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플 글쓰기는 아무래도 어색하다. 작년에 폰을 바꾸면서 화면이 제법 커졌지만, 서재에는 글을 쓰면 늘 할 말이 많고, 글을 쓸때는 손글씨보다 자판을 두드리는 것이 훨씬 편하고 익숙하디 때문에 폰으로 두드리는 글은 아무래도 느낌이 살지 않는다. 과연 이렇게 어색한 기분으로 두드려도 글맛이 살아있을까? 나중에 컴 화면으로 열어보면 죄다 오타에, 비문 투성이 글이 보이는 건 아닐까?

그럼에도 지금 급하게 폰으로 이 글을 남기는 이유는 SNS에서 반가운 책을 만났기 때문이고, 이 반가운 마음이 사라지기 전에 글로 남기고 싶기 때문이다.

책에 실린 원고를 연재했던 `미디어스`라는 온라인 매체로, 초기부터 즐겨찾기 해두고 종종 가는 곳이었고, 거기서 책의 두 저자 중 한 명인 이근형 트레이너의 글을 만났을 때 무척 반갑고 또 기뻤다. 제법 오래동안 각종 영상과 글을 찾아보며 크로스핏 위주로 운동을 했지만, 누구 하나 조언을 해줄 사람이 주변에 없었기 때문에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막막할 때마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을 접할 수 있는, 또 위로가 되고, 응원이 되는 그런 소중한 글이었다.

미안하지만 또 한 명의 저자인 김민하 기자의 연재글은 제대로 읽지 못했다. 그의 글은 주로 정치 기사를 접했고, 종종 서핑하는 몇몇 매체 중에서 가장 믿고 읽을 수 있는 정치 기사를 쓰는 기자이므로, 그의 글에 대해서는 읽지 못했다고 우려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겨울이라 요즘 주위에서 운동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새해 각오 및 소망으로 살을 빼겠다는 사람들도 여럿 봤다. 주위에 늘 운동할 시간이 없다고, 별로 먹지도 않았는데 살이 이만큼이나 쪘다고, 운동을 해도 살은 빠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그들은 대개 헬쓰클럽에서 다람쥐 챗바퀴 돌듯 트레드밀 위를 달리고, 엉터리 트레이너가 시키는대로 우리 몸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에 맞지도 않는 각종 머신운동으로 시간을 보낸다. 자신의 힘에 맞는 무게에 도전하기 보다는 익숙한 무게를 많이 반복하다가 재미없다며 지쳐 운동을 포기한다.

난 그들에게 하루에 5분~10분만 운동하더라도 머신 운동이 아닌, 몸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에 맞는 프리웨이트를 하길 권하며, 트레드밀 위를 쳇바퀴 돌지말고 직접 땅위를 박차고 달리길 권하고, 익숙한 무게에 안주하기 보다는 안정적인 자세를 익힌 다음 과감하게 새 목표에 도전하길 권한다.

하지만 번번히 그들은 내 말을 못 알아듣더라. 애초에 무슨 말인지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굳이 헬쓰클럽에 가서 운동할 필요도 없다. 한동안 스내치라는 역도 운동에 빠져있던 나는 요즘 다시 맨손 운동의 매력에 빠졌다. 늘 고만고만한 수준에서 멈춰 크게 부하를 느끼지 못했던 맨몸 운동에서 요즘 큰 부하를 느끼며, 육체의 한계를 깨닫고 있다. 힘들기로 따지면 타바타 인터벌 버피 만한 운동이 없더라. 진짜 죽을만큼 힘들더라. 최근 새삼 깨달았던 것인데, 예전부터 잘 알고 있었던 이 사실을 그간 모르는 척 외면해왔던 듯하다.

사실 다른 어려운 운동, 복잡한 머신은 별로 필요없다. 팔굽혀펴기 하나만으로도 자세를 제대로 갖추고,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를 주면 전신운동이 된다. 하나만 하는 건 지루하니까 에어스퀏과 버피와 팔굽혀펴기 그리고 가능하다면 턱걸이를 하루에 한 가지씩 순서대로 짧은 시간동안 한계 체력까지 해보자. 아마 단 하루만 해봐도 느껴질 것이다. 내 몸이 얼마나 한심한 상태인가 깨닫는 것과 동시에 내 몸이 얼마나 경이로운가를 동시에 깨달을 수 있다.

시간도 많이 필요하지 않다. 타바타 8라운드는 4분 밖에 안 걸리지만 체감상으로 1시간 운동한 것보다 더 힘들다. 운동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효과적으로 짜임새 있게 그 시간을 쓰느냐가 중요하다.

오늘 아침 두꺼운 겨울 바지를 새로 꺼내 입었다가 깜짝 놀랐다. 평소 귀찮아서 허리띠를 안 매고 다니는데, 그래서 허리에 꼭 맞는 바지를 사입는 편이다. 결혼 후 내 몸을 방치한 세월동안 허리둘레는 서서히 늘었고, 덕분에 5~7년 전에 산 바지는 허리가 작다 싶을만큼 꽉 끼고, 5년 이내에 산 몇 안되는 바지는 거의 딱 맞다. 오랜만에 입은 이 바지는 약 3년 전에 누군가가 자신에겐 작다고 건넨 것으로 당시 내게 딱 맞았다. 허리띠를 맬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오늘 난 아무 생각없이 집을 나서다가 평소와 달리 허리가 허전함을 느낀다. 줄줄 흘러내릴 정도는 아니지만 뭔가 괜히 헐렁하고 불안한 느낌. 아니나다를까 내리막길을 뛰어내려가다가 멈춰 허리춤을 추슬러본다. 어제까지 입었던 옷은 약 7년 전에 딱 맞았던 옷이고, 지금 평소에는 살짝 타이트한 느낌이지만, 밥을 먹고 나면 꽉 끼는 느낌이었다.

거울을 보면서는 크게 느끼지 못했던 몸의 변화를 운동할 때와 일상에서의 움직임에서 서서히 깨닫는다. 아주 느리지만 꾸준히 젊은 시절 몸의 느낌을 되찾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아직 결혼 전 몸으로 돌아가려면 멀었겠지만, 급할 것 없다. 체중 따윈 신경쓰지 않는다. 허리둘레 따위에도 관심없다. 난 그저 타바타 8라운드 안에 버피를 한 번이라도 더 하거나, 한계 무게로 스내치를 한 번이라도 더 하는데 관심이 있을 뿐이다.

