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다가 이혼할 뻔
엔조 도.다나베 세이아 지음, 박제이.구수영 옮김 / 정은문고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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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각각 다른 공간에서 살던 남녀를 하나의 공간으로 합쳐 놓는다. 사람만 결합하는 게 아니다. 남자가 수집한 피겨(figure)는 공동의 공간으로 오고, 여자와 함께 살던 반려동물이 이사 온다. 취미가 같은 사람들의 경우엔 어떨까. 둘 다 작가인 남편 엔조 도와 아내 다나베 세이아는 독서를 좋아하는 부부이다. 결혼하면서 각각 소장하고 있던 책을 모두 공동의 공간으로 가져왔다. 그러나 책은 부부의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서로 완전히 다른 독서 취향이 문제가 된 것이다.

 

 

독서 취향이 전혀 맞지 않는다. 타니스 리의 은빛 연인이란 소설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인데 남편에게 읽으라고 추천해봤지만 표지 일러스트만 보는 등 마는 등하더니 얼렁뚱땅 넘겨버렸다. 용서 못 해! (다나베 세이아, 14쪽 각주)

 

 

아내는 괴담, 도시 전설, 환상 괴기 소설 등을 선호한다. 반면 남편은 순수문학, 과학, 역사, 인문학 등 제목만 봐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분야의 책들을 읽는다. 남편은 괴담, 도시 전설을 잘 믿지 않는다. 아내가 괴담과 도시 전설 등을 모을 때마다 싸늘한 눈빛을 보낸다. 부부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부부 교환 독서를 시작한다. 부부는 번갈아 가며 상대에게 권하고 싶은 책 한 권을 정한다. 상대가 권한 책을 읽고 서평을 쓴다. 책 읽다가 이혼할 뻔(정은문고, 2018)은 책 읽는 부부가 서평을 주고받으면서 부부 싸움 하는 과정을 엮은 책이다. 서평으로 부부 싸움을 하다니. 이 말이 선뜻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부부는 책을 읽고, 서평을 쓰면서 부부 싸움을 하고 있다. 이 책의 제사(題詞)는 부부 교환 독서가 지향하는 바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 글은 부부가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

서로에게 책을 추천해온 격투의 궤적이다.

 

 

책 읽다가 이혼할 뻔은 부부가 공동으로 집필한 서평집이 아니다. 극과 극으로 나뉘는 독서 취향을 둘러싼 전쟁의 경과를 기록한 책이다. 남편은 무서운 그림을 싫어한다. 남편의 말에 따르면 무서운 표지의 책이 눈에 띄지 않게 딴 곳에 숨기거나 책을 뒤집어 놓는다고 한다. 남편이 스스로 폭로(요샛말로 자폭이라고 한다)한 약점을 파악한 아내는 서평 말미에 남편에게 가벼운 선전포고를 날린다.

 

 

이전 연재에서 남편은 표지가 무서운 책이 싫다고 폭로한 바 있다. 그렇다면 내가 아는 한 가장 무서운 표지의 책을 골라야지. 참고로 현재 남편은 아파서 이불 안에서 끙끙거리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읽는 쿠조(스티븐 킹의 소설-cyrus )는 또 다른 맛이 있지 않을까. (다나베 세이아, 43)

 

 

부부는 상대의 독서 취향에 볼멘소리하는 전쟁 같은 글쓰기로 서평을 연재하기 시작한다. 특히 서평 본문 밑에 부부가 각주를 달면서 아웅다웅하는 모습이 이 책의 백미. 그러나 어차피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 부부 교환 독서의 목적은 상대를 이해하기. 부부에게 책은 자신의 분신이다. 부부는 애지중지하게 여기면서 읽은 분신과 같은 책을 서로 바꿔 읽는다면 서로를 더 잘 이해할 거로 믿는다. 릴레이 서평이 거듭될수록 부부는 함께 살면서 알지 못했던 상대의 새로운 면을 조금씩 확인한다. 아내는 친분이 있는 편집장으로부터 처음으로 남편이 닭똥집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는 남편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살아왔다는 사실에 적잖이 당황스러워한다. 그녀는 복잡한 감정을 서평에 솔직하게 드러낸다.

