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 : 녹색평론 110호  '먹고사는 문제와 인문학'에 나오는 어느 수인의 시이다. 마지막 행간의 내용은 너무나도 가슴에 와 닿는다...

어두운 밤 이 가슴 밝혀줄 빛은
머나먼 밤하늘의 별빛인 줄 알았는데
절망의 무게를 참지 못하고 침몰하는
날 일으켜 세우는 아내의 빛입니다.

삶의 아득한 허기 속에서
언제나 다가와 비추는 그녀는
내 어떤 절망에도 흩어지지 않는
깊고 따스한 아내의 빛입니다.

어디선가 날 보고 계실 그녀
따스한 별빛을 타고 그녀의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아내의 빛에 내 몸을 태우고 싶습니다.

-영등포교도소 수강생. ooo, <아내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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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미술인과 주민 손잡고
산동네를 예술공간으로 바꿔
“보존·재생 관점서 환경개선”
희망근로 활용 혜택은 주민에 

 

» 감천2동 마을 전경. 바람에 의해 움직이는 날개 작품이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는 상징물로 서 있다.  

부산 사하구 감천2동 산동네에는 해발 200~300m 산골짜기를 끼고 외부와 고립된 채 단층 또는 2~3층짜리 슬래브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줄을 지어 있다. 계단처럼 여러 겹의 층을 이룬 모습이 마치 고대 잉카 유적 마추픽추를 연상시킨다.

1950년 한국전쟁 직후 증산도에서 갈라져 나온 태극도라는 종교를 좇아 전국에서 모여든 이주민들이 형성한 이 마을은 가난해도 이웃간의 인정과 공동체 의식이 각별한 동네로 유명했다. 하지만 이 마을도 부산의 다른 산동네처럼 10여년 전부터 젊은이들이 외지로 빠져나가면서 3만명을 넘던 주민이 3분의 1로 줄고 빈집이 270여채를 넘어 동네 분위기가 침체돼 갔다.
 » ‘아트팩토리 인 다대포’가 지난해 주민들과 함께 만들어 마을 입구에 세운 민들레를 형상화 한 작품. 

이런 마을이 지난해부터 지역 미술인들이 찾아들면서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아트팩토리 인 다대포’라는 이름의 미술인 단체는 지난해 6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길섶 미술로 꾸미기’ 사업 공모에 이 마을을 대상으로 한 사업계획을 내놓아 1억원의 국비를 지원받았다. 이 단체는 이 사업비를 활용해 ‘꿈을 꾸는 부산의 마추픽추’라는 이름으로 마을 주민, 초등학생 등과 함께 10점의 조형물을 만든 뒤, 마을 산비탈 도로에 설치해 문화공간를 조성했다. 올해도 사하구청이 문화부의 ‘관광 콘텐츠 융합형’ 사업 공모에 당선된 ‘미로(美路)미로’ 프로젝트를 직접 맡아, 마을 골목길과 빈집을 되살리는 활동에 나섰다.

진영섭(52) 아트팩토리 인 다대포 대표는 “이 마을은 주택과 골목길이 수평 구조에 계단 형태를 하고 있어 앞집이 뒷집 조망권을 가리지 않고 모든 길이 서로 소통하도록 연결돼 있다”며 “주민들이 작가들의 도움을 받아 직접 작품 제작에 참여하며 문화공간을 조성해 계속 살고 싶은 마을로 바꿔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 단체는 우선 올해 부산시에서 지원받은 1억원의 사업비로 마을 빈집 5채를 사들이기로 했다. 이들 빈집을 활용해 ‘평화의 집’과 ‘어둠의 집’, ‘빛의 집’, 북카페, 갤러리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평화의 집은 이 마을을 비롯한 부산의 산동네가 한국전쟁을 계기로 형성됐다는 역사성을 담고, 어둠의 집과 빛의 집은 각각 마을을 연결하는 산비탈 도로와 골목길의 시작과 끝을 상징한다. 북카페는 마을 주민이나 관광객들이 차를 마시고 책도 읽을 수 있는 공간으로, 갤러리는 마을을 찾은 작가와 관광객들이 마을 풍경을 사진에 담아 바로 전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이 단체는 또 국비와 구비 등 1억2000만원의 사업비를 들여 빈집을 연결하는 골목길을 특색 있는 문화공간으로 가꿀 계획이다. 이를 위해 목공예와 조각, 도예 등 여러 장르의 작가들이 주민들과 함께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작품을 만들고 이를 골목길 주택가 벽에 붙이기로 했다. 또 햇볕이 잘 드는 골목길 주택가 창틀에 갖가지 꽃을 담은 화분을 걸어 놓아 화분거리도 조성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지난달부터 마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구청의 희망근로나 노인 일자리 사업 등을 통해 화분을 가꾸고 있다.
 
