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가능성의 우주들 - 다중우주의 비밀을 양자역학으로 파헤치다
로라 머시니-호턴 지음, 박초월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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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점  ★★★★☆  A





우주는 처음에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과학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든 과학에 별 흥미 없는 사람이든 이구동성으로 우주는 빅뱅(Big Bang)’으로 시작되었다고 말할 것이다. 빅뱅, 즉 대폭발이 일어나기 직전 우주의 모습은 특이점(singularity)이었다. 모든 물질이 모여 있는 특이점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면서 우주가 팽창하기 시작했다. 우주는 지금도 커지는 중이다.


그런데 우주의 시작점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견해들이 주목받고 있다.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인 로저 펜로즈(Roger Penrose)빅뱅이 일어나서 현재 우주가 될 확률을 계산했다. 그가 내놓은 확률값은 놀랍게도 거의 0에 가깝다! 펜로즈는 우주가 태어나면서 점점 커지는 상태가 과거에 일어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정말로 운좋게 우주가 생겼어도 결국 우리는 우주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절대로 알 수 없다.


우주의 기원을 확인하기가 어려워도 여전히 과학자들은 입을 꾹 다문 채 자신의 출생 비밀을 철저히 숨기는 우주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기존 견해를 회의적으로 접근하며 그것이 타당한지 검증한다. 새로운 가설을 제시하는 일에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동료 과학자들의 반박과 비판을 받아들이는 일을 선호한다. 과학자들도 인간인지라 익숙한 것과 거리를 두면서 연구하는 것을 낯설어한다. 이미 검증된 이론을 지지하는 과학자들은 안정적인 우주론을 선호한다. ‘안정적인 우주론은 모든 과학자가 옳다고 인정한 법칙만으로 우주의 기원과 구조를 설명하는 이론을 뜻한다. 안정적인 우주론의 대표적인 예가 단일우주론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우주는 단 하나뿐이다반면 다중우주론은 불안정한 우주론이다. 단일우주론 지지자가 아니더라도 대부분 과학자는 검증되지 않은 가설을 이론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주 너머에 또 다른 우주가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단일우주론 지지자는 다중우주론을 SF에 나올법한 이야기로 치부한다.


알바니아 출신의 이론물리학자 로라 머시니-호턴(Laura Mersini Houghton)은 다중우주론 지지자다. 그녀는 양자역학을 이용해 현재 우주가 다중우주의 일부인지를 설명한다우주의 기원을 추적하는 과정을 보여준 그녀의 책 ‘Before The Big Bang(원서는 2022년 출간)’무한한 가능성의 우주들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호턴은 우주론에 흥미를 느끼는 독자뿐만 아니라 단일우주론을 지지하는 독자 또는 과학자들에게 자신이 왜 다중우주론을 주장하는지 친절하게 설명한다. 무한한 가능성의 우주들은 정말로 보기 드문 친절한 과학책이다.


저자는 처음부터 다중우주론을 설명하지 않는다. 먼저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등장하게 된 배경을 설명한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중력의 실체를 제대로 보여준 이론이다. 그동안 중력은 물질을 움직이게 만드는 으로만 인식됐는데, 일반상대성이론이 알려준 중력은 휘어진 공간이다.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양자는 입자와 파동 상태로 동시에 존재한다. 심지어 입자였다가 파동으로, 또 파동이었다가 입자로 변하기도 한다. 이러면 아무리 뛰어난 관측 기술이 있다고 해도 양자 상태를 확실하게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양자의 속도가 어느 정도인지, 또 양자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덕분에 과학자들은 우주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었고, 우주론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저자는 끈 이론(string theory)평행우주론(Parallel Universe)과 같은 불안정한 우주론의 특징과 한계를 설명한다. 과거에 주목받은 여러 우주론의 단점을 보완한 것이 바로 저자가 제안한 양자 경관 다중우주론이다저자가 생각하는 양자 다중우주는 여러 갈래로 된 파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파동을 함수로 표현하면 여러 우주가 탄생할 확률은 모두 0이 아니라 제각각 다른 확률이 나온다. 양자 다중우주 속에 우주가 탄생할 확률이 0인 우주와, 0이 아닌 우주가 있는 것이다이 우주론 역시 완벽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불안정한 우주론에 속한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만만하다. 양자 다중우주론의 단점을 명확히 알고 있으면서도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이유를 알려준다. 저자는 계산과 관측 자료를 근거로 내세워 다중우주론이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기에 적절한 이론’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양자 다중우주론의 타당성을 근거로 내세워 우주의 탄생을 불가능하다고 본 펜로즈의 계산 결과가 틀렸음을 밝힌다.