익숙치않은 폰 자판으로 꽤 긴 글을 두드린 것 같은데, 북플에선 분량이 알마나 되는지 확인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제 그만 두드리고 타바타 버피나 하러 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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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1-05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피는 너무 힘들어요 ㅜㅜ

감은빛 2016-01-05 21:46   좋아요 0 | URL
힘들죠! ㅠㅠ 제대로 온 힘을 다하면 더 힘들더라구요. 재밌는 건 죽을것처럼 힘든 건 똑 같지만 횟수가 늘어날수록 자세가 좋아지고, 내 몸이 즐기고 있다는 사실도 깨달을 수 있더라구요. ^^

몬스터 2016-01-05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피는 3 sets 만해도 숨 고르기가 ㅎㅎㅎ

감은빛 2016-01-15 18:03   좋아요 0 | URL
몬스터님, 안녕하세요.
답이 많이 늦었네요.
그렇죠! 버피는 3라운드만 뛰어도 숨이 차서 힘들어요.
(저는 세트로 운동하지 않고, 타바타 인터벌로 라운드로 운동해요.)
4~6라운드는 헉헉 대면서 간신히 몸을 움직이고,
7라운드까지 가면 완전 지쳐서 억지로 몸을 움직여요.
8라운드는 마지막이니 최대한 힘을 짜내 움직입니다.
4분 8라운드가 끝나면 정말 죽을만큼 힘든데,
잠시 드러누워 몸을 쉬고나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어요. ^^

나와같다면 2016-01-06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은 정직하게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감은빛 2016-01-15 18:0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나와같다면님. 반갑습니다.
답이 좀 늦었네요.
정직하게 몸을 움직이는 것이라고 표현하시니,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예전과 달리 자연스러운 몸의 움직임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봅니다.

transient-guest 2016-01-06 0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저 꾸준히 free weight와 머신을 이런 저런 방법으로 섞어서 매일 운동부위와 운동에 변화를 주고, cardio를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진짜 운동은 맨손운동 몇 가지와 철봉, 줄넘기, 달리기만 해도 되긴 하지요.ㅎㅎ TRX를 해보고 싶은데 보여줄 사람이 없어서 제대로 하기 어렵네요. 어쨌든 일주일에 4-5일은 gym에 갑니다.ㅎㅎ

감은빛 2016-01-15 18:21   좋아요 0 | URL
일주일에 4~5일이라~ 멋지세요!
저번에도 썼는데, 전 주위 핏니스센터가 죄다 머신 위주라서
이젠 돈 아까워 거기 안 가고,
집이나 근처 공원에서 운동해요.

집에선 할 수 있는 운동이 제한적이어서,
밖에서 이것저것 해보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직장인 입장에서 시간이 잘 안 맞구요.
또 혹시 보는 눈이 있으면 잘 안 되더라구요.

마당이나 옥상에 조그만 운동공간 만드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봅니다.
마당은 없고, 옥상은 공용공간이라 맘대로 못하는 상황이 아쉽네요.

TRX 저도 배워보고 싶어요.
미국에선 인기라고 하던데, 이 동네에선 거의 알려지지 않은 느낌이예요.
 

다 자란 아이들이 내 글을 읽는다면


뭔가 찾아볼 것이 있어서 몇 해째 쓰지 않는 예전 블로그를 검색했다. 필요한 정보를 찾아내고 닫으려다가 궁금증에 옛 글을 몇 개 읽었다. 읽다가 이런 일이 있었구나 싶은 글 몇 개를 발견했다. 블로그에 글을 쓴다는 건, 이렇게 나중에 찾아 읽을 수 있는 기억을 저장해두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해당 블로그가 서비스를 중단하지 않았을 경우에 얘기다. 알라딘 서재를 제외하면 블로그는 총 3번 운영했는데, 첫번째와 두번째로 썼던 블로그는 모두 해당 업체가 그 서비스를 닫아버렸다. 이번에 검색해본 것이 세번째 블로그였다. 만약 블로그 서비스가 중단되지 않는다면 아이들이 자라서 아빠의 글을 찾아볼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도 해본다. 예전 블로그에는 큰 아이와 작은 아이 어릴때 자잘한 이야기들을 써놓았는데, 나중에 아이들이 이런 글을 찾아 읽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아기는 벌써 잠이 깨서 혼자 놀고 있던 참이었나 보다. 손가락을 빨아보려고 용을 쓰지만, 생각처럼 잘 안되는지, 고개를 요리조리 돌려가며 손을 입가로 가져오려 애썼다. '에', '앙' 등 글자로 표현하기 어려운 짧은 소리를 주기적으로 내면서 발을 열심히 동동 굴리고 있다. 잠시 내려다보니 녀석이 나를 알아본다. 눈동자가 나를 향하더니 동공이 열리는 듯, 그 맑고 투명한 눈동자 속에 내 얼굴이 어렴풋이 비쳐보인다. 


- 2010년 8월 예전 블로그 글 '아기의 함박웃음' 중에서


이 글은 '아기의 함박웃음'이란 제목으로 태어난지 백일이 조금 지난 작은 아이에 대해 썼다. 말미에 나름 반전이 있는 글이다. 읽어보고 조금 놀랐다. 내가 이런 표현을 썼구나. 내가 이렇게 글을 구성했구나. 왠지 지금보다 훨씬 더 글을 잘 썼던 것 같다. 


언제부터 이렇게 눈물이 많아졌던가? 요즘 자주 울컥 솟구치는 여러 감정들 때문에 눈물이 맺히는 일이 잦다. 두 달 전부터 유난히 오래 이어지던 콧물과 기침이, 이번 달 초에 아예 고열과 몸살로 이어졌던 때, 꼼짝도 못하고 누워만 지낸지 사흘째 되던 날, 작은 아이가 내 눈을 가만히 들여다 보더니, "아빠, 눈 크게 떠봐." 라고 말했다. 난 사흘 내내 거의 굶다시피 했던 터라, 목소리를 낼 기운조차 없어서 작은 목소리로 "왜?" 라고 물었다. 아이는 한번 더 "눈 크게 떠봐. 아빠~" 라고 재촉했고, 나는 억지로 눈을 치켜떴다. 작고 까만 눈동자가 내 눈을 바라본다. 곧이어 "아빠 눈에 나 있어. 아빠, 내 눈에는 누가 있어? 아빠 있어?" 라고 물었다. 왜 그랬는지 그 말을 듣는 순간 울컥 감정이 북받쳐서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저 고개만 끄덕였는데, 아이는 원하는 답을 들어서인지 곧이어 몸을 돌려 장난감에 집중했다. 나는 눈물이 맺혀 흐린 시야로 아이를 보면서 내가 왜 우는지 궁금해했다.


- 2014년 4월 이 서재 글 '소설보다 더 비현실적인 현실' 중에서


이건 작년 4월 세월호와 관련해 이 서재에 적은 글인데, 작은 아이의 말로 글을 시작했다. 예전 블로그에선 아이와 관련한 글들을 별도의 카테고리를 만들어 모아두었는데, 여기 서재에선 그런 구분 없이 그냥 일상이야기와 책 이야기를 섞어서 쓰고 있다. 아직 백일 정도 밖에 안된 아기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을 보는 장면과 다섯살 아이가 내 눈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모습이 신기해서 옮겨 봤다.


아이는 잠시 안 씻겠다고 버텼지만, 갑자기 '응가'를 외치더니 제 변기통을 찾아가서 앉았다. 한참 힘을 주더니 구수한 냄새가 집안을 가득 채웠다. 엉덩이도 닦여야 하고, 머리도 감겨야 하니 아예 목욕을 시켜야겠다고 마음먹고 아이를 욕식에 데리고 들어갔다.


