비록 적장이지만 7년 내내 평화를 위해 막후에서 눈물겨운 노력을 펼친 고니시 유키나가, 그와 작가 김성한이 왠지 겹쳐 보이는 건 나만의 부질없는 착각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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