불안정한 우주론은 연구할 가치가 없는 이론이 아니다. 결과가 어떻든 간에 계속 연구해야 할 이론이다. 안정적인 우주론은 완전히 닫힌 상태. 닫힌 상태를 유지하는 이론은 겉으로 보기에 편안해 보여도 예측하지 못한 변수를 설명하지도 못한다. 닫힌 마음의 과학자들은 새로운 주장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반면 불안정한 우주론은 열린 상태. 열린 상태의 이론을 연구하는 열린 마음의 과학자들은 검증받는 일을 좋아한다. 동료 과학자들의 외면과 무관심은 가설이 이론으로 발전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가설이 이론이 되지 못한 것을 실패한 결과가 아닌 배우는 과정으로 바라본다. 열린 마음의 과학자는 넘어져도 아쉬움을 툴툴 털어 버리고 다시 연구를 시작한다.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도 사실 세상에 처음 공개될 당시에 불안정한 이론이었다. 두 이론을 지지한 과학자들은 주류 이론에 과감히 도전한 열린 마음의 과학자였다재미있게도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오랫동안 과학계를 군림해 온 뉴턴(Isaac Newton) 고전역학을 뒤집는 일반상대성이론을 주장한 열린 마음의 과학자였다. 하지만 우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예측할 수 없다고 보는 양자역학 앞에서는 닫힌 마음의 과학자가 되었다아인슈타인을 모순적인 과학자라고 비난하는 것은 부당하다. 이게 우리가 알아야 할 진짜 과학자의 모습이다. 과학자는 세상의 이치를 완벽하게 설명할 줄 아는 천재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적인 과학자는 모순적이라서 친근하다. 과학자는 끈질기게 연구해서 기존 이론에 도전하는 용기를 가졌으면서도 때로는 친숙한 이론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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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Me)



No. 5











<Kim Yun Shin>

장소: 국제갤러리

전시 시간: 2024319~ 2024428

2024427일 토요일 오전 10시경에 만남.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서로 다른 둘이 만나면 하나가 되고, 하나는 다시 둘이 된다동양고전에 나올 법한 이 여덟 글자는 조각가 김윤신의 연작 제목이다김윤신은 1970년대부터 <합이합일 분이분일> 연작 조각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조각 작품의 재료는 오래되고 못생겨서 쓸모없는 나무다. 작가는 전기톱으로 나무를 잘라서 작품을 만든다합이합일은 작가와 조각 재료인 나무가 하나가 된 상태다. 작가는 나무를 자르고 쪼갠다. ‘분이는 나무는 작가의 톱질에 분해되는 과정이다. ‘분일은 새로운 형태의 작품이다.


 

















* 후지하라 다쓰시, 박성관 옮김 분해의 철학: 부패와 발효를 생각한다(사월의책, 2022)





합일합이 분이분일은 자연계의 모든 물질이 순환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서로 다른 재료를 조합하면 새로운 물건이 완성된다(합일합이).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물건의 상태는 변하고물건의 품질이 떨어지면서 분해된다(분이분일).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분해는 상당히 어두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부정적인 현상이다. 모든 존재가 분해되면 갈라지고, 부서지고, 썩어가고, 파괴되고, 쓸모없는 상태가 된다한마디로 말하면 사물이 분해되면 쓰레기가 된다하지만 생태학 관점에서 바라보는 분해는 긍정적인 현상이다. 분해된 것은 망가진 것도, 쓸모없는 쓰레기도 아니다. 언제든지 재사용하거나 재활용할 수 있다분해돼서 남은 자연의 여분은 새로운 사물 또는 생명체가 탄생하는 데 이바지한다.