머리를 감기려고 아이를 안았다. 아이는 뭐라뭐라 재잘재잘 떠들어대고 있었다. 나는 건성으로 그래그래 대답했다. 따뜻한 물에 머리칼을 적시고, 천연비누를 골고루 묻혀서 충분히 거품을 냈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가 조용해졌다. 눈도 감고 있었다. 숨소리도 규칙적으로 고르게 내고 있었다. 잠든 것이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씻다가 잠들었을까 싶었다. 따뜻한 물에 머리를 헹궈주면서 깨지않도록 조심조심 손을 놀렸다.


머리를 다 헹구고 엉덩이만 깨끗이 닦았다. 목욕은 내일 시켜야겠다고 마음먹고 조심조심 수건으로 물기를 닦았다. 이제 제법 무거워진 아이를 한 손으로만 안고, 다른 한 손으로 닦아주는 게 쉽지 않았다. 머리 감기 전에 먼저 이를 닦도록 시켰던 것이 무척 다행이었다.


- 2008년 10월 예전 블로그 글 '머리 감기는 중 잠든 아이' 중에서


부천에 살았던 시절에는 근처에 공원이 여럿 있었다. 당시에는 자주 아이와 공원에서 놀곤 했다. 이 날은 하루종일 공원에서 뛰어다니고 놀아서 무척 피곤한 날이었다. 당시 나도 무척 피곤했었는데, 아이는 머리 감겨주는 중에 잠이 들었을 정도로 잘 놀았던 날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기억이 났는데, 당시에는 아이를 안고 머리를 감겼다. 쪼그려 앉은 내 무릎 위에 아이를 뉘여놓고, 왼 손으로 아이 머리를 받치고, 오른손으로 머리를 감겼다. 나중에 작은 아이는 이렇게 감기지 않았다. 아이을 따뜻한 물이 담긴 대야에 앉혀놓고, 머리를 뒤로 제치게 한 다음 샤워기로 물을 뿌리고 감긴다.


이제 훌쩍 커버려 혼자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하는 큰 아이와 아직은 씻겨줘야 하는 작은 아이가 나중에 자라서 이 글을 읽으면 어떤 생각을 할까? 그때 아빠가 이렇게 나를 씼겨줬지 라는 걸 기억이나 할까?


내 경우를 떠올려본다면 엄마가 나를 씼겨준 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어렸을 때 아빠와 목욕탕에 간 건 몇 건이 기억나는데, 숨도 못 쉬도록 물을 부어가며 머리를 감겼던 거나, 때를 쎄게 밀어서 아팠던 기억은 있다.


흠 시간 날때 사소하고 자잘한 기억을 남긴 글들을 어딘가 모아두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예전 블로그가 언제 닫을지 알 수 없고, 알라딘이 언제 서재를 중단할 지 알 수 없다. 웹에 있는 정보는 언젠가는 사라진다. 보관해두려면 하드디스크에 문서로 남겨둬야 할까? 아예 인쇄해서 파일에 모아두어야 할까? 그런데 이 바쁜 삶에서 언제 그 많은 글들을 다 따로 저장해서 인쇄할까? 종이도 잉크도 무척 아까울 것 같다.


12월 31일에서 1월 1일까지


2016년의 첫 날이 지나갔다. 2015년의 마지막은 늘 그렇듯이 술을 마시며 보냈다. 왁자지껄 여러 사람들과 먹고 마시고 떠들고 노래를 부르다가 12시가 되는 순간 약속이나 한 듯이 옆 사람과 포옹했다. 외국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장면처럼 자정에 포옹을 하게 되다니. 난 그냥 쓴 소주를 한 잔 털어넣고 해가 바뀌었구나 생각만 하려 했는데, 옆 자리의 여성이 먼저 자신의 왼쪽에 앉은 여성을 껴안고는, 방향을 바꿔 나를 향해 양팔을 벌렸다. 음, 이거 껴안자는 제스쳐로구나. 거부하면 기분나빠하겠지. 뭐 이런 순간에 한번 껴안는게 무슨 문제가 되겠어 라고 생각하며 몸을 앞으로 내밀었는데, 그 분이 무척 쎄게 껴안아서 좀 놀랐다.


그 분은 1월 1일이 양력 생일이다. 보통 그 나이대 분들은 대체로 음력 생일을 지내시는데, 그 분은 양력 생일을 지낸다고 한다. 아들이 결혼해서 분가한 후로 생일날 늘 혼자였다고 했다. 그런데 올해는 12월 31일에 이렇게 동네 사람들이 챙겨줘서 무척 고맙다고 눈물까지 글썽였다. 그랬구나. 1월 1일이 생일이라면, 그 생일을 혼자 보내야 한다면 조금 쓸쓸할 것 같긴 하다.


몇 달 전 손자를 보고, 할머니가 된 그 분의 생일 케잌을 열심히 먹으며, 자리에 모인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 새해 소망이나 각오를 나눴다. 난 속으로는 운동과 관련한 목표를 떠올렸다. 스내치, 데드리프트, 스퀏 무게를 얼마나 올릴 수 있을까? 그러나 막상 내 차례가 되어서는 올해는 조금 여유를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너무 정신없이 바쁜 한 해를 보냈다. 제발 2016년은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운동도 열심히 할 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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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1-02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새해인사 드립니다.
새해에는 더 좋은 일들과 기쁘고 좋은 시간 함께 하시기를 기원할게요.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감은빛 2016-01-15 17:51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답이 많이 늦었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cyrus 2016-01-02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블로그에 남긴 모든 글들을 알라딘 계정이 없는 친구나 가족에게 공개한 적이 없어서 이 블로그를 앞으로도 그냥 저만 아는 개인 공간으로 활용할 생각입니다. 알라딘 계정이 없는 사람에게 알라딘 블로그를 설명하면 민망할 것 같아요. 제 주변에 저만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잘 없거든요. ㅎㅎㅎ 감은빛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

감은빛 2016-01-15 17:59   좋아요 0 | URL
시루스님, 답이 늦었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

저는 한동안 출판계에 있었기 때문에
저를 아는 사람들 중 몇명이 이 블로그의 존재를 알아요.
간혹 블로그에 올린 글에 대한 얘길 직접 만나서 듣게 되면,
말씀하신것처럼 꽤 민망하더라구요.

사실 그래서 예전에는 일상 이야기는 거의 안 쓰고 책 이야기만 썼는데,
출판계를 떠난 이후로는 그들이 제 블로그를 들어올 일이 없어져서,
그 이후로는 일상 이야기를 위주로 쓰고 있네요.
사실 책 읽을 여유가 없어졌다는 핑계로,
독서를 많이 못 하고 있기 때문에
책 이야기를 쓰고 싶어도 못 쓰기도 하구요.

제가 이 글 쓸 당시에 생각했던 건,
나중에 다 자란 아이들이 우연히 무언가를 검색하다가
아빠의 블로그를 발견해,
거기서 자기 어릴때 이야기를 찾아 읽는 상황이예요.
혹은 제가 그때까지 블로그를 계속 하고 있다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블로그의 존재를 알고,
찾아 읽을 수도 있을 테구요.