진 대표는 “보존과 재생이라는 관점에서 과거 부산의 모습을 보존하면서 마을 환경을 개선해 관광명소로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모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 추진을 위해 올 초에는 주민 대표 5명과 아트팩토리 인 다대포의 작가 3명, 사하구 문화예술인 대표 2명, 구청 공무원 1명 등 모두 11명이 참여하는 협의체도 꾸렸다.

주민 대표 이창호(65)씨는 “처음에는 ‘라면이나 한 상자 더 주지 문화는 무슨 문화냐’며 회의적인 주민들이 적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이런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며 “10년 정도 꾸준히 이런 사업이 지속될 수 있도록 예산 지원이 계속되면 바랄 나위가 없겠다”고 말했다. 진 대표는 “문화예술가들이 사회에서 받은 혜택을 주민들에게 돌려줌으로써 그 가치를 더욱 증폭시킬 수 있다”며 “기업들도 이윤의 사회환원 차원에서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신문 2010.4.21 부산/글·사진 신동명 기자 tms1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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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자문회의, 환경피해·안전성 우려 “재검토”
ㆍ환경영향평가 이유로 공사 차질은 처음

정부가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금강 상류에 세우려던 대덕보 건설사업이 무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환경영향평가 자문회의가 환경피해와 안전성 문제 등을 이유로 ‘사업 재검토’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4대강 사업 중 환경영향평가를 이유로 사업에 차질을 빚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환경부 금강유역환경청은 15일 “환경영향평가 자문회의가 최근 한국수자원공사가 발주한 대전 대덕구 신탄진 금강제1교 부근 대덕보 건설사업에 대한 자문회의를 열고 환경피해 등이 우려된다며 사업 재검토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금강유역환경청은 지난달 31일 대전지방국토관리청에 이 같은 자문회의의 결정 내용을 통보했다. 금강유역환경청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보 건설을 위해서는 반드시 환경영향평가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이번 자문회의의 사업 재검토 결정은 ‘대덕보 건설을 하면 안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된다”고 말했다.

자문회의는 대덕보 전면 재검토 근거로 환경피해가 가중될 수 있고 홍수철 대청댐의 방수량 증가에 따른 안전성 문제 등을 지적했다. 자문회의 관계자는 “대덕보가 예정된 대덕구 신탄진 지역은 기존 대청댐과 조정지댐 건설로 이미 안개 일수가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일조시간이 줄어드는 등 환경상 영향을 받고 있어 대덕보까지 설치되면 환경 피해가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수자원공사는 대덕보와 인근 지역을 개발해 수상레저공간으로 이용할 계획이지만 수상레저 활동이 활발한 7~9월은 홍수기와 겹쳐 인근 대청댐의 방류량이 늘어나는 시기”라며 “이 때문에 토사유입이 늘어나 친수공간으로 이용하기 부적절한 데다 방류량 증가로 안전성 문제도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대덕보 설치예정지는 대청댐의 저층수가 방류되는데 저층수는 다른 지역보다 평균 5도가 낮은 저수온대여서 수상레저 활동에 적정치 않다”고 덧붙였다.