환경사를 전공한 일본의 철학자 후지하라 다쓰시(藤原辰史)분해의 철학에서 돈이 되는 사물을 만들어서 생산하는 사회덧셈과 곱셈의 세계로 비유한다. 하지만 모든 것은 분해되고 부패해서 쓰레기가 되거나 완전히 소멸한다. 분해가 일어나는 세계는 뺄셈과 나눗셈의 세계.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 2002-789 (2002년, 맨 왼쪽)

합이합일 분이분일 2002-790 (2002)

합이합일 분이분일 2016-3 (2016)

합이합일 분이분일 1978 (1978년, 맨 오른쪽)




후지하라 다쓰시는 부패가 더 미적이고 더 역동적인 작용(분해의 철학》 51)’이라고 말한다<합이합일 분이분일> 나무 조각 연작은 생태학적 조각이다. 작가의 나무 조각에 분해와 재생이 새겨져 있다. 못 쓰는 나무는 자연적으로 부패하거나 인간에 의해 분해돼서 생긴 부산물이다. 작가를 만난 죽은 나무 조각들은 살아있는 조각품으로 다시 태어난다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 2019-14

2019

 




지난달 4월에 종료된 국제갤러리의 김윤신 개인전에 톱으로 자른 나무 조각들을 쌓아 올려서 만든 목재 조각 작품색을 입힌 나무 조각들을 이어 붙인 작품들이 공개되었다(회화 작품도 전시되었다). 하지만 작가의 목재 조각 작품 재료에 나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합이합일 분이분일 2019-14>의 재료는 폐목과 못이다


















* 프랜시스 마르탱, 박유형 옮김 숲 아래서: 나무와 버섯의 조용한 동맹이 시작되는 곳(돌배나무, 2022)


* 멀린 셸드레이크, 김은영 옮김 《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균이 만드는 지구 생태계의 경이로움》 (아날로그, 2021)




나무 조각에 박힌 못은 마치 썩은 나무에 자란 버섯 또는 균류(菌類)를 연상시킨다버섯은 죽은 나무에 무리를 지어 자라며 죽은 나무의 영양분을 먹는다. 버섯은 균류에 속하는데, 균류는 동물도 식물도 아닌 독립된 생물군()으로 분류한다. 균류는 생태계에서 아주 중요한 일을 한다. 바로 부패. 균류는 죽은 나무와 동물의 사체에 있는 영양분을 흡수한다. 분해와 부패를 일으키는 균류는 무기질과 같은 여러 화학물질을 만든다. 무기질을 만드는 균류 덕분에 흙은 비옥해지고, 새로운 식물이 흙의 영양분을 먹으면서 자란다. 균류가 없으면 지구는 사람이 버려서 썩지 않는 쓰레기와 자연이 남긴 쓰레기(썩지 않은 동물 사체와 죽은 식물)가 흘러넘치는, 아주 지저분한 별이 되고 만다최근에 식물학자들은 지구 생태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나무와 버섯 또는 균류의 공생 관계를 주목한다.


김윤신의 목재 조각 작품은 ()든 탑이다. 하지만 목재 조각 작품 또한 시간의 흐름과 오직 무질서로 향하는 엔트로피(entropy)의 보이지 않는 힘을 피할 수 없다. 목재 조각 작품을 제대로 보존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분해되고, 파괴될 것이다(목재 조각 작품은 불에 약하다). 작품이 해체되는 과정은 작품 제목인 <합이합일 분이분일>분이분일에 해당한다. 가수의 운명이 가수가 직접 부른 노래 제목에 따라가듯이, 김윤신의 목재 조각 작품은 <합이합일 분이분일>이라는 제목을 따라간다. 합쳐진 둘이 분해되면 하나가 되지만, 이 하나마저 분해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완전히 소멸되는 상태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가 맞이하게 될 진정한 ()’이다()든 탑은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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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1

헌사

 


틈만 나면 내게 금정연정지돈의 글이 재미있다고 알려준 서한용 씨에게

오늘, 이 글이 태어날 수 있게 내 옆에서 여러 번 도움을 준 

산파 서한용 씨에게.





Scene 2

루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정지돈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이 아닌: 서울과 파리를 걸으며 생각한 것들(문학동네, 2021)

 

* 장 자크 루소, 문경자 옮김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문학동네, 2016)




토요일과 일요일, 나는 혼자였다. 정지돈은 산문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이 아닌>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의 첫 문장을 인용했다.