 

 

남편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자신이 없어졌다. 그런 관계라고 생각한 건 나뿐인가. 결혼식 피로연 때 한 편집자의 엔조 씨 하면 닭똥집을 좋아하는 분으로…‥라는 말을 듣고서야 남편이 닭똥집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으니, 어쩌면 남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지도. 이 연재로 부부 사이가 나빠졌다는 것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때때로 남편은 아무 말 없이 기분이 나빠져 있는데, 그것도 분명 원인이 있겠지. 아무튼 되도록 빠른 시일 내 사과해야겠다. 미안해. (다나베 세이아, 87)

 

 

각자 오랜 취향에 익숙했던 두 사람에게 이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공통의 취미를 가진 사람들의 결합은 마이너스보다는 플러스가 많은 법이다. 부부는 상대의 취향을 이해하기보다는 인정한다. 직업이 같고, 취미도 같은 부부도 여느 부부와 다를 것 없이 크고 작은 갈등이 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결혼으로 맺어진 부부는 안 통하는 것이 정상이다. 공통의 취미만으로 서로를 사랑하면서 살아갈 수 없다는 건 결혼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부분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부부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임을 인정하고 서로 존중하는 존재이다. 부부가 인생을 함께 걸어가려면 서로 다름을 받아들여야 한다. 결혼이 가슴에 와 닿지는 않는 비혼주의자에게 부부 생활은 남의 나라 일처럼 느껴진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편하게 이 책을 읽었다. 그렇지만 나는 이 책이 독서라는 공통분모로 하나가 되고 싶은 애서가 부부에게 유용한 책이 될 거로 생각한다. 이 책에 부부가 언급하는 일본 서적 대부분이 국내 독자 입장에선 상당히 낯설다. 부부가 읽는 책 내용을 아는 게 중요한가? 책 읽다가 이혼할 뻔》은 서평집이 아니다. 이 책을 '서평집'이라고 생각하면서 펼치치 마시라. 부부가 책과 서평을 매개로 어떻게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는지 살펴보시라. 이 책 제목을 처음부터 책 읽다가 더 사랑할 뻔이라고 정했으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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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18-04-01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리보기가 없어서 내용이 많이 궁금했었는데 사이러스님 덕분에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재밌을 것 같아요. 일단 보관함으로 모셨습니다. ㅎㅎ

cyrus 2018-04-01 19:26   좋아요 1 | URL
이 책에 대한 독자들의 평가가 좋지 않아요. 부부가 언급한 책 중에 번역된 것이 많지 않아서 우리나라 독자 입장에서 보면 서평에 공감하기 어려워요. 사서 읽는 것보다는 도서관에 빌려서 읽는 것이 좋습니다. ^^

북프리쿠키 2018-04-01 18: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고유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고 더욱더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러한 실천들이 무관심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면요.흔히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취향‘조차 닮아야 된다는 건 넌센스고 욕심아닐까요^^

cyrus 2018-04-01 19:27   좋아요 1 | URL
네, 맞습니다. 배우자의 취향을 무시하는 것도 이혼 사유가 될 수 있어요.. ㅎㅎㅎ

AgalmA 2018-04-01 19: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앤 패디먼 <서재결혼시키기>랑 또 다른 책이네요^^
이곳 다른 분들도 그렇겠지만 책을 그냥 물성으로 보지 않는 터라 같은 책이어도 다른 사람 책은 다른 사람 책이죠! 분명 읽은 책이어도 남의 책으로 보면 정말 낯설어요;;

cyrus 2018-04-01 19:33   좋아요 1 | URL
저도 앤 패디먼의 책이 생각났어요. 가까이 지내는 부부도 서로 추천한 책들을 읽지 않는다고 해요. 예전부터 그래왔지만 저는 상대가 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제가 읽은 책은 추천하지 않아요. 저도 상대가 추천한 책을 잘 안 읽어요. 결국, 애서가는 본인 알아서 책을 읽는 사람들입니다. ^^

stella.K 2018-04-02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장)읽게될 것 같지는 않지만 재밌을 것 같네.ㅋ

cyrus 2018-04-02 16:15   좋아요 0 | URL
부부가 소개한 책들이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것이라서 서평 내용에 공감하기 어려울 거예요. ^^;;


페크pek0501 2018-04-02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편과 저도 책 취향이 달라서 각자 사 보는 편입니다. 가끔 둘 다 읽는 책이 낄 때가 있으면 반갑지요. 책 취향이 같다면 책 값 절약이 될 터인데, 하고 생각한 적 있지만
어찌 보면 서로 다른 게 좋은 것 같아요. 각자 고유의 영역이 있는 게 좋기도 하고
나만의 책, 이란 게 좋기도 하거든요.

cyrus 2018-04-02 16:20   좋아요 1 | URL
독서 취향이 같은 사람끼리 계속 만나면 지루해요. 그리고 책을 고르는 선택의 폭이 좁아져요. 알라딘 서재/북플 활동에 익숙하면 낯선 사람과의 친밀도를 유지하기가 수월해요. ‘좋아요‘와 ‘댓글‘을 서로 주고 받는 사람끼리 친해지기 쉽죠. 그런데 이런 분위기가 늘 좋은 것만 아니에요. 요즘 독서모임을 하면서 독서 편력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온라인 관계의 한계를 느꼈습니다.