대전환경운동연합 고은아 사무처장은 자문회의 결정에 대해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을 검토했을 때 이는 당연한 결정”이라며 “더 이상 불필요한 논쟁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사업발주처인 한국수자원공사는 대덕보 건설에 대한 포기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수자원공사 측은 “금강유역환경청의 재검토 결정에 대해 검토가 끝나지 않았다”며 “대전지방국토관리청, 대덕구청 등과 협의를 해 이달 말까지 금강유역환경청에 의견을 제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덕보는 대덕구청이 물놀이 전용보를 만들면 보트와 수상스키 등을 즐길 수 있는 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며 국토해양부에 건의해 지난해 6월 4대강 사업에 포함됐다. 이에 따라 수자원공사는 보 건설비 75억원을 포함, 550억원의 사업예산을 책정했다.

그러나 환경단체와 정치권 등에선 반경 4㎞ 안에 이미 2개의 댐이 세워져 있는 곳에 대덕보까지 설치될 경우 환경 피해 등이 우려된다며 사업 반대를 주장해 왔다.
 

경향신문 201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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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으로서의 사랑 - 친밀성의 코드화
니클라스 루만 지음, 권기돈 외 옮김 / 새물결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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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사랑의 의미론의 진화 

p.71 각주. 코드의 통일성(단위)은 역설을 함축한다. 진리라는 코드 자체를 비진리라고 지칭할 가능성, 사랑이라는 코드 자체를 증오라고 지칭할 가능성을 봉쇄할 수 없기 때문에, 진리가 진리인지 허위인지, 사랑이 사랑인지 증오인지를 확정할 수 없는 역설에 빠질 수밖에 없다. 코드화는 역설적인 코드화인 것이다. 사회의 주요한 기능체계들은 두 개의 값을 할당하는 프로그램들과 이를 운영하는 제도들을 통해 이러한 역설을 탈역설화한다. 반면에 사랑의 역설은 이런 제도들에 의지할 수 없다.

p.73 '궁정연예'와 '세련된 사랑'의 맥락에서 (문제들을) 체계화하고 집중화하는 하나의 과정이 도입되었다. 재생산은 집안에서, 연애는 집 밖에서 하는 것이라는 오래된 차이는 제거되지 않았지만 한 여인, 오직 한 여인에게만 바치는 위대한 사랑이라는 관념을 통해 변형되었다. 남자는 오직 한 여인의 호의를 얻어야 했지만 그것을 쟁취할 수는 없었고, 무엇보다 강요할 수 없었다. 에로티시즘의 지향점은 (많건 적건 여러 여성에게서가 아니라) 오직 특정한 한 여인게게만 얻을 수 있는 어떤 것이었다. ... 이성과 감각적 관능의 차이가 이제까지의 관례와 달리 첨예하지 않은 영역 .... 이 성립한다. 

사랑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이러한 최초의 집중화를 넘어선 것은 17세기이다. ... 사랑의 코드란 '단지 하나의 코드'일 뿐이며 사랑은 문학적으로 먼저 형성된, 즉 미리 규정되어 있는 감정이지 더이상 가족이나 종교와 같은 사회의 힘들의 지휘를 받는 것이 아니라느 점이 의식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자유 속에서 사랑은 자유로운 만큼 더 사랑에 고유한 의미론과 성적 향유라는 은밀한 목표에 구속된다... 

p. 74 결국 인간이 어떻게 사랑에 관여하는가라는 물음 ... 사랑의 코드의 역설화는 열정과 쾌락을 높게 평가하고 그것들이 갖는 차이에 결정적인 중요성을 부여하는 인간학을 향한 길을 열었다. 18세기는 이러한 의미론을 넘겨 받았으며, 감정의 자립성을 강조하면서 진짜 감정을 - 이제 무엇보다 중요한 일인 성적 실혐으로의 접근을 위한 - 최소한의 전제조건인 애정, 마음, 섬세함 등과 구별하는 이해방식 속에서 이런 의미론을 보충해나갔다. 

p. 75 열정으로서의 사랑이라는 역설적인 코드화에는 도덕 감정에 대한 강조가 뒤따르며 ... 