암튼 저는 언젠가 아이들이 제 글을 통해
자기 어릴때 이야기를 꺼내 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
 

검색해보니 작년 2월 12일에 '켈로이드와 스테로이드'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그 전 해 가을에 무릎을 크게 다쳤는데, 상처는 아물었건만, 흉터가 크게 부풀어올라 여러모로 불편함을 겪었고,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면 절로 낫겠지 하는 마음에 병원은 가지 않고, 몇 달을 버티다가 결국 불편함을 못 참고 병원에 갔다가 '켈로이드'라는 처음 듣는 증상에 대해 알았던 날에 대해 쓴 글이다. 치료방법은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게 무척 날카로운 통증을 줬고, 한 달 혹은 반 달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주사를 맞아야 하고, 상황에 따라 아주 오랫동안 맞아야 할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오래 맞아도 잘 낫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길 들었다.


내 몸에는 흉터가 참 많은데, 이 나이가 되어 처음으로 켈로이드란 증상을 겪었다. 그런데 다들 켈로이드는 유전적인 영향이 크고, 체질의 문제라고 한다. 작년 봄 나는 갑자기 비염 증상이 계속되어 병원을 찾았다. 알러지성 비염이라는 처방을 받았는데, 좀 황당했다. 물론 평소 코가 좀 약한 편이라고 해야할까? 감기가 걸리면 코감기부터 걸리는 편이긴 했지만, 비염은 아니었다. 그런데 작년 봄 이후 지금껏 몸 컨디션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염이 없어지지 않는다. 한 며칠 증상이 없다가도, 어느 날엔 또 심해졌다. 최근 1~2년 사이에 내 몸에 큰 변화가 생긴걸까? 체질이 변할 걸까?


최근 5~6년 내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면 충분히 몸이 망가질만 하다고 느낀다. 거의 매일 술을 마셨고, 야근도 잦았고, 주말에도 늘 뭔가 일정이 있었다. 그래도 작년까지는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에 대해서는 잘 지켜왔는데, 최근 그 시간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할만큼 바빠졌다. 현재 내 결론은 지난 내 생활이 지금 내 몸을 변화시킨게 아닌가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올 여름 그러니까 약 5개월 전, 한밤중에 어느 술 취한 녀석이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쳐서 나갔다가 녀석이 잡아 끌어서 넘어졌던 날, 그날 다친 무릎 상처가 또 제법 크고 깊었다. 재작년 다친 자리에서 약 손가락 마디 두 개 아래를 다쳤다. 이번에도 상처는 생각보다 빨리 아물었건만, 지난 번처럼 흉터가 부풀어 올라있었다. 불안했다. 또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으러 다녀야 하나 싶었다. 다행히 이 상처는 이전 상처보다 크기는 컸지만, 높이는 많이 부풀어오르지 않았다.


기분 탓인지 몰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흉칙한 보라색 흉터가 작아진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다 가을무렵 밀양 송전탑 싸움을 했던 마을에 농활을 갔을 때, 무언가에 부딪혀 이 흉터가 찢어졌다. 다시 상처가 생긴 것이다. 신기하게 다시 생긴 상처가 아물고 나니 흉터는 확연히 줄어있었다. 크기는 많이 작아지지 않고, 여전히 넓었지만, 높이는 확실히 더 낮아졌고, 전체가 다 높게 부푼 것이 아니라, 일부만 부풀고, 일부는 쪼글아들어서 낮은 상태였다.



조금 희망을 가졌다. 이대로 시간이 더 지나면 흉터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헛된 희망이었다. 겨울이 되자, 이 흉터가 계속 간지럽고, 가끔은 옷에 쓸려 쓰라렸고, 실수로 기둥이나 난간, 책상 다리 등에 부딪히면 정말 아팠다. 겨울이 되면서부터 병원을 가야겠다고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바빴다. 병원 갈 시간을 내지 못했다.


어제 밤 늦게 집에 들어왔더니, 큰 아이가 아파서 열도 살짝 나고, 갑자기 토하기도 했다. 오늘 아침 일찍 중요한 약속이 있어 집을 나서는데, 아내도 아프다는 걸 알았다. 큰 아이도 학교를 빠져야 할만큼 아프고, 아내도 아프니, 결국 작은 아이는 내가 챙겨야 했는데, 오늘 따라 약속이 이른 시간이라 그럴 수 없었다. 미안하다고 되도록 일찍 돌아오겠다고 하고, 집을 나섰다. 급한 일을 마치고, 사무실에 들러 조금 일을 하다가 일할 꺼리들을 잔뜩 챙겨서 집으로 돌아왔다. 역시 아픈 큰 아이와 아내는 자고 있었고, 작은 아이는 혼자 깨서 심심해하고 있었다. 두 녀석 모두 학교와 어린이집을 못 갔다. 놀아 달라는 작은 아이와 조금 놀다가 컴퓨터를 켜고 일을 했다. 마음은 아픈 식구들을 돌보고, 작은 아이와도 놀아주고 싶었지만, 머리 속엔 기한 안에 일을 끝내야 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제일 급한 일을 하나 마무리할 때 즈음 아내가 큰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 달라고 했다.


큰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간 김에 나도 진료 요청을 했다. 아이는 장염이 심한데다 몸살 기운까지 있었다. 요즘 장염이 유행이라고 마을 주치의가 말했다. 아이의 약을 다 처방한 후, 주치의는 웃으며 내 볼일을 물었다. 좀 민망했다. 켈로이드가 다 나은지 1년 반 만에 또 같은 건으로 찾아오다니! 바지자락을 걷어올려 같은 무릎에 있는 상태가 완전히 다른 두 흉터를 보여줬다. 완치된 흉터는 이제 완전 납작해져, 여기 흉터가 있다는 것만 알수 있을 뿐, 이게 그렇게 크게 부풀어올랐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지경이다. 색깔도 피부색(아! 이거 습관적으로 인권을 침해하는 단어를 썼다가 고쳤다.)이고, 만지거나 부딪쳐도 전혀 통증이 없다. 하지만 올 여름 다친 흉터는 이전 흉터의 상태에 비해서는 훨 양호하지만, 색갈도 푸르죽죽한 보라색에 부풀어 오른 부분이 계속 간지럽거나 따끔거렸고, 어쩌다 스치기만해도 엄청 아팠다.


주치의는 이제 간결하게 설명하고 바로 주사를 놓았다. 큰 아이는 목이 마르다기에 물 마시라고 진료실에서 내보냈다. 다행이다. 아무래도 아이가 보는 앞에서 통증을 못 참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주치의가 주사 바늘을 손가락으로 튕길때, 대략 1년 10개월 전 처음으로 주사를 맞았던 날의 고통이 떠올랐다. 드디어 주사 바늘을 찌르는 순간 왼손은 자연스럽게 왼 허벅지 위에 두고 있었지만, 오른 손은 허리 뒤로 돌려 주먹을 꽉 쥐었다.(주치의가 주먹쥔 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바늘이 처음 들어가는 순간에는 걱정한만큼 아프지는 않았는데, 이후 스테로이드를 살짝 주입하고 뺐다가 방향을 틀어 다시 집어넣기를 반복하면서 점점 더 날카롭게 아픈 감각이 신경을 후벼팠다. 주사를 맞는 그 짧은 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마지막즈음엔 오른손 주먹이 얼얼할 정도였다. 다 끝나고 주치의가 "아프셨죠?" 하고 묻는데, 그저 헛 웃음만 허허 웃었다.