 마침내 나는 이제 이 세상에서 나 자신 말고는 형제도, 이웃도, 친구도, 교제할 사람도 없는 외톨이가 되었다. 인간들 중에서도 가장 사교적이고 정이 많은 내가 만장일치로 인간 사회에서 쫓겨난 것이다.

 

(장 자크 루소, 문경자 옮김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첫 번째 산책중에서, 7)



마침내 나는 주말 외톨이가 되었다. 그렇지만 루소처럼 만장일치로 인간 사회에서 쫓겨난 외톨이는 아니다. 나는 루소와 반대로 사교적이지 않다. 어렸을 때부터 사교적이지 않아서 외톨이로 지낸 시간이 많았다. 책을 읽으면서 홀로가 된 시간을 보냈다


토요일, 오랜만에 두류도서관까지 걸어서 갔다. 걸어서 책의 세계 속으로. 루소가 산책하는 심정으로 루소의 뿔처럼 혼자서 갔다.





Scene 3

나는 왜 쉬는 날에 일기를 쓰는가

 















* 조지 오웰, 이한중 옮김 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 에세이(한겨레출판, 2010


이 책은 오래전에 내가 활동했던 알라딘 신간 도서 평가단선정 도서. 출판사는 홍보 목적으로 알라딘 신간 도서 평가단 정회원들에게 책을 무료로 제공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은 정회원은 정해진 기간 안에 서평을 써야 했다. 



그러게‥…? 내가 봐도 이상하. 평소에 안 쓰던 일기를 노동절에 썼고, 어린이날을 삼켜서 더욱더 빨개진 주말에 두 번째 일기를 쓰게 됐다. 이건 뭐, 주말 부부도 아니고‥…. 이런, 결혼하지 않아서 내가 주말 외톨이였구나. 부인(婦人)이 없다는 사실을 부인(否認)하지 않겠다.





Scene 4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책

















* 정지돈 브레이브 뉴 휴먼(은행나무, 2024)


금정연 매일 쓸 것뭐라도 쓸 것마치 세상이 나를 좋아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북트리거, 2024)



 

정지돈의 신작 장편소설 브레이브 뉴 휴먼을 금요일 밤부터 읽기 시작했다. 책의 겉모습이 얇다. 나는 토요일이 된 새벽에 작은 책을 다 읽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예상이 빗나갔다.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책은, 읽고 싶은 책을 여러 권 부르게 하는 힘을 지닌 한 권의 책이다한마디로 표현하면,책 속에 책이다. 이런 책들을 너무 많이 만나는 바람에 내가 책을 많이 샀지브레이브 뉴 휴먼은 무시무시한 마력을 가진 책 속에 책이다. 소설을 읽다가 다른 책들이 내 눈앞에 한두 권씩 나타났다. 내 눈앞에 얼쩡거리는 책들을 찾기 위해 소설 읽기를 멈추고, 책 탑을 허물기 시작했다한밤중에 책 정리 시작. 책 정리는 읽고 싶은 책을 찾기 시작하면 해야 하는 나만의 노동이다(내가 쓴 노동절 일기참조).


다행히 내가 원하던 책들을 찾았다. 하지만 재회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는다. 책 탑을 다시 세워야 한다. 책 탑을 새로 쌓는 속도는 더디다. 왜냐하면 책 탑을 쌓다가 예전에 찾지 못했던 책을 만나기 때문이다. 왜 하필이면 지금이냐고. 나중에 읽어야 할 책들은 되도록 내 눈에 띌 수 있는 곳에 배치한다. 이러면 정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책 많이) 사서 고생하는 나책 많이 사서 후회하는 금정연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책장에 새 책을 둘 자리가 없어서 한참 노려보다가 그냥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왜 맨날 책이 너무 많다고 불평하면서 또 책을 사는 걸까? 마조히스트인가?

 

(금정연매일 쓸 것뭐라도 쓸 것》 68일 일기 중에서, 93~94)

 





Scene 5

책이 없으면 서점으로

 


올해 일요일은 우리에게 정말 소중한 휴일인 어린이날을 삼켰다. 그래도 일요일이 양심이 있는지 더 쉬고 싶은 우리를 위해 빨간 월요일을 뱉어냈다. 하지만 완전 공휴일이 된 일요일과 붉게 변한 월요일에 도서관은 문을 열지 않는다. 이날에 도서관이 열려 있으면 보고 싶은 책들을 빌릴 수 있을 텐데. 되도록 책을 안 사고 싶었는데. 결국 서점에 가서 책을 사기로 했다.



