05. 사랑에의 자유 - 이상에서 역설로

p.79 사랑은 사랑을 끌어당기는 대상의 완전함에서 사랑 고유의 정당서을 발견한다. 따라서 사랑은 완벽함을 추구하는 이념, 즉 그 이념이 (사랑하는) 대상의 완벽함에서 도출되는 이념이며, 그러한 대상의 완벽함 때문에 거의 어찌할 수 없는 일이고, 그러 한에서 '수난'이었다. 

p.80 성적 사랑은 정신적 사랑에 의해 자신을 넘어서는 형식을 갖게 된다. 그래서 사랑은 언제나 초세속적 대상들을 통해 고양되어야 한다는 속박을 받게 된다. 

p.81 프랑스에서는 여성에게 보다 자유로운 사회적 지위가 주어졌고, 여성이 자기의 일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마련되었다. 이로부터 '요조숙녀'와 '요부'의 구별이 나오게 된다. 전자는 언제나 '아니오'라고, 후자는 언제나 '네'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요조숙녀(값비싼 것)가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목표가 된다. 어쨌거나 결정의 자유가 전제되어 있다 "자유가 사랑의 본질"인 것이다. 

p.82 자기의 욕망 자체 말고 다른 무엇으로도 정당화할 필요가 없게 된다. 사랑받는 인격에 내재한다고 여겨졌던 완벽함은 떨어져 나가고, 완벽함에 대한 숭배는 퇴보하며 ... 사랑을 선택할 자유는 환상을 만들어내는 것에 힘입어 관철되며 ... 사랑의 관계에 뛰어들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양측이 가진 자유인 *'이중의 우연성'의 독립분화는 하나의 특별한 의미론의 발전을 자극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네가 한다면, 나는 네가 원하는 것을 한다"는 이중적으로 우연적인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각각의 관여자가 가진 우연성이란 선택의 자유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소통 체계는 이러한 이중의 우연성으로부터 어떤 기대 구조가 창발할 때만 성립할 수 있다. 

p.83 사랑은 더이상 청혼할 수도 없고 결혼할 수도 없는 인격들의 일이 되었다. 

p.84 참을 수 없는 현학성이 생겨나 그에 대한 조롱이 일어난다. 

p.86 요조숙녀와 요부라는 유형 대립에서 이미 간파할 수 있듯이, 자유는 주로 사랑을 얻으려는 노력과 그에 대한 저항에 국한되어 관심을 끌었다. ... 사랑의 처방전은 마치 유혹을 위한 확실한 수단이 있는 듯 쓰고 있지만, '네' 혹은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도 전제하고 있다. 

p.88-89 역설들은 체계화하는 힘을 가진 기법임이 증명된다. 그리고 체계화된 행동에 대한 비개연적인 요구도 안정성을 얻을 수 있게 해주는 형식이다. ... 연인들은 이를테면 '강요된 선택' 모델이나 타협할 수 없는 양자택일에 직면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역설은 친밀관계에서 파트너를 향할 수밖에 없는 기대의 층위와 관련을 맺는다. 그리고 사랑은 이 모든 기대가 그럼에도 충족될 수 있다는 점을 상징한다. ... 합리성을 높이 평가하고 논리를 건전한 것으로 간주하는 문화에서 역설적인 동기유발은 병리적 관점에서 파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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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의 글쓰기