장염이라 밥을 먹지 못하는 아내와 아이를 위해 죽을 포장해 집으로 돌아오면서 무릎을 제대로 굽히지 못해 절뚝거리며 걸었다. 아이의 손을 붙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그 길이 참 길게 느껴지더라.



※ 세월호 청문회 소식을 조금 보다가 너무 화가나고 또 슬퍼서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제 정신을 갖고 살 수 있을까?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곧 세월호를 잊고, 백남기 농민을 잊고, 아무렇지 않고 살아가게 되는 걸까? 설마 그런걸까? 하긴 우린 벌써 많은 열사들을 잊고 살아가고 있다. 이승만과 수많은 친일파들과 박정희와 수많은 군부 독재 세력들과 전두환, 노태우와 수많은 하나회 출신들 그리고 광주 학살을 저지른 군인들을 잊고 살고 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와중에도 수많은 노동탄압과 비상식적인 사태들이 있었다. 백화점이 무너지고, 한강 다리가 무너지고, 어린 아이들이 불에 타죽고, 여중생들이 탱크에 깔려 죽기도 했다. 농민들이 경찰 곤봉과 방패에 맞아 죽기도 했다. 누군가는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을 강행하는 바람에 인질로 잡혀 죽었다. 이명박은 강을 파헤치고, 수많은 혈세를 빼돌렸다. 후쿠시마 핵폭발 사고에도 불구하고 핵발전을 더 강하게 밀어붙였고, 심지어 거짓으로 속여 외국에 팔아먹기도 했다. 똑같은 짓을 박근혜가 반복하고 있다. 바보같이 자기가 뭔 짓을 하는지도 모르고, 파리 기후변화 협약에 가서는 국제 망신을 당하고 왔다. 그리고 세월호는 아직 차가운 바다 속에 잠겨 있다. 한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고 있다. 


우린 일상을 살면서 이 모든 부조리한 일들을 다 기억하면서 살 수 없다. 그래서 역사가 중요하고, 기록이 중요하다고 본다. 바쁜 와중에도 해경에서 나온 증인들이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는 내용은 반드시 남겨둬야 한다. 뭐? 애들이 철이 없어서 탈출을 안 했다던가 하는 헛소리를 지껄인 작자도 있었다는데, 저게 진짜 사람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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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12-16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블로그 프로필 사진에 두개의 노란색 표식이 있습니다.하나는 앙크.부활이라는 의미의 이집트 상형문자와 노란리본표시.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그들이 언젠가 부활할때 우리들에게 던질 질문이 뭘까...싶더군요.잘봤습니다.아푸지 마시길....

감은빛 2016-01-02 01:28   좋아요 1 | URL
해가 바뀌어 답을 드리네요. 죄송합니다!
앙크와 노란리본을 달고 계시군요.
부활이라는 의미의 상형문자로군요.
고맙습니다!

무해한모리군 2015-12-16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동안 먹지않던 술을 요즘 다시 많이 먹게됩니다. 왜 자꾸 비관하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낙관해야 하는데 믿어야하는데, 마음까지 넘겨줄수는 없는데. 나쁜 사람이 되어가는거 같아요 저자신도.

감은빛 2016-01-02 01:30   좋아요 0 | URL
저도 요즘 술을 많이 마셔요.
(라고 쓰고 보니 요즘만 많이 마시는 것 처럼 읽히는군요. ㅠㅠ
늘 많이 마셨으면서요.)
낙관하려면 뭔가가 보여야 하는데,
그 뭔가를 찾지 못할 정도로 암울한 상황이죠.
모리님, 그래도 힘을 내 봅시다!

살리미 2015-12-16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청문회를 보며 너무 화가납니다. 당신 자식이라도 그랬겠어? 라고 외치는 유족들의 마음을 너무 잘 알 것 같은데 답변하러 나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무책임하더군요. 정말 애들이 철이 없다던 발언을 하는 사람은 제정신인가 싶었어요 ㅠㅠ
팩트티비가 없었다면 그나마도 못 볼 뻔 했습니다. 주류 언론이 기록을 하지 않는 세상이에요 ㅠㅠ
감은빛님, 부디 건강 챙기십시요!

감은빛 2016-01-02 01:32   좋아요 0 | URL
오로라님, 답이 많이 늦었네요.
언론은 이미 그 기능을 잃은지 오래되었습니다.
더이상 기대하지 않은지 꽤 되었습니다.

누구 말처럼 혼이 비정상인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네요.
그 말을 한 본인부터가 비정상일텐데요.
안타까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네요.

고맙습니다!

cyrus 2015-12-16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염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은 정말 고생합니다. 저도 비염 증상이 있는데, 잘 때마다 저도 모르게 입이 벌어집니다. 수면 중에 코로 호흡하는 것이 힘들어져요. 안 그래도 비강이 작은 편이라서 콧물이 생기면 코를 푸는 횟수가 많아져요. 추운 날에 코 관리도 잘 해야 됩니다. 몸이 차가우면 코도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감은빛 2016-01-02 01:34   좋아요 0 | URL
저는 다행히 밤에는 증상이 거의 없어요.
가끔 비염이 심해지는 날에는 꼭 오전에 제일 심해요.
점심을 먹고 오후가 되면 점점 좋아졌다가,
저녁때쯤 되면 완전히 증상이 사라지곤 합니다.

알러지성 비염인데, 무엇에 대한 알러지인지 모르겠습니다.

겨울이 되니 비염이 한결 좋아졌어요.
제 경우엔 봄과 가을에 제일 심했던 것 같습니다.
여름에도 특정한 날에는 무척 심했구요.
오히려 요즘 비염 증상이 거의 없어졌어요.

시루스님, 말씀 고맙습니다!
 

내친 김에 글도 쓰자


평소에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막상 서재에 들어와 글쓰기를 누르면, 순간 누군가 삭제 버튼을 누른것처럼 머릿속이 하얘진다. 며칠 전, 우리 위대한 대통령께서 저 멀리 파리까지 날아가서 큰 웃음을 주셨는데, 주위 많은 사람들이 위대하신 대통령의 유머코드를 미처 이해하지 못해 웃지 못하길래, 그게 왜 우스운 일이고, 특히 외국에서 훨씬 더 많이 웃었을 거란 걸 글로 써서 남기고 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짬을 내지 못했다.


다행히 녹색당에서 바로 논평을 냈고, 그걸 언론이 실어서 한때 이슈가 되었다. 다음날 존경하는 선배로부터 관련 자료를 준비해 줄 수 있는지 요청이 왔다. (엄밀히 말하면 한 다리 건너서 왔다.) 당시는 무척 바쁜 시간이었고, 그 자료는 준비된 것이 아니라 찾아서 만들어야 할 성격인데, 한 다리 건너 들어서 정확하게 뭘 원하는지도 제대로 파악 못했다. 일단 찾아는 보겠다고 답해놓고, 다른 일을 한참 하고 있는데, 다시 연락이 왔다. 급했던 그 선배가 직접 자료를 찾아서 일단 해결했다고. 나중에 녹색당에서 낸 보완 자료를 보고, 아! 그래서 급했던 거구나 싶었다. 시간이 있었다면 좀 더 구체적인 데이터와 표를 보내줄 수도 있었겠다 생각했지만, 어쨌거나 이미 지난 일이었다.