* 쥘 베른, 김남주 옮김 20세기 파리(알마, 2022)

 

* [절판, No Image] 쥘 베른, 김남주 옮김 20세기 파리(한림원, 1994

※ 검색하면 역자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서점에 구매한 책은 딱 한 권이다. 휴, 정말 다행이다. 내가 산 책은 쥘 베른(Jules Verne) 사후에 발표된 소설 20세기 파리. 나는 오래전에 나온 20세기 파리를 가지고 있다. 10년 전에 나온 책이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대구 헌책방에서 만났다







20세기 파리는 한동안 절판된 책이었다가 2022년에 새로운 출판사를 만나서 다시 태어났다. 절판된 20세기 파리》의 번역가 김남주가 새 책의 번역을 맡았. 절판본과 새 책의 문장을 비교해 봤는데 역자가 문장을 새로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022년에 출간된 20세기 파리를 구매한 이유는 이 책에 정지돈의 단편 소설 언리얼 퓨처: 22세기 서울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쥘 베른의 20세기 파리》를 패러디한 이 단편 소설의 주제는 인공 자궁과 가족 제도이다언리얼 퓨처: 22세기 서울』은 인공 자궁 기술이 허용된 미래 사회를 그린브레이브 뉴 휴먼이 나오기 전에 발표된 소설이라서 내용이 무척 궁금했다


20세기 파리전자책이 있는데도 종이책을 샀다. 궁색한 변명을 하자면 내가 좋아하는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20세기 파리 ‘SF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필요한 책이라고 평가했다. 레이가 말한 은 전자책이 아니라 종이책이겠지.





Scene 6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일기















 


* 강지희, 김신회, 정지돈 외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산문(한겨레출판, 2022)








비가 내린 일요일. 집 근처 콩나물국밥 전문 식당에 가서 콩나물이 든 잔치국수부추전 먹었다. 마신 음료는 막걸리다. 





Scene 7

지돈 일기! 어때요?



53일에 쓴 금정연의 일기유튜브를 하기로 결심한 정지돈과 주고받은 대화가 나온다. 금정연은 정지돈을 위해 유튜브 이름을 지어준다.

 



지돈티비! 어때요?”

지돈 씨가 한숨인지 분노인지 모를 것을 내뱉었다.

‥…

내가 재빨리 덧붙였다.

지식이 돈이 되는 지돈티비.”

그러자 지돈 씨가 말했다.

, 그건 좋은데‥…


(금정연매일 쓸 것뭐라도 쓸 것》 5월 3일 일기 중에서, 209)

 

 

내가 쓴 일기의 다른 제목 지돈 일기지식이 돈이 되는 일기가 아니다지돈 일기는 내가 주말에 지출한 돈’을 어디에 썼는지 공개한 일기다. 혼자서 책 사고, 혼자서 밥 먹고 쓴 일. 



이 글의 주인공은 토요일에 산책한 나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산 책들이다.

 

(내가) 산책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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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5-06 18: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밌는데? ㅎㅎ 난 알고 있었다. 너 휴일이면 일기 쓰는 거. 휴일이나돼야 너의 근황을 알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
두번째 사진 서점같다. 책 좋아하는 죄지 뭐. ㅋ
근데 설마 혼자 먹었던 건 아니지? 막걸리 먹어 본지가 삼백만 년쯤된 것 같다. ㅠ

cyrus 2024-05-13 06:18   좋아요 1 | URL
그날 국수 혼자 먹은 거예요. 주말에 카페에서 책 읽거나 글을 쓰면 식사는 밖에서 해결해요. 그래야 능률을 올릴 수 있거든요. 글을 써야 한다면 밥만 먹고요, 책을 읽어야 한다면 낮술을 마셔요. 그날 몸 상태와 작업 방식에 따라 메뉴와 음료가 달라요. 글을 제대로 쓰는 날이면(이때, 집중력이 높아진 상태예요.) 식사 한 끼 거를 때가 있어요. ^^;;

