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클락
케네스 피어링 지음, 이동윤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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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던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는 괜찮은 할리우드 스릴러영화들이 제법 있었다. 얼핏 기억나는 작품을 몇 개 뽑아보자면 일단 <해리슨 포드의 의혹>, 스콧 터로의 걸작 법정소설 <무죄추정>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당연히 해리슨 포드가 주인공이다. 지금은 셰익스피어 전문배우로 더 유명한 케네스 브래너가 감독하고, 주연까지 한 <환생>도 으스스한 서스펜스가 넘쳐났던 작품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노 웨이 아웃>. <언터처블>로 한창 뜨고 있던 케빈 코스트너가 한창때의 멋진 모습을 뽐냈던 잊지 못할 스릴러영화의 고전으로 아주 어렸을 때 봤지만 가슴이 타들어가는 긴박한 장면들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날 정도,

 

 

<빅 클락>이 그런 <노 웨이 아웃>의 원작이라고 해서 읽어보았다. 알고 보니 <노 웨이 아웃><빅 클락>의 두 번째 영화판이더라. 50년대에 만들어진 영화가 원래 있었다고. 아무튼 <노 웨이 아웃>이 미해군을 배경으로 소련(당시 기준) 스파이까지 나오는 등 스케일이 좀 더 크다면, 원작 <빅 클락>은 주로 출판사에서 모든 일이 벌어지는 살짝 소소한 이야기다. 물론 <고질라>가 최고의 스릴러영화가 아니듯이 스케일의 크기와 스릴의 크기는 아무 상관이 없다. 절묘한 상황 설정과 심장이 죄어오는 듯한 긴박한 분위기, 폭발적인 클라이맥스만 유지한다면 8평짜리 아파트에서 등장인물 두 명만 갖고도 충분히 매력적인 스릴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 <빅 클락>은 위에 언급한 몇 가지 잘된 스릴러의 필요, 충분조건을 남김없이 갖고 있는 소설이었다. 먼저 대강의 줄거리를 보자. 거대 출판사 사장의 애인과 불륜관계에 빠진 주인공 스트라우드. 홧김에 애인을 살해한 사장은 스트라우드에게 유일한 목격자인 어둠 속의 남자를 찾아내라는 지시를 내린다. 하지만 어둠 속에 있어 사장이 얼굴을 보지 못한 그 목격자는 다름 아닌 스트라우드 자신이었던 것이다. 이제 스트라우드는 자기 자신을 추적하는 팀을 조직해 스스로를 사냥해야만 한다!

 

 

한마디로 해설에서 멋지게 표현한 것처럼 자신을 추척하는 사람이라는 끝내주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제목의 <빅 클락>이 상징하듯, 시계 부속처럼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현대인들이, 영원히 멈추지 않고 재깍재깍 돌아가는 현대 문명의 거대한 시계 속에서 조금씩 그 본질을 잃어간다는 주제도 마음에 든다. 각 장마다 화자가 달라지는 구성 또한 독서의 지루함을 줄여주는 역할을 해서 만족스러웠다. 개인적인 취향에 가깝겠지만 분량이 다소 짧은 점도 나쁘지 않았다. 주인공의 대소사, 가정사, 여담, 객담을 끝없이 늘어놓는 요즘 스릴러에 독자들이 과연 진정한 스릴을 느낄 수 있을까. 내 생각에 서스펜스 스릴러는 플롯 진행에 꼭 필요한 이야기 위주로 날렵하고 군더더기 없이 뻗어나갈 때 가장 밝은 빛이 나는 것 같다. 반드시 몰입할 수밖에 없는 줄거리에 마치 히치콕 영화와 같은 경제적인 진행, 그것이 <빅 클락>이 가지고 있는 궁극의 장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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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12-11-28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다이님 간만에 리뷰 남기셨네요. ^^ <노 웨이 아웃>의 원작이라면 안 볼 수 없군요.

jedai2000 2012-11-28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오랜만입니다. 야클 님.

리뷰를 쓰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는데, 그놈의 시간이 발목을 잡네요ㅜ.ㅜ
앞으로는 자주 쓰겠습니다. 자주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