[녹색당 논평]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

– 박근혜 대통령, 기후변화총회에서 ‘가상의 나라’ 이야기

http://kgreens.org/commentary/6399/


[녹색당 해설 자료] 박 대통령 기후변화총회 연설 비판 녹색당 논평 

(“안에서는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 관련 해설 자료

http://kgreens.org/commentary/%ED%95%B4%EC%84%A4-%EC%9E%90%EB%A3%8C/


주말에도 밤 늦게까지 몸을 쓰는 일을 하고, 비록 시간은 늦었으나 몸쓰는 일을 했으니, 술은 한 잔 마셔야지 하고 함께 일했던 분들과 맥주 한 잔을 들이키며 이 이야기를 꺼냈더니, 의외로 잘 알아듣는 분이 계셨다. 그렇구나! 다들 못 알아듣는 줄만 알았더니, 의외로 아는 사람들도 있구나.


오늘은 일을 더 하려고 남았건만, 오늘 해야할 일을 아직 마무리하지 못했건만, 아까 한참 전에 잠깐 들여다봐야지 하고 서재에 들어왔던게 벌써 몇 시간 전인지 모르겠다. 에이! 뭐 이런 날도 있는거지. 내일 또 열심히 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내친 김에 글쓰기 버튼까지 눌렀다. 오늘 아침에만 해도 쓰고 싶은 꺼리가 있었는데, 그게 뭐였더라? 하지만 막상 지금은 뭘 써야할지 몰라 막막하다.


녹색당 이야기 조금 더 


이왕 녹색당 이야기를 꺼냈으니 조금만 더 하자. 아니 우선 얼마전 비례대표 의석 수를 줄이는데 합의한 새정치민주연합 이야기를 해야겠다. 12월 3일자 프레시안 기사를 보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원유철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는 3일 정의화 국회의장 중재로 의장실에서 만나 논의한 끝에 비례대표 의원 수를 줄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양당 원내대표가 회동 후 브리핑에서 밝혔다."고 한다. 계속 읽다보면 "즉 새정치민주연합의 비례대표 의석 관련 입장은 '축소 불가'(지난달 초순까지) → '축소도 성의있게 검토'(지난달 중순) → '줄일 수 있다'(12월 3일 6자 회동에서)로 바뀌어 온 셈이다." 라고도 알려준다.


뭐 새정치나 새누리나 50보 100보 라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고, 기대도 하지 않았던 터라 놀랍지는 않다.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이 나라는 지금껏 소선거구 단순다수득표제로 국회의원을 선출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 소중한 한 표, 한 표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단순히 표를 더 많이 얻은 단 한 사람을 선출함으로써 현재와 같은 무능하면서도 권위만 앞세우고, 제 잇속만 채우는 정치인들을 양산했다. 아무리 많은 표를 받아도 2등이 되면 낙선하기 때문에, 선거는 정책과 공약이 아닌 비방만으로 치뤄지고, 사표 심리 때문에 괜찮은 후보라도 당의 인지도가 낮으면 표를 받기 어렵다.


이러한 폐해 때문에 지난 2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비례대표 의석 비율을 현행 18%에서 33.3%까지 확대하는 독일식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정당의 권역별 득표율과 의석수를 최대한 일치시킬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새누리와 새정치 라는 이름만 새것일 뿐, 아주 구태의연한 자들이 모여 이 모든 논의를 후퇴시키며, 오히려 비례의석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녹색당은 이번에 전 당원 온라인 투표를 통해 비례대표 후보를 선출했다. 총 5명의 비례 후보를 내기로 했는데, 선거에 나선 이는 모두 6명이었다. 이들은 모두 기존 정치인이 아닌 우리 이웃이라 할만한 분들이다. 간단히 소개해보자. 중학교 국어 교사였다가 밀양 이치우 어르신의 분신 소식을 접하고 송전탑 반대 싸움에 나선 이계삼 선생님, [어느날 그 길에서], [작별], [잡식 가족의 딜레마] 등 동물들의 생명권에 대한 다큐 작업을 해온 황윤 감독님, 기본소득 활동을 꾸준히 이어온 청년 활동가 김주온 님, '오늘 공작소'라는 단체에서 청년 활동을 이어온 신지예 님, '하늘소년' 이란 이름의 1인 인디밴드이며, '전국 세입자 협회' 활동가인 김영준 님, 부산에서 오랫동안 환경운동을 해오신 구자상 님 이렇게 6명이다.


이 분들은 전국을 돌며 당원들을 만나고 서로 토론하며 내부 경선을 치뤘다. 그리고 총 선거권자 5,595명 중에 2,960명 의 투표로(투표율 52.9%) 5명의 후보를 선출했다. 나는 내가 속한 당이 이러한 절차를 통해 비례 후보를 선출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이 후보들 어느 누구도(안타깝게 5명에 속하지 못한 1분도) 기존 정치인에 털끝하나 모자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 부탁드린다. 내년 총선에서 지역구 후보는 역량 있는 분으로, 당이 아닌 정책을 보고 선택하시길 바라고, 비례 투표는 꼭! 녹색당을 찍어주시길 바란다. 아니 비례 투표를 단순히 당 이름만 보고 정하지 마시고, 그 당의 정책과 비전 그리고 후보의 면면을 잘 살펴보고 투표해주시기 바란다. 저 위에서 언급했듯 말 바꾸기나 반복하고, 계속 끌려다니기만 하는 새것 처럼 보이지만 헌 정당을 무턱대고 찍지 마시고, 잘 고민하고 선택하시기를 바란다.


참고로 녹색당은 내년 총선에서 지역구 후보도 여러명 낼 계획이다. 이 분들에 대해서는 다음에 소개할 때가 올 것이다.


여기까지 적고 나니 이제서야 아침에 무슨 글을 쓰려고 맘 먹었던 것인지 떠오른다. 이미 시간은 한참 늦었고, 나는 이미 지쳤다. 


















흡연자 아니 애연가로서 이 책을 외면할 수 없다. 하나의 물질이나 물건을 두고 역사를 조명해보는 류의 책을 나는 무척 좋아한다. 일단 책상 위에 올려놓기는 했으니, 언젠가는 파고들어 읽으리라. 기다려라. 이번 주말이 지나면 꼭 너를 펼쳐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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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12-09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들의 음료`란 말은 들어본듯 하지만....`신들의 연기`라......
멋진 표현이긴 합니다...^^

감은빛 2015-12-16 00:41   좋아요 0 | URL
신들의 연기~ 멋진 표현이죠.
한때 담배가 맛이 없어서 몇 년간 끊었던 적은 있지만,
담배가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싶을 때도 있습니다.
나중에 담배 때문에 폐암으로 죽는다해도, 저는 후회하지 않으리라 봅니다.
 


하루하루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를만큼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뭐, 최근 몇 년간 안 바쁜 날이 언제였나 싶긴 한데, 지난 주부터 다음주까지는 특히 더 바쁜 듯하다. 지난 월요일엔 아침 출근길과 저녁 퇴근길 모두 캠페인을 하느라 보냈다. 아침엔 세월호 캠페인이었다. 지역의 시민사회단체 연대모임에서 매월 16일에는 세월호를 기억하는 아침 캠페인을 진행한다. 낮에는 일터에서 열심히 일했고, 저녁에는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악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을 묻는 '을들의 국민투표' 캠페인을 했다.


