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에
수잰 레드펀 지음, 김마림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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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박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평소라면 하지 않을 일들을 한다.(-355쪽)

정말 그럴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평소에는 숨겨왔거나 몰랐던 자신의 본 모습이 그런 상황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지는 것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자신을 가려줄 장막이 걷히고나면 어쩔 수 없이 내면의 모습을 드러낼 수 밖에 없는 게 인간의 속성이라고 보는 까닭이다. 오죽하면 힘든 일을 겪어봐야 진정한 친구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생겼을까? 이 소설의 탄생배경이 시선을 끌었다. 실제로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의 기억이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소설이지만 소설같지 않은 주제가 추운 날씨처럼 살갗을 파고 든다. 뭔가 아릿한 감정을 불러오기도 한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이라면, 만약에 당신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겠느냐고. 평소에는 한가족처럼 지냈던 두 가족이 겨울 스키 캠핑을 떠난다. 그리고 얼어붙은 도로는 그들을 참혹한 상황에 처하게 만든다. 교통사고로 인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 '핀'이 그자리에서 즉사를 하고 운전을 했던 아버지는 중상을 입게 된다. 열명의 인간과 한마리의 개... 날씨는 급격히 추워지고 모든 것을 얼려버릴 듯한 추위를 막을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휴대폰조차 터지지 않는다.


죽은 '핀'의 입을 통해 이야기는 진행된다. 가장 먼저 구조요청을 하러 가겠다고 나섰던 사람은 언니의 남자친구였다. 냉철한 성격의 엄마는 모두 모여서 구조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하지만 언니마저 남자친구를 따라 나선다. 하루를 그렇게 보내고 엄마가 결국 카일과 함께 구조요청을 하기 위해 떠난다. 그들은 과연 어둡고 추운 숲을 벗어나 구조요청을 할 수 있을까? 이제 남은 사람은 다시 찾아올 밤을 또 어떻게 보내야 할까? 아버지는 희미한 입김만으로 자신이 아직 살아있음을 알리고 혹한의 추위를 생각치못한 '모'의 옷차림으로는 그 밤을 견뎌낼 수 없을 것 같다. 그런 절박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생각에 빠진다. 자신이 갖지 못한 것들, 자신에게 따스함을 전해줄 수 있는 한켤레의 장갑과 어그 부츠를 향한... 그리고 벌어지는 일들은 책을 읽는 독자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과연 당신이라면 이럴 때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고. 절박한 상황속에서 사람들은 과연 타인에 대한 배려를 생각할 수 있을까? 도덕적이며 윤리적인 양심에 자신을 맡길 수 있을까? 나보다 힘겨워보이는 상대를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어 줄 수 있을까? 따지고 보면 겨우 하룻밤뿐이었는데도.


삶은 순간순간의 크고 작은 선택으로 이루어진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살아갈 정신적 삶의 안위가 결정된다. 그 선택의 순간은 언제든지 올 수 있다. 또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삶은 길게 지속되고, 부끄러운 기억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을 만회할 '다음'이란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옮긴이의 말)

이 소설은 절박했던 순간보다 구조되고 나서야 알게 되는 자신의 모습에 힘겨워하는 심리를 더 많이 보여주고 있다. 그 순간에 자신이 했던 선택으로 인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버린 두 가족의 모습속에서 차마 비난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사고 이전부터 곪아있던 가족이라는 의미를 다시한번 더 생각하게 만든다. 죽을지도 모를 상황속에서 나의 가족보다 먼저 남의 가족을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작가는 친구 엄마의 입을 빌려서 누군가가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 하기도 한다. 똑같은 상황에 처했었는데 어째서 내 딸의 손가락과 발가락은 얼었는데 당신의 딸은 멀쩡한지 나는 그게 궁금하네요... '핀'의 이모를 향한 '모' 엄마의 원망 섞인 목소리는 가슴 한쪽을 송곳으로 찌르듯 저릿한 아픔이 느껴지게 한다. 특별하진 않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주제,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볼 수 있는 주제를 담고 있다. 이 책은.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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