서니데이 2024-05-07 06: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어린이날 연휴 잘 보내셨나요.
이번 연휴에 금정연 작가의 신작을 선물받아서 읽었는데, 오늘 cyrus님의 글 속에서 인용된 부분을 읽으니 반갑네요. 연휴에 비가 오는 날 맛있는 음식 드셨군요. 사진만 보아도 따뜻하고 좋을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cyrus 2024-05-13 06:19   좋아요 0 | URL
연휴 잘 보냈어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평일보다 많이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

북깨비 2024-05-09 0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야말로 무서운 리뷰입니다 😭 대체 책을 몇권을 더 사고 싶게 만드나요!?

cyrus 2024-05-13 06:25   좋아요 2 | URL
책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 한 명만 알고 지내면 무서울 정도로 ‘책 과소비’를 하게 돼요. 그 사람이 추천한 책을 사서 읽었는데, 하필 그 책 속에 언급된 책들마저 좋아하게 되면... 어휴.. 생각만 해도 무섭네요. ㅎㅎㅎㅎ
 
브레이브 뉴 휴먼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17
정지돈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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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ve New Human》, 슐라미스 파이어스톤(Shulamith Firestone) 소설, 정지돈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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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자연사 - 협력과 경쟁, 진화의 역사
마크 버트니스 지음, 조은영 옮김 / 까치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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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표준국어대사전은 자연사(natural history)인류가 나타나기 이전 자연의 발전이나 인간 이외의 자연 발전의 역사라고 설명한다. 자연사의 사전적 의미에 인간 생존의 역사, 인류사가 빠져 있다. 자연사와 인류사는 서로 반대되는 의미가 있는 한 쌍의 단어로 느껴진다. 하지만 인간을 자연 세계의 일부로 이해한다면 자연사와 인류사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져야 한다.

 

두 발로 제대로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인간은 자연을 마음껏 쓸 수 있는 공짜 자원으로 활용했다. 자연을 개발 대상으로 인식한 인간중심주의가 득세하면서 자연 파괴 문제가 심각해졌다. 진화론에 심취한 지식인들은 인류의 문명, 특히 서양 문명이 진보의 정점에 있다고 착각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자연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원칙이 작동된 무한경쟁 세계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보다 열등한 자연을 얼마든지 이용하고 정복할 수 있게 되고, 자연이 있던 자리에 문명을 세운다. 인간의 자연 지배를 정당화한 문명사는 자연을 배제한 인류사.


문명의 자연사: 협력과 경쟁, 진화의 역사는 문명을 만든 인간을 치켜세우며 자연을 배제한 인류사를 거부한다. ‘인류가 나타나기 이전 자연만 바라보는 자연사와 인류사를 명확하게 구분해서 보는 관점도 따르지 않는다자연사를 논할 때 인류가 나타나기 이전 자연의 발전에 지나치게 쏠린 채 바라보면 인간은 지구에 민폐만 끼치는 동물로 비친다. 맞는 사실이지만, 자연을 약탈하는 인간의 폐해만 강조하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문명을 만든 인간의 능력이 간과된다이 책을 쓴 생태학자 마크 버트니스(Mark Bertness)는 자연사와 인류사를 서로 얽혀 있는 관계로 본다. 인간을 자연 속의 일부로 보는 문명의 자연사인간과 자연이 공생하고 경쟁하는 관계로 엮어진 지구사.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어느 하나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다. 자연과 인간은 서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살아온 집합체다. 






<cyrus가 쓴 주석과 정오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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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이유





* 54

 




폴 에얼릭 파울 에를리히(Paul Ehrlich) [주]




* 뒤표지







[]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폴 에얼릭(1854~1915)인간의 본성()(이마고, 2008)의 저자이자 이 책의 추천사(책 뒤표지)를 쓴 미국의 생물학자 폴 에얼릭(Paul R. Ehrlich, 1932~ )과 동명이인이다. 인간의 본성()을 쓴 생물학자는 1964년에 자신의 논문에 공진화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노벨상을 받은 폴 에얼릭은 독일 사람이다. 그러므로 ‘Paul Ehrlich’를 영어식이 아닌 독일어식으로 표기하면 파울 에를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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