사실 저녁 캠페인은 예정에 없던 거라, 준비가 안된 상황에서 나갔다. 지하철 역사 안에서 투표 독려를 했는데, 처음엔 좀 버벅거렸다. 투표를 많이 해야할 젊은 층들은 무관심하게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고, 조금 연세가 있는 어르신들이 자주 관심을 갖고 다가왔다. 투표 방법을 알려주면 박근혜 정책에 표를 찍고 가시더라. 그래도 한 중년의 여성은 국민들의 의견에 표를 주시고, 애써줘서 고맙다고 인사까지 하고 가셨다. 준비 안된 상태로 나갔지만, 점점 하다보니 투표 독려 외침이 점점 나아졌다. 임금피크제, 최저임금, 비정규직 등을 키워드로 조금씩 말을 바꿔나갔다. 환경문제에 대한 발언은 대부분 자신있는데, 노동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발언해본 적이 없다보니 스스로 말을 하면서도 어색했다. 어쨌거나 할당된 시간을 마치고 회의하러 나섰다.


월요일 밤에는 편집위원으로 참여하는 지역 시민신문의 편집회의가 있었다. 퇴근길 캠페인을 마치고 바로 간 거라, 저녁도 못 먹었는데, 다같이 배고파 짜장면을 시켜 먹고 회의를 했다. 회의를 마치고 당연하게 편집장님과 맥주 한 잔을 하고 집에 가니 12시였다. 아침 7시에 집을 나서, 밤 12시에 들어오다니. 일주일의 첫 날부터 아주 힘들었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다음날인 화요일 아침 일찍 회의가 있었기 때문에 회의 자료를 준비해야 했다. 피곤했지만, 억지로 정신을 차려가며 일을 마친 시간은 대략 3시 쯤이었던가? 씻고 누운 건 아마 4시쯤이었을 것이다.


3시간도 채 못 자고 일어나 출근했다. 일찍 사무실에 와서 새벽에 만든 자료에 문제가 없는지를 점검했다. 아침 회의를 하고, 일터 업무를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번 아침 회의를 마치고 나면 늘 피곤하다. 준비할 게 많아 전날 늦게까지 자료를 만드느라 그렇기도 하고,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그렇기도 하고, 회의에서 나온 여러 내용들이 지치게 만들어서 그렇기도 하다. 그날만큼은 집에서 좀 쉬고 싶었지만, 퇴근 후 모임이 하나 잡혀있었다. 열심히 일을 하다가 퇴근 무렵 확인을 해보니, 다행히 모임이 취소되었다. 집에서 아이들과 놀다가 평소보다 일찍 잠들었다.


수요일엔 일터에서 야근을 했다. 중요한 서류 작업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목요일 아침엔 탈핵 캠페인을 나갔다. 이제 날씨가 추워서 장갑을 안 끼고 서 있으니 손이 시려웠다. 다음 주부터는 아침 캠페인 나올 때는 꼭 장갑을 챙겨야 겠다고 생각했다. 목요일 저녁에는 전환마을 운동을 하기 위해 만든 연대단위에서 새로 준비하는 로컬푸드 식당에 불려가서 김장 준비를 했다. 퇴근 후 바로 달려가서 밤 11시 넘어까지 일했다. 배추가 무려 300포기였다. 다음날인 금요일에 김장을 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금요일 저녁에는 바로 그 식당에서 녹색당 지역모임에서 김장을 할 예정이었다. 당원들이 직접 텃밭에서 기른 배추로 당원들이 직접 김장을 하기로 했다.


목요일 밤 자정 무렵 집으로 가면서 몸은 피곤했고, 다음날 일정을 생각하면 쉬어야 하지만, 이상하게 술을 안 마시면 잠이 안 올것 같았다. 여러모로 스트레스가 많았다. 취하지 않고는 버티기 힘든 시기라는  생각에 조금 취하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평소보다 더 안 취하더라.


금요일에도 일정이 많았다. 아침에 외부 회의가 있었고, 오후에도 또 외근이 있었다. 녹색당 김장 준비 때문에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퇴근해서 로컬푸드 식당으로 갔다. 헉! 낮에 끝냈거나 혹은 거의 끝나갈 줄 알았던 식당 김장(무려 300포기)가 거의 그대로 있었다. 전환마을 활동가들(대부분 녹색당 당원들)이 아침부터 열심히 일했음에도 생각보다 진도가 안 나갔다. 저녁엔 녹색당 김장(대략 30포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 10배를 해야 했다.


몇 해동안 김장을 하면서 (채칼로)무채를 썰고, 배추에 속을 넣는 일은 손에 많이 익었다. 특히 작년 녹색당 김장 이후로 무채 썰기의 달인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하지만 그날 평생 만든 무채보다 훨씬 더 많은 무채를 만들어야 했다. 게다가 채칼이 지금까지 써오던 것보다 훨씬 더 위험했다. 칼 날 수십개가 위로 삐죽 솟아 있었다. 헉! 이런 채칼은 또 난생 처음 보는구나. 나는 아주 빠른 속도로 손을 움직여 보는 이들을 깜짝 놀라게 했지만,(특히 그날 김장의 총 책임자였던 식당 주방장님은 아주 만족하시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무는 끝없이 쌓여있었다. 결국 손에 힘이 빠져 살짝 무가 겉돌면서 손을 살짝 베었다. 피가 맺히는 것이 보이자 얼른 손을 뺐다.(힘들게 썰어놓은 무채 더미에 피가 떨어지지 않도록) 다행히 상처는 별 것 아니었지만, 자꾸 피가 배어 나왔다. 


고무장갑을 구해 끼고 다시 채썰기를 시작했다. 힘도 많이 빠졌기 때문에 처음보다 속도가 많이 느려졌지만, 또 한번 다쳤기 때문에 조심하느라 더 속도가 느려졌다. 조심하느라 노력을 했는데도 그 이후 칼날에 고무장갑이 두 번 더 찢어졌다.


밤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배추에 속을 넣기 시작했다. 여럿이 달라붙어 열심히 속을 넣는데, 가만보니 활동가들과 당원들이 김장 경험이 많지 않아 보였다. 속을 배추 깊숙히 집어넣어야 하는데, 그냥 양념을 배추에 묻히고 있었다. 가까이 있는 이들에게 설명을 해줬으나,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뭐 어쩔수 없었다. 나는 조금이라도 빨리 김장을 끝내고 싶었고, 빠르게 속을 채워나갔다.


김장이 끝난 건 전날과 거의 비슷한 시간이었다. 11시 조금 넘은 시간. 그때부터 엉망이 된 식당을 청소하고 정리를 했다. 몸은 정말 지쳤건만, 빨리 청소를 끝내야 술을 마신다는 생각에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 바닥을 쓸고 닦았다. 나 자신도 깜짝 놀랐던 건 군대에서 하던 빗자루 두 개를 이용한 바닥 미싱 솜씨가 그대로 였다는 거다. 제대한 지 18년이 넘었는데 말이다.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물론 중간에 저녁 먹을 때 막걸리 몇 잔을 마시긴 했지만, 그건 본격적인 술자리가 아니었으니) 다음날에도 또 일정이 있었지만, 맘껏 술을 마시고 취했다.