덴마크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1813~1855)는 자신이 글 쓰는 사람이 되는 데 두 가지 조건이 기여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하나는 정신적 조건이고 다른 하나는 물질적 조건이다. 극심한 우울증을 앓지 않았다면, 그는 글 쓰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물려받은 재산이 허락한 여유가 없었다면, 그는 글만 쓰면서 살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이 점을 솔직히 인정한다. 이 점에서 현실적 궁핍을 견디며 진정한 정신생활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사람들과 비교해 보면 나는 극히 보잘것없는 사람이다.” 키르케고르의 이 겸사는 문인 혹은 작가의 삶이 돈이라는 조건을 떠나 지속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역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올해 초 정부가 지원금 3400만원을 미끼로 삼아 한국작가회의에 ‘불법 시위 불참 확인서’를 제출하라고 했을 때, 키르케고르의 이 고백이 떠올랐다. 돈의 지배에 맞서 싸우는 것이 작가의 소명이겠지만, 돈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이 작가의 삶의 조건이기도 하다. 이 삶의 원초적 조건을 흔들어 정신을 순치시키려 든다면, 그것은 문학을 모독하는 짓이다. 이 모독적 처사에 맞서 작가들이 ‘저항의 글쓰기 실천위원회’를 만든 것은 당연한 일이다.

키르케고르가 앓았던 우울증이란 말하자면 삶을 짓누르는 온갖 정신적 고통의 통칭일 것이다. 그 고통이 없다면 문학적 창조도 없다. 키르케고르는 창조를 낳는 그 고통을 ‘시칠리아의 암소’의 고통에 비유하기도 했다. 시칠리아의 암소는 기원전 6세기 시칠리아의 참주 팔라리스가 만든 암소 모양의 청동 고문도구를 말한다. 그 암소 안에 사람을 가둬 불을 지피면 폭군의 귀에는 희생자의 울부짖음이 아름다운 소리로 들렸다고 한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첫머리에서 키르케고르는 “시인이란 어떤 존재인가?” 하고 물은 뒤 시칠리아 암소의 고문에 빗대 이렇게 말한다. “격렬한 고통을 가슴속에 품고 있지만 탄식과 비명이 입술을 빠져나올 때는 아름다운 음악으로 들리는 불행한 사람이 시인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시도 본질은 고통이다. 시인의 고통은 다른 말로 하면, 세계의 고통이다. 이 세계가 아프지 않다면, 시인의 아픔은 아무런 공감도 얻지 못할 것이다. 얼마 전 작가들이 ‘저항의 글쓰기 실천’의 하나로 ‘4대강 살리기’라는 이름의 ‘생태 고문’ 현장을 찾아가 그 고통의 소리를 청취했다. 포클레인과 불도저로 된 그 시칠리아 암소 앞에서 시인들의 통증 어린 말들이 퍼졌다. “강이 아픕니다. 우리도 함께 아프겠습니다.”

독일 문예비평가 발터 베냐민(1892~1940)은 우울의 깊이로 치면 키르케고르에게 뒤지지 않았다. 파시즘을 맹렬히 비판했던 그는 나치를 피해 피레네 산맥을 넘던 중 삶을 마쳤다. 친구 브레히트가 쓴 시구를 빌리면, “추적에 지쳐 육신을 눕히고는 다시는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그 마지막 해에 삶을 정리하듯 쓴 최후의 글이 ‘역사철학 테제’다. 그는 거기서 <새로운 천사>라는 파울 클레의 그림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림 속에서는 난폭한 바람이 미친 듯이 불어댄다. 그 바람을 맞으며 천사가 서 있다. 작은 날개를 편 채 미친 바람 앞에서 버티는 천사. 천사는 뒤로 떠밀리면서도 끝까지 저항한다. 광풍을 이길 자신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저항하지 않을 도리가 없어서 저항하는 것이다. 진군하는 이 시대 불도저 앞에서 작가들의 글쓰기는 천사의 날갯짓처럼 허약해 보인다. 그러나 천사가 꼭 패배하란 법은 없다. 같은 글에서 베냐민은 메시아는 온다고, “적그리스도를 이겨내며” 온다고 속삭인다.


한겨레신문 2010.4.15 고명섭 책·지성팀장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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