토요일엔 큰 아이가 다니는 공동육아협동조합 터전 이전 때문에 새 터전 공사를 했다. 다행히 지난번보다는 부모들이 많이 나와서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난 이틀간의 300포기 김장으로 몸이 무척 힘들었고, 새벽까지 마신 술이 아직 덜 깬 상태였다. 어쨌거나 다른 부모들에게 미안하지 않도록 열심히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저녁엔 함께 힘을 쓴 아빠들과 또 술을 마셨다.


일요일 오후엔 일터에서 일을 해야 했다. 일요일이라 텅빈 사무실에 나와 혼자 일을 했다. 최근엔 거의 매주 주말마다 일이 생겼다. 터전 공사가 주말마다 있었고, 일터 행사 혹은 녹색당 행사 또는 참여하고 있는 다른 단위에서 일이 생겼다. 주말 이틀 동안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오히려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나, 정신적으로 힘든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요일 하루는 술을 쉴 생각이었다. 사흘 연속으로 술을 많이 마셨기 때문이기도 하고, 다음날 출근 때문이기도 하고, 마침 저녁에 마땅한 약속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이들을 재워놓고 웹서핑을 하고 있는데 거의 자정이 다 된 시간에 전화가 왔다. 옛 일터 후배였다. 지금은 충청도 어딘가에서 일을 하고, 가끔 주말에 본가인 서울로 올라온다. 그 전에 몇 번인가 주말에 전화가 왔었는데, 바빠서 제대로 연락도 못 받았던 게 기억났다. 녀석은 늦은 시간이지만 가볍게 한 잔 하자고 했고, 난 다음날 아침 중요한 일정이 있어 조금 부담스럽다고 했지만, 결국 한동안 못 만났던 게 미안해서 나갔다. 1시경 만나 1시간동안 적당히 먹고 헤어졌다. 확실히 술이 들어가면 술이 술을 마신다는 말이 맞는게, 나갈때만 해도 썩 술이 땡기지 않았는데, 막상 헤어지려니까 한 잔만 더 할까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녀석이 잘 끊어줘서 무리하지 않고 돌아갔다.


이번 주도 월요일부터 쉽지 않았다. 아침 일찍 중요한 미팅이 있었고, 저녁에는 간담회가 있었다. 간담회 뒤풀이에서 또 술을 잔뜩 마셨다. 다음날 아침 회의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다행히 미리 회의자료를 다 만들어뒀다.


화요일은 아침 회의로 시작해서 중요한 일이 몇 있었다. 확실히 새벽까지 술을 마셔서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다. 오후 늦게 외부 회의가 있었는데, 오후에 마쳐야 할 일을 다 끝내지 못해 늦어버렸다. 외부 회의가 끝나고 또 가볍게 술을 마셨다. 수요일은 오랜만에 아이들과 저녁을 보내면서 맛있는 걸 먹고 싶어 오리고기를 구웠다. 애들 밥을 먹이면서 난 혼자 술을 마셨다.


어제 목요일 아침엔 또 탈핵 캠페인을 나갔다. 정말 추웠다. 두껍게 입고, 장갑도 챙겼건만, 지하철 역 앞에 서 있는데 손도 시렵고, 발도 시렵고, 다리도 차가웠다. 같이 서 있던 당원은 장갑도 없이 맨 손으로 피켓을 들고 서 있는데, 너무 추워보였다.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어제도 야근을 했고, 오늘 금요일도 야근을 했다. 오늘은 저녁에 동네 작은 도서관에서 송년회를 했기 때문에 아이들을 데리고 거기 갈 생각이었는데, 퇴근 시간까지 중요한 문서를 다 끝내지 못했다.


하나하나 곱씹어보면 다 악몽같은 일정이었는데,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일은 마침내 터전 이사가 있다. 아마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몸을 써야 할 것이다. 일요일엔 일정이 세 개나 있다. 그리고 월요일부터 중요한 서류 작업이 또 시작된다. 다음 주에도 적어도 이삼일은 야근을 해야 할 것이다.


이게 사는 건가 싶은 생각이 종종 드는데, 이렇게 밤 늦게까지 일정(회의, 토론회, 간담회, 야근 그리고 김장!)을 마치고 자정 무렵이 딱 그런 시간이다. 에이! 술이나 한 잔 하고 자야겠다!
















이반 일리치 신간이 나왔다! 다음주까지 지옥같은 일정을 소화하고 나면 이 책들을 사서 읽어야지 생각했으나, 12월에도 일정이 만만치않다. 젠장! 그렇다고 1월이라고 쉽진 않을거다. 아! 우울하다. 빨리 가서 술 마시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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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8 0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08 2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5-11-28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내려오다보니 얼마나 고단한 일정을 소화하고 계신지 짐작이나마 하겠습니다. 김장 300포기라니요, 30포기도 아니고 말입니다. 맡으신 일이 워낙 여러가지이다보니 강행군을 하시게 되나봅니다. 건강하셔야할텐데요. 나이가 들어가다보니 모든 것의 결론은 건강으로 맺게되네요. 기-승-전-건강 이라고나 할까요.

감은빛 2015-12-08 20:34   좋아요 0 | URL
네, 계속 무리를 하고 있지만,
그래도 나름 건강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김장 300포기는 저로서도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단발머리 2015-11-28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정말 바쁘시군요.
16일 세월호 캠페인을 포함해서 따라 읽다보면 하나하나 허투루 할 수 없는 일들이라 너무 힘드시겠어요. 그 중에 김장 300포기 압권이예요.
채칼에 손이 베이셨다니.... 물이 안 닿아야 빨리 아뭅니다.
술은 너무 많이 드시지 마세요, 하고 싶지만,
아.... 일이 너무 고되시니 그럴 수도 없을 것 같구요.
힘내세요~~~~~~~~~~~~~~~~~~~~~~~~~~~~~~

감은빛 2015-12-08 20:36   좋아요 0 | URL
이번 주 주말까지 보내고 나면,
조금(아주 조금은) 여유가 생깁니다.
물론 연말이라 안심할 수는 없겠지만요.

염려해주신 덕분에 금방 나았습니다.
응원에 힘입어 열심히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15-11-28 1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08 2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5-11-28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며칠전 선풍기 청소하다가 날개에 스쳐서 피가 좀 났는데...완전 수선 떨었던게 창피해지는 순간이예요. 잘 지내시죠? 제가 다독다독~^^ 위로하고 응원해드릴게요. 렛츠 치어~ㄹ 업~!

감은빛 2015-12-08 20:39   좋아요 0 | URL
헉, 저는 선풍기 날개에 스쳐 다친 것이 더 아파 보이는데요.
지금쯤 다 나으셨겠죠.
저도 여러 사람들의 응원과 위로 덕분에 금방 나았습니다.

이번 주 주말까지 계속 무리한 일정을 소화해야 하지만,
양철님의 응원 덕분에 잘 마무리 할 것 같습니다!
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